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8화 몬스터
“헬 여신님을 직접 눈으로 뵙고 싶습니다.”
거미 여왕을 비롯한 모든 종족의 여왕들이 모여서 장수한에게 요구했다. 보통 왕이 중심이 되는 갑충일족처럼 보이는 바퀴벌레도 여왕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헬이 자신의 종족들을 대부분 그렇게 만든 것으로 보였다.
왕이 중심이 되는 갑충일족은 개체로서의 성능은 뛰어나지만, 일족으로서의 연계나 유용성은 떨어지는 편이라, 헬의 종족 중에서는 과도형이자 초기종족에 가까웠다.
언데드들은 기생충을 통해 만들어낸 종족이었다. 그리고 이런 기생충들을 컨트롤하는 능력은 거미여왕에게 주어져 있었다.
뱀파이어는 가장 귀여워하는 종족이었고, 거미 여왕은 헬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뱀파이어를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벌레들을 지배하는 여신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장수한은 모든 이종족에게 호의를 얻는 일종의 창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려움은 없었다.
“헬 여신님이라면 블러드 라인에 들어가면 만날 수 있지 않나요?”
“그 패배자 말고, 진정한 헬 여신님을 뵙고 싶습니다.”
거미 여왕은 강한 의지의 눈빛을 보이며 말했다. 장수한은 한숨을 쉬었다. 바퀴벌레 여왕이 포함된 벌레종족들을 직접 눈으로 보게될 경우, 희연의 반응이 어떨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결코 좋지 않으리라는 것은 자신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미안하겠습니다만, 희연이 당신들을 좋아할 것 같지는 않군요.”
그 순간, 거미 여왕을 비롯해서 다른 여왕들의 눈빛이 변했다. 강한 살기가 느껴졌다. 장수한은 폭동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두려웠다.
“아무리 장수한님이라지만, 우리 여신님께 경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듣고있기 괴롭군요.”
거미여왕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장수한은 그들의 분노가 자신이 희연을 가볍게 부른 탓이라는 것을 깨닫고 놀랐다.
“아, 정정하지요. 희연님이 여러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실 겁니다.”
장수한은 식은 땀을 흘렸다. 이들은 아직 새로운 헬의 신자도 아니었다. 헬의 세계수가 이들이 올 당시에 없었기 때문에, 프레이야의 세계수에 연결했다. 이들의 종족적 가치를 생각해서 바니걸 통신의 효과를 기대한 것도 사실이었다.
장수한이 생각하기에 희연이 이들을 가까이에서 보게 되면 살충제를 치고 싶어할 것이 분명했다.
‘칼만 안휘둘러도 다행이지. 그 검은 칼이 나올지도 모르고 말이야.’
“알고있습니다. 그분은 일부 종족을 제외하면, 혐오하고 경멸하신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럼 어째서 그런 부탁을 하시는 겁니까.”
“그 강하고 아름다운 분의 경멸의 시선을 받고 싶습니다. 그 얼마나 매혹적입니까.”
장수한은 사래가 들려서 기침을 터뜨렸다. 스스로의 대사에 도취된 거미여왕을 비롯한 벌레 여왕들은 황홀해 하는 듯 했다.
장수한은 그 순간 깨달았다.
헬의 지배 역시 강력했던 것이었다.
공포를 통한 지배가 바로 헬의 지배였다. 그리고 희연은 헬의 백성들이 꿈꾸던 최고의 헬이었다.
실패해서 포로로 잡히고 신성을 토해낸 나약한 패배자가 아니라,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이능을 휘두르며, 잡신들을 학살하고 오딘마저 도망치게 만드는 최고의 공포이자, 여왕이었다.
헬의 공포에 길들여진 그들에게 있어서, 절대 강자이자 공포의 주인에게 받는 경멸과 멸시, 혐오의 시선은 그들이 지배받는 자임을 뼈에 새기게 만들어주는 축복이나 다름없었다.
장수한은 들어주지 않으면 파업은 몰라도 태업 정도는 할 것 같은 그들의 태도에 시간을 달라고 말하고 빠져 나왔다.
“그렇군. 지배당하는 것에 매료된 종족이었나.”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자유보다 종속이 좋다니 말입니다.”
“그건 자네가 아직 젊어서 그래. 지시받는 것, 속박받는 것은 말이야,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함께 주거든. 선생의 지시나 부모의 지시를 따르는 것은 선생이나 부모의 보호를 받는다은 느낌을 주게 되지. 세상에는 정신나간 교사나 부모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들은 극히 소수야. 대부분의 교사나 부모는 자신을 따르는 생도나 자녀를 보호하려고 하고 그들 대신에 고민해 주거든. 막상 세상에 나가서 자신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부모의 품이 그리워질 수도 있지.”
“그래서 변태들이 태어나는 겁니까.”
“뭐, 세상의 ‘정상’이란 것의 범주는 생각보다 좁으니까 말이지.”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떻게 해? 네가 알아서 해. 난 몰라. 희연양을 달기지에 보낼지 말지 정도는 자네가 정하게.”
장수한은 조제성이 모른다고 떠넘기자, 난감해졌다. 희연을 안보낼 수도 없고, 보내기도 녹녹치 않았다.
