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잊혀진 신의 세계-354화 (354/497)

354화 굴베이그

----------------------------------------------

원기는 혼자 되는 것이 싫었다.

온 몸은 늘 아프고, 몸 상태는 지독하게 변덕스러웠다. 눈은 잘 보이지도 않았다. 컴퓨터로 게임을 하면서 아픔을 잊어보려고 노력하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고통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지기 일수였고 그래서 게임은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쉽지 않았다.

멀티 유저 게임보다는 싱글 게임을 주로 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가 고통 때문에 집중하지 못하면 일시적으로 게임에서 튕겨 나가게 되었다. 이게 반복되면 사람들의 반응이 좋지 못했다.

돌아가신 부모님 욕이 나오거나 가족에 대한 욕설이 나오면 원기로서도 참기 힘들었다.

하지만 진짜 원기를 힘들게 하는 말은 그들의 투정이었다.

학교가기 싫다. 회사가기 싫다. 귀찮아 죽겠다. 등등의 말이 원기를 괴롭게 만들었다.

그래서 원기는 싱글 게임을 주로 했다.

많은 NPC들 속에서 살아 숨쉬는 그런 게임이었다.

하지만 그런 게임들은 공허했다. 아무리 재밌더라도 끝은 곧 찾아왔다. 때로는 더 외롭게 느껴지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할 게 없었다.

그래서 그는 박승희가 학교에 가는 것도 아르바이트를 가는 것도 싫었다. 그녀만이 유일하게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녀를 힘들게 만들 수는 없었다. 그녀에게는 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그래서 원기는 누나가 떠나는 것을 미소로 배웅했다.

아프지 않은 척, 외롭지 않은 척, 즐거운 척 하면서 그녀를 떠나보내고 외로운 혼자만의 공간에 남겨져야만 했다.

“괜찮아. 이제 괜찮아.”

굴베이그는 자신의 부속품이나 자신의 일부가 아니었다. 별개의 존재이자 또다른 자신이었다. 어린 시절의 자신과 같았다.

함께 있고 싶지만, 차마 손을 내밀지 못하고 미소를 짓던 그 시절의 자신이었다.

‘내가 너무 무심했구나.’

원기는 사실 굴베이그를 어찌 다뤄야 할지 몰랐다. 원기는 애초에 인간으로 태어났다. 어쩌다보니 여신의 역할을, 행세를 하게되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굴베이그는 달랐다. 그녀는 반신족의 여신으로 태어날 존재였고, 원기의 인격 일부를 받아들여서 그것을 그녀의 껍데기로 삼아서 태어난 존재였다. 그녀의 본질은 이쪽 세계에서 말해지는 온전한 반 신족의 여신이었다.

굴베이그는 태어나기 전 알 껍질로 원기의 기억과 성격 등 인격을 이루는 모든 요소를 복제했다. 그때의 굴베이그는 원기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껍질을 깨고 태어난 어린 굴베이그는 좀 달랐지만, 어떻게 다른지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원기는 잘 알 수 없었다.

원기에게도 할 일은 많았다. 고민하고 준비해야 하는 일들은 조제성에게 떠넘기듯 맡겼지만, 그 자신이 한사람 몫 이상을 해낼 수 있는 일들, 해야만 할 일들은 널려 있었다.

그리고 굴베이그에게는 굴베이그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었다.

그게 문제였다.

원기가 그랬듯, 굴베이그도 포기하는데 익숙해져 있었다. 자신을 죽이는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을 죽여왔다.

그 사실을 깨달은 원기는 자신의 무신경함에 가슴이 아파왔다. 굴베이그를 꼭 끌어안아 주고 싶지만, 자신이 택한 캐릭터 짬타이거의 거대한 육체는 그녀를 꼭 감싸안기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큼지막한 손바닥으로 그녀의 등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꾹 눌러주는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마음은 전해진 것인지 원기의 목을 감싸안은 굴베이그의 손에 힘이 들어오다가 풀어졌다. 눈물을 많이 흘린 탓인지 지쳐서 잠이든 것이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오사카 마린의 모습을 한 멀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원기는 그의 눈에서 안타까움과 책망의 눈빛을 볼 수 있었다.

멀린은 조제성과 같은 과였다. 조제성 역시 굴베이그를 언제든 희생시킬 수 있는 냉정한 존재였고, 멀린 역시 마찬가지였다.

‘애정이 싹튼 건가.’

미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속알멩이는 할아범이었다. 하지만 영혼 역시 육체에 매인 몸이었다.

조제성과 장수한의 말에 따르면, 뇌내 호르몬이 성격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어린아이는 에너지가 넘치기 때문에 서두르고 급하고 사고를 친다면, 어른은 에너지가 모자라기 때문에 보수적이고 느긋하고 일벌리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젊음이라는 미주에 취한 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노인이라고 해도 별 수 없는 겁니다.’

남성 호르몬과 여성 호르몬 역시 성향이나 성격에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실제로 정령들은 의외로 성격들이 비슷해졌다. 해탈한 느낌이 된다고 할까, 그리고 계약을 맺은 뒤에는 숙주로 택한 계약자의 성향과 비슷하게 변했다.

