소설리스트

잊혀진 신의 세계-348화 (348/497)

348화 개막전

카즈키는 희연의 발전을 보면서 넋놓고 축하만 해줄 인물은 아니었다. 그녀의 재능 역시 천재적이었다. 아니 희연을 넘어서는 귀재였다.

만약 그녀의 아버지인 츠루기가 몸이 성하지 못했다면, 발키리는 그녀를 찾아갔을지도 몰랐다.

물론 츠루기를 극진히 생각한다고 하기는 곤란했기 때문에, 츠루기가 건강상의 문제를 갖고 있었다고 해도 카즈키가 방문을 받았을지는 확실치 않았다.

희연에게 자극을 받자, 그녀도 나름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검술 실력으론 내가 그년을 못이기지.’

재능은 자신이 위라고 하지만, 희연처럼 진지하게 오랜 세월을 검에 쏟아 붓지는 않았다. 진지하게 보낸 시간과 노력을 뛰어넘을 만큼의 재능 차이는 없었다.

토끼만큼 빠른 거북이와 거북이보다 조금 빠른 토끼였다.

하지만 그녀 역시 진지하게 검을 휘두르지는 않았지만, 무술과 동떨어져 살아오지는 않았다.

그녀는 나기나타를 비롯해서 다양한 무기에 익숙해져 있었다. 카타나만 잡고 휘두르기엔 그녀의 재능이 차고 넘쳤다.

‘희연은 자신의 무기 사랑을 멋지게 사용했어.’

그녀는 자신의 능력인 촉수 엑스칼리버를 떠올렸다. 리베로에 사용하기는 쉽지 않지만, 제대로 활용하면 분명히 강함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했다.

‘채찍으로 써볼까?’

그녀는 가볍게 채찍을 휘둘러 보았다. 채찍은 다양한 힘을 통해서 움직인다. 주로 원심력으로 작용하는 관성의 힘이었다. 손잡이를 이용해서 힘을 가하기 때문에, 처음 만나는 상대는 당황하지만 숙련된 전사는 그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촉수 엑스칼리버와 연계한다면 자유자재로 채찍을 활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 채찍형 엑스칼리버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방법을 알고 있었다.

“특이한 검이네? 게임에서 본 적 있는 것 같아.”

“그래. 이걸 쟈바라블레이드라고 부르지. 한자로 하면 사복검이 되겠지. 뱀 배모양이라고 해서 쟈바라라고 해.”

“자바라가 한국말인줄 알았는데.”

연하는 태블릿 화면에 떠오른 작은 조각으로 나뉘어진 검을 보면서 말했다. 줄이 당겨지면 검편이 모이면서 검으로 변하고 줄이 풀어지면 검편들이 달린 채찍 형태로 변화하는 물건이었다.

“절대 희연에게 말하면 안된다. 이건 비밀무기니까.”

카즈키는 채찍을 휘두르면서 말했다. 양손에 든 채찍들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면서 현란하게 움직였다. 연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압도당했다. 저걸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언니는 검말고 채찍도 잘 다루네? 희연언니는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고년은 한우물만 팠으니까. 다재다능한 나와는 다르지.”

카즈키는 희연에 대해서 애증을 담아서 말했다. 실제로 그녀는 츠루기와 함께 세계 각지를 돌아다녔다. 중학교 1학년, 고교 3년을 제외하면 일본에 장기간 머문 적이 없었다.

마츠모토 부녀는 뛰어난 검사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서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각종 무기를 다루는 이들에게 강의를 하거나 지도 대련을 했다. 중세 및 근세의 유럽 검술을 재현하는 작업에도 협조한 바 있었다.

덕분에 다양한 무기를 다뤄본 경험이 있었고, 그를 이용해서 희연을 상대할 계획을 세웠다.

레이피어를 이용한 찌르기로 리베로에서 촉수 엑스칼리버를 사용해 볼 생각도 했다. 그녀의 촉수 엑스칼리버는 희연만큼은 아니라도 집중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레이피어는 잘리거나 부러지기가 쉬웠다. 끝부분만 날카롭게 해서는 답이 없다고 생각해서 포기했다.

