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6화 헬 여신의 저주
헬 여신의 신물이 은밀하게 악인들 사이에 유통되기 시작했다.
헬 여신이 주는 선물은 그리 나쁜 것은 아니었다. 바로 치유의 힘과 회춘의 축복이었다.
현자회의 혈정처럼 몸에 박아넣기 위해 사이보그화 할 필요도 없었고, 부작용도 없었다. 마냥 좋기만 한 힘이었다.
하지만 헬 여신의 신물은 그다지 좋은 이야기를 불러오지는 않았다.
그것은 바로 신물이 가진 성격 때문이었다.
피를 바치면, 여신의 축복을 전해준다.
하지만 여신의 축복은 무제한이 아니었다. 아니, 무제한은 틀림없지만 받아들이는데 제한이 있었다.
축복을 받는데는 한달에 한번이라는 제약이 있었다. 그 이상을 받을 수 없다는 발키리의 경고가 있었다.
물론 신물 자체는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부하나 고객에게 빌려줄 수도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문제가 생겼다.
한달에 한번의 축복, 그리고 악인이 가진 악의 절대량에 비례해서 축복의 효과가 달라진다. 운이 좋으면 한방에 50년이 젊어질 수도 있고, 운이 없으면 누구도 알아보기 힘들만큼 조금 좋아지거나, 혹은 저주로 죽을 수도 있었다.
한달에 한번이라는 제약 때문에, 신물의 소유자는 희생물을 엄선했다.
문제는 신물의 소유자야말로 최상급의 희생물이라는 사실이었다.
신물을 애꾸눈의 부두목에게 빌려주자, 부두목이 두목을 잡아서 제물로 바쳤다. 그리고 젊은 시절 잃었던 오른 눈을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20대의 젊은 몸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그것을 본 부두목의 측근이 두목 살해를 이유로 부두목을 잡아서 제물로 바쳤다.
악인들은 자신들이 알고있는 최고의 악인을 노렸다.
게다가 신물은 그 자체로 강력한 무기였다.
신물을 희생물에게 향하고, 제물로 바치겠다는 뜻만 가지면 발키리가 소환되어서 체인소드라고 부르는 채찍처럼 변하는 검을 휘둘러서 희생물을 희생시켰다. 그리고는 엄청난 회복력과 생명력을 선물해 주고 사라졌다.
한달이라는 쿨타임만 제외하면 엄청나고 편리한 무기였다.
귀속이라는 개념도 없었다. 그냥 손만 대면 되는 것이었다.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원하는 애첩에게 죽임을 당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걸 사용하면, 적을 죽이고 생명력까지 얻을 수 있다고 했지?”
펜던트 형태의 신물을 쥔 죄수가 미소를 지었다. 그는 펜던트를 쥐고 말이 안통하던 간수를 향해 내밀고 외쳤다.
“헬 여신이여, 제물을 받아 주소서.”
간수는 흉악범의 외침에 당황했다. 생각보다 진지했기 때문이었다. 귀기가 흐를만한 외침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간수와 흉악범 사이의 공간에 극히 아름다운 하지만 냉막한 표정의 여인이 나타났다. 반투명한 그리고 허공에 떠있는 아름다운 여성은 누구라도 패닉에 빠뜨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녀는 간수를 바라보고는 죄수를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죄수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죄수는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다.
[헬 여신의 축복을 받을 자가 없어졌군. 주인이 없는 축복을 여기에 남긴다. 식전에 복용할 것을 추천하지. 만병통치약이다.]
발키리는 돌팔이 약장수나 할 듯한 소리를 하고는 모습을 감췄다. 간수는 죄인의 펜던트에 손을 댈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발치에 떨어진 헬 여신의 축복이라는 붉은 색의 영롱한 구슬을 손에 쥐었다.
그에게는 유전적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아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주라고 해도 좋았다. 아내를 살리는데 걸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만병통치약을 먹은 간수의 아내는 씻은 듯이 나았다. 간수는 저주를 받는 것이 아닌가 두려워했지만, 그럴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헬 여신의 저주와 축복에 대한 소문들이 퍼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얻을 축복을 포기하면,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진 구슬형의 축복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악인만을 제물로 삼는 헬 여신의 소문이 은근히 퍼지면서, 악을 저주하는 자들이 헬 여신을 숭배하기 시작했다.
저주와 복수의 여신으로 헬 여신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악인이 아니면 제물로 바칠 수 없다는 사실과 죗값을 치르면 약발이 떨어진다는 사실까지 알려졌지만, 악인들은 여전히 헬 여신의 신물을 선호했다.
악마의 유혹이라면 찜찜하겠지만, 원칙을 지키는 지옥의 여신이 주는 축복이었다. 축복 자체에는 아무런 하자도 부작용도 없었다.
악인들이라고 악인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뢰할 수 있는 상대를 좋아하는 것이다.
여신의 신물은 고가에 밀거래가 되기 시작했고, 악인은 줄어드는 효과를 얻었다.
“이게 정말 그 여신의 신물입니까?”
“틀림없습니다. 상대가 위험한 범죄자가 아니면 사용하시지 않는게 좋을 겁니다. 한번 시험해 보셔도 좋습니다. 제게 써보십시요. 절 제물로 바친다고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랬다간 내가 죽는 건 아니오?”
