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잊혀진 신의 세계-364화 (364/497)

364화 환생(?)

원기는 죽음을 확신했다. 아니 오딘이 확신시켰다고 말하는게 옳을 지도 몰랐다.

화살을 맞는 순간, 완벽하게 존재 자체가 지워질거라는 확신이었다.

그리고 화살을 맞는 순간, 그의 시야가 어둠으로 뒤덮였다.

‘수, 숨쉬기 괴로워. 응? 나 아직 살아있는건가?’

원기는 주위가 보이지 않았지만, 숨쉬기 어렵다는 것은 자신이 살아있는 증거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왜 숨쉬기 어려운가 했더니, 그의 입속에 무언가 따뜻하고 말랑한 것이 가득차있기 때문이었다.

원기는 그것이 인간의 살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정확한 정체도 곧 알 수 있었다.

‘나 죽어서 환생한 건가?’

여성의 가슴, 젖이 나오는 꼭지가 달린 곳이 그의 입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신이 된 뒤로, 참고가 될까 싶어서 읽어본 많은 판타지 소설 중에는 환생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아. 나 죽은 거 맞구나. 그리고 환생한 거겠지? 그건 그렇고 배가 고프긴 고프네. 배를 채우고 생각해 보자.’

자신이 죽었다는 생각에 쇼크를 먹어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일단 배를 채우면서 생각을 정리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그는 어머니의 젖을 먹기 위해서 힘차게 빨아들였다. 하지만 젖은 조금도 나오지 않았다.

‘요령이 없어서 그런가? 좀 더 힘껏 빨아야 하나? 아니면 살짝 물어볼까?’

그는 젖이 나오도록 궁리를 하며 살짝 물었다. 그 순간 자신에게 이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갓난아기한테 이가 있나? 아니, 잠깐만. 왜 이리 엄마(?)가 작은거지?’

원기는 뒤늦게 깨달았다. 엄마가 작은게 아니라, 자신이 컸다. 그리고 자신이 안고있는 물체는 엄마가 아닌, 아이를 낳은 적 없는 젊은 여자였다.

‘희연은 아냐. 나 혹시 천국에 온건가?’

종교 관련 서적도 많이 찾아본 덕분에, 이슬람의 천국에는 처녀들이 주어진다는 이야기도 본 적이 있었다. 몸매를 볼 때, 희연은 아니었다. 속옷차림의 희연의 모습을 보는 것은 원기의 즐거움이기도 했기 때문에 잘 기억하고 있었다.

날씬하지만 희연보다 살짝 부드러운 느낌의 생동감 넘치는 육체였다.

‘아기한테 젖을 먹이는데 전라는 이상하지? 아니, 전라도 아니군.’

원기는 여성의 하복부에 살색 파스와 같은 것을 붙이고 있다는 사실을 곧 알 수 있었다. 팬티는 아니지만 중요한 부분을 가리는 용도였다. 정확히는 중요한 부분만 가리고 전라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용도였다.

그리고 자신의 하복부에도 그와 비슷한 것이 자리잡고 있었다. 자신도 역시 전라에 가까운 상태였다.

‘대체 이게 뭐지? 천국도 아닌 것 같고.’

얼굴은 모르지만 미소녀로 보이는 존재가 그의 머리를 힘껏 끌어안으며 꿈틀댔다. 원기는 조심스럽게 이불 밖으로 머리를 꺼내서 상대가 누군지 확인했다.

‘헉! 연하아냐?’

다음 순간, 연하가 그의 입술을 힘껏 덮쳤다. 그리고 강렬한 키스가 이어졌다. 원기는 당황해서 눈을 뜬 상태로 주위를 살폈다.

“컷! 지금 뭐하는거에요? 다시 해요! 좀 더 자연스럽게.”

신경질적이고 조금 고압적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기는 그제야 이곳이 어딘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아챌 수 있었다.

바로 에로, 아니 멜로 드라마 촬영장이었다. 연하가 주연인 멜로드라마로 미소녀의 이미지를 체인지 하기 위해서 찍는다는 것이었다.

‘이런 좋은 짓을 내 몸이 하고 있었단 말이지?’

원기는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실감하니 질투가 날 지경이었다. 총각 귀신이 되는 줄 알았으니 더 그런 느낌이 컸다.

“큐!”

