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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352화 (352/497)

352화 굴베이그 구출작전

제준은 정체 모를 건물의 지하실로 끌려갔다. 얼굴에 두건을 씌우거나 하지는 않았다. 주변 경관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되려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정부나 그쪽 사람들은 아닌 것 같지?’

을씨년스러운 지하실에 테이블과 벽면 TV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제준은 테이블 앞에 TV를 마주보고 앉도록 요구를 받았다. 자리에 앉자 TV화면에서 왠지 모를 음침한 모습의 사내가 등장했다. 사내는 양복이 아닌 의사나 이발사가 입는 백의를 걸치고 있었다.

“잘 와주었네. 제준군. 그리고 정령 프로나양.”

“저, 무슨 일이시지요?”

“시간이 없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자네의 정령을 좀 빌리고 싶다네.”

“빌리다니요?”

“별 일 아닐 세. 그저 자네는 이 보석에 정령이 깃들어 달라고 부탁만 하면 되네.”

사내는 붉은 보석을 눈 앞에 보여주었다. 주먹만한 핏빛 보석이었다. 왠지 너무 큼직해서 보석보다는 싸구려 프라스틱 덩어리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일단 이 스마트 와치로 인터넷을 연결하지 않으면 안되는데요.”

전화도 인터넷도 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의 차를 타면서 이미 알 수 있었다.

“걱정 말게. 정령은 인터넷 속에 있는게 아니라, 자네의 뇌 속에 존재하니까 말이지.”

‘이거 왠 미친 놈이야? 설정에 중독된건가?’

제준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사내는 그것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그래? 자네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듯하군. 상관없지. 정령양, 모습을 드러내 주었으면 좋겠군. 정말로 시간이 없거든. 안되겠다. 일단 한쪽 손톱을, 아니야 손목을 잘라.”

사내의 말에 그의 옆에 있던 덩치큰 사내들이 제준의 손을 잡아서 테이블에 올렸다. 그리고 정글도 같은 칼을 꺼냈다.

[적당히 하지 그래.]

그 순간, 프로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유령이랄까 홀로그램 같은 반투명한 모습이었다.

“우리 요구 조건은 간단하네. 자네가 이 보석에 들어가 주면 되는거야.”

[블러디 크리스탈이로군. 빌린다고 말했지만, 돌려줄 생각도 없는 거겠지?]

“돌려줄 생각은 있지. 알다시피 자네 주인은 그 부분에 있어선 민감하지 않나. 좀 시간은 걸리겠지만 말이지.”

[현자회의 잔당인건가?]

“현자회 같은 건 없어진지 오래야. 우린 그저 인간의 호기심 같은 거라네.”

[미안하지만 그 요구 조건은 들어줄 수 없군.]

사내의 미간이 찌푸려들었다.

“이봐. 자네 정령이 자넬 버렸군. 자네가 부탁하게. 이 보석으로 잠시만 자리를 옮겨 달라고 말이지.”

[무리야. 녀석에겐 그런 권한이 없어. 녀석과 나의 계약은 단순 ‘독점 이용권’에 대한 계약일 뿐이다. 녀석이 날 리베로의 조종 컴퓨터로 소환할 때 응하고, 다른 이의 요청에 응하지 않는다는 것 외에는 조건이 없다. 설사 그를 죽인다고 해도, 난 너희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

“정말로? 이 녀석을 고문하고 죽이더라도?”

[그래. 난 여신님의 전력이고, 저 자는 아무것도 아니다. 저 놈은 그냥 ‘인간’에 지나지 않아. 너도 현자회로부터 들은게 있다면 그 정도는 알고 있을텐데?]

“정령 계약은 꽤 친밀한 관계일 때 맺어지는 것 아니었나?”

[운좋게 뒷통수를 때려서 맺어진 계약일 뿐이다. 그가 죽건 살건 내가 알 바는 아니지.]

“어떻게 할까요?”

백의의 사내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손목을 좀 잘라보게. 아무것도 안해보고 실패한다는 것도 체면의 문제니까 말이지.”

[소용없다고 말했을텐데?]

“좀 더 가치있는 인질이 생겼을 때, 다시 시도해 보도록 하지요. 지금은 그저 맛보기로 갑시다. 이런, 벌써 도착하셨군. 사지를 자르고 목을 치도록 하게.”

[그만 둬.]

패닉에 빠진 제준을 대신하듯이 프로나가 외쳤다.

“그자는 여신님의 전력도 신자도 아닌 한낱 ‘인간’입니다. 프로나양이 신경쓰실 필요는 없지요. 저희도 여신님을 딱히 적대할 생각은 없습니다. 여신님께 안부 전해 주십시요.”