“당신이 심각한 범죄자가 아니라면 안전합니다. 한번 시험해 보시지요.”
“헬 여신님. 제 앞의 상대를 제물로 바칩니다.”
그가 기도를 하자, 과연 발키리가 나타났다. 투명한 모습의 미모의 여성이었다. 낫 대신에 검을 들고 있었다. 그녀는 장사꾼을 보더니 돌아서서 펜던트를 든 사내를 보았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하나 들어보였다. 그리고는 사라졌다.
“보세요. 어느쪽도 희생제물이 될 수 없으니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손가락을 하나 들어보인 것은 뭡니까?”
“다음 번엔 용서치 않는다는 거지요. 기회는 한번 남았다는 뜻입니다.”
“그런.”
“설마 여러 차례 써먹으실 생각은 아니었겠지요?”
“그도 그렇군요. 다음번에도 잘못 부르면 어떻게 됩니까? 그땐 제가 죽는 겁니까?”
“지옥의 여신은 죄가 없는자를 끌어가지는 않는 것으로 압니다. 그때까지 딱히 심각한 죄를 짓지 않았다면, 무사할 겁니다. 대신 다시는 당신의 소환에 사신이 응하지 않게 됩니다.”
사내는 그 말에 안심한 듯 하면서도 결의의 표정을 지었다.
“제물은 충분히 흉악한 범죄자가 아니면 안됩니다. 혹시 염두에 두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아니면 제물 리스트를 구입하셔도 됩니다.”
“그렇습니까? 제물 리스트를 좀 주십시요.”
“가격은 좀 비쌉니다. 대신 타겟의 생활 패턴도 제공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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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 리스트라고 불리우는 범죄자 리스트는 조제성이 나이트 엔젤과 초능력자들을 통해서 수집한 것이었다.
대도시에서 엘프들의 도청 능력은 꽤 쓸모가 있었다.
나이트 엔젤은 범죄자와 싸우기보다는 위급한 구조 작업쪽으로 돌렸다. 범죄자와 싸우는 것은 초반에 인기를 끌기에는 좋았지만, 결국 미움을 사게 되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충분히 인지도가 확보된 다음에는 구조 작업 위주로 활동했다.
살인이 일어나려는 현장에 난입해서는 사람을 구하고, 살인자는 굳이 잡지 않았다. 도망치게 놔두고 정보를 모아서 제물 리스트에 업데이트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조제성은 헬의 신물과 제물 리스트를 함께 팔아서 돈을 벌었다.
희연은 카즈키 1호부터 10호까지 만들어서 신물이 랙에 걸리지 않도록 배려했다.
복수와 평등한 죽음의 여신으로 이미지가 만들어지면서, 제대로 된 추종자들도 조금씩 생겨날 기미를 보였다.
신물을 이용해서 가족을 살린 이들이 신물을 되팔지 않고, 집에 두고는 거기에 기도를 올리는 경우도 조금씩 생겨났다.
“카즈키. 수고했다.”
희연이 말하자, 발키리 카즈키가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카즈키는 그 모습을 보고 씨익 웃었다.
“희연. 나와라.”
그 순간 희연을 꼭닮은 발키리가 카즈키의 앞에 나와서 섰다. 카즈키가 원기에게 부탁해서 만들어낸 카즈키 전용 발키리였다.
“희연, 도게자!”
카즈키가 도게자라고 말하자, 발키리가 큰 절을 하듯 땅바닥에 고개를 박았다. 세배와는 조금 다른, 일본식 인사였다. 대단히 굴욕적인 자세를 의미한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였다.
희연 역시 일본어나 일본 풍습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살짝 눈썹이 꿈틀 거렸다.
“카즈키, 대가리 박어.”
그러자, 발키리 카즈키가 원산폭격 자세로 머리를 땅에 박았다.
“희연, 짖어!”
[멍멍.]
발키리 희연이 도게자 상태로 멍멍 하고 짖었다.
“카즈키. 굴러!”
“희연, 항복.”
발키리 카즈키가 좌우로 구르자, 발키리 희연은 배를 위로한 개처럼 포즈를 취하고 헥헥거렸다.
희연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분노 탓인지 수치심 탓인지는 좀 애매했다.
‘좀 야한 듯도 싶고.’
원기는 그 둘의 싸움(?)을 지켜보며 미소를 지었다. 희연이 저만큼 발끈하는 것도 유치해지는 것도 보기 힘들었다. 카즈키가 이뤄낸 변화일지도 몰랐다.
“아하하, 정말 웃기다. 언니들 좀 바보같아.”
연하가 풋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러자 희연과 카즈키의 시선이 연하에게 향했다.
“연하, 대가리 박아.”
희연의 말에 연하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언니. 내이름 딴 발키리도 만든 거야? 아하하.”
연하의 말에 희연은 고개를 저었다. 연하의 얼굴에서 미소가 살짝 가셨다. 연하가 카즈키를 보자, 카즈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침묵하던 연하는 머리를 박았다.
희연과 카즈키는 서로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고, 연하는 아무도 자기편이 없다는 사실에 살짝 배신감을 느꼈다. 원기가 웃고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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