잠시 잡생각을 하는 사이에 여감독의 큐 사인이 떨어지자, 연하가 다시 원기에게 키스를 해왔다. 원기는 당황하면서도 최대한 자연스럽게 키스 연기에 맞춰나갔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연하의 육체 때문에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어떻게 하지. 사실을 밝힐 수도 없고.’

스텝들의 대부분은 경호를 겸한 엘프들과 발키리들이었지만, 감독을 포함한 일부 스텝은 내막을 모르거나 알더라도 충분히 알고있지는 못한 사람들이었다.

게임 캐릭터에 대한 것은 가장 철저히 관리되는 비밀 중 하나였다.

‘내가 무사하다는건, 다른 사람들도 무사하다는 뜻이겠지. 존재가 소멸당했다고 했는데, 캐삭인걸까?’

발키리가 빙의된 원기와 연하, 희연 등을 통해서 영화나 드라마를 찍을 때는 몇십번 몇백번을 반복해서 촬영했다. 조금씩 미세한 차이를 주고 다양하게 찍은다음 편집해서 가장 좋은 것을 골라내기 쉽기 때문이었다.

“아, 정말. 좀더 적극적으로 애무를 해요. 갑자기 왜 이래? 새색시처럼?”

여감독이 지시를 내렸고, 원기는 자신이 찍는 이 영화가 멜로영화인지 에로영화인지 혼란스러웠다.

편집해서 내놓는 최종판은 상당히 건전할 예정이지만, 감독은 최대한 많은 데이터를 뽑아놓을 생각이었다. 수위가 높은 디렉터즈 컷 같은 것도 가능할 거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연하도 내가 이런 짓 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겠지?’

원기는 발키리가 움직이고 있을 연하의 몸을 감독의 지시대로 어쩔 수 없이(?) 애무하면서, 혹시 연하가 돌아오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을 느꼈다.

연하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원기는 도통 짐작이 가지 않을 때가 많았다. 사실 연하는 아무 생각이 없이 살기 때문에 그런 것은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제성, 수한, 원기, 희연 그리고 최근에는 카즈키까지, 연하 대신에 생각해 줄 신뢰할 만한 사람들이 많으니, 그냥 속 편하게 맡겨놓고 사는 것이었다. 자기가 고민안해도, 대신 고민해주고 정답을 가르쳐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연하야말로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일지도 몰랐다.

‘이건 불가항력이야. 어쩔 수 없는 거지. 연하가 모르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고, 내가 안에 있으나 발키리가 안에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차이가 없지.’

원기는 내심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열심히 자기변호를 하며, 갑자기 주어진 러브코미디적 행운을 만끽했다.

“잠깐만 휴식 하지요.”

근 한시간 가량의 반복 촬영 후에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원기는 스텝이 준 가운을 입고 전화가 있을 대기실로 향했다. 조제성에게 연락을 해봐야 할 듯 해서였다.

그리고 촬영장의 입구로 향하자, 거기에는 희연이 서 있었다.

“무사했네? 하하..하.”

원기는 자신이 방금 전까지 하던 짓이 찔려서 어색하게 웃었다. 희연 뒤에는 조제성이 쓴 웃음을 지으며 서 있었다. 상황을 보니 꽤 오래 전부터 지켜보고 있었던 듯 했다.

갑자기 희연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미동도 하지 않은 채로 눈물만 뚝뚝 흘리는 그녀의 모습은 왠지 목놓아 우는 것보다도 서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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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는 사실 꽤 일찌감치 사망했다.

연하역시 오딘의 최우선 타겟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반면 조제성에게는 신성력이 없는 조금 중요도가 떨어지는 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빠르게 출발했고, 그 결과 절대 소멸의 화살에 빠르게 얻어 맞았다.

그리고 그 다음 과정은 원기와 대동소이했다.

‘이건 행운이라고 봐야지. 놓치면 아까울 것 같네. 그런데 좀 아쉽다고 해야 하나. 실감이 부족하네.’

자신은 알몸에 가까운 상태로 마찬가지 상태인 원기와 엉켜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인 원기가 진짜 발키리의 조종하에 있기 때문에 살을 맞대고 있으니 움직이는 인형 같은 느낌이 전해져왔다. 밖에서 보기엔 정상적인 사람처럼 보이지만, 몸으로 느껴지는 감각은 그렇지 못했다.

흥분한 연기를 하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조금도 흥분하지 않고 냉정한 상태였다. 열도 안나고 땀도 전혀 안흘리는 그런 상태였다.

