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잊혀진 신의 세계-394화 (394/497)

394화 백신

“오빠. 한가지 이해가 안가는게 있어. 조승상님이 똑똑한 건 알겠는데, 왜 여신님의 힘으로 약한 사람을 안도와주는거야?”

평소에 궁금하게 여기던 점을 연하가 원기에게 물었다. 원기로서는 사실 아픈 곳을 찔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조승상의 생각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은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희연과 리디아는 성격적으로는 차이가 있지만,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고, 카즈키는 기본적으로 타인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그나마 가장 일반적인 사고를 하는 것은 연하라고 할 수 있었다.

희연은 똑똑한 편이었지만, 주군을 따르는 무사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주군이 명하면, 그것이 옳건 그르건 수행한다는 것이 그녀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이었다. 원기와 프레이야에 대한 집착이 결합되어 조금 변질된 부분은 있지만, 기본적인 사고는 그랬다.

원기가 악마라면, 악마의 수하로서 무슨 짓이든 할 마음가짐이 되어 있었다.

주군이 옳건 그르건 가리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가를 생각할 뿐, 명령이 옳은가 그른가는 생각해선 안된다는 사고방식이었다.

리디아는 조금 다른 방식이었다.

프레이야 여신은 절대선이었다. 따라서 여신이 행하는 일은 무조건 선이었다. 어떤 악행을 명하더라도, 그 것은 여신의 섭리이며 궁극적으로는 선으로 이어진다고 믿었다.

원기가 이 두사람을 굳게 믿으면서도, 동시에 부담스러워하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엘프들은 기본적으로 리디아와 비슷했다.

프레이야 여신의 명이라면 섶을 지고 불속에 뛰어들라고 해도 기꺼이 뛰어들 터였다.

그리고 원기는 그것이 주는 무거운 책임감을 알고 있었다.

카즈키나 연하는 그런 면에서 좀 덜 어려웠다.

“간단히 설명해 줄께. 사막에 물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어. 그런데 물을 가진 사람이 나타났어. 물을 가진 사람의 힘은 어떨까? 절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 사람들은 물을 얻기 위해선 무엇이든 내놓을 것이고, 무엇이든 시키는대로 할 테니까.”

“그렇겠네.”

“이 경우 물의 가격은 말 그대로 엿장수 맘이야. 일억을 불러도 되고 천만원을 불러도 되니까. 그런데 이 물장수가 물을 만원에 팔기 시작했어. 그리고 또 다른 물장수가 나타났지. 그럼 다음 물장수는 물을 얼마를 받을 수 있을까?”

“만원도 못받겠네.”

“그래. 첫번째 물장수는 프레이야고, 두번째 물장수는 오딘이라고 해야지. 가장 무서운 시나리오는 영생을 빌미로 이 세상의 힘있는 악인들과 오딘이 손을 잡는거야. 독재자들이 오딘이 약속한 영생 때문에 오딘과 손을 잡는다면 정말 답이 없게되는거지. 오딘이 군대만 이끌고 쳐들어온다면 충분히 싸워볼만 하지만, 권력자들과 손을 잡으면 싸우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져. 누군가가 핵단추라도 누르면 말 그대로 지구는 끝장이 나게 되겠지. 그래서 프레이야는 싼값에 기득권자들에게 신성력을 나눠주는거야.”

“음, 복잡하네.”

장기 공장의 혜택이나 신관들의 치료 혜택은 실제로 대기업 총수나 권력자들이 받고 있었다. 독재자들에 대한 서비스도 이뤄지고 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좋은 조건이었다.

독점자로서의 지위를 이용하면 더 좋은 조건을 얻을 수 있었지만, 퍼주기에 가깝다고 할 정도로 힘있는 악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 대신, 오딘이나 로키가 등장한다고 해도 쉽게 유혹할 수는 없을 터였다.

-----------------------------------------------

“이봐, 영생과 영원한 젊음을 갖고 싶은데 말이지. 프레이야 여신이라면 줄 수 있는 것 아닌가?”

