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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387화 (387/497)

387화 서킷의 황제

사사키는 일본인이었다. 그것도 꽤 평범한 일본인이었다. 그녀는 전형적인 일본인답게 바퀴벌레에 익숙한 편이었다.

목재로 만들어진데다가 통기성이 좋은 일본 주택은 벌레가 드나들기도 쉬운 편이었고, 꽤 큰 바퀴벌레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일본의 이 큼지막한 바퀴벌레들은 걸어다닐 때, 발자국 소리가 난다. 방에서 불을 끄고 잠을 청할 때, 뭔가를 가볍게 스치는 소리가 나면 바퀴벌레인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바퀴벌레의 발소리만이 아니라 발자국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본 바퀴벌레가 환영이 아니라는 사실을 곧 확인할 수 있었다.

전형적인 바퀴벌레의 발자국이 달 표면에 남아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하지만, 그녀가 아는 바퀴벌레 특유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말도 안되는 일인데. 바퀴벌레형 로봇인걸까?’

물론 그녀도 스스로를 믿을 수 없어서, 그렇게 반문했다.

‘한국의 로봇? 그럼 한글이 써있는 것도 이해는 가는데. 그런데 바퀴에다가 왜 겐고로무시의 이름을 써놓은 거지? 아니 겐고로무시가 아닐려나?’

겐고로무시는 일본어로 물방개를 의미했다. 그녀는 주의깊게 살피자, 땅바닥에 바퀴벌레의 발자국이 의외로 많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른 발자국들과 달리 곤충류의 발자국은 독특하면서도 희미해서 뒷처리를 깨끗이 하는데 소홀한 면이 있었다.

“저 언덕 너머에 둥지가 있는걸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피식 웃었다. 수많은 바퀴벌레가 쏟아져 나온다는 상상은 오싹하면서도 어처구니 없는 일이기도 했다.

‘이 바퀴자국을 보면, 바퀴벌레는 아니고 로봇인 것 같은데. 저쪽에도 뭔가 기지 같은게 있을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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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하군. 완전히 눈치챈 것 같지는 않지만, 어느정도는 감을 잡은 것 같아.”

장수한이 사사키가 찍힌 영상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바퀴벌레족들은 달기지 건설에 있어서 대단히 유용했다.

달은 중력가속도가 지구보다 느렸다. 마치 물속을 떠서 다니듯이 둥실둥실 움직이는 것은 그때문이었다. 인간의 걸음걸이는 중력에 대한 저항이면서, 동시에 중력을 빌려서 움직이는 것이기도 했다.

따라서 중력가속도가 느린 달에서는 빠르게 움직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무게를 여섯배로 한다고 해서, 중력 가속도가 여섯배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게 문제였다.

반면 바퀴벌레의 기는 방식은 인간과 달리 수평적인 움직임이 강하게 가미되어 있어서, 달에서는 정말로 곤충스러운 움직임이 가능했다.

자동차보다도 빨리 기어다닐 수 있었다. 스케이트보드 같은 것을 배와 가슴에 장착하고 지상을 날아다니듯이 기어다녔다.

오카가 뇽족들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고안한 것 중 하나가 목걸이 모터였다. 뇽들의 전기 출력으로 목에 붙은 수중 모터를 조종하도록 고안한 것이었다. 오카는 이것을 ‘일종의 오리발 같은 것’이라고 말했지만, 실제로 뇽들은 이 목걸이 수중모터로 무시무시한 속도로 수중을 누빌 수 있었다. 팔다리를 저어서 헤엄치는 것보다는 스크류를 이용해서 전진하는게 훨씬 빠른게 사실이었다. 그들은 네발에 달린 물갈퀴를 이용해서 마치 비행기나 잠수함이 방향타 혹은 플랩으로 사용하듯이 선회나 급정지에 사용하는 쪽을 선호하게 되었다.

곤충 일족에게 지급된 것은 배와 가슴 부위에 바퀴가 달린 일종의 복대였다. 그리고 이 물건은 엘프들의 자전거를 능가하는 아이템이었다.

이족보행과 육족보행을 선택 활용가능한 ‘달방개족’들이 빠르게 건물을 짓고 보수하게 한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건 그렇고, 내가 생각하기에도 신의 한수로군.’

장수한은 자화자찬했다. 바퀴들의 등에 ‘방개’라고 하얀 페인트로 도색을 해놓은 결과 바퀴들을 봐도 바퀴라는 생각이 잘 안들었다.

한글로 쓰여진 방개라는 글자가 눈에 배겨서 바퀴라는 느낌이 잘 안들었다. 희연은 방개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바퀴만큼 와닿는 느낌이 없어서인지, 조금은 나아진 듯했다.

물론 저항은 없지 않았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킨다면서 선명한 빨간 페인트로 등에 ‘바퀴’라는 이름을 박아넣은 놈들이 없진 않았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자신들을 인정하지 않는 헬 여신 따위 필요없다. 아껴주는 프레이야 여신님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장수한의 한마디에 끝났다. ‘프레이야 여신님이 제일 사랑하는게 헬 여신이라는거 알고들 있니?’

실제로는 헬 여신의 인기도 녹녹치 않았다. 절대적인 강함이자 평등한 죽음의 이미지였다. 살에 와닿는 공포는 아니지만, 절대 피할 수 없을 듯한 두려움을 가져오는 헬 여신의 이미지는 꽤 강한 지지를 얻고 있었다.

결국 헬 여신에 저항하려던 반대파들은 빨간 페인트를 지우고 하얀 페인트로 방개라는 글자를 새겨 넣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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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는 레이싱 팀 인수를 추진하면서 골치를 썩히고 있었다. F-1의 인기는 쉽게 식지 않는다고 하지만, 모터 스포츠 전반이 하향세인 것은 분명했다.

