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4화 최선의 선택
“휴우, 저들을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로군.”
아더왕은 캐멜롯 성 앞의 난민들을 보면서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과거에 굴베이그 제국의 백성이었던 이들이었다. 원 굴베이그 국민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었다.
문제는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조제성이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엘프들의 숲을 중심으로 한 일부 지역만을 유지하면서,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조제성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신자 수의 제한이 있다면, 쓸모있는 인간에게 할애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 조제성의 생각이었다.
엘프 공장에서 생산될 엘프들도 있고, 시사라들도 있었다. 그리고 너드 연락망을 통해서 포교되는 너드, 일명 양덕들도 무시할 수 없었다.
우주 개발을 위해, 양덕들을 끌어들이는 작업은 생각보다 잘 진행되고 있었다.
반면 아스가르드의 인간들은 그다지 쓸모가 없었다.
물론 원기는 달랐다. 원기는 쓸모가 있건 없건 프레이야를 믿고 따르는 모든 이들을 져버리기를 원치 않았다.
다만, 원기는 떠나는 이들은 잡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에 대해서 책임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떠나는 사람은 떠나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홀가분함을 느끼는 쪽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애초에 원기는 바니걸 통신 청취자도 늘어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들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었다.
조제성은 쓸모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때문에, 조제성이 끌어들인 인재들이 늘어날수록 부담이 줄어든다.
그래서 조제성이 신자가 되는 이들에 대한 관리를 맡고 있었다.
바니걸 통신 청취를 막는 아티팩트를 각 국가에서 요구하면 요구하는데로 제공하는 것도 그때문이었다.
아스가르드의 인간들 가운데, 끝까지 굴베이그의 신민으로 남고자 한 사람들은 반드시 지켜야 할 소중한 백성이라면, 한번 저버리고 떠난 이들을 돌아왔다고 챙겨줘야 할 필요는 없다는게 프레이야 진영의 인식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자신들을 지켜주려고 애쓰지만 무력한 여신보다는 자신들을 가축취급하지만 강한 신들이 좋다고 생각했던 이들의 물렁한 예측은 예상대로의 결과를 가져왔다.
굴베이그령의 인간들은 자신들이 잃은 것의 무게를 잃고 난 뒤에야 깨달은 것이었다.
“저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이로군요.”
멀린은 어깨로 내려온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꼬면서 생각에 잠겼다. 과거에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기곤 했는데, 수염이 없어 허전하다보니 머리칼을 쓰다듬는 버릇으로 바뀌었다.
펜릴과 토르 진영에서 탈출해온 난민들은 골치거리였다.
그들은 엘프들의 숲으로 숨어들어가려고 들었다. 프레이야의 대신전이 있는 세스룸니르와 주변의 숲을 보호하기 위해서, 인간들의 요새인 캐멜롯이 세워진 상태였다.
멋대로 숲에 들어가고 숲을 파괴하는 난민들은 결코 달가운 존재가 아니었다.
‘몬스터를 풀어 놓을 수도 없고.’
아더가 눈살을 찌푸리자, 멀린이 쓴 웃음을 지었다.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받아들이는겁니다. 대신 노예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어차피 그들은 좀더 편한 주인을 찾아온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가혹하게 대한다면, 재빨리 떠날 겁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못할 거라고 믿고 있으니, 뻔뻔하게 진을 치고 숲을 해치는 겁니다.”
몬스터들은 소탕되었지만, 굴베이그 국민들은 숲을 건드리지 않는다. 숲은 엘프들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난민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방침에도 불구하고, 난민들이 몰려온 것은 확실히 문제가 있었다.
반 신족들은 만만하다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저들을 받아들인다면, 어렵게 결단을 내린 기존의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이기도 했다.
“어쩔 수 없군.”
