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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393화 (393/497)

393화 데우스 엑스 마키나

“이제 슬슬 내 힘을 보여줄 때가 된건가.”

오딘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프레이야가 사라지기는 했지만, 무언가 재미있는 것을 남겨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프레이야와 지구인들의 거래는 거의 확실한 사실이었다. 프레이야는 블러드라인이라는 가상의 세계를 지구로 알리는 등, 교묘하게 방해를 해온 것이 틀림없었다.

오딘은 일부 정보 수집부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전력을 다시 불러들였다.

그는 토르와 티르에게 연락을 했다.

“그동안 재미를 많이 봤겠지. 이제 내 차례다.”

“흐흐. 이제 비밀 카드를 꺼내놓는건가? 어떤 카드인지 기대되는군.”

“너희들은 형편없이 패퇴하게 될거다. 나중에 기술을 좀 공유해 주지.”

“30%다. 최소 30%는 양보할 수 없다. 군신의 명예도 지켜야 한다.”

“나 역시 30%는 살려서 돌아와야 한다.”

“걱정할 필요 없다. 학살까지는 안갈 테니까. 다만 오딘의 무서움을 새겨줄 필요는 있겠지. 절반 정도만 죽여도 미드가르드로 게이트를 뚫을 정도의 출력은 모일 것이다.”

아스 신족이 전쟁을 좋아하는 것은, 전쟁이야말로 인간의 영력을 거두어들이기 이상적인 도구였기 때문이었다.

전쟁의 광기와 증오, 슬픔 속에서 붕괴되는 인간의 생명이야말로 아스 신족에게 있어서는 힘의 원천이었다.

인신 공양을 통해서 힘을 얻고자 했던 놈들은 악신의 낙인이 찍히고 추종자를 잃어서 소멸했다. 하지만 전쟁은 달랐다.

전쟁 놀이를 통해서, 인간들을 죽음의 도가니속으로 밀어넣으면 인간들은 되려 그들에게 더 악착같이 매달렸다.

적을 학살하는 것으로 아군의 신앙을 얻게 되는 것이다.

신들간의 전쟁은 그들의 만찬이자, 유희인 것이다. 인간들은 증오심에 사로잡혀서 더욱 그들에게 충성하게 되는 것이다.

“미드가르드와 전쟁인건가.”

“재밌군. 좀 더 많은 피를 봤으면 좋겠어.”

세계수는 인간들의 정신이 모여서 만들어낸 사념의 집대성이었다. 정상적이라면 반 신족들처럼, 자기 추종자들을 보호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데에 전력을 다해야 옳았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행복을 바라는 이상으로 타인의 파멸을 바란다. 그 인간의 광기가 신족들을 변질시켰다.

굴베이그가 쾌락과 나태의 여신으로 변질된 것도 그때문이었다.

프레이야가 엘프를 만들어낸 것은, 그 자신을 구원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신성을 양보한 프레이나 헬, 펜릴이 제정신을 차린 것은 집단 광기로부터 해방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역으로 다행인 것은 평범한 인간이나 수인족이었던 원기, 희연, 놀원 등은 광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태생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기본이 인간인 만큼 그릇은 종지보다 작지만 단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아스가르드의 신들은 세상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지만, 안에 담긴 내용물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친한 친구들이 PC방에 가서는 편을 갈라서 게임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기기 위해서 치열하게 머리를 굴리지만, 거기까지였다.

전쟁은 적이 없으면 성립되지 않고, 전쟁이야말로 그들이 살아가는데 가장 호화로운 만찬이었다.

증오와 미움, 광기, 그리고 수많은 인간들의 떼죽음.

“프레이야에게 얻은 무기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 알려주지.”

오딘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성문이 열리고 병사들이 뛰쳐 나왔다. 토르의 병사들이 쏘는 총알들이 빗발치듯 쏟아졌지만 병사들의 몸에 맞고 튕겼다. 피가 나기도 하고 눈살도 찌푸렸지만 그것 뿐이었다.

“뭐지? 저놈들이 모두 신관은 아닐텐데?”

“실드 비슷한게 존재하는군.”

“미드가르드의 병기들에 대비한 내 회심의 역작이지. 바로 뚫리는 실드라고 해야겠지. 나치들은 ‘비더슈탄트 슈츠마우어’라고 이름을 붙였더군.”

오딘이 만들어낸 것은 뚫리는 방벽이었다. 나치들은 저항 방벽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화살은 커녕 깃털도 못막는 방벽이었다. 옅은 공기로 만들어진 벽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성기고 약하게 만들어진 만큼, 신성력의 유지 비용은 적었다.