덕분에 모터스포츠 팀을 인수하는 것은 그렇게까지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처리해야 할 서류 작업이 너무나 많았다. 만나봐야 할 사람도 많았고, 한마디 한마디에 걸린 무게가 너무 커서 조심해야 했다.

‘골치가 아프군. 이걸 다 어떻게 감당하라는건지.’

조제성은 자동차 사업을 원기가 조제성의 도움 없이 혼자서 결정내리고 운영하기를 원했다. 사실 조제성도 업무에 치이고 있는게 사실이었다. 장수한은 호철과 우주 진출쪽에 목을 매달고 있었다.

서류와 회의, 그리고 사업적 인맥 관리 등, 쫓아가기도 힘든 상황에서 신중하게 머리까지 써야하니 정말 머리카락이 빠질 지경이었다.

조제성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원기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존재라면 사실 희연의 존재였다.

하지만 희연은 검도 여자 선수권 대회에 참전한 카즈키를 따라서 일본에 머무르고 있었다. 연하까지 덤으로 쫓아가버린 상태였다.

희연은 언제든지 스토킹 능력으로 원기를 지켜보고 있지만, 원기 쪽에서는 그런 스토킹 능력이 없었으므로 허전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하필이면, 리디아만 남아있으니.’

원기는 사실 리디아가 어려웠다. 첫단추가 잘못 꿰인 케이스라고 할 수 있었다.

처음 여신의 힘을 얻었을 때, 원기는 정신적으로 안정된 상태가 아니었다. 일생 장애를 입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런 저런 망상만 키워왔다. 대리만족을 추구하는 소설이나 만화등을 보다 보니까, 원기 자신의 성향과는 다른 욕망이랄까, 망상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리디아와 만나게 된 것이었다.

리디아로서도 꼬인 것이라면, 리디아는 타종족을 경계하고 엘프족을 수호하기 위한 지도자의 재목으로 자라났다. 그녀는 인간을 경계하도록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그녀가 원기와 처음 만났을 때, 원기를 단순한 인간 계약자로 알았다.

조금만 지내다보면 쉽게 발각날 위장이었지만,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는 알아보기 힘든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다보니, 리디아의 뿌리깊은 거부감이 드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원기로서는 과거에 자신이 했던 짓이 부끄러우면서 부담스러웠고, 리디아로서도 자신의 처신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묘한 거리감이 있었다. 서로가 편할 수는 없었다. 결정적으로 리디아에게 있어서 프레이야는 결코 편하게 여겨서는 안될 지고의 존재라는 것이 자리잡고 있었다.

총애받는 존재가 되고 싶기는 하지만, 감히 가까이 할 수 없는 모순을 안고 있는 리디아의 문제도 녹녹한 것은 아니었다.

“일류 팀에 드워프들을 집어넣는 것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요?”

“스미스 형제 둘에게 접촉이 있었습니다. 폐차장팀은 아직 전자장비를 활용하기 힘듭니다.”

드워프들은 아날로그와 기계에 강한 편이었다. 하지만 전자장비와 프로그래밍에는 약한 모습을 보였다.

전자 기판을 꾸미는 것이라든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쉽게 익숙해지지 못했다. 하지만 특정 작용이 있는 기판이나 전자 부품을 사용해서 기계를 꾸미는 것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쉽진 않겠군요.”

드워프들의 힘이 없이는 레이싱 게임에서 두각을 드러내기란 쉽지 않았다.

“최하위권 팀은 유지할 수 있을거라고 봅니다.”

“우선은 그걸로 만족하기로 하지요. 그 둘은 어느 팀에 보내는게 좋을까요.”

리디아의 말에 원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F-1의 최상위 팀은 테라니, 저그불, 프로터스가 꼽혔다.

“일단 챔피언이자 서킷의 황제로 불리는 요한 벙커가 있는 테라니와 지노 스톰이 있는 저그불이 유력합니다만, 저그불에서 이적한 길리엄 패트릭이 있는 프로터스도 유력하다고 하겠군요.”

“두 사람을 나눠서 들여보내는 것도 가능하겠군요.”

스미스 형제의 경우에는 상위 팀들이 초청을 못해서 안달이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들은 차량을 재조립하고 차를 최상의 상태로 정비하는 것만이 아니라, 핏인시의 대처에도 뛰어난 것으로 이름 높았다.

엔진음만으로 엔진 상태만이 아나라, 프레임과 서스펜션의 상태까지 파악해 내는 재능이 있었다.

“현 상태에서 그들을 들이고 싶어하는 팀은 저그불 레이싱과 프로터스 GP팀입니다.”

지노 스톰은 그 예명인 이름처럼 폭풍 같은 스피드를 자랑하고 있었다. 폴포지션이나 패스티스트 랩을 독점하듯 하고 있었다.

하지만 경기를 운영하는데 있어서, 황제 요한 벙커에게 약한 모습을 보였다. 황제로 불리우는 요한 벙커는 한번 앞으로 나서면 상대를 완벽하게 블로킹하는 철두철미한 레이스를 벌렸다.

그의 완벽한 블로킹을 팬들은 요한 벙커의 이름을 따서 벙커링이라 불렀다. 지노 스톰은 폴포지션을 따고도 벙커링에 막혀서 우승을 놓치지 일수였다.

최속의 사나이 지노 스톰, 하지만 최강은 못되었다는게 일반적인 평가였다. 무리하게 톱을 유지하려다보니 기계 트러블로 완주를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프로터스는 저그불에서 한때 최강의 챔피언으로 뽑히는 길리엄 패트릭을 스카우트했지만, 자동차의 성능을 충분히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였다.

‘노하우를 뽑아내는 것도 좋지만, 내년에는 우리쪽 레이서가 좋은 성적을 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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