아더는 결단을 내렸다. 현실적인 문제였다. 캐멜롯에 수용할 수 있는 인간 숫자는 한계가 있었다. 캐멜롯은 요새이지, 도시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세스룸니르에 수용할 수도 없었다.
인간이 모여든다면, 로키와 오딘을 비롯한 적들의 시선이 모여들게 되어 있었다.
“적들이 옵니다. 오크와 오우거로 이뤄진 혼성 부대입니다!”
“차라리 잘되었다고 해야겠군.”
아더는 결단을 내렸다.
“숲에 들어가는 자들은 죽인다. 모두 떠나라! 요새 내에는 더 이상 인간을 수용할 여유는 없다. 계속 머문다면, 그대들은 성 밖에서 적의 군세에 공격받을 것이다.”
그의 말에 난민들은 난색을 표했다. 숲속에 들어간 인간들이 묶여서 숲 밖으로 던져졌다. 엘프들의 소행으로 보였다.
“이번엔 생포하지 않는다.”
엘프 중 하나가 경고를 하듯 저격총으로 시위를 하고는 숲속으로 사라졌다.
“적은 남서쪽에서 오고있다! 남동쪽으로 도망치면 늦지 않을 것이다. 남서쪽에서 몰려오는 이들에게 항복하고 싶다면 해도 좋지만, 전투를 앞둔 살기 등등한 이들은 피하는게 좋을 것이다. 남아있다면, 너희는 그들의 적이 될 것이다!”
아더의 호령이 들리자, 난민들은 서둘러 도망치기 시작했다. 프레이야와 굴베이그를 저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의 선택을 끝까지 관철할 수도 없는 녀석들이로군.”
“그게 일반적인 겁니다.”
병사들이 자신들의 편의를 봐주고, 국가의 종복으로 자처하며, 국민들의 삶을 국가가 보장해주는 세상이었다. 만약 그들이 다수 남았다면, 프레이야는 무리를 해서라도 그들을 지켜줄 토대를 만들었을 터였다.
하지만 그들이 거부했고, 남은 자들을 위한 요새인 캐멜롯을 만든 것이었다.
“성검대! 출격 준비!”
아더는 갑옷을 두르고 양손검을 들고는 성문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엘프들 다섯명이 그 뒤를 따라 나섰다.
아더를 포함한 엑스칼리버의 능력자 6명이 바로 성검대였다.
“망치와 모루 작전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멀린은 마케도니아의 왕이자 명장인 필리포스의 망치와 모루 작전을 알고 있었다. 망치와 모루는 간단히 말하면 주공과 조공, 탱과 딜을 나눈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보통은 창과 방패로 무장한 보병대가 모루가 되어 적의 진격을 저지하고, 기동성이 뛰어난 기마대가 적의 약한 부분을 노려 공격하는 방식이었다.
숫적으로는 적지만 강력한 기마대가 주공이 되어 적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이 바로 망치와 모루 작전의 기본이었다.
성검대는 바로 모루에 해당되었다.
그리고 랜슬롯이 이끄는 기마대가 망치였다.
하지만 실질적인 공격력은 성벽 위의 총기 부대였다. 성벽 위에는 첨탑이 있어서, 첨탑에는 엘프들이 저격총과 활로 무장한 상태였다.
성벽위의 총기부대들은 성검대가 발을 묶고있는 적의 전력에 총알을 퍼붓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이 전법으로 아더와 멀린, 그리고 랜슬롯은 별다른 피해없이 적의 파상 공세를 막아왔다.
“적들이 우회합니다. 아마도 난민들을 확보하려는 모양입니다.”
아더는 그 말에 쓴 웃음을 지으며 성으로 귀환했다. 로키의 군세가 쳐들어온 것은 난민들을 확보하려는 생각이었다. 아스가르드에서 인간은 다양한 측면에서 쓸모있는 자원이었기 때문이었다.
‘노동력이나 신성력을 얻기 위한 것이었으면 좋겠군.’
