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2화 만악의 근원
“자, 오늘은 어떤 아이가 당번이지?”
오카가 미소를 지으며 찾아왔다. 오카도 게임 캐릭터 시스템을 사용했다. 그녀의 강력한 요청 때문이었다.
“진짜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뭔지를 보여주는군.”
장수한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녀는 게임 캐릭터 시스템을 사용해서 연구를 하는데 재미들렸다. 일반인 수준의 레벨로 고정시키고는 그 상태에서 자신의 몸으로 실험을 하는 것이었다.
더미를 사용하는 것보다 더 확실한데다가 마지막 순간까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자신의 몸으로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녀는 자신의 몸으로 시사라들의 전기 공격을 얻어맞고 사망하면서 그 순간 순간을 기록하는데 맛이 들려서, 보는 사람들을 질리게 만들었다.
원기조차 그녀의 모습에 질려버릴 정도였다.
그녀가 몸을 사려온 이유는 오직 하나, 다치면 연구를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진공 테스트를 해보도록 할 테니. 오늘 당번 나와라.”
“아, 오늘 나다.”
칠뇽이가 한숨을 쉬었다.
“뇽 빼먹었다뇽.”
일뇽이가 주의를 주었다. 장수한은 무엇이든 즐겁게 해야 능률이 나온다는 쪽이었고, 조제성은 방해만 안된다면 멋대로 하라는 쪽이었다. 장수한은 뇽족들에게 말은 무조건 ‘뇽’을 붙여서 끝내도록 교육을 시켰다.
“젠장이다뇽. 이상황에 뇽붙여야겠뇽?”
“자, 자. 이번 테스트는 말이지. 너희들이 진공 상황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를 보는 테스트야. 만약 너희가 진공상태에서 전자파를 토해낼 수 있다면, 프레이야 여신님께 큰 도움이 될거다.”
오카는 전가의 보도라고 할 수 있는 프레이야를 들고 나왔다. 프레이야를 들고 나오면 뇽족들은 좀 무지막지한 실험이라도 순순히 응해줬다.
진공 테스트 실험은 호철의 요청으로 이뤄지는 것이었다.
우주전함의 전력을 시사라 제네레이터로 보충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뇽족을 직접 사용할 수도 있었다.
뇽족들은 말이 통하고, 완벽하게 본능을 컨트롤할 줄 알기 때문에 우주선 내에서 기를 수 있었다. 전력 공급의 역할은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전극을 연결하고만 있어도 자연스럽게 전력이 공급되기 때문이었다.
오카는 이들이 전기 신호를 발신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점을 이용해서, 전기 신호를 이용한 입력장치를 만들었다.
컴퓨터를 전기신호로 조작하는 것이었다. 키보드와 마우스, 조이스틱 등을 전기신호로 대체하는 것으로 이는 꽤 큰 성과를 보았다.
우주선 같은 폐쇄된 환경에서도 게임을 즐긴다던가, 영화나 소설 등을 보면서 시간을 보낼 줄 알게된 것이었다.
호철은 이왕 우주선에 탑승하게 될거라면, 외부 포탑으로 머리를 내밀고 EMP 브레스를 사용하면 어떻겠는가 하는 의견을 내놓았다.
“자, 이건 너희들을 위한 호흡장치의 시제품이야.”
뇽족의 장점 중 하나가 수중호흡을 위한 아가미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를 이용해서 아가미에 산소가 풍부히 포함된 물을 공급하는 헬맷과 비슷한 것을 만들었다.
뇽족은 공기 호흡이 가능하며, 공기호흡 때에는 기도와 아가미쪽을 차단하기 때문에 아가미쪽에 산소가 포함된 물을 순환시켜주는 것으로 산소 공급이 가능하다고 본 오카의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숨쉴 수 있다고 대답하려던 칠뇽이는 말을 하지 못했다. 진공이었기 때문이었다. 추가로 들이마쉴 숨이 없으니 브레스를 뿜을 수도 없었다. 전자파와 브레스가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판타지 소설이나 무협소설에서 권이나 검에 기를 싣듯이 뇽족의 전자파나 전기신호 사용도 무의식의 영역에서 이뤄지는 부분이 많아서 완전히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어려웠다.
“실패인가.”
“헬맷이 전자파를 차단 안하면 되는거 아닌가?”
장수한의 말에 오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럼 재미가 없지 않아요?”
“아, 그렇군요.”
장수한은 오카의 정신구조를 조금은 더 알게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철저한 이기주의자이자 쾌락주의자였다. 무언가를 아는데서 오는 즐거움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던진 지식 중독자였다.
시사라들이나 뇽족들에 대한 관심도 점점 식어가고 있었다. 그녀가 관심을 갖는 것은 헬 여신의 몬스터들이었다.
조제성은 그녀가 성과를 올리면, 아스가르드에 있는 혼돈의 대륙으로 보내주기로 약속한 상태였다.
그녀는 무모한 실험과 연구를 거듭하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지만, 사이언티스트답게 연구 데이터를 철저히 기록하고 분석해 놓았기 때문에, 그 데이터가 미래를 위한 큰 재산이 될 것은 분명했다.
