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4화 제성의 복수
감히 눈독들이기도 힘들었던 리디아를 가로채인 윤승주는 순간적으로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특히 자신의 추종자들 앞에서 황당한 꼴을 당한 셈이었다.
화가 나는 것은 당연했지만, 생각만큼 열받거나 하지는 않았다.
‘젠장. 이거 화도 잘 못내겠네.’
그는 리디아와의 친분을 친구들에게 자랑하려고 한 것이었다. 그녀와 실제로 잘될 거라고는 생각치도 않았다.
그저 연예인이나 유명인과 사진찍고는 그걸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친구들을 추종자로서 길들이고 있기는 했지만, 스스로는 친구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잘난척 하기 좋아하는 아니꼬운 놈이지만, 인망도 있고 성격도 아주 나쁜 것은 아니었다.
‘오늘 내가 객기를 좀 부린 건 사실이니, 녀석이 짜증날 법도 하지.’
윤승주는 그렇게 생각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그가 집에 들어오자, 아버지 윤주성이 소파에 앉아 있다가 미소를 지었다. 그의 옆에는 젊고 예쁘장한 그리고 탐욕스러운 눈을 한 여성이 자리잡고 있었다.
‘생각보다 투박한 반지를 끼고 있는데.’
윤승주의 눈에 묘하게 싸보이는 반지가 들어왔다. 돈으로 쳐바른 듯한 여성의 옷차림을 생각하면 좀 의외였다.
‘검소한 건지, 눈이 싸구려인건지. 아마 후자겠지.’
윤주성이 여자를 쓰다듬던 것을 멈추고 윤승주를 쳐다보며 말했다.
“생각보다 묘한 재주가 있구나. 리디아 양에게 연락이 왔었다.”
“예? 어떤 연락이 온겁니까?”
“네가 좋은 호스트를 소개해 줬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말이지. 역시 양것들은 자유분방하고 화끈한 것 같더구나. 아무튼 잘해 줬다.”
“그거 다행입니다. 아버지. 저도 안그래도 걱정되던 참이었습니다.”
윤승주는 어색하게 미소를 짓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이미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혼한 상태였다. 돈이 많아지고 신분이 높아지다보니, 아버지는 변해버렸다.
본래는 좀 신경질적이고 소심한 사람이었지만, 돈이 생기고 우월감이 생기다보니 자연스럽게 본성이 드러난 것인지도 몰랐다.
성접대를 받다가 부부싸움이 벌어졌고, 이혼에 들어갔다. 그의 어머니도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했지만, 나름 한 재산 받아서는 외국으로 떠나버렸다. 그리고는 다신 연락도 하지 않았다.
윤승주는 아버지 곁에 남아있었다. 하지만 서로의 관계는 딱히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다행히 젊은 시절에는 돈이 그리 많지는 않아서 사방에 씨앗을 뿌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덕분에 후계자 싸움 같은 것은 생각할 필요 없었다. 넘치는 돈을 과시하며, 추종자들과 어울리는 것만이 그의 생활에 가까웠다.
“나도 참 한심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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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말이지요. 악당히 반성하거나, 회개하는게 정말 싫습니다.”
조제성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
“반성하는 악당은 말이지요. 인간적으로 성숙해 버리는 건 둘째치고, 고통에도 강해집니다.”
원기는 조제성의 말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악당히 반성하거나 후회하도록 만드는게 복수가 아니었던가.
“생각해 보세요. 자기가 나쁜 짓을 해서, 맞아도 싸다고 생각하는 악당이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맞아도 덜 아픕니다. 육체적으로는 비슷할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아니지요. 악당은 후회를 할줄 몰라야 합니다. 반성을 해서도 안됩니다. 회개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지요. 악당은 악당다워야 좋은 겁니다.”
“저, 범인은 아직 못찾았다고 들었습니다만.”
“아직, 다 찾지는 못했습니다. 주모자들하고 하수인들하고 실행범하고 중개인하고 이득을 본 사람들하고 폭탄의 부품을 만든 놈들이라든가 그 사돈의 팔촌이라든가.”
“저, 뒤쪽이 좀 이상한 것 같습니다. 형님.”
“뭐, 일단 윤주성은 제가 공을 들이는 녀석 중 하나인 건 틀림없습니다.”
조제성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편안하고 사람좋은 미소가 오히려 공포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윤주성은 자산가이자 무역회사의 오너 집안의 삼남이었다. 딱히 유능한 것도 아니고, 성격이 좋은 것도 아니라 그냥 아버지 회사에서 월급받아가며 사는 사람이었다.