그는 초조한 듯 손가락을 두들겼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적들을 친다.”
“난민들을 구할 생각이신 겁니까?”
“아니, 적들의 허를 찌를 뿐이다. 난민들은 관심없어.”
아더는 그렇게 말하고 리베로에 탑승했다. 화살과 총탄의 지원을 받는 성벽 아래 전투에서는 엑스칼리버의 이능을 사용하는 것이 유리하지만, 원거리 화기의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는 리베로가 유리했다.
멀린은 츤데레라는 일본식 표현을 떠올렸다.
‘그걸로 좋은 겁니다.’
책사들은 최대의 이익이 날 수 있는 안을 제공한다. 그들은 사람들을 그저 숫자로만 계산한다. 조제성도 멀린도 마찬가지였다.
냉정하고 가혹한, 그리고 철저한 실리 위주의 안을 제공한다.
그리고 진정한 군주는 그런 철저하고 냉혹한 계산을 깎아내릴 수 있는 자들이었다.
베스트가 아닌 베터를 택할 줄 알아야 했다.
사람들의 마음을 볼 줄 알아야 했다. 최대의 이익이 아닌 최선을 택할 줄 아는 이들이 필요했다. 얼마간의 손해는 감수할 줄 알아야 했다.
아더는 멀린에게 불가능한 선택이 가능한 주군이었다.
멀린은 아더의 선택이 최선임을 믿었다. 그리고 조제성도 아더의 선택을 존중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프레이야 여신님이라면 아더의 선택을 기뻐해 주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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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건가.”
강렬한 빛을 발하는 육체를 가진 아름다운 청년이 자신의 손을 움직이며 자신의 몸을 확인했다.
특이한 점은 그의 한쪽 눈이 의안이라는 사실이었다. 끔찍하게 생긴 특이한 의안이 눈에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곧 안대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청년의 정체는 오딘이었다.
그는 프레이야와 굴베이그의 신체, 신의 힘을 담은 육체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그와 같은 것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세계수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육체는 인간의 형태를 지녔지만, 에인페리아와는 비교도 안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세계수 그 자체를 인간형상으로 만든 것이나 다름없기에, 성역 그 자체가 육신과 함께 하고 있었다. 신성력 그 자체를 무기화 할 수 있었다.
‘그 계집의 능력은 흉내낼 수 없겠군.’
최상급의 엑스칼리버 능력이 전신을 감싸고 있었다. 오딘은 희연의 그 어둡고 파멸적인 기운을 재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아쉽게 여겼다.
단순한 이능과는 다른 힘으로 보였다.
‘어차피 그 계집은 소멸해 버렸으니, 내 적은 없다고 봐야겠지.’
그는 실체를 가지고 옥좌에 앉았다. 이동 요새인 발할라는 사라졌지만, 오딘의 도시 ‘발할라’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는 토르와 티르의 군세가 수도 발할라에 접근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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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경은 뭐지? 눈이 나빴었나?”
원기는 리디아가 쓴 안경을 보면서 물었다. 정갈한 슈트에 올려묶은 금발, 그리고 신비스런 청록색 눈동자와 안경은 절묘한 조합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이건 카메라입니다. 희연님을 위한 물건입니다.”
원기는 그 말에 머리가 아파져 오는 것을 느꼈다. 희연과 카즈키는 일본에서 벌어지는 전일본 여자검도 선수권 대회에 갔다.
카즈키가 그 대회에 참전, 우승을 노리기로 되어 있었다. 희연 역시 이 대회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참전은 불가능했다.
카즈키는 천재적 검술 실력을 갖고 있었지만, 이 대회에서 우승한 적은 없었다. 검도 대회는 피겨 스케이팅이나 체조 대회와도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심판들이 판단하기에 아름답게, 제대로 공격이 들어가지 않거나 공격에 성공한 후의 자세가 충분치 않다고 생각되면 공격 성공이라는 판정을 내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고검류나 실전 위주의 검술을 선호하는 이들은, 이 심판이라는 벽에 부딛쳐서 좌절하기 일수였다.