그렇게 말한 순간, 화면이 꺼졌다. 그리고 붉은 보석은 연기를 뿜으며 녹아서 사라져 버렸다. 테이블 위에는 붉은 거품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거구의 사내가 큼직한 정글도로 제준의 손목을 내리치려는 순간, 그의 손목에 푸른 빛을 한 채찍이 감겼고, 사내의 손목과 함께 정글도가 날아서 테이블 위에 떨어졌는데 공교롭게도 제준의 손등에 떨어졌다.

불행중 다행으로 칼날이 아닌 칼등이 떨어졌지만, 손등의 뼈가 부러지는 듯한 통증에 제준은 비명을 질렀다.

“그냥 제압해요. 자꾸 피해를 늘리지 말고.”

“괜찮아. 저정도는 침바르면 나아.”

“손목을 잘라놓을 필요는 없었어요.”

“저놈 손목을 안잘랐으면, 저놈 손목이 잘렸을걸.”

“저놈들도 피해자에요.”

“피해자라고 해도 야쿠자 비슷한 놈들 아냐? 상관없어.”

카즈키는 대뜸 그렇게 말했다. 레이니는 그런 그녀를 보며 한 숨을 쉬었다. 폭력배들이라고 하지만, 조종을 당한 이들이었고 그렇기에 레이니는 그들을 치료해 주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때문에 주무기인 총도 사용하지 않고 쳐들어왔는데 카즈키는 사람들을 죽이지만 않았을 뿐, 사복검을 이용해서 아주 피바다를 만들어 놓았다.

“이런 나쁜 놈들은 치료 안해주는게 좋지 않을까요?”

연하 역시 카즈키와 별다른 의식차이를 보여주지 않았다. 이는 엘프들과 인간들의 인식차이 때문일지도 몰랐다.

고릴라 무리에서 폭력적인 고릴라와 일반 고릴라는 인간에게 있어선 그다지 차이가 없게 느껴지는 것이다. 다 밉거나, 다 불쌍하거나였다.

엘프들에게 인간은 고릴라보다 좀더 위험하고 교활하고 난폭한 짐승이었기 때문에, 굳이 폭력적인 놈과 덜 폭력적인 놈들을 구별할 마음은 없었다.

그저 치료에 사용될 신성력이 아까울 뿐이었다.

말려든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줘서는 안된다는 여신의 방침 때문에, 폭력배들이라고 해도 치료를 안해줄 수는 없었다.

“이봐요. 손을 이쪽으로 내밀어요.”

레이니가 제준의 손을 붙들고 눈을 감자, 손이 빛나면서 통증이 사라졌다. 제준은 그런 레이니를 보면서 당황했다. 프레이야의 신성력을 몸에 두른 엘프 신관의 모습은 처음 접하는 이에게는 놀라울 수 밖에 없었다.

‘천사인건가?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거지?’

“괜찮아요?”

“예. 괜찮습니다.”

“프로나 언니는 어때요? 무언가 위해라도 당했나요?”

[어차피 죽은 몸인데. 더 이상 무슨 일이 있겠어?]

“다행이에요. 무사해서.”

제준은 진심으로 그렇게 말했다. 프로나가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은 어느정도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으로 인해서 위험한 상황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프로나에게 버림받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너도 꽤 이상한 녀석이군.]

그 마음가짐 때문일까, 프로나의 마음이 제준에게 조금 더 열렸다.

[이 녀석을 구하러 온건가?]

“예. 승상님께서 좀 보자고 하시네요.”

[승상님이? 그거 대단하군. 그럼 이 녀석은…]

“아마도 승낙 여부에 따라서 에인페리아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프로나는 그녀의 말에 잠시 침묵했다.

[혹시 에인페리아가 되시면 절 잊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프로나가 갑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자 제준은 당황했다. 그녀의 지극히 정중한 태도는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그녀는 인간을 경멸하는 고고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제준은 당황해서 프로나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너, 이 새퀴. 날 물먹인 놈이지?”

카즈키가 제준의 존재를 떠올렸다. 자신을 놀원에게 끌어들여서 골탕먹게 만든 놈이었다. 그녀의 사복검이 말 그대로 두 마리 뱀처럼 쉭쉭 대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사복검을 사용하게 되면서, 카즈키 역시 전력이 한단계 더 상승되었다. 일반 검으로는 그녀의 유연한 엑스칼리버를 충분히 활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는 실체가 없는 촉수의 형태로 적을 견제하는데 사용했지만, 두줄기의 사복검과 결합시키면서 공격력 자체가 현저히 상승했다.

