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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372화 (372/497)

372화 추억은 아름다워

“호오, 이 아이가 몬스터란 말이요?”

윤성그룹 회장 윤주성은 눈 앞의 미소녀를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눈 앞의 소녀는 대단히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단정하고 순진해 보이는 외모, 동시에 약간의 백치미도 느껴지고 있었다.

“예. 벌의 몬스터지요. 그리고 윤회장님의 건강을 위해 특별히 데려온 아이입니다.”

소녀를 소개하는 여성은 소녀와 소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지적이고 성숙한 이미지의 여성이었다. 기품이 있는 함부로 접근하기 힘든 매력이 있었다.

“흐, 흠. 설마 데리고 자는 것은 아니겠지요.”

속물인 윤주성이지만, 프레이야의 사자인 리디아 황녀에게 음담패설을 흘릴 정도는 아니었다. 리디아 황녀는 그가 인맥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남에게 과시할 수 있는 고귀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저속한 표현을 쓰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리디아의 미간이 지금의 발언에 살짝 찌푸려지는 것을 보고는 당황했다.

“그건 아닙니다. 이 아이가 가진 로열젤리를 윤회장님께 전해드리기 위해서 왔습니다. 아무래도 갓짜낸 것이 신선하지요.”

소녀는 리디아의 신호에 유리잔을 들었다. 윤회장이 주로 양주를 마실 때 쓰는 고급스런 글래스였다. 짜낸다는 표현에 혹시 소녀가 가슴을 노출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묘한 기대를 한 윤회장이었지만, 그것을 표현하지는 않았다. 목은 물론이고 귀까지 붉어져서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리디아가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맹점이기는 했다.

소녀는 글래스에 조심스럽게 혀를 내밀었다. 그리고 소녀의 혀에서 황갈색을 띈 투명한 액체가 쪼르륵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호오.”

윤회장은 소녀의 혀를 타고 내려오는 액체가 침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은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최근 벌이는 일마다 승승장구하며 사치스럽게 살아온 덕분에 고급품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은 확실했다.

잔에 삼분의 일 정도 찬 액체는 마치 액체로 된 보석과도 같았다. 호박보다는 투명한 녹은 황금처럼 느껴졌다.

“일벌들이 극히 소량 만들어내는 로열젤리라는 것이지요. 이 아이가 본 모습으로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식욕이 생기지 않을 듯 해서 이렇게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침같아서 좀 불쾌하실지 모르겠군요.”

“무슨 말씀을. 영광입니다. 직접 받아 마시지 못하는 것이 유감이지요…”

그는 순간 자신의 말이 지나친 것이 아닌가 슬쩍 말을 끌었다. 리디아는 그의 뒷 말을 그냥 무시해 버렸다.

윤회장은 글래스를 들어 쭈욱 들이켰다. 새콤달콤한 맛이 느껴질 뿐만 아니라, 온 몸에서 에너지가 넘쳐나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로 젊음이 돌아온 느낌이 들어 그는 신이 났다.

‘아니, 젊음이 돌아온 정도가 아니군.’

정말로 불로장생할 듯한 기분이 드는 액체였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이 마신다는 술 넥타르도 이정도는 아닐거라는 느낌이었다.

그는 용기를 내서 리디아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이 소녀를 저희 집안에 넘겨주실 수는 없을까요? 소중히 키우겠습니다.”

물론 소녀의 입에서 직접 로열젤리를 먹는 호사도 누려볼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소녀를 애지중지 다룰 것 만큼은 자신하고 있었다.

“꿀을 좀 내주렴.”

리디아가 말하자, 소녀는 빈 꿀단지를 꺼냈다. 싸구려는 아니지만 백화점 상품코너에서 볼 수 있을 듯한 꿀단지였다. 소녀는 꿀단지에 꿀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머리 속에서 혀를 타고 떨어지는 로열젤리와 뱃속에서 잘 믹스되고 숙성되어서 목을 타고 올라오는 꿀과는 아무래도 비쥬얼이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순간적으로 꿀단지가 변기로 보이는 착시가 생길 정도였다.

하지만 소녀가 토해낸 꿀을 보는 순간, 로열젤리만큼은 아니라도 정말 대단한 물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아이가 가진 건 이게 전부입니다. 꿀도 로열젤리도 아무 곳에서나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상의 어떤 좋은 것을 먹이더라도 여신님의 축복이 없이는 이런 꿀과 로열젤리는 생성할 수 없습니다.”

“그렇군요. 알 것 같습니다.”

로열젤리도 그랬지만, 꿀도 은은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아무리 좋은 재료를 써도 이런 것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성분 조사를 한다고 해서 이 꿀의 진짜 가치를 알 수 있을리가 없었다.

