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8화 종족의 벽
모터 스포츠 레이서들은 일반인들과는 꽤 달랐다.
그들은 경쟁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었다. 진짜 목숨을 거는 사람들인 것이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은 그것도 한계까지 끌어올려서 운전하는 것은 목숨을 거는 행위였다.
지기 싫어하는 자들만이, 한계까지 다가갈 수 있었다.
모터 스포츠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치킨 레이스와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한계를 넘기면 사고로 다치거나 죽는다.
벼랑앞에서 브레이크 싸움을 하는 것이나, 코너 앞에서 브레이크 싸움을 하는 것이나 큰 차이가 없다.
스트리트 레이싱부터 시작해서 올라온 이들도 있고, 카트에서부터 올라온 이들도 있지만 공통점은 목숨을 걸고 싸워 올라온 이들이었다.
당연히 성격파탄자들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지는 걸 못견디는 이들만이 한계까지 목숨을 걸 수 있었다.
스스로를 하루살이로 여기고 경쟁에서 승리하는 쾌감만을 쫓는 이들이 많았다. 낮에는 레이싱으로 아드레날린을 폭주시키고, 밤에는 알코올로 달아오른 신경을 강제로 쿨다운 시키는 생활을 반복하는 것이 레이서들의 일반적인 생활이었다.
물론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는 최상위 레이서들은 좀 달랐다.
그들은 도산검림과도 같은 광기의 단계를 넘어서서 미래를 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나 그만 두겠어! 이런 쓰레기로 어떻게 경주에 나가란 말이야!”
하위 팀들은 경제적 이유만으로 레이싱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레이서를 확보하지 못해서 출전을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F-1에 출전하기만 바라는 선수들도 있지만, 그들로는 스폰서를 끌어올 수 없다. 스폰서를 끌어올 수 있는 선수는 머신의 영향을 받았다.
실력도 없으면서, 머신 탓만 하는 드라이버들을 달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현재 드라이버 후보인 카즈키는 일본에서 지명도를 쌓고 있는 중이었다. 다음 해에나 출전이 가능할 터였다.
“제가 운전할까요?”
리디아의 말에 원기는 어깨에 힘을 뺐다. 교통사고에 대한 트라우마가 강한 탓에 원기는 운전할 때 필요이상으로 긴장하는 습관이 있었다.
람머르기니를 거북이처럼 모는 탓에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도 했다. 스포츠 카들이 원기의 저속 운전을 비웃기 위해서 옆에 붙고는 했다.
물론 그들은 정면을 주시하며 바짝 긴장하며 핸들에 달라붙은 원기의 모습 보다는 마치 하늘에서 막 내려온 듯한 천사 같은 미모의 엘프, 리디아를 보면서 패배감을 느끼고 아무말 없이 자리를 떴다.
거북이 운전을 하더라도 저런 미인을 옆에 태울 수 있다면, 람머르기니가 본전을 뽑고 남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조롱할 기분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 좀 부탁할께요.”
원기는 조수석에 앉아서 타블렛을 꺼냈다. 검토해야 할 서류들이 많았다. 원기는 타블렛에 집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았다. 타블렛에 너무 집중이 잘된 것이었다. 자동차 안에 있으면서 이렇게까지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역시 엘프라서 그런가, 운전을 참 조용하게 잘하네.’
잠을 자도 아주 편안하게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람머르기니가 슈퍼카라지만, 승차감까지 슈퍼카는 아니었다. 무식한 엔진과 굉음을 내뿜으며 주위를 제압하는 몬스터 머신일 뿐이었다.
힘과 빠름을 자랑하며 본능을 충족시키는 자동차지, 승차감을 과시하는 차는 아니었다. 그런데 리디아가 운전하니 시끄럽기까지 한 엔진 소리도 조용하게 울리고 있었다.
‘얼마나 남았지? 네비게이션을 좀 볼까?’
“으악!”