공격범위와 방어능력, 그리고 학살 능력까지 카즈키의 전투 능력은 에인페리아들 가운데 최상위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물론 성기사나 엑스칼리버 유저, 에인페리아 등 방어력이 높은 적들에 대해서는 희연보다 상성적인 면에서 떨어진다고도 할 수 있었다.

“맞아요. 원기 오빠 뒤통수를 깐 놈이에요.”

연하가 재밌다는 듯이 맞장구를 쳤다. 원기와 희연이 오붓하게 지내라고 카즈키와 함께 다니는 경우가 많아진 연하였지만, 그녀의 배려 덕분에 희연은 자신이 따돌림을 당하는 듯한 고립감을 느끼고 있었다.

“레이니. 너 치료 능력은 충분히 있지?”

“인간 상대로 쓰기엔 아까운 능력입니다만.”

“에인페리아가 될 가능성이 있다며, 그럼 아깝지 않은거 아냐?”

“그렇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리디아 만이 아니고 레이니나 일부 엘프들은 에인페리아 급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엘프들은 스스로 정식 에인페리아와는 구별을 두고 있었다.

그리고 여신의 계약자들은 정식 에인페리아보다도 월등히 높은 고위급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다.

판타지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성자나 성녀 같은 존재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엘프들은 엘프들 가운데 좀 유능한 놈들이 두각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계약자들은 여신이 손수 고른 것이기 때문이었다.

조제성 승상이 골라서 여신이 채용하는 능력자들도 여신에게 선택받은 존재가 된다는 점에서 엘프들에겐 특별한 존재로 여겨졌다.

“저, 승상님이라는 분을 빨리 뵙고 싶은데요.”

“정말 감이 좋은 새퀴네. 거참.”

카즈키는 승상을 내세우자, 기운이 빠졌다. 좀 몇대 때려줄 생각이었지만, 조제성이 하는 일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그녀가 어려워하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했다.

“확실히 잔머리는 잘 돌아가는 것 같네요.”

리베로를 조종하는 정령들이 있기 때문에, 이런 계통의 능력자도 쓸모가 높아졌다고 볼 수 있었다. 쓸데없이 저항하지 않고 얌전히 들어온 것도 상황판단이 빠른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제준은 카즈키에게 멱살을 잡힌 채로 순순히 끌려가서 조제성과 만날 수 있었다. 그리 큰 체격은 아니라지만 남자 하나를 가볍게 들고 가는 미소녀의 존재에 그는 내심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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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굴베이그님을 구출할 작전이 시작될 겁니다.”

멀린의 말에 굴베이그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정신력을 집중하는 것으로 신성력의 발동을 더 효과적으로 컨트롤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주변의 경비는 더 삼엄해 진 상태였다.

아더와 란슬롯이 굴베이그의 인간 병력을 이끌고 원정을 나섰지만, 그것이 양동작전이라는 사실은 로키측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건실한 책략이라는 것은, 상대가 알고 있어도 어쩔 수 없이 당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더와 란슬롯이 이끄는 부대가 신전들을 함락시키는 상황에서 마냥 전력을 집중해 둘 수는 없었다. 그러다보니, 병력들이 빠져 나갔고 남은 병력들 역시 높은 긴장 상태로 오래 버틸 수는 없었다.

병사들은 적습에 주의하며 경계를 하고 있었지만, 최초의 공격은 그런 그들의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지금입니다.”

굴베이그는 집중력을 발휘해서 성역을 강제로 확장했다. 그리고 그것은 로키 진영을 지켜주던 신성력의 보호벽을 일부 상쇄시켰다.

그와 함께 포탄이 떨어졌다.

“보호벽을 강화해! 신관들은 뭘하고 있나!”

“여신을 감싸고서는 무리입니다! 여신의 성역을 신관들의 성역으로 덮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보호벽을 분산시켜! 병력을 지키면서 적의 공격을 기다린다!”

총사령관의 명령이 떨어지자, 신관들은 마치 매스 게임을 하듯이, 무협에서 나오는 진법을 펼치듯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들을 중심으로 작은 돔 형태의 보호벽이 생겨났다. 보호벽에 부딛치는 순간 포탄들이 폭발했고, 폭발의 여파는 보호벽 내부에도 미쳤지만 보호벽 내부에 있는 이들의 방어력이 함께 상승해서 피해는 경미했다.

“끝인가?”

“그건 아닙니다만, 뜸해지긴 했습니다.”

열차포 라는 것이 그리 연사성이 좋은 물건은 아니었다. 포신 자체가 과열되어 쉽게 식지는 않았다. 물론 연사성을 높일만한 기술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딘의 눈을 의식해서 열차포의 개조는 최소한으로 해둔 상태였다.

“슬슬 쳐들어 오겠군.”

그리고 그런 그들의 예상대로 리베로들과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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