통과할 때, 가벼운 저항감을 느끼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수십미터 상공에서 다이빙을 하면, 수면이 마치 콘크리트처럼 느껴지듯이 고속의 물체에게는 꽤 강력한 충격을 주게 되어 있었다.

가벼운 극히 작은 물리적인 공기의 벽과 같지만, 총알은 급격하게 감속하며 궤도가 빗나가게 되어 있었다.

굴절된 총알에 맞는다고 해도, 손가락으로 튕긴 작은 돌멩이에 맞은 정도의 충격밖에는 오지 않는다.

폭발성 포탄도 마찬가지였다. 철갑탄 같은 포탄은 몰라도 내부 구조가 복잡한 미사일이나 포탄은 실드에 닿는 순간, 충격으로 파손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포탄의 파편 역시 파워를 잃기 쉬웠다.

장창이나 투석 같은 느리고 육중한 무기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탄환 자체의 속도에 의지하는 무기는 속도 자체가 스스로 목을 조르는 것과 같았다.

2차 세계 대전에서 나치의 패망은 기정사실이었다. 나치의 파견대는 그 패망을 막기 위해서 오딘을 끌어가고 싶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났다.

오딘과 함께 지구로 돌아갈 방법을 찾았지만, 이론적 근거 없이 운좋게 아스가르드에 도착한 그들이 돌아갈 방법은 없었다.

결국 그들이 택한 것은 오딘과 함께 지구에 권토중래하는 것,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뭉친 지구의 세력을 물리치고 우수한 인간만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약육강식, 강자존의 세상.

장애를 가진 이들은 가족들이 칼로 쳐 죽이는 아스가르드는 나치들의 정신적 고향일지도 몰랐다.

컴퓨터의 무시무시한 진화는 나치 잔당들이 상상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섰지만, 오딘 밑에서 2차세계 대전 당시의 병기와 그 진화 발전형에 대응할 준비를 해온 것 역시 사실이었다.

강력한 세균 병기와 화학 병기 역시, 아스가르드에서 쓸 수 없지만 지구에 돌아갈 날을 위해서 준비하고 있었다.

저항방벽과 에인페리아라면, 시가전에서 거의 무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총신을 좀 길게 만들어서 총구만 저항 방벽 밖으로 빠져 나오면 성능은 약간 줄지만, 총기를 사용하는 것도 가능했다.

특히 저항방벽은 유체적 특성이 강해서 기체와 액체의 중간적인 느낌이 있었다. 이 저항 방벽에 질긴 천을 하나 덮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방어력의 향상이 있었다.

갑옷으로 자체 방어력을 높이고, 저항방벽과의 상성이 발군인 망토를 이용하면 대전차용의 철갑탄 말고는 상대할 방법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것만으로는 안될텐데. 총기만으로 전세를 뒤집기는 어려울거야. 빨리 카드를 꺼내 보시지.”

“그렇게 하지.”

실제로 저항방벽은 대부분의 총기를 무력화시켰을 뿐이었다. 토르와 티르의 주 전력인 에인페리아들 역시 총기에 당할 존재들은 아니었고, 그들의 주된 공격 수단은 역시 창과 칼이었다.

저항방벽을 뚫고 들어가, 거침없이 병사들을 학살함으로써 전선은 유지되고 있었다.

그리고 성벽 안에서 거대한 그림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20미터급의 덩치를 가진 기계 인형, 슈탈 크리그였다. 화려한 갑옷을 걸친 전장의 왕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슈탈 크리그인가? 히든 카드로서는 좀 실망스럽군.”

“단순한 슈탈 크리그가 아니지. 개발 코드네임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일세. 소개하지. DEM 발두르일세.”

오딘의 아들이자, 태양과 빛의 신의 이름이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발두르의 어깨 위에 오딘의 종속신 발두르가 굳게 서서 전장을 내려다 보았다.

강력한 신성력을 가지고 인간의 형상을 한 신체를 하고 있었다.

“프레이야를 떠올리게 만드는군.”

프레이야의 캐릭터로 나타난 원기를 떠올린 토르가 침음성을 흘렸다. 아스 신족이 인간의 몸에 현신할 경우, 인간의 몸에 무리가 간다. 죽어가는 인간의 육신 안에서 아스 신족이라고 편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아스 신족들은 인간에 현신하는 것을 꺼렸다.

