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2화 발할라 공략전 - 4
“신호다.”
원기는 굴베이그와 놀원 둘을 돌아보고는 진격의 신호를 보냈다. 원기대 스물 일곱명이 빠르게 달려서 신전을 향했다.
거대한 늑대 마수가 앞을 가로막으려 했지만, 자색 빛이 내려오자 맥없이 쿵하고 쓰러졌다. 더위에 뻗은 개처럼 혀를 빼고 숨을 간신히 쉬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과연, 신성력이 교란되니 이렇게 되는군.”
신성력은 에인페리아들과 마수 등에게는 생명이나 다름 없었다. 물고기가 물을 잃은 것과도 마찬가지였다.
거대한 지크프리드도 손발을 축 늘어뜨렸고, 슈틸 프리그들은 마치 어항속의 물고기들이 죽은 것처럼 일정 고도에서 손발을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붕어가 죽어서 지느러미를 늘어뜨린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이 상황에서 숨통을 끊으면 좋겠지만, 문제는 반대쪽도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거인 에인페리아들은 원래 크기로 작아졌을 뿐만 아니라 서있을 기운도 없어서 바닥에 엎드려서 숨만 몰아쉬는게 고작이었다.
그나마 장수한이 번호를 붙인 강한 놈들은 한쪽 무릎을 꿇고 숨을 몰아쉬는 모습을 보여줄 뿐, 꼼짝도 하지 못했다.
신관과 성기사들은 몸에 부착된 부착 갑옷들을 떼어냈다. 신성력 버프를 받을 때는 힘이 상승하기 때문에 수십 키로의 갑옷을 입고도 날아다녔지만, 맨몸으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오딘의 신관과 성기사들 역시, 이런 상황에 익숙한 듯 빠르게 떼어낸 다음, 검과 방패로 전투를 시작했다. 조금 전처럼 장엄하지는 않지만, 더 치열하고 더 잔인한 전투가 벌어지려고 했다.
하지만 토르의 신관과 성기사들은 달랐다. 그들이 망토와 갑옷을 떼어내자 그 속에서 나온 것은 돌격소총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훈련받은대로 돌격 소총을 꺼내서 오딘의 신관과 성기사들에게 난사했다. 전투가 아닌 학살이 벌어졌다.
두려움을 모르던 오딘의 신관과 성기사들이 총알에 맞아 덧없이 쓰러져 버렸다.
검을 꺼낸 자와 총을 꺼낸 자의 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리도 간다.”
거대한 늑대 마수 브리키가 보였지만, 원기는 무시하고 진격했다. 사실 저 덩치 큰 마수를 어떻게 죽일지 방법도 몰랐고, 신전 점령을 위한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원기는 고속으로 달려가서 태클로 신전 문을 뚫어버렸다. 철벽과도 같던 신전의 문은 마치 종잇장처럼 뚫려 나갔고, 원기는 그 기세로 신전 중앙에 떨어졌다.
등에 십자형상으로 매고 있던 대검을 뽑아들고 기세를 살려서 유린했다. 강력한 오딘의 에인페리아가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다른 신관들과 함께 두동강이 되어 죽어버렸다.
굴베이그와 놀원도 뛰어들어서 살육에 참가했다.
굴베이그는 한손에 방패를, 그리고 한손에 검을 들고 안정적으로 적들을 죽여갔다. 나이트의 인격이 표면에 드러난 듯, 눈매는 예리하고 눈빛은 강인했다.
굴베이그의 세 인격에 있어서 주된 인격은 리틀 프린세스지만, 누가 표면에 나와 있어도 기억과 감각을 공유하는 듯 했고 사이 좋게 지내는 듯 했다.
방패 기술은 원기의 경험을 그대로 이어받은터라, 철벽 같은 방어력을 자랑했다.
반면 놀원은 방어력보다는 공격력을 우선했다.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큼지막한 건틀렛을 가지고 빠르게 이동하며 공격했다. 가슴의 흉갑과 큼직한 건틀렛을 제외하면 방어구는 따로 없었다.
물론 판타지 게임의 미소녀처럼 비키니를 입은 것은 아니고, 몸에 착달라붙는 라이딩 슈트를 착용하고 있었다.
일반인이나 다름없게 약화된 신관과 에인페리아, 성기사들은 무력하게 목숨을 잃었다. 오딘에게 큰 타격이 될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이 기회에 중앙부 신전을 파괴하면, 토르도 오딘도 발할라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을 겁니다. 프레이의 정보로도 틀림없습니다.]