“거보게. 자네도 내 지시대로 움직이는걸 은근히 원하지 않았나. 그런 거야. 원기님을 달 기지 시찰에 보내게. 그럼 희연양은 저절로 따라갈거야.”
장수한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확인할 것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잘 될까요? 전에 원기님이 시찰하러 가셨을 때, 희연이는 함께 가는 것을 거부했었는데 말이지요.”
“걱정 말게. 지금이라면 지옥 끝이라도 쫓아갈 테니까. 몇 년 정도는 눈도 떼지 않으려고 들거야. 사실 그때도 함께 가자고 했으면 갔을테지.”
조제성은 희연의 심리 상태를 이전부터 꿰뚫고 있었다. 그래서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그건 그렇고, 진짜 문제가 생겼네.”
“무슨 일입니까?”
조제성이 손짓을 하자, 인터넷 뉴스 장면이 벽에 비춰졌다. 거기에는 태평양에서 새로운 동물이 발견되었다는 뉴스였다.
이름은 ‘시 샐러맨더’ , ‘바다 도롱뇽’이라고 불리우는 신종의 동물이었다.
크기는 약 50cm였다. 양서류는 대부분 육지 가까운 민물에 사는데, 이 도롱뇽은 태평양 한가운데서 포획되었다는게 화제거리였다.
“특이한 동물이네요. 이게 뭔가 문제라도 됩니까?”
“아, 그렇군. 우리에겐 별 문제가 아니지. 오히려 좋은 일일 수도 있고. 하지만 인류에겐 재앙이 될지도 몰라.”
조제성의 말에 장수한은 유심히 모습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소리로 하는 것은 아닌 듯 싶었다.
“좀 특이하긴 하군요.”
“조금이 아니지. 폐와 아가미가 모두 있고, 이름은 도롱뇽이지만 실제 외형은 도마뱀에 가까워. 발에는 물갈퀴가 등과 꼬리에는 지느러미가 있지. 양서류라고 하지만, 파충류와 어류의 장점을 모아놓은 듯한 동물이야.”
“무슨 말씀이시지요?”
“간단히 말하면 몬스터라는 소리지.”
조제성의 말에 장수한은 눈살을 찌푸렸다. 조제성이 모아들인 연구진들은 야생 동물과 몬스터의 구분을 ‘신성력’으로 구분했다.
신성력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바로 몬스터였다.
“저정도 크기라면 별 문제 없을 것 같은데요.”
“저정도 크기로 끝난다면 문제가 없겠지. 몬스터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건 알고 있겠지. 개중에는 성역을 필요로하지 않는 몬스터들도 있어.”
몬스터들은 신들에 의해 창조되었지만, 완성도가 높은 몬스터는 딱히 신성력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엘프, 드워프, 오크, 늑대인간, 뱀파이어 등이 바로 그러했다. 이들은 성역 밖에서도 생활은 물론 번식도 가능했다. 성역 내에서 좀더 많은 능력을 보다 강력하게 사용할 수 있을 뿐이었다.
프레이야 연구소에서는 이들을 완성체 몬스터라고 분류했다.
인간형 말고도 여러종류의 생물이 있기 때문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생태계를 교란시킬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종류의 몬스터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번식의존형 몬스터가 있었다.
성역은 기본적으로 번식력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었다.
성역 안에서 인간은 정력이 강해진다. 그리고 번식을 위한 메커니즘이 강화된다. 이는 단순한 성욕의 증가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자식을 얻기 위한 올바른 번식욕의 증가였다. 연구진이 확인한 결과 성역 내에서는 동성애의 발현은 물론이고, 자위 등의 행위도 감소했으며, 이종에 대해서는 성욕을 느끼지 못했다.
아스가르드에서 엘프들에게 성욕을 느끼는 인간이 없는 것은 바로 이때문이기도 했다. 자식을 낳고 키울 수 있는 관계에만 집중하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성역안에서는 ‘번식욕’은 증가하나, ‘성욕’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래, 이종교배는 자연이 금기시하는 것이었다. 유전자상의 차이가 올바른 자식을 낳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라이거나 노새 같은 경우에는 정자를 생산할 수 없었다. 정충이 올바로 형성되지 못해서, 암컷을 임신시킬 수 없는 것이었다.
반면, 암컷의 경우에는 낮은 확률이지만, 임신할 수 있었다.
정자가 제대로 생성되지 못한다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자연이 금지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성역 내에서는 이런 불완전한 개체도 제대로 번식이 가능했다. 성역 안에서는 라이거나 노새 같은 동물도 종족으로서 번성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미 조제성은 이런 점을 착안해서, 노새 개량 사업에도 진출한 상태였다. 미국의 일부 지역에서는 노새 경주가 있는데, 이 경마(?)에서 우승한 뛰어난 노새들은 자식을 낳지 못해서 그 혈통이 끊기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복제를 통해서 유전자를 남기는 것이 모색되었는데, 성역을 통하면 말 그대로 교배를 통해 뛰어난 노새를 기르는 것도 가능했다.
