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잊혀진 신의 세계-389화 (389/497)

389화 뛰는 자 위의 나는 자.

영국의 판단이 빠른 것은 왕실의 질병인 혈우병 때문이었다.

빅토리아 여왕이 보인자로 알려진 이 혈우병은 영국왕실과 정략혼을 맺은 많은 왕가에 퍼지기도 했다.

러시아 왕가는 이 혈우병 때문에 멸망했다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황태자 알렉세이가 혈우병에 걸려서 이것을 고치기 위해서 괴승 라스푸친을 초빙하게 되고 그로 인해 러시아가 멸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왕가를 비롯한 귀족 가문에서는 혈우병에 대해서 숨기려고 하고 있지만, 여전히 골치아픈 문제이기도 했다.

이 문제 때문에 리디아의 도움을 받은 이들이 있었다. 유전자 자체로 치료가 되지는 않지만, 성역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영국 왕족들 가운데 신자를 비롯해 우호적인 이들이 생겨났고 이들은 프레이야의 성향에 대해 증언했다.

영국에 대해서 먼저 적대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제가 아는 프레이야 여신님은 결코 세계 정복 따위는 원치 않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는 사람을 막지 않지만 부담스러워 하십니다. 오히려 떠나는 사람을 홀가분하게 여깁니다.”

그들은 바니걸 통신을 통해서 프레이야의 진심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원기는 자신을 의지하는 사람을 지켜주고 싶어한다. 하지만 사람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게 어려워진다.

사람들이 자신을 의지해주는 것을 기뻐하면서도, 부담에 짓눌리는 것이었다.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고 실망하는 굴베이그의 인간들에게 낙심하면서도, 프레이야의 영역을 떠나서 다른 신들에게 자기 살 길을 찾아 떠나는 이들에겐 홀가분함을 느꼈다.

물론 자신이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의식을 느낀 것은 사실이었다.

그들이 돌아오는 것에 대해, 반갑게 여긴 것도 그 때문이었다.

프레이야가 신자를 늘이는 것을 경계하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이를 토대로 영국은 새로운 전략을 수립했다.

바로 프레이야의 기술력을 흡수하는 것이었다.

영국은 꽤 특수한 국가였다.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과는 국력에서 큰 차이가 나게 되었지만, 세계에 대한 영향력은 여전히 큰 국가였다.

유럽과도 거리를 두고 있었다.

영국은 세계화와 동시에 테러의 시대에 적절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었다.

SAS의 비중이 커진 것도 그때문이었다.

그리고 대테러 시대의 새로운 무기로 리베로를 보았다.

그들은 정령과의 계약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 여성 파일럿들을 선택했다. 정령 중 강력한 정령들은 대부분 여성이었다. 남성형 정령은 다크엘프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다크엘프들도 인간을 초월하기는 하지만, 그 능력으로 따진다면 인간과 엘프의 중간, 간단히 표현하자면 하프엘프 정도의 능력이었다.

이성의 정령과 계약을 맺는 것은 성공율이 높지 않았다.

엘프들은 연애에 대한 욕망이나 감정이 거의 없기 때문에, 전투를 위한 동료로서 계약자를 받아들이는 경향이 컸다.

반면 리베로 조종자들은 정령이라고 하지만, 이성으로서 인식하고 의식하게 되는 면이 적지 않았다.

이 때문에 계약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흑심을 가진 계약자와 계약하고 싶어하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이를 고려해서 이성애자인 여성 파일럿으로 특수부대를 만들고, 정령과의 계약에 도전했다. 프레이야 제국과의 동맹으로 인해서, 정령들과의 계약은 쉽게 이뤄졌다.

문제는 시사라 엔진의 확보였다. 전기 의자 처형은 교류의 위험성을 알리려는 에디슨 연구소의 로비에 의해 도입된 것으로, 미국 외에는 채용하지 않고 있었다.

“혹시 이것이 필요하지 않으신지요.”

조제성은 그런 영국에 거래의 손길을 내밀었다. 바로 세계수의 수액이었다.

“사용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신성력을 발휘하는 마법회로에 연결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환자 등에게 먹일 수도 있습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시사라와 같은 몬스터의 먹이로 주는 겁니다.”

“사람에게서 뽑아낸 것은 아니겠지요?”

“그런 야만스러운 짓을 벌일 리가 없지요. 이건 세계수의 수액입니다. 프레이야 여신님의 힘이 녹아있는 것이지요. 생명력의 정화 같은 것입니다.”

“그렇겠군요.”