사장은 자산가이긴 하지만, 씀씀이가 크지도 않았다. 그리고 장남은 우수한 영재로서 인망도 있었다. 윤주성은 돈걱정 안하고 살아도 되는 복받은 인생을 사는 조무라기에 지나지 않았다.
차남은 어릴 적 병으로 죽었는데, 차남 역시 우수했기 때문에 그 아버지는 윤주성과 그 형들을 비교하는 나쁜 습관이 있었다.
뿌리깊은 열등감을 가지고 소심하게 위축되어 살던 사내가 윤주성이었다.
그리고 어느날 그 아버지와 형이 함께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가족의 자산을 중심으로 움직이던 회사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회사를 이어받게 되었다.
하루아침에 중견급 무역회사의 사장이 된 그는 회사를 키우기 시작했다. 자산가였던 집안의 재산을 회사에 투자해서, 회사를 키워나갔다.
알멩이는 부실하지만, 덩치는 큰 회사로 커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자수성가한 천재 조제성과 만나게 되었다. 회사의 자산이나 덩치는 조제성의 회사보다 컸지만, 조제성만한 사업 재간이 없었기에 그의 회사는 좀처럼 성장하지 못했다.
반면 조제성의 회사는 알차게 쭉쭉 뻗어 나갔다. 그의 열등감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어떤 조직에서 접근해왔다. 바로 그의 아버지와 형을 죽인 조직이었다. 돈을 주면, 조제성을 죽여주겠다는 조직이었다.
교묘한 조직이었다.
이 조직은 죽일만한 대상을 정하고, 이 대상이 죽음으로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이들에게 접촉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제성이 사망하는 상황을 상정한 대책위원회를 만들고, 자금을 모아서 암살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을 택했다.
주모자들은 그저 위원회 소속이었을 뿐이고, 책임은 분산되기 때문에 혹시 수사망에 걸리더라도, 누구 하나에게 혐의를 돌리기 힘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암살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위원회는 해산시켜 버리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서 고객의 양심적 가책을 줄여서 단골로 만드는 것이었다.
사형수를 총살할 때, 소총수들에게 실탄과 공포탄을 나눠주는 것과도 비슷했다.
“아주 비상한 놈들이긴 합니다. 다 잡아들이는데는 시간이 좀 걸렸지요.”
조제성은 담담하게 말했다. 조제성은 잡은 조직의 실행범에게는 누명을 씌워서 감옥에 보내 버렸다. 마약 조직의 소두목을 죽인 누명을 씌워서 그 마약 조직원이 득실대는 남미의 감옥에 집어넣은 것이다.
“대체 왜 누명을 씌운 겁니까? 놈이 저지른 짓만으로도 충분히 더 무거운 형벌을 받았을텐데요?”
“당연하지. 그래야 억울할 거 아니냐. 자기가 저지른 잘못으로 감옥살이를 하는 것보다 자기가 저지르지 않은 일로 감옥살이를 하는게 억울하지. 그런 놈들은 드러나지 않은 범죄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지. 그래서 억울하게 들어갔다고 원통해 하고 있다.”
조제성의 지론에 할 말이 없었다.
“헬의 지옥은 안쓰실 겁니까?”
“시시하더라고. 인간의 영혼은 어떤 상황에서도 깨달음을 얻는 존재야. 절망도 희망도 사라지면, 더 이상 고통을 가할 수도 없지. 사람들에게 겁은 줄 수 있어도 당사자가 익숙해지는걸 막지는 못해.”
조제성은 시니컬하게 말했다. 일벌백계용으로 사람들에게 겁주는 용도로나 쓸 수 있을 뿐이라는거였다. 차라리 호화판으로 개조해서 앞으로 생길 유능한 에인페리아의 영혼들을 보관하는 별장 리조트로 쓰는게 낫다는게 조제성의 주장이었다.
템플 기사단들이 갖고 있던 아발론은 영혼들을 냉동보존하는 냉동캡슐에 가깝다면, 헬의 지옥은 여러가지 자극을 느끼며 생각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람선이나 리조트로 써먹을 수 있었다.
“그럼, 윤주성 회장을 지금까지 키운건 무엇때문인가요?”
“일단, 증거를 찾아서 잡아넣는 것은 간단한데 그래봤자 시시하지요. 여전히 집안에 자산은 이천억이 넘게 남아있고, 10년 이상 형을 살 가능성도 별로 없습니다. 죽이는 건 그냥 편하게 만들어주는 것이고 말이지요. 게다가 당시의 열등감에 쩔어있는 윤주성이라면 금방 후회할 것 같더군요. 그럼 재미 없지요. 그래서 녀석의 사업을 키워줬습니다. 놈은 자신이 사업의 천재인 줄 알게 되었지요. 그렇게 만드느라 고생은 좀 많이 했습니다. 투자도 제법 해야 했고 말이지요.”