“물론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셔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젊고 잘생긴 몸으로 갈아타는 것은 좋습니다만, 문제가 몇가지 있습니다. 우선, 불로불사의 젊은 육체는 여신님에게 종속되게 되어 있습니다. 초능력자들을 보세요. 자유 초능력자들과 바니걸 청취자들을 비교해 보시면 알겁니다. 바니걸 청취자들이 정상이라고 생각되십니까?”

“확실히 그래. 정상이 아니지.”

프레이야 신자들에게 유기 초능력자 취급을 받는 자유, 혹은 야생 초능력자들은 여기저기서 사고를 쳤다.

초능력이 생겼는데 자중하고 있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바니걸 청취자들은 거의 사고를 치지 않았다.

범법행위를 하더라도, 피해는 최소한으로 드러나지 않게 쳤으며 악질적인 짓은 거의 없었다.

범법 행위의 대부분은 문제의 소지가 있는 법령과 부딛치는 경우가 많았다.

“프레이야 여신님과 연결되면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됩니다. 그래서 욕망의 대부분이 ‘거세’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얌전하고 기르기 쉽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 상태가 되는 것을 원하십니까?”

“그건 아니지.”

조제성의 말에 독재자 D는 동의했다.

“신들이 제공하는 영생의 육체는 자연스럽게 신들에게 속하게 됩니다. 이건 어쩔 수 없지요. 반면 저희가 제공하는 장기들은 어떻습니까? 부작용도 없고 완벽하지요. 본래 자기 장기니까 말이지요. 젊음이 되살아난 듯 하지 않습니까?”

조제성의 말에 D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외모는 노인의 그것이었지만 장기는 전부 십대의 것이었다. 자신의 유전자를 이용해서 배양된 것이었다. 간도 심장도 신장도 모두 왕성하게 활동해주기 때문에 활력이 완벽하게 돌아와 있었다.

“쓸 수 있는 몸은 쓸 수 있을 때까지 써주는게 좋겠지요. 파괴된 뇌세포를 되돌리지는 못하지만, 병으로 뇌세포가 급격하게 파괴되는 것은 막아줄 수 있습니다. 모처럼 받은 육체이니 쓸 수 있을 때까지 쓰는게 좋겠지요. 그리고 새로운 육체의 경우에도 문제가 있는게, 만약 저희가 바꿔치기한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저희가 엉뚱한 사람을 데려다 놓고 이 모습이 대통령 각하의 새로운 모습이라고 말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물론 저희는 그런 짓을 할 생각이 없습니다만, 저희를 그만큼 신뢰하실 수 있겠습니까?”

조제성은 미리 이렇게 약을 쳐뒀다. 에인페리아의 육체를 받는 것은 그 신에게 종속되는 것이며, 성격의 변화가 올 수 있다. 아니, 그 이전에 바꿔치기 당해서 모든 것을 가로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킨 것이었다.

이것을 듣고도 에인페리아의 육체로 갈아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잘생긴 육체는 탐이 나긴 하는군.”

“뭐, 영부인께서는 기뻐하실 겁니다. 나이든 대통령 각하 대신에 미소년을 안게 되겠지요.”

조제성의 말에 고객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차피 자신은 돈과 권력으로 원하는 여자들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상대가 좋아할 일은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원치 않는 여자를 돈과 권력으로 손에 넣는 것이 더 흡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재자라는 인간들은 본래 뒤틀린 욕망의 화신이었다.

“그도 그렇군. 그래. 앞으로도 잘 부탁하겠네.”

“물론입니다. 대신 저희 쪽도 잘 부탁드리지요.”

조제성은 미소를 지었다. 오딘이건 로키건 영생을 빌미로 거래하기는 쉽지 않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북구 신화에서 영생을 얻는 구원받는 영혼들은 오딘의 ‘광전사’가 되어 광기에 물들어 죽지도 않고 영원히 미쳐 날뛰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아주 정신이 나간 사람이 아니라면, 그런 거래를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그리고 조제성은 그 정신나간 사람들을 대상으로도 대책을 세우고 있었다.