고개를 들어올린 원기는 순간 비명을 질렀다. 창밖의 풍경이 너무 놀라웠기 때문이었다. 미친듯이 바깥 풍경이 요동치고 있었다. 반면 차안은 별다른 변화가 느껴지지 않았다.
“무슨 일이시지요?”
리디아의 질문에 원기는 고개를 저었다.
“깜빡 졸았던 것 같군요. 별일 아닙니다.”
원기가 경악을 금치 못하는 사이에, 리디아가 모는 람머르기니가 믿을 수 없을만큼 부드럽게 그리고 신속하게 뉘르부르크링에 있는 GP슈트레케 서킷에 도착했다.
그리고 원기는 엘프들이야말로 타고난 드라이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은 시속 40키로 이상의 속력에 적응할 수 없었다.
애초에 고속이동 전투에 어울리지 않는 생명체인 것이다.
하지만 엘프들은 달랐다. 그들은 나무 위를 무시무시한 속도로 이동하면서 전투를 벌이는 존재들이었다.
인간과는 비교가 안되는 균형감각과 속도감각이 그들에게는 존재했다.
순발력과 순간 판단력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나무 가지를 밟고 나뭇가지 사이를 도약하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신발을 신고도 원숭이들보다 더 빠르고 안정적으로 나무 사이를 오가는 존재들이었다.
‘자전거를 그렇게 잘타는데, 오토바이나 자동차를 못탈 이유가 없지.’
아스가르드에서 산악자전거를 몰고 시속 백키로 이상으로 험지를 누비던 엘프 레인저들을 생각하니, 한숨이 나올 뿐이었다.
엘프들은 자연친화적이고 기계와는 인연이 없다는 고정관념이 부른 실수였다. 이런 고정관념에 가장 얽매인 것이 바로 장수한이었고, 조제성은 소소한 것에까지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그나마 자전거를 보급한 것은 ‘친환경적’이라는 자전거의 이미지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
GP 슈트레케 서킷에는 훈련을 하는 레이서 팀들을 위한 부스가 있었다. 원기는 시끄러운 후보 드라이버들 대신에 리디아를 태웠다.
눈에 띄게 아름다운 미녀가 드라이버로 등장하자, 사람들은 환호성을 올리며 응원했다. 그들은 실제 드라이빙이 아닌 화보 촬영 정도로 여겼다. 그리고 그녀가 첫바퀴를 돌자, 감탄하며 환성을 질렀다.
그녀는 초보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멋지고 조심스럽게 한바퀴를 돌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두번째, 세번째 바퀴를 돌수록 사람들의 환호가 잦아들고 경악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엘프인 리디아에게 F-1의 세계는 제법 빠른 세계이긴 했지만, 충분히 감당할 만한 빠르기의 세상이었다.
엘프의 말도 안되는 균형 감각은 자동차의 하중을 정확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녀는 정확한 하중이동으로 그립력을 끌어냈다.
완벽한 자세 제어와 타이밍을 통해서 코너를 공략해 나갔다.
“지노 자식인가? 여전히 빠르군그래.”
훈련을 위해서 뉘른부르크링을 찾은 요한 벙커는 트랙위를 달리는 차량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저그불 머신이 언제 저런 머신으로 바뀌었지?”
운전 테크닉은 일류였지만, 머신의 상태는 그리 좋아보이지 않았다. 우선 엔진 파워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속도는 연습주행치고는 놀라운 수준이었다.
“글쎄요. 좀 알아보지요. 저그불팀은 분명 일본쪽에서 훈련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말이지요.”
스텝은 여기저기 연락을 해봤다.
“저, 지금 달리는 차는 정식 드라이버가 아니라는군요. 정식 등록된 드라이버가 아닌 시험주행이라고 합니다.”
“뭐라고?”
요한 벙커는 강한 위기감을 느꼈다. 테라니는 지금 전성기를 구가하는 팀이고, 엔진 성능은 훌륭했지만 지금 달리는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이질감은 그의 등골이 오싹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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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을 집행합니다.”