영국은 시사라 먹이를 도입받아서 시사라 엔진의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특수부대용 리베로 ‘센츄리온’을 만들었다.

20톤에 달하는 중량을 가진 미들 리베로였다. 40톤에 달하는 중량의 헤비 리베로 치프틴의 개발도 병행되고 있었다.

20톤급 경전차들은 RPG-7등의 대전차 로켓에 취약하다는 약점이 있었다. 공정전차가 개발되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리베로의 경우에는 정령의 반사신경과 손에 든 방패를 이용해서 RPG류의 로켓에 대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시사라의 등장은 세상을 바꾸고 있었고, 그 혜택은 프레이야 진영에 크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세계수의 수액 외에도 현자회에서 생산하는 혈정 역시 시사라의 먹이로서 사용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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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입니다! 큰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헤이트테러가 원인인 것으로 보입니다. 각지의 도로가 모두 봉쇄되었습니다. 소방차량이 접근할 수 없습니다.”

헤이트테러, 기존의 이념테러나 종교테러를 넘어선 새로운 테러의 양상이었다. 기존의 테러 역시 증오를 깔고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대의를 앞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헤이트테러에는 대의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부익부빈인빈, 자본주의에서 이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고, 경제난이 계속되었다. 사람들의 일자리는 줄어갔고, 이는 사람들의 분노를 낳았다.

외국인 혐오로 돌파구를 찾는 이들은 그들 가운데에서도 최악이라고 할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벌어진 최악의 테러가 헤이트 테러리스트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악몽과 같은 시대가 탄생한 것이었다.

외국인들이 거주하는 빈민 아파트에 불을 지른 것이다. 그리고 비상탈출구와 출입구를 중심으로 불을 질러 퇴로를 막았다.

그리고 고의적인 교통사고를 일으켜서 소방차와 엠뷸런스, 경찰차의 접근을 차단시켰다. 그 결과 막대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범죄자들은 외국인 혐오 극우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결국 체포되었지만, 막대한 인명피해를 자랑스럽게 떠들었다. 그리고 그것에 동조하는 미친놈들이 어느샌가 꽤 많아져 있었다.

일본에서도 재특회에서 파생된 극우주의자들이 테러를 기도하다가 잡혔고, 목재 건물 특성상, 겨울에 화재가 많이 나는 관계로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외국인 혐오 테러와 그에 반감을 갖는 외국인의 테러로 인해서 세상은 꽤 흉흉해지고 있었다.

“큰일이야. 이걸 어떻게 하면 좋지?”

외국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외국인 마켓을 타겟으로 한 테러였다. 소방관들 일부가 차에서 내려서 현장으로 뛰어왔지만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빌딩 입구에 대형 유조트럭이 쳐박힌 탓이었다.

진입도 탈출도 불가능했고, 유조차가 폭발하면 건물 자체가 무너지게 되어 대형 참사가 불가피했기 때문이었다.

“저, 저거 봐!”

누군가가 하늘을 보고 외쳤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하늘을 향해 촬영을 시작했다. 거대한 인형병기가 가로로 길죽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기갑 기사단(Panzer Knights)이다!”

“로봇이 패러 글라이딩을?”

사람들이 놀라는 사이에 패러글라이더로 착지한 공정 타입의 리베로 센츄리온들은 재빨리 움직였다. 패러글라이더들은 자동으로 백팩에 재사용이 가능하도록 수납되었다.

“괜찮겠어?”

[위험해. 유조차가 지금이라도 폭발할 것 같아.]

정령의 말에 기갑 기사단 단장을 맡은 알렉산드리아 굿윈은 표정을 굳혔다. 그녀는 결단을 내렸다.

“유조차를 제거 작업을 1호기와 2호기가 맡겠다. 남은 인원들은 인명 구조에 임하라!”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센츄리온을 몰고 유조차에 다가갔다. 유조차는 건물에 단단히 박혀 있었다.

부단장 클라라 노리스의 2호기가 그녀의 옆에 붙었다.

“그냥 끌어낼 수는 없을 것 같군요.”

[방패를 지렛대로 쓰자.]

정령은 트럭 운전석 부분에 방패를 박아 넣었다. 두대가 양쪽에서 방패를 박아넣고 힘을 주자 차가 움직였다.

“구경꾼들을 쫓아내!”

그렇게 외치고, 트럭과 빌딩 사이에 들어가서 트럭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패러글라이딩을 위해서 경장갑을 채용했지만, 시사라 엔진을 사용하는 센츄리온은 20톤을 지탱할 수 있는 파워를 가지고 있었다.