“그럼, 난 나대로 한번 놀아볼까.”
장수한은 나머지 뇽족들을 모아들였다. 장수한이 개발하는 것은 초 고출력 리베로 ‘뇽신기’였다.
시사라 제네레이터 자체가 엄청난 진보인데, 뇽족들의 출력은 시사라 제네레이터를 훨씬 능가했다. 그래서 뇽들을 제네레이터 대신에 사용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 중 하나가 케이블을 연결해서 뇽족의 전력을 리베로에 공급하는 것이었다. 엄빌리컬 케이블이라는 것을 등에 꼽고 애니메이션에 나오던 인간형 병기처럼 싸우는 것이었다.
장점은 뇽족들의 전투력을 그대로 살릴 수 있다는 것이고, 단점은 뇽족들이 노출된다는 점이었다.
뇽족들을 리베로에 제네레이터 대신 탑승시킨다는 안이 더 타당한 것으로 고려되었고, 뇽족들의 고출력을 이용한다면 20미터 이상급의 리베로를 민첩하게 조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출력 전기를 이용한 병기도 사용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조종자+정령+뇽족, 세사람(?)이 하나로 뭉쳐싸우면 백만파워라는 장수한의 노망(?)을 만족시키는 컨셉이었지만, 조제성의 한마디가 장수한의 꿈을 깨뜨렸다.
“조종자, 그거 꼭 필요한거야? 뇽족이랑 정령으로 충분하지 않아?”
조제성의 말대로였다. 정령들은 기본적으로 정신 소통이 가능한 존재면 충분히 기생할 수 있었다. 뇽족은 정령의 숙주가 될 수 있었다.
상성이라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지만, 프레이야가 부탁하면(듣는 이에게는 절대 명령, 아니 절대 사명이다.) 정령들이 계약을 맺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추가로 정령들과 뇽족들은 극히 상성이 좋았다.
시사라와 뇽족은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만, 성장 과정의 판이한 차이로 개체로서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했다.
하나는 지능이었다.
고래의 뇌는 인간의 뇌보다 훨씬 크고 무겁지만, 신체에 있어서 뇌의 비율은 인간보다 현저히 작다. 이는 지능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시사라들의 몸은 빠르게 성장하면서 뇌는 상대적으로 작아지고, 이성(이라기보다는 학습 지능)은 제자리에서 머무르는데 본능은 급격하게 강화되는 것이다.
오카는 뇽족의 전기 신호로 시사라를 길들이는 테스트를 했지만, 사람이 목소리로 개를 훈련시키는 수준에 머무른다는 사실을 밝혀내는데 멈췄다. 사람이 사람의 언어로 개들에게 일부 명령을 인식시키는 것처럼, 뇽족의 전기 신호는 시사라를 길들이는데는 성공했지만, 지성을 가진 존재로 끌어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성이 없으니, 이능도 없었다.
뇽족들은 모두 수신계 이능을 가지고 있어서 일종의 초감각들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옳고 그름을 직감적으로 판단하는 이능이 바로 그것이었다.
텔레파시를 방출할 수는 없지만, 애초에 전기신호를 방출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 대체한 것이다.
오카는 이들에게 ‘암호화’의 훈련을 시켜서, 감청이 불가능한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게끔 이끌었다.
뇽족은 태생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출생직후부터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며 뇌가 성장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감정적인 면이 상대적으로 약한 엘프들의 정령과 상성이 좋았다.
그래서 쉽게 뇽족들과 정령들의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본래 정령은 이성보다 속성이 강한 존재로 알려져 있는데, 엘프들과 다크엘프들의 정령은 이성이 속성보다 더 강했다.
아니 이성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소모하다보니, 속성력 자체가 드러날 수 없었다.
재밌는 것은 뇽족들과 계약을 맺은 정령들은 전기 속성을 띄게 되고 전기를 컨트롤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인간과 정신력 수준은 비슷하지만, 인간 이상의 무언가를 갖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었다.
현재는 저출력 일반 리베로를 정령을 통해 원격 조종하는 훈련을 하고 있지만, 전용의 뇽신기를 제작중이었다. 파일럿을 위한 공간을 없애고 내부에 뇽족이 들어갈 공간을 만들면 되는 것이었다.
리베로는 반드시 파일럿이 기체를 조종한다고 할 수 없었다. 파일럿이 기체를 자신의 육체처럼 조종하고 정령이 보조를 맞추는 방식으로 제어할 수도 있지만, 정령이 기체를 자신의 육체처럼 조종하고 파일럿이 그것을 추가적으로 제어하는 것도 가능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리베로 리거들은 기체를 정령들이 직접 제어하고, 파일럿들은 대전격투게임이나 FPS를 조종하듯이 리베로를 컨트롤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실제 격투에 능한 무투가 등도 리베로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그들은 상위 랭커 근처에도 못오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정령들은 엘프와 다크엘프 출신들이고, 이들은 강력한 숲속의 레인저였다.
인간의 기량으로 이들을 뛰어넘는 것은 쉽지 않았다.
