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9화 호모금지
“바니걸 통신이라는거 대단한 힘인 것 같네. 어떻게 저런 힘이 나오는걸까?"
카즈키가 장수한 옆에서 물었다. 조제성은 카즈키는 물론이고 누구에게도 어렵게 느껴지는 존재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철저한 실리주의자이기도 했다.
그는 바니걸 통신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지를 고민할 뿐이었다. 왜 바니걸 통신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장수한은 쓸모가 있었다. 조제성처럼 철두철미하거나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것저것 알고 싶어하고 그걸 정리해서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나이 차이도 그리 많지는 않았다.
“음, 그건 말이야. 사랑이지.”
“팬다.”
카즈키의 말에 뒤통수를 문지르며 장수한은 씨익 웃었다. 카즈키는 의외로 사람들과 친화성이 좋았다. 웃긴 것은 일본에선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기 어려운 문화가 있었고, 그런 사람들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래서 카즈키가 물위에 뜬 기름처럼 좀처럼 섞여들어가지 못했다. 아이러니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일본에선 사람과 사귀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나레나레시이’라고 하면서 경원시하고, 사람을 좋아하고 어울리고 싶어하는 이들을 ‘공(共)의존’이라는 정신질환자 취급을 하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흔히 알코올 중독대신에 알코올의존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일본에서는 사람중독, 혹은 사교중독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을 중독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는 그녀가 따돌림의 대상이 된 것은 당연하면서도 서글픈 일일지도 몰랐다. 친구가 없거나 있어도 조금 있는게 당연한 세상이었다.
카즈키가 어려서부터 해외생활을 주로 해오지 않았다면, 지금의 성격은 만들어지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그런 말은 패기 전에 하는 거라고 알고 있었는데 말이지. 일단, 내가 생각하기에 ‘사랑’은 세가지 단계라고 봐. 물론 반드시 거쳐가는 단계는 아니지. 첫째는 ‘상대가 가진 것을 보는’ 거야. 상대의 외모, 재산, 능력, 성격 등등을 보는 것이지. 뭐 나쁘다는 것은 아니고,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걸 사랑이라고 여기니까.”
카즈키의 눈살이 찌푸려들었다. 왠지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희연의 검솜씨에 반했고, 성격에 반했다. 희연이 가진 것에 반한 것은 틀림없었다.
“두번째는 말이지. ‘상대와 같은 것을 보는’거라고 생각해.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고, 함께 하는 시간을 소중히 하고 말이지. 흔히 말하는 우정도 이것에 포함되지. 애정은 유통기간이 있지만, 우정에는 유통기간이 없다는 것도 그런 것 아닐까 싶어.”
카즈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일리가 있게 느껴졌다. 희연이나 연하와 함께 있는 시간은 확실히 즐거웠다. 같은 것을 공유할 수 있는 동료는 정말 소중한 것이기도 했다.
조제성과 장수한, 원기조차 가끔은 인상을 찌푸릴 정도로 과격하게 몸으로 부딛치며 놀고 있지만, 즐거웠다.
“세번째 단계는 개인적으로 생각하면 사랑의 막장이라고 할 수 있지. 바로 ‘상대 그 자체를 보는’거야. 제성형님이나 희연양을 보면 알 수 있지. 질투도 없어.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거야. 사실 질투나 독점욕은 소유욕에서 오는 것이라서, ‘상대가 가진 것을 보는’ 단계에서 발생하지. 상대는 ‘가진 것’에 딸린 덤 같은 거야. 반면 이 막장 단계에서는 질투도 없어. 개의 충성심이나 고양이의 외모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개가 저지레를 치거나 고양이가 따르지 않는 것을 싫어하는 경우도 많지. 반면에 정말 개나 고양이가 좋은 사람은 개한테 물리거나 고양이한테 할큄을 당해도 그냥 웃어. 개가 개처럼 굴고, 고양이가 고양이처럼 구는게 그 자체로 좋은 거니까.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지지. 원래 부모의 사랑이라는 것도 이런 거여야 하는데, 요즘 부모들은 자식이 뭘 가졌는지, 뭘 가지게 될런지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아서 말”
“딴데로 새고 있다. 그래서 요점이 뭐야?”