노새는 몬스터는 아니지만, 번식을 성역에 의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닮았다고 할 수 있었다.
번식의존형 몬스터는 성역 내에서만 번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안전하다고 할 수 있었다.
추가로 생존의존형 몬스터가 있었다.
이들은 가장 완성도가 떨어지는 몬스터로, 성역 내에서만 살 수 있는 몬스터였다. 이들은 성역 내에서만 살 수 있는 대신에, 거대하고 강력한 몸을 가진 놈들이 많았다.
오우거 같은 몬스터나, 토르의 거인족 등이 바로 이 케이스였다.
“그럼, 저 바다도롱뇽이 몬스터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시는 겁니까?”
“그래. 생존의존형이 아닌 놈들은 충분히 이쪽 세상에서 살 수 있지. 그리고 그 크기나 능력의 한계는 이쪽 세상의 동물들과 같아.”
“이쪽 세상의 동물들이라면 대략 호랑이 정도일까요?”
“곰, 코끼리, 호랑이 등이 육상형이고 고래 같은 것도 가능하겠지. 공룡 같은 것도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어. 서식지가 바다라는게 인류에게 있어선 최악이겠지. 더 무서운건 식인종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지.”
식인종은 성역의 힘을 인간을 섭취함으로써 얻는 종족이었다. 뱀파이어나 늑대인간은 완성형이지만, 성역이 아닌 곳에서의 힘은 인간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이들이 인간을 잡아먹으며 그들의 영력을 취하면 성역에서와 같은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오우거도 식인귀로 불리우는 것은 그런 면이 있었다. 만약 저 바다 도롱뇽이 그런 종류의 힘을 가지고 있다면, 인간을 먹어서 힘을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면 상당히 위험한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시샐러맨더는 육식성이 분명해 보이는 주둥이를 지니고 있었다.
“이 정보를 알려주는게 좋지 않을까요?”
“아직 확실한 건 아니야. 방사능 돌연변이일 가능성도 있고, 그냥 신종일 수도 있지. 다만 대비는 해두자는 차원이라고 생각해 두게.”
조제성은 그렇게 말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는 후쿠시마의 성역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 인근은 어업인구가 급감해서 어로활동이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태평양 한가운데서 발견된 것은 아마도 그때문일 것이었다.
‘후쿠시마산이라면 활동영역이 정말 넓군. 맘에 들어.’
조제성은 이번 사태에 대비하면서 어떻게하면 프레이야 진영에 더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을까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아스가르드 상황은 어떻습니까?”
“아더왕과 멀린이 매우 잘해주고 있어. 생각보다, 아니 뛰어난게 당연한 인물들이겠지.”
축소된 굴베이그령은 새롭게 성을 쌓았다. 성의 이름은 캐멜롯이라고 명명되었다. 그리고 아더왕, 블레이드가 여왕으로 취임했다.
퀸 블레이드와 랜슬롯, 오사카 마린이 굴베이그령의 인간들을 통솔하기 시작했다. 남은 인간들은 소수지만, 정예였다.
교육을 받고,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었고 게다가 모든 기득권을 포기한 인물들이기도 했다. 이들을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와 현명한 책략가, 용맹한 군인이 이끌게 된 것이었다.
생각밖으로 빠르게 기틀이 잡혔고, 캐멜롯은 난공불락의 요새로 새롭게 태어났다.
세스룸니르를 방어하는 인류로 이뤄진 최후의 요새가 된 것이었다.
퀸 블레이드는 왕으로 태어난 인물답게, 자신의 백성을 돌보는데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었다.
“부유요새 2호 아발론의 건조도 서둘러야겠군요.”
1호 부유요새 라퓨타는 혼돈의 대륙에서 놀제로의 거점으로 사용될 예정이었다. 물론 부유석 채굴은 여전히 바쁘게 이뤄지고 있었다.
“그보다, 빨리 달기지를 정상화시키게. 보아하니 희연양의 채찍질 몇번이면 생산성이 몇배는 상승할 것 같으니까. 거미줄도 좀 더 쥐어짜고 말이지.”
거미줄을 이용한 특수 섬유 ‘아라크네’는 같은 무게의 금보다 더 귀했다. 그리고 벌족들은 설탕물과 동물사료만 먹여도 꿀과 로열젤리를 생산해냈다. 설탕물을 먹여 만들어낸 꿀은 기본적으로 질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원래 벌족들은 덩치가 있어서 꿀만 먹고 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닥치는데로 잡식을 하는 습성이 있어서, 개사료와 설탕물을 주면 그걸로 꿀과 로열젤리를 만들어 냈는데, 성역의 영향으로 다양한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장기적으로는 이들을 이용한 상품도 고려하고 있었다.
혼돈의 대륙은 헬 여신의 종족들보다도 훨씬 기괴한 몬스터들이 다수 존재했기 때문에 그 가치는 꽤 크다고 할 수 있었다.
‘후쿠시마 바다에서 저 바다도롱뇽의 샘플을 채취시킬 필요가 있겠군.’
제성은 제준을 보내기로 마음 먹었다. 제준이라면 뭔가 쓸모있는걸 주워올 가능성이 매우 컸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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