“이거 리베로용이라고 나오는데? 언니 리베로용 무기로 이걸 만드려는거야?”

“그래.”

“엑스칼리버로 이걸 다 감싸려고? 그게 가능해?”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건 무리야. 하지만 정령에게 가르칠 수는 있어.”

“정령에게 엑스칼리버를 가르친다는거야?”

“아니지. 내가 촉수를 쓰는 법을 가르치는거야. 그 각각의 칼날은 전자석이 포함되어 있어서, 서로 당기고 밀치게 만들 수 있거든. 이걸 이용하면 내가 지금 휘두르는 채찍처럼 움직일 수 있어. 지금은 내가 엑스칼리버로 이걸 조종하고, 리베로에서는 정령이 그걸 대신해 주는거지.”

“언니, 예상외로 머리 좋다.”

“’예상외로’ 는 빼줬으면 좋겠네. 난 천재중의 천재란다.”

카즈키의 답변에 연하는 피식 웃었고, 카즈키 역시 미소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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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연은 도장에서 검을 휘두르다가 땀을 닦으면서 장내를 돌아보았다. 도장 안에는 그녀 혼자밖에 없었다.

원기는 프레이야로 엘프 공장을 방문하고 있었다. 바니걸 통신은 정신적인 것이고, 엘프 공장 내의 성역을 높여서 엘프 태아들의 건강 상태를 좋게 만들기 위해 잦은 방문이 필요했다.

그리고 카즈키는 희연을 타도할 비밀 무기를 만든다며 다른 연습장으로 갔다. 그리고 연하 역시 카즈키를 따라갔다. 그리고 그것은 희연의 마음의 상처를 떠올리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역시 외톨이가 되어버린건가.’

희연은 우등생이었다. 공부도 운동도 잘했고, 기본 미모도 빼어났다. 하지만 인간 사회는 그것만으로 완전하지는 못했다. 학교도 역시 인간 사회의 일부였다.

젊은 여성은 미모의 동성에게 기본적으로 적대적이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적대적인 태도가 나오기 시작한다. 이성에게도 동성에게도 인기가 좋은 미인들도 있지만, 그걸 위해서는 사교성이 필요하다. 그것도 꽤 높은 수준의 사교성이 필요한 법이다.

희연은 공부도, 운동도, 미모도 뛰어난 만능 미인처럼 보였지만, 편부 슬하의 외동딸이라 사교성은 약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연스럽게 ‘은따’라는 부류에 속해 버렸다.

주위의 아이들은 그녀와 친한 척을 했지만, 정말 친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악의적인 소문이 돌아다녔고, 가시돋친 별명들도 붙었다.

그중 하나가 ‘조강지처’라는 별명이었다.

“네 별명이 조강지처라더라. 누가 보더라도 매력적이라서 그런 별명이 붙은 것 같아. 그런데 말이지, 뒤에서 누가 그러더라. 조강지처라는 뜻이 처음엔 네가 예뻐서 널 꼬셔서 결혼한 다음에, 재미가 없으니까 다른 요염한 날라리 계집한테 눈을 돌리게 될 거라는 뜻이래.”

희연은 그 말을 전한 동급생 역시 뒤에서 자신의 험담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냥 어울렸다.

그녀 스스로도 남과 잘 어울리는 성격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굴에 감정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철면피로 불리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병으로 쓰러진 이후에는 집안을 지탱하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그녀가 돈에 궁하다는 사실을 알게된 몇몇 사람들은 그녀에 대해서 원조교제 등의 소문을 퍼뜨렸다.

“정말 돈이 어려워서 아르바이트 한다더라. 몸을 판다던 소문도 있다던데, 희연 같은 애가 그럴리는 없을거야. 하지만 아니땐 굴뚝에 연기날까라는 속담도 있으니.”

호의를 가장해서, 혹은 남의 의견을 가장해서 그녀에게 악의적인 소문들이 퍼졌다. 그녀의 외모에 끌린 남자아이들조차 그런 소문을 무시하기보다는 자신들의 망상과 엮기도 했다.

그녀는 그런 악의에 질 만큼 약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악의에 상처입지 않을만큼 강하지도 못했다.

‘재미없는 녀석이라는게 내 평가였지.’

