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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351화 (351/497)

351화 계약

신근호는 침을 삼켰다. 토르의 제안은 파격적이면서 위험한 것이었다. 거절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라고 봐도 좋았다.

오딘을 치겠다는 계획을 알린 만큼, 협조하지 않으면 프레이야 제국을 먼저 칠 수도 있었다. 일순위로 신근호가 죽게 될 터였다.

죽어서 부활할 수 있다고 하지만, 죽는 것도 싫고 토르의 제국 한가운데서 부활해서 돌아가는 것도 쉽지 않을 터였다.

부활해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털레 털레 걸어가는 그를 걸어서는 못돌아가는 곳에 배치할 수도 있었다.

감옥 같은 건물이라면, 동일 좌표의 지상이나 꼭대기 층에 부활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걸어서 이동이 불가능한 지형에 둘러쌓이면 꼼짝할 수 없는 것이다.

“신전은 7개가 있는데 5개를 제압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고 계십니다. 그리고, 투입할 수 있는 전력은 레벨 3의 성기사 이백명을 당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저희로서는 그게 한계라고 하는군요.”

게임 캐릭터는 꽤 소중한 자원이었다. 현재 풀타임으로 이용하는 수는 고작 백명 정도였다. 부활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성기사 이백명을 상대하는 것도 벅찼다.

[그정도가 고작이겠지.]

토르는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5개의 신전은 떠보기에 지나지 않았다. 오딘을 공격할 의지가 있는지 탐색하는 것이었다.

신전은 동서남북 네 곳과 중앙을 합쳐 다섯개가 대외적이지만, 중앙 상부에 있는 천공신전과 중앙 하부에 있는 지중신전까지 토탈 7개였다. 천공 신전에는 오딘의 옥좌가 있고, 지중에는 발할라의 비행을 위한 코어가 존재하고 있었다.

[좋아. 그 전력을 굴베이그 구출이 끝나는데로 보내줄 것을 요청하지. 지휘권은 우리가 갖겠다.]

어찌보면 말도 안되는 요구였다. 하지만 조제성은 승낙했다. 토르와 오딘이 대규모로 한판 붙는다면, 그 이상의 요구라도 들어줄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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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방법이 있는 모양이로군요.”

“그렇습니다. 무슨 방법일지 모르지만, 기대가 되는군요.”

토르가 오딘을 공격한다면, 양측 모두 숨겨진 카드 하나씩은 드러내게 될 것이라는게 조제성의 판단이었다. 진짜 전력을 엿볼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저도 참석하겠습니다.”

“은호가 빠진다면, 안되겠지요.”

순수한 전투력으로 비교한다면, 원기는 희연은 물론이고 카즈키에게도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페인 마스터리는 강자에게도 통용되는 사기성 기술이었다. 감각이 없는 존재라면 모를까, 감각이 있는 성기사들은 레벨 몇의 성역에 있건 한방에 제압이 될 터였다.

오딘의 에인페리아들은 인간이 베이스이기 때문에 충분히 제압할 가능성이 있었다.

물론 순순히 잡혀 줄 리는 없었다.

“에인페리아가 하나라도 있으면 승부가 되지 않을텐데요.”

원기가 우려하는 것은 그것이었다.

“토르에게도 뭔가 대책은 있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제공하는 전력은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적대 성역에서 능력 감소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히 큰 것이었다.

“그건 그렇고, 굴베이그 구출 작전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문제는 어느정도의 전력을 투입할 것인가입니다.”

장수한과 박호철이 준비한 아이디어들을 토대로 전력이 구성되었다. 주로 2차세계대전 당시에 고안된 말도 안되는 기술들을 토대로 한 것이 많았다.

그 중 하나가 동물 폭탄이었다.

동물들에게 폭탄을 짊어지고 적들에게 뛰어들게 만드는 것이었다. 물론 이미우를 비롯한 동물과 대화 가능한 능력자들을 이용하면 동물 자체라도 꽤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지만, 길들인 동물들의 가치는 고작 폭탄에 써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테이밍 몬스터들에게 쓸모가 있었다. 테이밍 몬스터들에게 폭탄 조끼를 입히고 적에게 돌진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엘프들에게는 스티키 봄, 접착 폭탄을 장비 시켰다. 엘프들의 현란한 움직임을 이용하면, 적에게 폭탄을 부착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인간형보다는 대형 몬스터 타입에게 최강의 무기가 될 수 있었다.

일반적인 폭발형 폭탄도 있지만, 부착시키고 폭발시키면 부착면 쪽으로 크고 날카로운 파편이 발사되도록 만든 소형 접착폭탄도 있었다.

소총 따위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유용한 병기라고 할 수 있었다.

왠만한 타격력을 씹어먹는 성기사, 신관, 몬스터들이 넘치는 세계에서 소총은 오히려 아군보다 적에게 유용한 병기가 될 수도 있었다.

“자폭을 위한 폭탄 조끼도 있습니다만, 기각했습니다. 지원자가 넘치기는 합니다만.”