“원기의 마음도 사실 이 막장에 가까워. 원기는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그 자체만으로 좋아하거든. 그냥 그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기뻐하는거야. 그게 바니걸 통신을 통해서 전해지는거지. 사실 원기는 외로웠을거야. 화상을 입어 흉측한 몰골이 되어 불편한 몸으로 혼자 침실에서 살아가는건, 홀로 외롭게 죽어가는 것이나 다름없지. 아마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랐을거야. 바니걸 통신은 그런 마음에서 왔다고 생각해. 그래서, 프레이야 여신님은 그저 바니걸 통신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거야. 그리고 그건 듣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지.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기뻐해주는 존재가 있다는게 얼마나 고마운지는 너도 잘 알지 않아?”
카즈키는 수한의 말에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바니걸 통신에서 전해지는 것은 생각보다 많았다. 프레이야는 자신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무사하기를 행복하기를 바랐다. 이 마음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막장은 막장이지. 희연이나 조승상을 보면.’
카즈키는 희연과 같은 곳을 보고 같은 길을 걸어가는게 좋았다. 연하도 함께 하니 더욱 좋았다. 원기도 물론 함께 걷는 동료로서 빠질 수 없었다. 프레이야의 축복 속에서 그들과 함께 걸을 수 있다면 참으로 좋을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많기도 많다. 오천명이 이렇게 많았나.”
“그렇지. 참 귀엽지. 얘네들이 다 크면 어떻게 될려나.”
장수한은 기대되는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거슬릴 지경이었다. 카즈키는 장수한의 이능역시 막장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온갖 이종족들을 있는 그대로 좋아하는 마음이 만들어낸 특이한 이능이었다.
프레이야는 아기들을 하나하나 안아주고 축복의 키스를 이마에 해 주었다. 장수한이 요청한 것이었다. 아기들에게 온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타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엘프 아이를 하나 하나 축복해주고 있을 때, 신생아 실에서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엄마, 엄마”를 서럽게 찾는 아이들이 있었다.
많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성지 부근의 산부인과에서는 제법 되는 듯 했다. 조산임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태어나서 의사와 간호사들을 놀라게 만든 아기들은 ‘엄마’라는 발음을 금방 정확하게 구사해서 또 놀라게 만들었다. 하지만 엄마를 찾는 아이들을 엄마 품에 안겨도 서러운 외침은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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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저거 보게. 저거 시사라가 아닌가.”
후쿠시마에서 물고기를 잡는 이들은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어촌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고, 그들에게는 시사라 잡이라는 새로운 직업을 얻게 되었다.
물론 아직은 시사라의 생태를 관찰하고 바다를 살피는 일을 주로 하고 있었다.
“엄마, 엄마.”
수는 알 수 없지만, 몇 마리의 작은 시사라가 우파루파를 능가하는 귀여운 얼굴로 엄마를 부르며 뻐끔대고 있었다.
“저거 샘플로 잡아가면 되지 않을까?”
“그럴 것 같네. 갈고리 말고 뜰채를 가져와 보게.”
어부들은 뜰채로 착각도롱뇽 한마리를 건져 올렸다. 인간이 뭔지 죽음이 뭔지 자신이 누군지도 잘 모르는 착각도롱뇽은 저항하지 않고 뜰채에 건져져서 갚판에 내려졌다.
“전기를 쏘니까 조심하라고는 들었는데. 전기를 쏘고 있는건가?”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어부들은 절연이 된 방수 겸 고무복을 입고 있었다. 그들로서도 아직 시사라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거 샘플로 데리고 가면 되는 건가?”
“난동 부리면 곤란하니까, 죽여서 가져가는게 나을거야. 어찌 될지 모르니까.”
