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5화 임시
“감사합니다.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딱히 너희를 구하러 온 것은 아니다. 그건 그렇고 다친 사람들은 없나?”
금발 미소녀의 모습을 한 아더는 말그대로 새침떼기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그다지 자각은 없었다. 난민들을 공격하려던 오크들과 오우거들은 아더의 리베로와 격돌한 후 줄행랑을 쳤다.
아더의 리베로는 마력로를 이용한 고출력 리베로였기 때문에 엑스칼리버 능력을 제외하고도 상당한 위협이 되는 기체였다. 이동하면서 벌이는 전투에서는 오크 신관들이 진영을 짜거나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전투가 수월했다고도 할 수 있었다.
엑스칼리버와 에인페리아, 그리고 마력로를 장착한 리베로의 조합은 현시점의 프레이야 진영에서는 가장 강력한 전력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대규모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난민들의 피해가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급히 도망치다보니 넘어지고 굴러서 경상자들이 많았고, 짐을 잃거나 미아가 된 아이들도 있었다. 난민들의 짐은 대부분 식량이라서, 되찾기는 쉽지 않았다.
“이대로는 다른 지역에 갈 수 없습니다. 식량이 부족합니다. 오크들에게 잡히면 저희는 식량으로 전락합니다. 걸을 수 없는 사람들만이라도 좀 받아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난민의 대표자가 말하자, 아더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성향은 무력을 충실히 갖춘 유비와 비슷했다. 인재를 얻을 수 있는 인품은 손해를 보게 만들 때도 있지만, 올바른 인재를 얻어서 진정한 승리를 얻을 수 있게 만들기도 했다.
“결국, 다 데리고 오셨군요.”
“죽으라고 내보낼 수는 없으니까. 차라리 우리 손으로 목숨을 끊어달라고 애원하는 이들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뭐,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조승상에게 일단 보고는 해야겠군요. 식량 보급 문제도 있고, 군비도 확대해야 할 테니 말이지요.”
“음.”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신님이 계신 자리에서 보고하면 좀 나을 겁니다.”
멀린이 위로하듯이 말했다. 멀린은 아더를 섬기지만, 조제성과 동족이었다. 그런만큼 조제성의 판단을 신뢰하는 쪽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조승상을 따라잡아야 하는데.'
멀린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기본 능력은 조제성에 비해 떨어지지 않지만, 지식으로 대표되는 정보량은 압도적으로 부족했다. 인간이 잉여가 되어버린 현대의 인본주의 사회의 모순은 멀린으로서는 아직 쉽게 판단하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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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을 좀 넘는 난민들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1만을 좀 넘는다면 정확히 몇 명이지요? 아이들 포함해서 말입니다.”
“아이들을 포함하면 일만칠천사백삼십이명입니다.”
조제성은 평소와 다를바없는 냉정한 표정으로 아더와 멀린을 지켜보았다. 그는 생각에 잠긴 듯 가볍게 손가락으로 뺨을 두들겼다. 그리고 갑자기 원기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요? 도와주고 싶군요.”
“괜찮으신 겁니까?”
“괜찮다니요? 전 가능하면 도와주고 싶습니다. 조승상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고 싶군요.”
조제성은 원기가 오는 사람 막지않는 성격이지만, 떠나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조제성이 생각에 잠기게 만든 이유였다. 조제성에게 유혜서가 세상의 전부이긴 하지만, 그 세상을 담을 그릇이 프레이야 여신이었다. 그런 면에서 프레이야 역시 유혜서에 버금갈만큼 중요한 존재였다.
‘떠나는 이들에게 상처받지만, 돌아오는 이들에게 딱히 감정을 갖고 계신 건 아닌건가. 확실히 나같은 속물과는 다르군.’
“그렇군요. 여신님만 괜찮으시다면, 저는 찬성입니다. 굴베이그 출신 난민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로 하지요.”
조제성은 딴에는 친절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물론 다른 이들에게는 왠지 무서워 보이는 미소이기도 했다.
조제성은 굴베이그 제국을 떠나는 자들에 대해서 꽤 적대적인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흔쾌히 받아들이리라고는 장수한조차 예상을 못했다. 그는 떠나는 인간들을 극히 저평가했기 때문이었다.
“떠나는 난민들보다는 지구의 인재를 받아들이는 쪽이 낫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장수한의 질문에 원기도 고개를 끄덕였다. 조제성은 변덕스러운 인물이 아니라, 철저한 원칙으로 일관하는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돌아온 난민들은 지구의 인간들보다 낫지요. 떠나는 인간들과 돌아온 인간들을 결코 같을 수 없습니다.”
“돌아온 난민들이요?”
“물건의 가치는 손에 넣으면 작아지고, 잃으면 커진다고 합니다. 손에 넣기 전에는 만원의 가치가 있다고 느끼던게, 손에 넣은 다음엔 왠지 천원만도 못하게 느껴지고, 잃어버린 다음에는 만원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지요.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는 말도 있지요. 아스가르드의 인간들은 대부분 자유도 평등도 평화도 모르는 미개인들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자유, 평등, 평화의 가치를 가르치려면 방법은 하나입니다. ‘줬다 뺐는’ 겁니다.”
조제성의 말에 장수한은 손바닥을 쳤다. 노예나 다름없던 아스가르드의 인간들에게 원기는 자유와 평등, 평화를 안겨 주었다.
하지만 이들은 자유, 평등, 평화 등을 원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그들에게 거저 주어진 자유와 평등, 평화 등은 그리 가치있는 것이 아니었다.
거저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원한 적이 없으니, 그 가치를 알 수가 없었다.
귀족들은 평등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자유와 번영, 문화, 평화 등의 가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설사 멸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굴베이그와 함께 하기를 원한 것이었다.
“막상 잃고 보니, 그 가치를 깨닫게 된 겁니다. 그래서 돌아온 것입니다. 그런 이들이라면 받아들일 가치가 있습니다.”
자유를 꿈꿔본 적이 없는 노예에게 자유를 주면 온전히 감사할 줄 모른다. 하지만 자유를 줬다가 뺐으면, 자유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희생을 할 각오가 생겨난다. 여기서 조제성이 말하는 가치가 생겨난다. 프레이야가 만드는 세상의 가치를 알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희생을 지불할 수 있는 인간은 소중한 자원이었다. 현대인들보다 더 깊은 충성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브랜드 백이 백만원이라고 합시다. 그걸 듣고 ‘비싸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안삽니다. ‘싸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삽니다.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손에 넣을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프레이야에게 감사할 줄 모르던 굴베이그의 인간들은 말 그대로 자원만 축내는 잉여였다. 하지만 돌아온 난민들은 프레이야의 치하에서 누린 것들의 가치를 작게든 크게든 깨달은 자들이었다.
자신이 받았던 것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간절히 원하는 자들은 조제성의 기준에선 쓸모있는 자들이었다.
특히 승산이 없다고 알려진 지금 시점에서 돌아온 이들은 소중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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