카즈키역시 뛰어난 천재성으로 적들을 가지고 놀 수는 있었지만, 그녀의 검도는 고지식한 검도 심판들은 인정해주지 않았다.
물론 카즈키 역시 검도 심판들이 인정할 만한 방식의 승리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자유분방한 기질과 반항아 정신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자진해서 전일본 여자검도 선수권대회에 참전하기로 결정한 것은 바로 희연의 영향이었다.
희연으로서는 참가는 꿈도 꿀 수 없는 동경의 대회였다. 희연이 역대 우승자들의 비디오를 모으고 있었다는 사실을 안 카즈키는 과거의 반항아인 자신이 통탄스러울 정도였다.
그녀가 보기엔 실력도 없는 겉멋투성이인 쪼무래기들을 희연이 역대 우승자로서 동경의 눈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만약 자신이 우승했었더라면, 희연의 비디오 컬렉션에 들어갈 수 있었을거라는 사실을 생각하니 안타깝기 짝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던 참에, 조제성의 제의가 들어왔다.
F-3 우승을 노리게 될 카즈키가 전일본 여자검도 선수권대회에 출전해서 우승을 해보는 것은 어떤가 하는 것이었다.
전일본 검도 대회에서 우승을 한 여성 검사가 포뮬러 3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마카오 경기와 포뮬러 원에 진출을 하게 된다면 화제성은 충분하고도 남을 거라는 것이 조제성의 생각이었다.
희연이 이 대회에 관전을 계획한 것은 바로 조제성이 선물한 스토킹 시스템 덕분이었다.
리디아의 안경에 장착한 카메라로 희연이 원할 때, 언제든 원기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게임 캐릭터를 이용한 시야 공유는 전시나 급박한 상황이 아니면, 프라이버시 문제 때문에 사용하지 않았다.
조제성 자신이 스토킹 능력을 이용해서 마음의 안정을 얻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통해서 희연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뭔가, 주객이 전도된 것 같은데.”
원기는 희연을 좋아했기 때문에, 희연이 자신을 지켜보는 것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었다. 하지만 지켜’만’ 보려는 것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았다.
동물을 좋아하는 학자가 동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지켜보는 것과 같았다.
“오늘 스케쥴은 어떻게 되지?”
“스폰서 기업인 스포츠 드링크 업체와의 미팅이 있습니다.”
원기가 받은 예산은 승희를 통해서 주어진 것이었다. 그런만큼, 부족하지는 않지만 여유도 별로 없었다.
리디아의 능력과 다양한 인적 자원을 사용해도 빡빡하게 되어 있었다.
‘내가 잘 해나가야겠지.’
원기는 조제성에게만 모든 것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유능하지 못하다거나 믿을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벌려져 있는 일이 많은데다가, 프레이야의 영향력이 강하기 때문이었다. 조제성의 신뢰도가 높고, 조직 장악력도 뛰어나지만 바니걸 통신은 그 무엇보다 우선되었다.
그리고 엘프들은 프레이야 세력의 중추를 맡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제성을 위해서도 프레이야는 어느정도 자립할 능력이 필요했다.
원기는 조제성의 지휘 아래, 생각없이 몸을 한계까지 굴리는게 직성에 맞았지만, 현실은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알고 의지하느냐, 모르고 의존하느냐는 큰 차이가 있었다.
프레이야는 전체적인 상황을 알고 조제성에게 맡겨야 한다. 그래야만 조직이 분란없이 조제성을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었다.
프레이야가 무능하고 무지한 상태로 모든 것을 조제성에게 의지하고 있다고 여기면, 조제성의 처신이 오히려 힘들어지고 그의 지시가 정확하게 이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사업적 안목을 키워야 하는거지. 난이도는 그리 높지 않아.’