‘원기 오빠도 혹시 튕기는건 아니겠지? 제성 아저씨가 그런건 철저하니 원기 오빠는 무사하겠지. 일 생기면 죽은 척하기로 했으니.’

연하는 잠깐 망설였지만, 속편하게 행운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났을 때, 갑자기 원기의 몸이 경직되었다. 겉으로 드러난 부분만 움직이고, 보이지 않는 부분은 꼼짝도 하지 않았는데 보이지 않는 부분인 혀가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치 젖을 보채는 아이처럼 느껴져서 귀엽기도 하고 간지럽기도 했다.

‘윽, 원기오빠도 당한 건가?’

연하는 내심 당황했지만, 원기가 상황파악을 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것을 보고는 그냥 발키리인척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원기도 발키리인척 티를 안내는 것을 보고서는 웃음을 참기 위해서 애를 써야만 했다.

무엇보다 발키리가 든 원기보다는 진짜 원기가 연하로서도 더 좋았기 때문이었다.

휴식시간이 되자, 원기는 가운을 입고 대기실 쪽으로 향했다. 연하 역시 가운을 입고 그 뒤를 따라 나섰다.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필사적으로 연구했다.

‘수한오빠한테 전화해보는게 낫겠다.’

원기는 제성에게 먼저 연락해볼 것이었다. 그걸 생각하면 수한 말고는 답이 없어보였다. 희연언니에게 상담하는 것은 자폭이고, 카즈키언니에게 상담하는 것도 섶을 지고 불속에 뛰어드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헉.’

그녀는 희연의 모습을 보는 순간, 얼어붙었다. 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희연을 향해 손을 흔들으며 최대한 귀여운 척을 했지만 희연은 그녀를 본 척도 하지 않았다.

연하는 재빨리 대가리를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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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희연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고,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차라리 아픔이라도 느껴졌으면 좋겠는데, 카즈키의 촉수가 자신에게 날아오는 공격들을 쳐냈다.

그렇다고 해도 파편등이 날아와서 그녀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까지 전부 막지는 못했다. 하지만 상처에서도 아무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쳤다. 살아갈 수 없다고 느꼈다.

“이후의 계획은 어떻게 잡고 계시나요? 향후 연예 활동에 대한 계획이 있으시면 저희 여성지 독자들에게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희연은 자신이 고급스러운 커피숍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의 맞은 편에는 기자로 보이는 여성이 자리잡고 있었다.

희연이 자신의 상황을 알아채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원기 오빠는 어디에 계시지요?”

“예? 아마 오늘 영화 촬영하시는거…”

강남에 있는 스튜디오를 떠올린 희연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급한 일이 생겼어요. 죄송하지만 실례할께요.”

기자는 희연의 급해보이는 얼굴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얼굴을 한 상대를 붙잡는 것은 현명한 짓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희연은 커피숍을 나오면서 주위를 살폈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바이크는 없었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리무진과 운전기사가 보였다.

그녀는 하이힐의 뒤축을 꺾고 달리기 시작했다. 서울 시내의 혼잡한 상황을 생각하면 리무진은 물론이고 택시도 그녀가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만 못하다는 계산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정말 미친듯이 달렸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방송이나 촬영이 아닌가 생각하고 어딘가에 있을 카메라를 찾았다.

그리고 그녀는 전력으로 달려서 촬영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그녀가 촬영장에 들어가는 것을 저지할 이는 없었다.

그녀는 문을 열고 들어가서, 연하와 함께 베드신을 찍는 원기의 모습을 보았다.

‘원기오빠가, 프레이야님이 맞는걸까?’

그녀는 한눈에 원기의 몸에 들어가 있는 것이 발키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확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다. 혹시 아니면 어쩌나하는 불안감이 컸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대뜸 확인하고 들 용기도 없었다.

혹시 모를 부정적인 대답을 듣는 것보다는 불확실한채로 있는게 훨씬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사고가 멈춘채로 마치 망부석처럼 베드신 촬영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촬영이 멈추자, 가운을 입은 원기가 걸어오다가 그녀를 발견했다. 그리고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사했네? 하하..하.”