“그래? 좋아. 사시미칼 가져오게.”
“작살을 쓰는 것 아닌가?”
“이런 작은 놈한테 작살을 쓰는 건 이상하지. 혹시 모르니 산탄총은 가져오게.”
포경선 경험이 있는 어부가 말했다. 장차있을 시사라 사냥을 위해서 경험많은 포경선 출신자들이 시사라 포획을 위해 후쿠시마에 소집되었다.
포경선 출신 어부가 착각도롱뇽을 뒤집고, 무릎으로 가슴을 누른 다음 사시미칼을 착각도롱뇽의 목에다가 들이댔다. 하지만 착각도롱뇽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살짝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에잉. 이거 기분만 이상해. 방사능을 많이 쳐먹어서 돌았나 봐.”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착각도롱뇽을 들어서 바다에 던져 넣었다. 샘플로 쓴다고 하지만, 아무 저항도 하지 않고 맑은 눈동자로 쳐다보는 놈을 죽이는 건 왠지 찜찜했다.
“아직 시간도 많으니 천천히 돌아보기로 하지.”
“이봐. 지금 이 해역에서 피하라는 무선이 들어왔어! 뭔가 재해라도 있는거 아닐까?”
“지진? 쓰나미? 뭔가 있을지 모르겠군. 빨리 떠나세.”
어선은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바다 위에 떠서 뻐금거리는 착각도롱뇽을 보고는 지진의 전조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해상 자위대의 함선들이 주위를 조심스럽게 포위했고, 오카를 태운 헬기가 자위대 함선 위에 착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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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을 엘프라고 착각한 것 같다고요?”
조제성의 말에 프레이야는 아이들에게 축복하던 것을 멈추고, 반문했다.
“예. 성역의 영향을 받은 태아들의 일부가 바니걸 통신을 들은 모양입니다.”
보통 바니걸 통신은 흘려듣기 쉬웠다. 스쳐지나가면서 들은 환청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게 오히려 평범한 일이었다. 특히 미물이나 몬스터가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설사 들린다고 해도, 이해조차 할 수 없는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바니걸 통신은 달랐다. 아주 단순한 것부터 시작해서 반복적으로 이성도 언어 개념도 없을 태아들을 위해 차근차근 실시된 것이었다.
덕택에 언어라는 개념이 없는 몬스터인 시 샐러맨더들, 착각도롱뇽들이 바니걸 통신을 듣고, 언어를 깨우치고 그에 병행해서 지능이 높아질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인간 태아들 가운데도 바니걸 통신의 수혜자가 나왔다는 사실은 예상 못한 사태이기도 했다.
“지금 신생아실에서 ‘엄마’를 찾는 아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자신들이 왜 여신님을 못만나고 있는 건지도 모르고 말이지요. 게다가 태어나면서 엄마를 찾는 것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내 모습이 보이거나 들리지 않는 아기들에게 알립니다. 여러분은 엘프가 아니에요. 지금 엘프들은 모두 제 곁에 있답니다. 그러니 당장 엄마라고 부르는 것을 그만두세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신생아실에서 갓난아기들이 ‘엄마’를 찾는다는 말에 프레이야는 황급히 말했다. 그리고 프레이야의 지시는 프레이야의 의도와 달리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우리 엘프 아니었던거야?}
{우린 엄마라고 부르면 안되는거야?}
{엄마가 엄마라고 부르는거 그만 두라고 했어.}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거지?}
{몰라.}
신생아들은 그저 엄마라고 부르는 것을 중단했을 뿐이었다. 그들은 누군가와 의견을 나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착각도롱뇽들은 그렇지 않았기에 혼란을 겪으면서도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우린 엘프가 아닌거지? 그럼 우린 대체 뭐야?}
{엘프가 아니면 사람인 거 아닐까?}
{사람인건가? 엄마는? 우리가 엄마라고 불러도 되는 엄마는 어딨어?}
착각도롱뇽들의 당혹감은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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