조제성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위원회의 리스트에 있는 인물들을 모조리 그렇게 키워주고 있었다.
“자기가 잘난 줄 알면, 몰락했을 때의 비참함과 억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지요. 자기가 스티브 잡스급 천재인데, 재수가 없어서 망했다. 세상이 날 몰라준다. 그렇게 생각하며 살겠지요. 제가 생각하기엔 그게 더 좋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해하지 마십시오. 투자한 돈은 절대 낭비가 아닙니다.”
원기는 조제성이 자신의 복수를 위해 돈을 썼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원기는 제성그룹의 재산이 조제성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얻어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엘프들의 제국도 엘프들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반면 제성이나 엘프들은 자신들의 모든 것이 프레이야 여신의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윤주성에게 국한 짓자면, 놈은 자신이 천재라고 생각해서 사업을 마구 확장했습니다. 대규모 전기자동차 회사도 짓고 있습니다. 그리고 배터리 공장도 크게 짓고 있지요. 놈은 자신이 금자탑을 쌓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카드하우스(도미노와 비슷)를 짓고 있는 겁니다. 이미 윤성그룹의 부채는 3조원을 넘었지요. 조만간 망하면, 윤주성이 갚아야 할 빚은 대충 1조 5천억 정도는 될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 그의 기업체들을 헐값에 인수할 수 있게 됩니다. 대충 1조원 이상의 이익이 예상됩니다.”
사업이 커지면 부채도 커진다는 점을 노린 것이었다. 윤주성의 성공은 조제성의 교묘한 지원에 의해서 이뤄진 것이었다. 순식간에 주가가 폭락하면 윤주성에게는 천문학적인 숫자의 부채만 남게 되는 것이었다.
부자는 망해도 삼년을 가지만, 사업가는 망하면 순식간에 빚더미에 깔리게 되어 있었다.
“그 아들 놈이 감히 프레이야님을 열받게 만들었다니, 호되게 맛을 보게 만들어 주지요.”
원기는 그 말에 황급히 만류했다. 그가 과시욕 때문에 원기의 트라우마를 건드린 것은 사실이었다. 자신이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존재가 되어 무시당하고 잊혀질 것이라는 상상은 원기를 오랫동안 괴롭혀 왔다.
그리고 그날 만난 중학 동창들은 원기의 악몽을 어느정도 재현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고작 그런 대우 때문에, 조제성의 복수의 구렁텅이에 자신이 아는 사람을 몰아넣고 싶지는 않았다.
“윤주성에 대해서는 말릴 생각은 없습니다만, 윤승주는 어느정도 빠져나갈 수 있게 해주시면 안될까요.”
“그렇게 하지요. 윤주성의 가정은 이미 붕괴된 상태이니, 조금만 손을 쓰면 알아서 깨질 겁니다.”
조제성은 간단하게 말했다. 약간의 안좋은 소문과 조금의 실패 정도만 되어도 자신을 완벽한 신적 존재로 착각하는 윤주성은 윤승주를 잘라 낼 것이었다. 절연당해서 어머니의 곁으로 가게 만드는 정도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조제성 덕분에 윤주성은 인간 불신에 빠져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제성은 탐욕스럽고 욕심많은 여자들을 전국에서 구해서 그의 곁에 떡밥처럼 깔아둔 것이었다. 펜릴의 반지도 탐욕스러운 여자들에게 나눠준 상태였다.
윤주성은 예쁘고 탐욕스러운 여자들과 어울리면서, 성의 쾌락과 여성불신, 혐오에 함께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가뜩이나 약한 가족에 대한 미련을 끊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원기는 윤승주를 위해서 조제성에게 부탁하는 자신을 보면서, 복잡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흘러갈 거라고는 생각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참, 큰 사건이 터졌습니다. 일본이 일을 냈습니다. 오카 이즈미. 대단한 여자더군요.”
조제성은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떤 일을 낸 겁니까?”
“시 샐러맨더 수백마리를 포획했습니다. 특수한 전기 신호로 유도해서 잡아냈다고 합니다.”
“그럼, 간단히 멸종시킬 수 있겠군요.”
“그렇진 않습니다. 오히려 인명 피해는 늘어나게 될겁니다.”
조제성은 확실을 가지고 말했다. 전기 신호로 꼬셔낼 수 있다면, 인류는 시 샐러맨더를 멸종시킬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조제성은 오히려 안좋은 쪽으로 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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