희연은 씁쓸한 기분을 느꼈다. 연하는 여전히 희연을 어려워한다. 연상인 카즈키를 더 편하고 만만하게 여겼다. 사실 원기나 카즈키도 희연을 어렵게 여기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그녀를 신뢰한다는 뜻도 되었지만, 거리감을 느끼는 것은 무리도 아니었다.

희연이 원기와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 것은 바로 그런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었다. 야동을 보던 남학생들 사이에서 퍼진 그녀에 대한 별명 중에는 마구로가 있었다. 도마위에 올라온 죽은 참치처럼 꼼짝안하는 순진한 혹은 재미없는 여자라는 뜻의 일본 속어였다.

원조교제에 대한 소문과 함께 퍼졌던 악의적인 별명이었고, 희연 주위에는 그런 악의적인 소문이나 별명을 전해주지 못해서 안달난 사람들이 많았다.

자세한 설명까지 겯들여서 들려준 조강지처, 마구로 등의 별명은 그녀에게 자신은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인식을 갖게 했다.

원기와의 위장 결혼이 진짜로 나아가지 못한 것은 그녀가 언젠가 자신이 버려질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했다.

원기가 적극적이었다면 상황은 바뀌었을지 몰랐지만 원기 역시 미움받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터라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무리였다.

그녀가 혼자 된 상황에서 소외감과 열등감에 잠기려고 할 때, 바니걸 통신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것은 희연의 마음에 안정을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조금은 용기를 내게 만들었다. 그녀는 용기를 내기로 마음먹고 샤워를 한 다음 찬균에게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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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오덕을 너무 만만하게 보고있어.”

찬균은 일갈했다. 찬균과 호철은 희연을 만만하게 보고 대하는 극히 희소한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조제성이나 장수한과는 달랐다. 프레이야의 혜택을 받기는 했지만, 그저 혜택에 지나지 않았다. 인생을 구원받은 수준은 아닌 것이다.

조제성과 장수한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지만 그들은 그런 욕심도 없었다. 조제성에게는 재능이 있었고, 장수한에게는 가난이 있었다.

반면 호철과 찬균은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생 덕질하며 살 수 있었다. 가족들에게 차가운 시선은 받겠지만, 그건 감수할 수 있었다.

조제성과 장수한은 희연에 대해서 높게 평가를 할 뿐 아니라, 원기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로 인식해서 정중하고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찬균과 호철은 그런게 일체 없었다.

조금 더 호사스러운 덕질을 하는 것 뿐이었다.

호철에게 있어서 달기지 건설은 스케일이 좀 더 커진 모형질에 지나지 않았다. 혼자 만드는 1/10000짜리 우주 전함이 1/1로 바뀐 것 뿐이었다.

눈앞에 나타난 여신의 카리스마에는 굴복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자유로운 편이었다.

“마법 소녀 파파파를 모든 오덕들이 다 좋아할거라 생각하면 곤란해. 그걸로 원기와 대화가 통할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유명한 애니메이션이던데? 다들 좋아한다고 들었어.”

“이래서 문외한은 곤란하다니까. 초보들이야 다 좋아하지. 하지만 깊이있는 오덕들은 확고한 취향이 존재하는 법이야. 다 같은 마법소녀물이 아니거든. 예를 들자면 호철이 자식은 마법소녀도 전투적인 취향을 좋아해. 전대로 나와서 패싸움을 벌이는 프리캐어, 세라선 같은 계통을 좋아하지. 파파파 같은 마법소녀물도 그놈은 좋아할거야. 하지만 수한형이나 나 같은 경우 광대계 마법소녀물을 좋아하지. 원기도 광대계기는 하지만, 그놈은 원리주의자야. 난 천사소녀 크롬이를 좋아하고 수한형은 요술가족 매지컬 매미를 좋아하지. 팬티 리리를 비롯해서 아이돌계 마법소녀의 팬이라고 할까. 원기는 반면 익명의 마법소녀물을 좋아해. 마법공주 밍크라든가, 마법요정 앗시리아라든가.”

찬균의 장황한 설명에 희연은 눈살을 찌푸렸다. 찬균의 설명은 한도 끝도 없이 이어졌다.