그녀는 그 순간, 자신이 세상에 받아들여졌음을 깨달았다. 세상이 ‘살아도 좋다’고 말해주는 듯 했다. 그녀는 눈물을 억제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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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가 가운을 입고 나타난 후에야, 제성은 촬영장 안으로 들어왔다. 촬영 스텝들을 전부 여성으로 한 것은 연하라기보다는 원기를 위한 배려였다.

제성을 위해서라도 프레이야는 오래도록 살아주지 않으면 안되었다. 다양한 사는 즐거움을 제공해서 최대한 오래 살도록 만들어야 했다.

희연은 프레이야의 보험은 될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해진 셈이었다. 굴베이그가 그나마 지탱해줄 수 있는 원천은 되겠지만 그래도 프레이야를 대체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제성의 결론이었다.

프레이야 여신을 잃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깨달은 덕분이었다.

반대로 프레이야 여신만 무사하다면 혜서도 세월에 지쳐서 삶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바니걸 통신을 영원히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지기까지 했다.

“연락이 좀 늦었지요? 촬영이 좀처럼 끝나지를 않아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시면 정말 놀랄겁니다.”

“캐삭이라고 하나요? 캐릭터가 소멸한 것 같아요. 어떻게 해서 로그아웃없이 제 육체로 돌아온건지 이해가 안가네요.”

“오딘의 신성력이 일으킨 기적이라고 해야겠지요. 캐릭터의 존재가 소멸하면서, 캐릭터가 없어진 상태로 만든 것이라고 할까요.”

원기의 본체가 만약 그 화살을 맞았다면 어찌 되었을지를 생각하니 조제성은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수한이 말로는 캐삭이 아니라 ‘계삭’이라고 합니다. 계정이 삭제되서 부캐릭터까지 몽땅 소멸되었다고 하더군요. 원기님의 캐릭이 길드장인 길드가 사라지면서 길드 사무실과 그 안에 있던 게이트도 소멸되었습니다. 그래서 일시적으로 현실세계와 아스가르드를 오갈 수 없게 되었지요."

오딘이 몰래 이용할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대부분의 게이트는 블러디 라인의 길드방으로 이어지게 만들어 둔 덕분에 혼란이 야기되었다.

“지금은 수한 녀석이 새 길드를 만들었습니다. 그리로 다니게 될 겁니다.”

“운명쪽 계정은 괜찮지요?”

“운명과 블러디라인2의 계정은 아무 문제 없습니다. 프레이야님의 아이디도 확인 되었습니다. 그나마 불행중 다행이라고 해야겠지요.”

“깜짝 놀랐어요. 그건 그렇고 만렙 캐릭터 새로 키우려면 얼마나 걸릴지.”

블러드라인은 온라인 RPG게임이라서 만렙을 만들려면 버스를 태워도 한달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다.

“유감이지만, 원기님도 희연양도 아스가르드에 나가서 싸우는 건 금지입니다. 리베로 리그에서 활약하는 정도는 괜찮습니다만, 일선에서 싸우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 두시기 바랍니다.”

조제성은 단단히 못을 박았다. 희연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은 곁에서 떨어질 생각이 없었다. 전장에서 검을 휘두르는 것 따위는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건 그렇고, 얘는 왜 여기서 대가리를 박고 있는 겁니까? 걸리적거리게?”

“그, 글쎄요.”

원기는 살짝 식은땀을 흘리며 희연을 바라봤다.

“그러게요. 왜 그러지?”

희연은 이제야 연하의 존재를 눈치챘다. 그녀가 왜 머리를 박고 있는지, 희연은 전혀 짐작도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연하는 일어나라고 말해주지 않는 희연의 태도에 더 딱딱하게 굳었다.

“저, 휴식시간이 끝났는데요. 촬영을 재개했으면 하는데.”

감독은 회사의 톱인 조제성이 나타나자 조심스럽게 물었다. 조제성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촬영을 제개해야지요. 원기씨. 그럼 저녁에 봅시다. 모처럼이니 같이 식사라도 하지요. 연하양도 빨리 촬영 준비하세요. 그럼 좋은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조제성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원기의 등을 떠밀었다.

“저는 여기서 기다릴께요. 괜찮겠지요?”

희연은 아무렇지 않은 듯, 여감독에게 물었다. 여감독은 희연이 연기자라고는 하지만, 희연과 원기가 부부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조제성을 보았다.

조제성은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여서 신호를 주고는 촬영장에서 나갔다.

원기와 연하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태로 스텝의 손에 이끌려 침대로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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