유조차가 밀려나오다가 길 복판에서 폭발했다.

“살아있는건가?”

[죽을뻔 했지. 기체의 파손은 심각한 수준이야. 센서들은 대부분 쓸 수 없게 되었어. 아무래도 폭발물도 설치되어 있던 것 같다.]

폭발에 휘말리기는 했지만, 방패를 이용해서 밀었기 때문에 화염이 조종석으로 밀려드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노리스! 무사해?”

[머리를 당해서 무전은 안될거야. 노리스도 무사해.]

정령의 응답에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화염 속에서 리베로들이 휘청거리며 나오자 군중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인명구조팀은 건축 자재를 이용해서 순식간에 경사로를 만들었다. 기둥 역할은 리베로들이 맡고 있었다. 리베로가 치켜들고 붙잡고 있는 것만으로 판넬들이 안정적으로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쇼핑객들이 조심스럽게 걸어내려올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이 동영상 서비스를 통해서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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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군요. 리베로를 이용한 패러글라이딩이라니.”

원기도 동영상을 보면서 놀람을 금치 못했다.

“저도 보고는 받기는 했습니다만, 저정도 일 줄은 몰랐군요.”

기갑기사단의 출격이 인상적이었다. 방패를 손에 드는 것이 아니라 발에 서핑보드처럼 장착했다. 그리고 양손으로 패러글라이더의 줄을 조종하면서 고층 빌딩 옥상의 헬리포트에서 날아오른 것이었다.

“백팩의 프로펠러 추진기와 일회용 로켓을 사용해서 평지에서도 이륙이 가능하다고 하는군요.”

수송기나 헬기를 이용하지 않고 공중이동이 가능한 기갑 전력의 등장은 꽤 큰 파란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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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부담은 갖지 마.”

원기는 리디아에게 말했다. 은퇴하는 팀을 사들여서 만든 급조 레이싱 팀이었다. 머신 상태는 드워프들의 힘을 빌려서 훌륭하게 만들어내긴 했지만, 기본적인 성능 자체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디아의 예선 참가는 많은 화제를 몰고 왔다.

리베로의 등장으로 모터 스포츠에서 인기가 급감하는 상황에서 미녀 드라이버의 참전은 모터 스포츠계의 구명줄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녀에 대해서 많은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지노보다 더 완성된 드라이버로 보입니다. 머신만 좋다면 충분히 지노보다 빨리 달릴 수 있다고 보입니다.”

황제의 인터뷰는 사람들의 관심을 폭발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럼 챔피언의 좌가 위험한 것 아닙니까?”

“전 빠르기만한 드라이버가 승리한다고 챔피언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만년 2위인 우리 지노군이 챔피언이 되었겠지요. 빠르고 영리한 드라이버만이 챔피언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만의 전략과 전술 그리고 그것을 관철할 냉정함과 의지가 필요하지요.”

황제가 인정한 재능을 가진 드라이버의 데뷔였다. 화제성과 실력 모두가 기대되는 만큼, 언론의 관심사도 쏟아졌다.

“우리 계산으론 예선 10위 전후를 노려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나치게 관심을 끌어모은 것이 아닌가 모르겠어.”

원기는 텃세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재능이 뛰어난 신인의 등장은 확실히 달갑지 않을 수 있었다.

“폴 포지션을 따내면 뭔가 상품은 없는 건가요?”

리디아는 헬멧의 바이저를 들어올리고 원기에게 물었다. 원기는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답했다.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들어주지.”

순간, 리디아의 눈빛이 불타올랐다. 원기는 그 순간 리디아의 열의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되겠어. 철회. 우승하면 아무것도 들어주지 않을거야. 무리하지 않고 사고 없이 예선을 통과하면 그때는 내가 뭐든 들어줄께. 물론 가능한 것으로.”

리디아는 고개를 끄덕인다음 바이저를 내리고 차를 몰아 트랙으로 나섰다.

“예선 통과에 필요한 랩타임은?”

“1분 35초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충분히 통과할 수 있을 겁니다.”

“예선 1위는 어느정도가 될까?”

“아마도 지노 스톰이 아닐까 싶습니다. 1분 30초를 끊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30분의 예선 경기가 시작되었다. 각 차량들은 랩타임을 줄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트랙을 돌기 시작했다.

테라니의 요한 벙커의 기록이 나왔다. 1분 30초 021. 사람들은 환성을 올렸다.

그리고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리디아가 트랙을 돌았다.

“기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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