‘우리 말로 좀 간결하게 설명해 봐라.’

희연은 내심 그렇게 생각했지만, 차마 입으로 내지는 못했다. 그만큼 열정적으로 열변을 토하고 있기도 했다. 로봇 애니메이션의 역사도 등장해서 블랙 칸다머라느니, 지구세기 추종자라느니, 평성이 어쩌구, 슈퍼니 리얼이니 하는 알아듣지 못할 소리들이 쏟아져 나왔다.

“못알아듣겠으니까 이제 그만 좀 해.”

희연이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는 생각에 말을 끊자, 찬균도 자신이 너무 열을 올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음, 그런가? 한가지만 알려줄께. 오덕들은 모두 포교자라고 볼 수 있어. 그러니까 적당히 골라서 보지 말고, 뭐가 재밌냐고 물으면 그놈도 포교자로서의 본성을 드러낼거야. 자기가 좋아하는 작품이 어떤 면에서 재밌고 좋은지 알려주고 싶어서 안달할 걸. 그러니 파파파는 보지마. 마법소녀가 싸움질 하는 건 이단이야. 이단.”

[웃기지 마라. 멍청아. 이미 주류는 전투 마법소녀 계통으로 옮겨왔다. 너야말로 시대착오적인 이단이다. 중세 암흑기에 파묻힌 교조주의자 같으니.]

“이런, 내가 파티 채팅 연결해 놨었나?”

“알았어. 무슨 얘긴지 알겠네.”

희연은 찬균과 호철의 열띤 논쟁을 뒤로한채 자리를 피했다. 오덕이라고 모든 만화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 성과라면 성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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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이제 자바라 블레이드의 위력을 보여주지.’

카즈키는 리그 개시의 순간을 기대했다. 별다른 작전 없이 120기의 리베로가 두 팀으로 나뉘어 장절한 라인배틀을 벌일 예정이었다.

길고 짧은 두 검을 이용한 이도류로 희연을 상대할 예정이었다. 희연 역시 이도류를 비롯해서 검도의 움직임에 익숙하긴 하지만, 그녀는 고지식한 정통파에 가까웠다.

희연의 이도류보다는 카즈키의 이도류가 훨씬 더 세련되고 완성도가 높았다. 그렇기에 카즈키는 이도류만으로 희연 외의 상대들을 제압하기로 마음 먹었다.

희연에게 한방 먹일 때를 위해서 자바라 블레이드를 감추기로 한 것이었다.

‘그건 그렇고 정말 잘 만들어졌어.’

장수한은 카즈키의 아이디어를 듣고는 바로 실용화에 나섰다. 칼날과 칼날이 전자석의 척력과 인력을 이용해서 자유자재로 움직인다는 것은 충분한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제품 제작은 장수한의 영향을 받은 드워프들이 손을 걷고 나섰고, 시제품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완성도가 이뤄졌다.

“아오이. 컨트롤은 문제 없겠지?”

[물론이에요. 카즈키님의 심상대로 컨트롤해 보여드리겠어요.]

카즈키는 미소를 지으며, 전투 시작 신호가 오르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전투 시작 신호가 오르자, 전장으로 뛰쳐나갔다.

“전술 교도대의 블루 폭스가 여기있다! 모두 덤벼라!”

그녀는 스피커를 통해 힘껏 외쳤다. 송사리들을 처리하고 희연과 일대 격전을 벌일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적들은 그런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실버 타이거 어딨어! 실버 타이거!”

“레드 폭스 어딨어! 레드 폭스 나와!”

정령들과의 계약에 눈이 먼 이들에게 블루 폭스는 관심 밖이었다. 이스트 팀과 웨스트 팀으로 갈려져 있었는데, 이스트 팀은 모두 희연을 치러 몰려들고 있었고, 웨스트 팀은 원기를 치러 몰려들고 있었다.

몇몇 교도대 멤버들만이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고개를 돌려 두리번 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카즈키는 모든 이들이 자신을 무시하고 원기와 희연에게만 집중하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녀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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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나. 자중해.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할 셈이야?”