“이 신전을 제압할 때까지 잠시 기다려 주시오.”
돌격 소총으로 무장한 토르의 신관 하나가 요청했다. 신관과 기관총의 조합이라니 조금 어색할지 모르지만, 이쪽 세계에선 당연한 것이었다.
신들이 살육자이니, 그 종들도 전사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먼저 우리가 가서 중앙 신전을 제압하겠습니다. 가자!”
원기는 그렇게 말하고 상대가 만류하기 전에 빠르게 움직였다. 토르의 신관과 성기사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원기를 포함한 다른 4방향 부대도 모두 빠르게 돌격을 개시했다.
[이탈을 위한 지점이 확보되어 있습니다. 중앙 신전을 파괴하는 즉시 텔레포트로 탈출하시기 바랍니다.]
게임 캐릭터의 경우 로그아웃은 반드시 블러드 라인에서 이뤄져야 했다. 또한 로그아웃시에는 육체도 블러드 라인에 연결되어 있어야만 가능했다. 아무 곳에서나 로그 아웃을 할 수 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게임 캐릭터는 무적이나 다름없었다.
문제는 오딘이 그 취약점을 정확하게는 아니지만 확실히 알고 있으며, 그것을 이용할 줄도 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토르 역시 그 점을 어느정도 인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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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당했는걸. 망할 토르놈과 티르놈 같으니라고.]
아스가르드는 애초부터 4대신 체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티르와 토르는 최고신을 경험한 최고신 출신이었다. 오딘에게 눌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종속신 취급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반면 로키는 헬과 요르문간드, 펜릴을 종속신으로 둔 거인족의 우두머리였다.
아스신족이 강력하기 때문에 거인족은 아스신족에게 눌렸지만, 토르와 티르, 오딘의 삼분 체제 덕분에 어느정도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오딘은 토르의 신성력 오염 때문에 발할라에서 튕겨 나갔다. 자신의 성이자 가장 중요한 거점이기에 오딘이 약화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티르의 군세가 오딘의 영역을 침범했다.
발할라 전투를 위해서 오딘의 전력이 발할라에 집중된 틈을 타서 티르가 오딘의 지배지역을 유린하는 것이었다.
이는 분명 토르와 티르가 애초부터 손을 잡고 노린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슈틸 크리그와 지크프리드의 봉인을 풀어야 했나?]
오딘은 씁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신성력의 봉쇄에 대한 대비는 충분치 못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대책인 것은 아니었다.
나치 장교 에른스트 구데리안이 오딘의 부재에 당황했지만, 작전을 개시했기 때문이었다.
“전차대를 출동시켜라.”
오딘의 휘하에서 나치 출신들이 만든 전차인 9호전차 라테였다.
5호전차 팬저, 6호전차 티거, 7호전차 뢰벤, 8호전차 마우스를 있는 뜻으로 만들어진 전차로, 초기형은 증기기관을 사용했으나 현재는 가솔린 엔진으로 교체되어 있었다.
이는 블러디 라인2에서 채굴한(오딘측은 그렇게 믿고있다) 석유의 공급이 가능해진 덕분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증기기관으로 설계되었고, 공업 능력은 2차세계대전 당시의 독일보다 못미치는 만큼, 성능은 3호전차와 4호전차의 사이라고 볼 수 있었다.
9호 전차들은 발할라 각지에 배치되어 있었고, 그로 인해서 토르의 병력들과 충돌했다. 그리고 토르의 병력들은 전차와 충돌하자 손쓸 방도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돌격소총으로 오딘의 병력을 제거했다고 하지만, 전차 앞에서는 무력할 수 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잘해주고 있군.]
오딘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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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에 전차 발견!”
엘프중 하나가 뛰어난 눈으로 전차의 등장을 발견하고 외쳤다. 기술력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차의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하지만 전차포가 불을 뿜고 포탄이 날아오는 상황에서 전차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성능이 떨어진다고 해도 전차포를 막아낼 재주는 원기에게도 없었다.
하지만 포탄이 날아오기 전에 포신의 방향을 보고 포를 피해낼 재주는 대부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전차가 늘어난다면 그것도 불가능해질 터였다.
“요술봉 부대, 전차를 제거하라!”