원기는 차분하게 운전대를 잡았다. 그가 탄 자동차는 람머르기니 레넥톤이라는 차종이었다. 꽤 고가의 스포츠카였다.
사업의 기본은 인맥만들기였고, 차종도 꽤 많은 기여를 하고 있었다.
‘귀찮은 일들이 많아.’
발키리칩이 달린 말도 안되는 성능과 컨셉의 차량도 있지만, 모터 스포츠에 투자를 할만한 사업가들은 자동차 매니아가 많았기 때문에 이름이 알려진 순정 차종이 좋다는 판단에 선택된 차량이었다. 사업가로 나섰기 때문에 본체가 아닌 왜소한 외모의 캐릭터를 택했다.
‘부담스러워.’
원기는 자신이 몰고 있는게 지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주변의 차들도 조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승차감은 스포츠카답게 그리 좋지 않았다. 일반 승용차가 훨씬 조용하고 부드러웠다.
노면의 상태가 그대로 느껴지는 승차감은 원기 같은 일반인에겐 그리 달가운 것은 아니었다.
‘안전운전. 안전운전.’
그는 신차라는 점도 고려해서 얌전히 운전하기 시작했다. 완전 정속 운전에 완벽하게 신호를 지키는 운전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운전하니 주변의 운전자들이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젊은 운전자들 가운데는 추월하면서 조롱하는 듯한 손가락질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조수석에 앉아있는 리디아의 영향도 적지는 않은 듯 싶었다.
‘어떻게 길을 들여야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군.’
사람들은 신차가 가장 성능이 좋은 상태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금속 제품은 신품의 성능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었다.
길을 잘 들여야지만, 제 성능이 나오게 되어 있었다.
금속 제품의 표면, 특히 기계 부품의 표면은 사용하면서 완성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미세하게 거친 표면이 사용하는 과정에서 마모되어 매끄럽게 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마모과정은 반드시 사람들이 원하는데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총도 마찬가지였다. 총열을 잘 관리하고 사격하는 것을 반복하는 가운데 총의 성능이 스펙 이상의 성능을 발휘하게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신품은 실제로는 미완성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대로 길들여졌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 기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드워프들은 그것이 가능했고, 덕분에 스미스 형제라는 이름으로 모터 스포츠업계의 유명인이 되어 있었다.
경주용으로 사용되는 엔진과 부품들은 ‘길을 들인’ 중고품이었다.
문제는 길들이는 과정에서 실린더와 피스톤이 마모되고, 이로 인해서 완벽한 조합이 이뤄지기도 하지만, 에너지의 손실이 발생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길들인 이후의 오버홀(재조립)이 엔진의 성능을 결정지어주는 연금술이었다.
‘레이싱은 관심도 없고, 잘 모르니 참 난감하군.’
원기는 머리가 아파왔다. 그리고 신호등이 바뀌어 출발하려는 순간, 쿵하는 충격이 왔다. 뒤에서 갑자기 차량이 들이받은 탓이었다.
그리고 엔진음이 크게 들렸다. 충돌에 당황한 운전자가 브레이크 대신에 액셀을 밟은 것이었다.
연기와 요란한 소리가 난 후에 차가 멈췄다.
“괜찮으세요?”
차에서 내려서 원기가 묻자, 상대방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여성 운전자라고는 해도 람머르기니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성이 몰고 있는 차량은 코만도였다. 전투범퍼라는 것을 달고 있어서 코만도의 손상은 크지 않아보였다.
“일단 길가로 차를 옮기지요.”
소리가 요란했던데다가, 차종이 차종이니만큼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다. 핸드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야, 봤냐! 저거. 레넥톤이야! 레넥톤!”
“람머르기니도 끝장인데, 레넥톤이라니. 정말 끔찍하네.”