남성 다크엘프도 여성 계약자와 계약을 맺으면 온화하고 조심스러워지고, 여성 다크엘프의 경우엔 반대로 적극적이고 다혈질로 변하는 경향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사소한 것에도 감동하고, 감정적으로 움직이기 쉬워지는 그런 요소가 젊은 육체에는 존재하는 듯 했다.

‘나도 프레이야 여신의 캐릭을 사용하는게 거림찍했으니.’

그냥 평범하게 게임을 할 때는 여성 캐릭터로 게임을 해도 별 감흥이 없었지만, 실체화되니 결코 그럴 수가 없었다.

실감속에는 다양한 호르몬 작용도 영향을 미치는 듯 했다.

실제로 여신 프레이야를 할 때 느꼈던 위화감이 짝퉁 프레이야를 할 때도 거의 온전히 느껴졌다.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여신의 신성이라기보다는 여성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니 원기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한 숨이 나왔다.

성별을 전환시킨 캐릭터 사용의 위험성을 실감한 탓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어느정도 익숙해져버린 자신의 문제도 알 수 있었다.

‘아더왕 일당들을 저대로 내버려둬도 되는걸까?’

그런 걱정이 자연스럽게 생겨나왔지만, 프레이야를 꼬실 마음으로 충만한 중년남이 하나 늘어나는 것을 생각하니 그냥 이대로가 좋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멀린은 확실히 유능했지만, 젊은 여성이라기보다 미소녀가 된 탓에 안정감은 많이 떨어진 듯 했다. 하지만 사고적 유연성을 고려하면 미소녀가 되어있는 지금 상태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나이든 현자로 되돌아간다면 현대의 문물, 문명과 문화를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터였다.

“굴베이그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요.”

냉철한 전략가답지 않게 굴베이그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원기는 마린에게 진심을 담아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벼, 별일 아니에요.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멀린은 얼굴을 붉히며 다른 방향을 보며 말했다. 오사카 마린의 캐릭터와 너무 어울려서 원기는 일순 당황할 정도였다.

[우와, 츤데레다. 츤데레가 여기있다.]

카즈키가 연하에게 메시지를 보내자, 연하는 피식 웃었다. 그들 일행은 공간이동 게이트를 통해서 세스룸니르에 무사히 되돌아왔다.

-------------------------------------------------------

제준은 온갖 게임을 다 해왔다. FPS가 주력이지만, 다른 종류의 게임도 즐겨온 터였다. FPS 프로게이머라지만, FPS게임처럼 수명이 짧은 게임도 드물기 때문이었다.

최신작이 나오면 곧 전작은 구작이 되어 사람들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다양한 게임을 즐기다보니, 몸에 밴 듯 익숙해진 것이 있었다.

바로 ‘루팅’이었다. 제준은 리베로로 적을 밟아죽이는 가운데에도 상대가 뭔가를 떨구면 잊지 않고 챙겨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소멸의 부러진 화살이 있었다.

[이건 못쓰게 되었습니다만, 소멸이라는 일회용 아티팩트로군요. 일회용이라는 것은 영구적인 아티팩트보다 훨씬 강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영구적인 아티팩트를 선호하지만, 같은 신성력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라고 생각하면 한번 사용하는 아티팩트가 훨씬 강했다.

아티팩트는 보통 방어구나 장식품, 무기의 형태를 갖는 경우가 많은데 1회용 아티팩트들은 주로 화살의 형태를 지녔다.

한번 사용하면 다시는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굴베이그가 맞았다면 그 타격이 결코 작지 않았을 겁니다. 강력한 몬스터도 단 한방에 날아가버리는 겁니다.]

“요르문간드나 펜릴, 헬 같은 마수들은 어떻게 되지?”

원기가 의아하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그런 마수들은 기본적으로 신성력으로 움직이는 집단적인 형태입니다. 세포 단위까지는 아니어도 작은 살덩어리들이 개별 개체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신의 의지로 묶어서 조종하는 물건입니다. 군생체라고 해야 되겠지요. 성서에 나오는 ‘레기온’과 같은 겁니다. 아, 좋은 비유가 있군요. 합체로봇 같은 겁니다. 머리가 터진 요르문간드가 생물로서 죽어버리지 않은 것은 그때문입니다.]

보통의 바다뱀이라면 머리가 날아간 순간 죽어버렸을테지만 요르문간드의 몸통이 물속으로 피신한 것은 그때문이었다.

물론 작은 뱀들로 분리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몸통을 하던 부분이 눈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소멸처럼 존재 자체를 없앨 수 있는 공격이라든가, 궁그닐 같은 강력한 공격에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

“꽤 위험했다는 소리군요.”

원기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화살형 아티팩트들은 위험한 것들이 많습니다. 주의하시는 것이 좋겠지요.]

프레이도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로키와 세 자녀, 오딘과 토르, 티르 등의 주력급 신들의 싸움에 얽히는 것은 시기 상조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펜릴과 헬까지 장악한 이상, 물러나기는 쉽지 않았다.

“슬슬 토르의 요청에도 답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습니다.”

조제성은 발할라 공략전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면서 말했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