----------------------------------------------

“헬 코인을 이용한 배틀 로얄을 벌이고 싶습니다. 영화 ‘하이랜더’를 떠올리시면 되겠군요.”

헬 코인들은 충분한 숫자가 증식하기는 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헬 코인이 더 이상 증식하지 못하자, 헬 코인을 원하지만 손에 넣을 수 없는 이들이 생겨난 것이었다. 원하는 자들의 숫자는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도시 전설처럼 퍼지면서, 불치병을 앓는 이들을 가진 가족들도 있었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보험삼아 원하는 이들도 있었다.

조제성의 장기공장 영업은 극소수의 권력자들에게만 이뤄졌다.

국가 레벨의 힘을 가진 이들만이 조제성의 고객이 될 수 있었다. 물론 그런 사람들만으로도 세자리 수에 달했다.

만명 중 한명이라고 해도, 이 세상에는 60만명 이상의 권력자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이들에게 헬 코인은 손에 넣고 싶은 보물이었다.

그리고 헬 코인들은 음성적으로 거래되기 시작했다. 돈을 주고 사는 경우는 그나마 양반이었다. 훔치거나 빼앗는 이들이 더 많았다.

“배틀 로얄이라, 피해가 크지 않을까요? 혼란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요.”

“대신, 혼란에 대한 내성을 갖게 되겠지요.”

조제성의 계획은 헬코인에 담긴 신성력을 이용한 초인 배틀이었다. 인간의 신체 능력을 초월한 이들이 거리에서 전투를 벌인다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될 터였다.

헬 여신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혼란은 각국의 경계를 키우고 초능력자들의 문제를 표면화시킬 수 있을 터였다.

“이제는 공개해도 된다는 거로군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조제성은 많은 권력자들과 인연을 맺었고 교류해왔다. 초창기였다면 초능력자들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 각국은 프레이야 진영도 한통속으로 보고 박해, 아니 배제하려고 들었을 터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문제가 생기면 도움을 받거나 방관할 터였다.

“이렇게 말씀드리는게 어떨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헬 코인으로 사망한 이들의 숫자가 네자리 수를 넘어섰습니다. 선한 의도로 나눠준 것이라고 해도, 결과는 좋지 않았지요. 어차피 모든 변화는 혼란을 불러옵니다. 슈바이처 박사를 비롯해 많은 선한 이들이 아프리카의 죽어가는 아이들을 도왔고, 그 결과 인구가 폭증한 아프리카는 혼란을 겪을 수 밖에 없었지요. 채집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인구가 되었고, 인종 청소라고 불리우는 학살극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죽어가는 아이들을 방치하는게 옳다고 말할 수도 없지요. 그리고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오딘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겁니다. 물론 저희는 괜찮습니다. 지구를 버리고 우주로 도망치면 끝입니다. 오딘과 반오딘연합의 전쟁이 오딘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굴욕적인 패배를 맞이했다고 합니다. 토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제가 보기에 오딘이 새로운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토르와 티르는 오딘에게 굴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토르와 티르의 백성들은 자신들을 살리기 위해 굴욕을 감수하는 자신들의 신들에게 더욱 깊은 감사와 충성을 맹세했다.

조제성은 이 교활한 시스템에 대해서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지만, 확신까지는 불가능했다.

“장소는 어디로 생각하고 계신겁니까?”

“워싱턴입니다. 매력적인 장소지요. 인구는 적고, 경비는 가장 삼엄합니다. 초능력자들이 소동을 일으키고, 가장 정예화된 현대 군인들이 대처하게 될 겁니다.”

헬코인은 짧은 시간이지만 인간을 성기사 수준으로 강화시켜 주는 능력이 있었다. 근력과 회복력이 발군으로 상승하는 만큼, 초능력자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인간의 형상을 했지만 인간을 초월한 게릴라들과 대적하는 경험은 현대 군인들이 갖추기 힘든 것이기도 했다.

‘적극적인 결단도 필요하다는 거겠지.’

원기는 결단을 내렸다.

“좋습니다. 배틀 로얄을 추진해 보지요.”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