[…]

짜증스러운 듯한 제준의 한마디에 프로나는 침묵했다. 제준은 그런 프로나의 태도에 가슴이 아프게 느껴졌다.

제준은 자신의 이능이라고 각성하지는 못했지만, 꿈을 통해서 프로나의 과거를 보았다. 그랬기에 그녀의 아픔을 인식할 수 있었다.

그녀는 전멸의 위기에서 몇 명이라도 구하기 위해서 적이 포위망을 갖추기 전에 좀 더 기다려보자는 부관의 의견을 무시하고 전투를 시작했다.

적의 대비는 충실했고, 그 결과 그녀의 부대는 전멸했다. 정령으로 각성한 뒤에 알게 된 것은, 한 시간 후에 아더왕의 부대가 그들을 구원하러 왔다는 사실이었다.

누구도 그녀를 책망하지 않았다. 반대 의견을 냈던 부관도 그 상황에서는 더 타당한 판단이었다고 그녀를 옹호했다. 그녀 자신도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프로나의 지나친 적극성은 거기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그녀는 옳아야만 했다. 적극적인 전투만이,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는 전투만이 그녀의 옳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라고 믿었다.

지금까지의 파일럿들은 그런 그녀의 기백에 압도되어 그녀가 하자는대로 따랐다. 하지만 꿈을 통해 그녀의 마지막 전투를 엿본 제준은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내심 그녀는 책망받고 싶어했다. 그녀는 비난받고 싶어했다.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말해주기를 원했다.

제준은 그녀가 옳다고,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태도로는 그녀가 회복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차갑게 대했다. 그리고 그것은 생각보다 잘 먹혀 들어갔다. 그녀는 화를 내고 침묵하면서도 제준의 지시를 따랐다.

‘그건 그렇고, 정말로 괴물이로군. 저건. 저걸 어떻게 이기지?’

제준은 실버 타이거의 전투를 보면서 내심 질렸다.

레드 폭스는 예상보다 멋진, 말도 안되는 수준의 전투를 벌였다. 레드 폭스의 무기는 이미 공개된 무기인 히트 소드였다. 사람들은 히트 소드를 사용해 보고는 그다지 쓸모있는 병기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강화 프라스틱의 장갑을 녹여서 절삭력은 있지만, 강철 프레임을 잘라낼 정도의 위력은 없었다.

하지만 희연은 그것을 이용해서 팔이나 다리 등의 관절을 완벽하게 잘라냈다. 딱히 무기사랑의 이능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베이는 순간에 무기 사랑을 집중하는 집중력이 그녀의 검술을 한단계 진보시켜준 것이었다. 리베로의 관절부 정도는 집중하는 것만으로 무리없이 잘라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활약이 무색한 것이 바로 실버 타이거의 전투였다.

실버 타이거는 사방이 적들로 가득찬 속에서 종횡무진 날뛰었다. 희연은 일정 거리에 들어오기 전에 적들을 해치워서 그녀의 주위에는 빈 공간이 생겼다.

하지만 원기는 달랐다. 그는 적극적으로 적에게 달라 붙었다. 그리고 그것은 주변의 적들이 쉽게 공격하지 못하고 망설이게 만들었다.

프렌들리 킬, 아군을 공격할 우려가 생기면 사람들은 망설이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군을 실수로 공격하면 패닉에 빠지게 되어 있었다.

원기는 자신을 공격해 온 적의 공격을 흘리면서 품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리고는 상대를 밀쳐서 옆에서 치는 다른 상대의 공격을 막고, 그 틈에 새로운 적의 목을 쳤다.

제로 거리의 전투, 상대는 공격할 공간도 실버 타이거를 포착할 시야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관절이 뒤틀리면서 고철로 변해서 땅바닥을 굴렀다. 야만적이고 무식한, 전율을 일으키는 전투를 보면서 제준은 혀를 찼다.

그리고 그러다가, 그의 눈이 마주친 것은 제물을 찾는 블루 폭스의 기체였다.

‘젠장, X됐다.’

프로나와 계약하고 싶다는 마음보다도 어느샌가 프로나를 이기게 해주고 싶다는 그런 마음이 앞서게 되어버린 제준은 블루 폭스를 보면서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질 수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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