원기는 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시동을 걸려고 하니,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전투범퍼로 엔진룸을 밀어버린 탓이었다. 후방에 엔진이 달린 차량이라, 엔진에 데미지가 들어왔다.
원기는 리디아에게 운전대를 맡기고, 차를 밀어서 길가에 댔다. 그러자 코만도를 탄 여성도 슬금슬금 차를 옮겨서 가까이에 댔다.
“음, 이렇게 말씀드리긴 곤란한데, 혹시 보험처리 하실 건가요?”
“예?”
“보험처리 하려면, 아무래도 절차가 복잡하고 보험료 문제도 생길 것 같네요. 그쪽 차량을 보험처리 하지 않아도 된다면, 각자 알아서 자기차를 고치는게 어떨까 싶은데요.”
의외로 멀쩡한 코만도와 뒷부분이 우그러진 람머르기니를 보면서 여성 운전자는 당황했다.
“그래도 되나요? 수리비 많이 나올텐데요.”
이런 상황에도 어그로를 끄는 몰지각한 이들이 가끔 있기는 있지만, 상대방은 그런 사람은 아닌 듯 했다.
“괜찮아요. 야매로 잘 해주는 사람이 있어요. 야매로 처리할 테니 신경 안쓰셔도 됩니다. 다치신데 없으시면 일보러 가세요.”
“연락처는 어떻게 할까요?”
“신경쓸 필요 없습니다. 조심해서 가세요. 놀라셨을테니 청심환이라도 하나 드시는게 좋을지 모르겠군요. 가까운 정비소에서 정비받고 택시타고 가시는 것도 좋겠네요.”
원기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여성 운전자를 안심시켜서 돌려보냈다. 그리고 편의점에 들려서 캔커피를 두개 사서 차량으로 돌아와서 리디아에게 하나를 넘기고 앉아서, 수리용 래커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경찰보다 빠르다는 래커차가 몇대 도착했지만 차량이 람머르기니인 것을 보고는 눈치만 보다가 떠나갔다. 잘못 건드리면 피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거지 같은 차, 불편하기만 하니. 그냥 택시타고 다니는게 편할 것 같네.”
원기는 푸념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사업이 원만하게 풀리기 위해서는 재력을 과시할 필요가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잠시 후, 사람이 도착했다. 아니, 드워프가 도착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기본적으로 오만한 드워프들이지만, 계약자는 여신의 최측근이었다. 그리고 리디아는 엘프중 가장 고귀한 존재로 여신의 시중을 드는 존재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 드워프들도 정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순식간에 차량의 뒷부분을 분해한 다음, 적당히 두들겨서 모양을 만들었다. 순식간에 엔진을 제외한 차량 뒷부분이 멀쩡하게 펴졌다.
물론 도색이 벗겨진 부분들이 있어서 완전히 멀쩡해졌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리고는 엔진을 순식간에 분해하면서 차량에서 떼어 옮겼다. 그리고는 부품들을 살펴보면서 줄과 브러시를 적절히 이용해서 닦으면서 재조립해나갔다. 그리고는 스프레이로 도색이 벗겨진 부분을 처리했다.
“일단 응급처치는 다 되었습니다. 도색은 다시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부품도 몇 개는 새로 갈아야겠군요. 오늘 일과가 끝나면 처리하겠습니다.”
불과 모든 작업이 삼십분에 끝났다. 원기는 구경꾼들이 부담스러워서 재빨리 약속장소를 향해 출발했다.
“야, 저 키작은 덩치, 잭스 스미스 아니냐?”
“그런 거 같지? 신의 손 잭스 맞지?”
“F-3 팀에서 일하는거 아니었어? 왜 한국에 있는거지?”
사람들은 드워프인 잭스 스미스가 떠난 후에도 뒤에 남아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은 이들은 물론이고 동영상을 찍은 이들도 많았다.
그리고 람머르기니 야매 수리라는 이름의 제목으로 동영상이 올라와서 많은 수의 히트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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