물론 성분 조사를 하면, 아마도 개사료와 설탕물 정도 밖에는 나오지 않을 터였다.

“다음에도 이 아이를 데리고 오도록 하지요. 그때까지 이 아이는 자신의 둥지에서 좋은 꿀과 로열젤리를 만들고 있을 겁니다.”

리디아의 말에 윤회장은 감사의 뜻을 표했다. 가족에게 꿀은 좀 나눠줄 생각이 있지만, 로열젤리는 자신이 독점할 생각이었다.

“리디아님께서 떠나시네. 배웅 준비를 해주게.”

회장실의 문이 열리고, 비서와 함께 아들인 윤승주가 들어왔다.

“아들 녀석이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다고 합니다. 혹시 괜찮으시면 어떠실런지요. 아직 젊어서 정말 좋은게 뭔지 잘 모르는 미숙한 녀석이긴 합니다만, 싸고 좋은 식당들을 알아놨다고 합니다.”

리디아는 탐탁지 않았지만, 조제성이 특별관리하는 대상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 탐욕스럽고 저속한 이를 왜 특별관리하는지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이해하지 못해도, 조제성에게만 보이는 무언가가 있을 터이니 최대한 응해주는게 좋았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리디아는 윤승주의 안내에 따라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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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는 용신 캐릭터를 다시 봉인했다. 신성 캐릭터는 일단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보존해두는 편이 나았기 때문이었다. 신성 캐릭터의 외모는 아주 멋지게 다시 만들었다. 아무래도 신은 미형이 아니면 곤란하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었다.

원기는 이전에 블러드 라인2에서 만들어낸 ‘노멀’ 원기가 왠지 애착이 갔다.

레벨이 낮고 외모도 평범한 그런 캐릭터지만, 왠지 자유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가 가진 다른 캐릭터들은 강하고 멋지지만, 동시에 짐이 너무 무거웠다.

달에 갔다 온 후로 조금 마음 편하게 쉬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달기지에서 극기체험을 하고 돌아온 희연은 왠일인지 보이지 않았다. 희연 나름의 배려라는 사실을 원기는 알 수 있었다.

‘틀림없이 어디선가 보고 있겠지만.’

원기의 예측대로 희연은 원기를 먼 발치에서 감시하고 있었다.

“야, 굳이 꼭 이렇게 숨어서 지켜봐야 하는거야?”

“제발 나 좀 내버려 두면 안되겠어?”

희연은 자신에게 들러붙은 거머리인 카즈키에게 짜증을 내며 말했다. 희연은 원기가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너무 붙어있으면 갑갑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동시에 원기를 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멀리서, 아니 숨어서 최대한 가까이에서 살피는 것을 택했다.

“카즈키 언니. 모처럼 나왔는데 떡뽂기 먹자. 오뎅도 사먹고.”

“연하, 넌 먹는 거 말곤 할게 없니?”

“콜라랑 치킨도 좋아. 배달시킬까?”

“여기 맥주보단 콜라가 났겠지. 길거리에서도 배달 되는거냐?”

“그럼. 우리는 배달의 민족이거든.”

연하가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희연은 이런 곳까지 쫓아오는 카즈키와 연하가 성가셨지만, 유사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참고 인내했다.

카즈키와 연하는 원기의 눈에도 가끔씩 보였기 때문에 원기는 희연이 자신의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원기에겐 고마웠다.

혼자가 되고 싶지만, 결코 혼자이길 원치 않는 것이 원기의 마음이기도 했다. 홀가분하게 혼자임을 혼자이지 않은 상태로 즐길 수 있다는 건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원기는 혼자(?)가 된 김에 그리운 옛 동네로 향했다. 사고가 날 때까지 살던 동네였다. 제법 유복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나름 부촌이었다.

‘정말 그립군.’

오랜만에 보던 그 거리는 감회가 새로웠다.

‘희연에게 보여주고 싶은걸. 이미 보고 있겠지만. 크큭.’

원기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희연은 잘 숨어있지만, 카즈키와 연하는 아주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숨을 생각도 별로 없고, 그냥 놀러나온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희연은 보이지 않지만, 희연이 있다는 것은 의심치 않았다. 시체가 없는 곳에 독수리가 날아다닐 리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나란히 걷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희연에게 자신이 살던 마을의 이곳 저곳을 안내해 주고 싶어졌다.

그리고 이런 기분이 든 것도 나름 혼자된 덕분이었기에, 안내해주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뤘다. 혼자서 좀 더 돌아볼 필요가 있었다.

‘살던 아파트로 가볼까.’