-----------------------------------------
“현자회가 무너진게 안좋았던 것 같습니다.”
조제성은 담담히 원기에게 보고했다.
“어째서지요?”
“현자회가 욕심많은 이들을 끌어모았기 때문입니다.”
현자회는 헬 여신을 비롯한 거인족 신들을 소환하려는 목적을 가진 이들의 모임이었다. 현대인들의 기준으로 보면 좋게 봐야 마신이고 악마나 마귀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그들이 줄 수 있는 것은 영생이었다.
뱀파이어들과 늑대인간들은 부와 권력을 쥐고 어둠 속에서 인간 사회를 조종해왔다.
태양빛이 약점이라든가, 십자가, 마늘이 약점이라든가 거울에 안비친다던가 하는 것은 모조리 흡혈귀들에 의해 날조된 것이었다.
헬이 만들어낸 인간의 초월종인 흡혈귀들에게 그런 알기 쉬운 약점이 있을리 없었다. 실체가 있고 만질 수 있는 존재가 거울에 안비치게 만들려면 얼마나 강력한 이능이 필요할 지 모른다.
날조된 약점은 자신들의 존재를 감추는데 사용되었다.
“봐라. 나 태양빛 아래서 멀쩡하지. 그러니 나 흡혈귀 아님.”
이런 식으로 넘어간 것이었다. 흡혈귀 일족 중에서 죄를 지은 이들을 처형할 때, 태양빛 아래서 재로 변하게 만든다든가, 성수를 강산성 액체로 바꿔치기한다음 그것으로 죽이는 등의 수법을 사용해서 인간들을 속이고 인간들 안에서 버젓이 존재해온 것이었다.
흡혈귀를 믿는 이들일수록, 흡혈귀 전설의 약점을 신봉했기 때문에 오히려 속이기 쉬웠다.
오히려 문제라면, 하위종인 인간은 상위종인 흡혈귀나 늑대인간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전설과는 정반대였다.
자신도 모르게 늑대인간의 피를 이어받은 이들이 광견병에 걸리면, 늑대인간으로 각성해서 미쳐날뛰다가 죽는 일이 있었다.
늑대인간에게 물려서 죽는게 아니라, 사실 광견병에 옮아서 죽는다고 봐야 하는 사건들이 과거에는 종종 일어났다. 늑대인간의 피를 가진 놈은 늑대인간이 되어 광견병으로 죽거나 그전에 맞아죽고, 늑대인간의 피가 없는 놈은 그냥 광견병으로 죽는 것이었다.
흡혈귀들은 아름답고 강했다. 늑대인간들은 인간을 초월한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인간 세상에서 아름답고 강한 존재에게는 부가 따르게 마련이었다.
늑대인간들은 인간을 초월하는 감각으로 미식을 즐겼고, 그로 인해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냄새만으로 맛있는 과일과 식재료를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거대 농장주로 부를 축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야심을 가진 인간들은 어둠의 세계에 발을 담그게 되면서, 기존의 주민들에게 현혹당했다.
헬 여신과 펜릴을 소환한다면, 우리는 영원한 생명과 부, 권력, 쾌락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것에 비하면 모든 것은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그들의 유혹에 빠진 야심가들이 헬 여신의 소환에 열중했던 것이다.
문제는 현자회의 붕괴였다.
현자회가 붕괴하고 잠적하기 시작하자, 영생에 매달리던 야심가들이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자신에게 힘이 있고 돈이 있고, 현자회의 숨겨진 기술이 있는데 왜 세상의 정점에 서지 못하는가라는 것이었다.
“그럼, 최근 벌어지는 쿠데타들이 단순히 경제 파탄의 영향이 아닌 겁니까?"
“예. 현자회라는 구심점이 없어지니 야심가들이 본색을 드러낸 겁니다. 아폴로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군요.”
“현자회가 만악의 근원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요.”
가난한 국가들만 쿠데타가 벌어지고 있지 않았다. 경제 위기에 빠진 유럽도 최근 내란에 가까운 사태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오카에게 얻은 정보입니다만, 미국과 일본에서도 쿠데타를 일으키려는 세력들이 있다고 합니다. 시사라 연구에 스폰서가 되어준 조직들이 있다고 합니다.”
“오카씨한테요? 시사라가 쿠데타하고 연결될 수 있나요?”
“시사라 말고도 바이오 웨폰을 연구했다고 합니다.”
“바이오 웨폰이라면? 어떤 거지요?”
안정된 선진국에서 쿠데타는 일어나기 힘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쿠데타를 성공시키려면 국가를 뒤흔들 필요가 있었다.
피해는 작게, 공포와 혼란은 크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생물 테러는 극도로 강력한 효과를 가져올 것이 틀림없었다.
사실 조제성의 고민은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 보다는 막는게 좋을지 막지 않는게 좋을 것인지의 문제였다.
‘지나치게 급격한 변화는 앞을 읽기 어려우니, 일단 막는 쪽으로 움직이는게 좋겠지.’
조제성은 내키지 않지만, 원기의 뜻을 따라 쿠데타를 막는 쪽으로 움직이기로 마음을 굳히고 입을 열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