원기의 부대원중 놀원을 포함한 새비지 빗치즈와 굴베이그를 제외한 엘프들은 중화기병으로 RPG-7을 다수 장비하고 있었다.
호철은 이 엘프들을 중화기병이라기보다는 요술봉부대로 칭하고 있었다. 이는 일부 밀덕들이 RPG-7을 알라의 요술봉이라고 부른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망토 밑에서 RPG-7을 꺼내서 발사관에 포탄을 장착한 다음 발사했다.
그리고 9호 전차 라테는 가볍게 박살나 버렸다. 애초에 나치에서 기획한 9호전차 라테는 8호전차 마우스를 능가하는 지상 전함으로 만들어질 예정이었지만, 페이퍼 플랜으로 끝났다. 아스가르드에서 만들어진 9호전차는 그저 이름만을 물려받은 중(中)전차에 지나지 않았다.
두발도 필요치 않고 그저 한발로 끝이났다.
“좋아. 중앙신전으로 돌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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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한대로 흘러가는군. 빨리 신전들을 파괴하고 복귀하라.]
토르의 지시에 따라서 토르의 병사들은 전차를 피하면서 신전의 세계수를 자르고 그 재료를 운반하기 시작했다. 적대신의 세계수를 그냥 잘라낼 경우 사용하기 까다로워지긴 하지만 신성력을 교란시킬 아티팩트의 재료로 쓰기에는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었다.
중앙신전으로 돌격하는 프레이야의 부대를 버리고, 토르의 부대들은 빠르게 철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발할라의 하늘을 덮고 있던 자색의 오로라는 아주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었다.
토르의 전략은 차도살인지계였다. 동서남북 4곳의 신전이 파괴된 이상, 발할라는 공중 부상은 가능해도 이동은 불가능해진다.
그리고 오딘의 분노는 중앙신전을 향해 돌격하는 프레이야의 특수한 에인페리아들에게 쏟아질 터였다.
그 사실을 모르는채 원기대를 비롯한 4개대는 부지런히 중앙 신전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숨을 헐떡이다가 희연의 무기 사랑에 목이 따인 마수 게리를 제외한 3마리의 마수 후긴과 무닌, 브리키도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포위망이 구축되고 있었다.
신성력 오염은 4대신 모두가 무기화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오딘이 전차대를 만든 것도 그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신성력 오염의 영향을 받지 않고 싸울 수 있는 게임 캐릭터들은 눈에 가시가 될 수 있었다. 죽쒀서 남주는 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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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가 전차대의 공격 때문에 퇴각한다고 합니다. 신전 점령은 무리라고 판단해서 파괴후 후퇴중이라고 합니다. 우리 부대도 퇴각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역시 그렇군. 차도살인지계였어.”
조제성은 쓴 웃음을 지었다. 탈출 루트는 만들고 있지만, 토르가 저런 식으로 재빨리 철수해버린다면 쉽지 않을 터였다. 성역이 회복된다면 영혼과 육신을 함께 파멸시킨다는 아티팩트가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원기님. 중앙 신전을 파괴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무리입니다. 이미 중앙신전 쪽에서 신성력이 부활한 듯 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조제성은 지시를 내렸다.
“할 수 없습니다. 모두 죽으세요.”
그리고 조제성이 버튼을 누르자, 발할라 중앙 신전을 향해 돌입하던 모든 게임 캐릭터 부대가 그 자리에서 폭발해 버렸다. 자폭용 폭탄을 모두 짊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체도 못남기고 모조리 가루가 되어서 사라져 버렸다.
“죽은 놈을 또 죽일 수는 없는 법이지.”
게임 캐릭터들이 폭발해서 시체도 안남기고 사라진만큼, 오딘의 추격 부대는 토르를 쫓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오딘의 부대가 토르를 추격하면 탈출이 쉬워질 터였다.
“후긴과 무닌으로 보이는 까마귀형 마수와 브리키로 예측되는 늑대형 마수가 토르를 쫓아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조제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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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도 안남기고 사라지셨다? 그걸로 도망갈 수 있을거라 생각하면 오산이지.]
오딘은 회심의 미소를 지이며 이를 갈았다. 그는 캐릭터들이 폭사한 자리를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에인페리아는 신의 곁에서 새로운 육체를 얻어 부활하지만, 프레이야의 묘한 에인페리아는 반드시 죽은 자리에서 부활한다.
[결코 도망갈 수 없을 것이다.]
오딘은 선언하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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