그리고 인간에게 현신해서 얻는 메리트도 그리 크지 않았다. 인간의 육체를 통해서 구현되는 신성력은 아무래도 제한이 크기 때문이었다.

신성 그 자체로 구현된, 마치 걸어다니는 세계수와도 같은 프레이야의 모습은 아스 신족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이전부터 유사한 연구는 있었고, 토르와 티르도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현해 낸 것은 오딘의 과학자들이었다.

나치 출신의 과학자들은 세계수를 인간의 육체에 이식하는 사이보그화라고 할지, 키메라화라고 할지 애매한 방식으로 신체를 만들어냈다.

생물과 생물을 합친 면에서는 키메라라고 할 수 있지만, 필요한 부위에 원하는 능력을 이식한 것은 의체화, 사이보그화에 가까운 것이었다.

“발두르. 네 힘을 보여라.”

오딘의 지시에 발두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체는 신성력을 사용하며 현신의 부작용이 없는 육체였기 때문에 정신체로서의 성격은 상실할 수 밖에 없었다.

오딘이 직접 나서지 않고 종속신인 발두르를 내세운 것도 그 때문이었다.

프레이야처럼 잘못하면 소멸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죽는 것만으로도 소멸은 되지 않아도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가슴이 열리고 발두르는 그 안에 있는 조종석에 탑승했다.

DEM 발두르의 손이 전장을 향하는 순간, 그 주위에 나타난 강렬한 빛의 덩어리들이 전장으로 날아갔다.

수십개의 작은 태양들이 전장에 떨어지고, 티르와 토르의 군세들은 섬광으로 변해버렸다.

성역을 꾸민 신관들은 몇차례 공격을 버텼지만, 죽어 사라질 때까지 떨어지는 화구에 결국 재로 변해 버렸다.

“미친…”

토르는 기가 막혔다. 티르 역시 말을 잊었다. 넘치는 신성력을 구사할 수 있는 움직이는 세계수였다.

특히 세계수로 구성된 육신에 빙의함으로써, 신성력에 대한 지배력이 더 상승했다. 더 강렬하게 집중시킬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졌군.”

“나도 항복이야.”

오딘이 최고신이라고 하지만, 티르와 토르는 기본적으로 오딘 이전의 최고신이었던 존재들이었다. 오딘의 대척자인 로키까지 4대신들은 동급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럼, 새로운 게임을 시작해야겠지. 목표는 미드가르드일세. 그곳을 되찾고 좀 더 넓어진 판에서 게임을 벌이도록 하세.”

“재밌겠군. 미드가르드 정복이라. 우리에게도 그 아바타라는 것을 나눠 주겠지?”

“물론.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제작기술도 제공하겠네.”

“그렇군. 그럼 프레이야의 잔당들은 어쩔 셈인가? 바다에도 반신족들의 잔당들이 숨어있을텐데.”

“귀찮은 존재들이야. 처리하고 싶은 자가 처리하면 되겠지. 티르 그대가 처리하는 것은 어떻겠나?”

오딘의 말에 티르는 쓴 웃음을 지었다. 프레이야의 이능자들은 확실히 특이한 힘을 가진 자들이 많았다.

엑스칼리버의 능력이 대표적이었다.

하지만 최악은 희연의 능력이었다.

그녀의 능력은 사실 헬 여신의 신성과 희연의 잠재력, 극도로 고조된 감정이 하나가 되어 발휘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 내막, 특히 헬의 신성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아스 신족들에게는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우리가 직접 나설 필요는 없겠지. 미드가르드를 정복한 다음에 본격적으로 밀어버리도록 하는게 좋을 것 같군.”

“그럼, 지금까지대로 난 프레이야의 잔당들과 좋은 관계를 이어가도록 하지.”

토르가 미소를 지었다. 좋은 관계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무기를 상납받는 정도의 관계에 지나지 않았다. 오딘과 싸우고 있으니, 너희가 무기를 제공하라는 것이었다.

“미드가르드에 갈 방법은 있는건가? 혼돈의 대륙에선 실패한 것으로 아는데?”

“나치 과학자들이 좌표를 역추적하고 있네. 조만간 쓸만한 좌표를 얻을 수 있을걸세. 지난번엔 프레이야가 장난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네. 그때의 좌표를 참고로 지구로 가는 정확한 좌표를 얻을 수 있다고 보고 있지.”

오딘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프레이야가 사라진 이상, 지구로 가는 것을 방해할 존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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