정령화가 불러온 부작용이었다. 죽어서도 충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엘프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원기가 너무도 끔찍하게 싫어하고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자중하는 편이었다.

프로나 같은 경우에도 죄책감을 느끼는 부분은 ‘동료들의 죽음’이지, 자신의 죽음은 아니었다. 여신이 아끼는 엘프들을 죽게 만들어서 여신의 마음을 아프게 만든 것이 죄스러울 뿐이었다.

엘프 공장의 존재도 대다수의 엘프들에게 감춰졌다. 엘프 공장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엘프들은 안심하고 죽음을 향해 돌격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여신과 종족의 번영을 위해 자신들은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었다.

“굴베이그 구출 작전에 게임 캐릭터를 제외한 엘프들은 일체 투입하지 마세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요. 차라리 굴베이그를 포기하는 편이 낫습니다.”

원기에게 있어서 굴베이그는 분신에 가까운 존재였다. 인격을 갖추고 점차 성장해 나감으로써 별개의 인격으로 각성하고 있지만, 원기에게는 ‘남’이 아닌 존재였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엘프들의 희생은 철저하게 막겠습니다.”

장수한도 엘프들을 사랑하는 매니아로서 결의를 담아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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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준은 개막전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내심 걱정을 많이 했다. 인터넷에 빗발친 악담들 때문이었다.

뒤통수의 신, 막타의 제왕, 킬딸의 황제 등의 별칭들이 생겼는데, 인터넷 특성상 두글자로 줄여 부르는 경우들도 많았다.

개중 유명한 것이 딸신이었다. 킬딸의 신이라는 뜻이라고는 하는데 참 난감한 기분이었다.

‘젠장, 하필이면 이름도…’

제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손목에 찬 시계를 보면서 뿌듯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프로나가 자신과 계약해 준 것이었다.

숨어서 돌아다니다가 결정적인 순간을 노려 뒷통수를 친게 고작이라 과연 계약을 해줄까 걱정을 했지만, 프로나는 의외로 순순히 계약을 맺어 주었다.

그의 손목에 있는 스마트 와치는 실시간으로 프로나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는 듣는 사람이 오글거릴 듯한 음성으로 말을 걸었다.

“프로나. 지금 뭐하고 있어?”

[무슨 일이냐? 지금 바빠 죽겠는데.]

“바쁘다니?”

[야! 지금 공격해! 정면이야!]

“설마 다른 사람의 리베로를 조종하는 건 아니겠지? 그건 계약 위반이야.”

[시끄러. 지금 레이드 중이야. 나중에 다시 말해.]

프로나가 대뜸 끊어버렸다. 제준은 황당했지만,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기다렸다.

‘설마 정령들이 실존 인물이라는 소문이 진짜인건가?’

음모론처럼 퍼진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정령들이 실제로는 컴퓨터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소리였다.

누군가는 비밀리에 이루어진 싱크로 시스템이라는 것을 테스트하는 것으로, 정령들은 실제로는 실존하는 인간들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정령과 리베로에서 동조를 해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이야기를 나눠본 사람들은 그 음모론에 내심 동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잘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인공지능은 인공지능일텐데, 정령들은 인격은 물론이고 개성도 확실하게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웃, 게임도 한단 말이야? 블러디 라인?”

[그래. 안타깝지만 블러디 라인 2는 못들어가고 있어. 우리에겐 결여된 부분이 있어서.]

“그럼 나도 들어가서 같이 해도 될까?”

[물론이지. 내 계약자이니 그정도는 할 수 있지.]

“너 컴퓨터 아니지? 정말은 인간 아냐?”

[인간은 아냐. 그 이상은 네가 계약자라도 알수 없는 부분이다.]

공항에 도착하니, 친구들 몇 명이 나와 있을 뿐이었다. 환영 퍼레이드 같은 것이나 팬들의 환호 같은 것은 없었다.

‘좀 실망이군.’

야유가 없는 것만으로도 안도는 되었다. 사실 개막전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초딩 아이돌인 놀원이 리베로 세계의 최강자인 실버 타이거와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는 것이었다.

전술 교도대와 대등한 전투를 펼친 일반 참가자가 아름다운 소녀인데다가 유명 아이돌이라는 사실 때문에 제준은 자연스럽게 묻혀 버렸다.

‘섭섭하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하고.’

“야, 상금은 얼마나 나왔냐?”

“얼마 안나왔어. 최종 우승자도 아니니까.”

실버 타이거에게 회심의 일격이자 막타를 먹였지만, 실버 타이거는 누가봐도 경기 속행이 어려울 정도의 타격을 입은 것으로 보였다. 물론 그것은 겉보기 뿐이기는 해도 한팔을 잃은 것은 분명 큰 타격이었다.

그런 실버 타이거의 뒷통수를 친 것은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후, 그는 훈련 교도대의 강자들에게 맥도 못추고 격침당했다.

“자네가 이제준인가.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분이 계시네.”

제준은 검은 양복을 입은 덩치 큰 두 사람을 보면서 당황했다. 보디가드처럼 보였지만, 요인경호만 하는 사람들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프로나와 통화할 수 있는 시계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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