원기는 아파트에 가 보았다. 그리운 아파트였다. 하지만 지금은 누군가가 살고 있을 것이기에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그는 아파트 앞에서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그 순간, 그의 앞에 엘프가 나타나서 무릎을 꿇고 예를 표했다.

원기는 황급히 주위를 돌아봤지만, 사람들의 인적은 보이지 않았다. 엘프들의 조심성을 생각한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 열쇠가 있습니다. 조승상님이 미리 맡겨주신 것입니다.”

원기는 조제성의 용의주도함에 다시한번 감탄했다. 언젠가 자신이 들릴 거라고 생각해서 준비해 둔 것으로 보였다.

“다녀왔습니다.”

원기는 빈집에 들어오면서, 인사를 했다. 그러자, 왠지 눈물이 왈칵 솟아올랐다. 원기는 눈물샘이 망가진 듯 흐르는 눈물을 훔치면서 집 안을 둘러보았다.

부모님이 쓰시던 안방도, 누나가 쓰던 방도, 자신이 쓰던 작은 방도 모두 그대로였다. 그래서 더 서러운 느낌이 들었다. 거실의 텔레비전과 게임기 등도 사고나던 날 그 모습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다.

눈물을 펑펑 흘리던 원기는 잠깐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잠이 깨었을 때, 밖은 어두컴컴한 상태였다. 창문을 열자, 다른 통로로 연결된 옆집에서 연하와 카즈키가 게임기를 가지고 노는 소리가 들렸다.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눈물을 흘린 탓인지, 마음도 한층 상쾌해진 느낌이었다. 원기는 기운을 차리고 어둑어둑한 집을 나섰다.

조제성에게는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운 집, 하지만 더 이상 자신의 집은 아니었다. 자신이 돌아갈 집은 따로 있었다.

‘그래도 조금 더 돌아보고 갈까.’

어둑어둑해진 거리, 밤에 보이는 모습은 중학생까지였던 그에게 아주 익숙한 것은 아니지만, 조금 그립고 조금 설레는 장소였다. 원기는 천천히 마을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클랙션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유명한 이태리제 슈퍼카가 보였다.

‘누구지? 카즈키가 샀나?’

“너 원기지? 박원기 맞지?”

슈퍼카 운전석에서 보인 것은 예상 외의 인물이었다. 원기는 교우 관계가 넓지 않았던 탓에 금방 그의 이름을 떠올렸다.

“윤…윤승주?”

상대는 원기의 반응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동시에 그것은 왠지 의미심장한 미소였다.

“오늘 중학교 동창들하고 식사약속 있는데 너도 오는 건 어때? 내가 쏠 테니 부담 갖지 말고 와라.”

“그, 그래?”

원기는 좀 혼란스러웠다. 상대와 자신은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을 기억해 줬다니 고마웠다. 지금의 모습은 유명 탤런트가 아닌, 평범한 버전의 박원기였다.

‘앗차. 모르는 척 했어야 했나?’

탤런트 박원기와 평범한 사람 박원기가 공존하게 되어버린 셈이었다. 고민이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원기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원기는 혹시 태워줄 생각이 있나 해서, 조수석쪽을 봤다. 그리고 거기서 의외의 사람을 발견했다. 바로 리디아였다. 리디아도 당혹스럽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 미안하지만 손님 접대중이야. 메신저로 장소 알려줄께. 친구추가나 하자.”

윤승주는 기분 좋은 표정으로 원기와 친구 추가를 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원기의 폰에 레스토랑의 약도가 떴다.

‘날 이렇게 반겨줄 줄은 몰랐네.’

원기는 자신을 까맣게 잊었을거라고 생각한 중학교 반친구가 자신을 기억해 줬다는게 고마웠다. 그리고 반친구들과 만난다니 내심 기대가 되었다.

‘그건 그렇고 슈퍼카라니, 좀 의외네.’

원기가 기억하는 윤승주의 집은 제법 부자이기는 했지만, 슈퍼카를 맘놓고 굴리는 정도는 아닌 것으로 알았다. 좀 잘사는 집의 좀 잘난체 하는 녀석이라는 정도의 기억 밖에는 없었다.

고교 동창들이라면 슈퍼카를 굴리는 사람들이 나와도 이상할 건 없었다. 학교 자체가 초 부유층의 집합소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그렇고 리디아라고?’

원기는 리디아에 대해서 의심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그녀가 인간을 좋아한다는 것은 희연이 바퀴벌레를 좋아하는 것보다 난이도가 높은 것이었다.

‘조사장님이 얽힌 것 같기는 한데.’

원기는 약속장소인 레스토랑으로 갔다. 자신을 기억해주는 중학교 동창들의 우정을 기대하면서 두근거리는 마음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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