임종전 기도와 안수를 끝낸 목사가 물러난 후, 사형수 알레인이 전기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집행인이 스위치를 누르자, 사형수는 전기 충격에 몸을 떨다가 죽음을 맞이했다.
버지니아주에서는 5년만의 전기의자 사형이 집행된 것이었고, 도합 20명의 사형수가 그날 동시에 처형되었다.
“성공적입니다. 예상대로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처형에 사용된 전기는 바로 시사라에게서 뽑아낸 것이었다. 적당히 성장한 시사라를 포획한 후, 사형용 전기의자와 전선을 연결했다. 그리고 시사라의 전기를 이용해서 사형수를 처형한 것이었다.
이것은 상당히 특수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시사라는 전기에 대한 지배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 지배력은 몸에서 방출된 후 곧 사라지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근거리에서 직결된 경우에는 지배력이 작용해서, 전기로 죽인 상대의 정신력을 빨아들이는 것이 가능했다.
전기로 직결된 것을 ‘접촉’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었다.
전기의자에 의한 처형은 미국의 오랜 전통적인 처형 방식이기도 했지만, 잔인하다는 이유로 텍사스주를 포함한 많은 주에서 사라진 처형 방식이기도 했다. 하지만 버지니아 주에서는 아직도 남아있는 처형 방식이기도 했다.
약물주입 방식의 문제점을 사형수들에게 부각시킨다음, 전기의자처형을 선택하도록 유도해서 사형수들을 처리한 것이었다.
그리고 각 의자밑에는 4마리의 시사라가 연결되어 있었고, 5명씩을 전기로 처형하고 몸이 변화되는 순간에 목에 장치된 폭약이 폭발해서 목이 절단되게 만든 시스템이었다.
처형과 동시에 도축하는 더블 익스큐션이라고 부르는 방식이었다.
“성공적으로 기관을 얻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네 기의 오우거가 생산가능해졌습니다.”
코드네임 오우거, 미국에서 새로 개발한 헤비 리베로의 명칭이었다. 시사라 엔진이 필요한 고출력, 중장갑 리베로였다.
정령과 시사라 엔진이 필요하다는 약점을 제외하면, 최강의 기동병기라고도 할 수 있었다.
“EI의 안정된 수급이 문제입니다. BI로는 제 성능을 발휘할 수 없다는 평가입니다.”
EI는 미국에서 말하는 정령이었다. E는 엘프를 의미했다. 실제로 정령화되는 종족은 프레이야에게도 엘프와 다크 엘프 외에는 없었다.
BI는 블러디 크리스탈을 이용해서 만들어진 인간의 영혼으로 현자회를 통해서 공급되기는 하지만, 성능은 엘프에 비하면 현저히 떨어졌다.
AI는 단순 인공지능으로 걸어다니는 것만으로도 용한 수준이었다.
“제대로 계약을 맺는 이들이 없다는게 문제로군. 상부에 건의해보게. 계약 조건을 좀 바꿔달라고 말이지.”
리베로 리그는 각국이 정령을 수급하기 위한 루트이기도 했다. 정령 계약에 성공하면 리그에서 탈퇴시키고 자국의 정령으로 활용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미국측의 정령 계약 조건은 프레이야가 지구를 떠날 때까지 미국측과 계약한 정령은 미국측의 제어를 따른다는 것이었다. 프레이야측과 일체의 연락을 끊고 기밀을 엄수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따라서 정령들이 계약을 기피했다.
그런 와중에 영국측이 계약의 내용을 변경했다.
영국은 과감하게 프레이야 제국과의 동맹을 제시했다. 그리고 정령들의 경우 다른 정령과의 교체를 조건으로 프레이야 제국에 귀환하는 것을 허가했다.
또한 프레이야 제국의 요청이 있을 경우, 리베로 부대의 파병과 원조까지 약속했다. 이 조건이 제시되자, 다수의 정령들이 영국인들과 계약에 나섰고, 영국은 리베로 부대의 확장에 나섰다.
그리고 영국의 뒤를 이어, 다른 국가들도 프레이야 제국과의 교류를 제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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