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8화 DC 전투
“멈춰요!”
스티븐의 외침에 해리엇은 총구를 들어올렸다. 총구 앞으로 난입한 상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이트 엔젤인가?]
해리엇은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했다. 나이트 엔젤은 프레이야의 첩보부대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꽤 많은 나라에서 그 활동을 묵인하고 있었다.
프레이야와 정식으로 교류하게 되면서, 나이트 엔젤의 철수를 요청하면 즉시 철수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활동을 용인하는 쪽이 유리하다는 판단이었다.
우선 엘프들의 활동을 완전히 막기가 어렵다는 점이 첫번째였다.
아스가르드 세력의 첫번째 강점 중 하나가 밤눈이 밝다는 사실이었다. 선한 종족으로 알려진 드워프와 엘프 조차도 밤눈이 극히 밝았다. 야시경과 비슷한 수준의 야간 시력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야시경보다 더 유리한 면들이 있었다.
우선 미약하나마 색감이 있고, 빛의 조절이 가능했다. 섬광탄 등으로 일시적으로 눈부심은 겪지만 그 뿐이었다.
뱀파이어나 늑대인간, 오크 등의 종족들도 하나같이 밤눈이 밝은 편이었다. 야간에 전투를 벌이게 된다면 야시경을 가진 일부 병사들을 제외하면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엘프들의 경우, 사기적인 청력과 야간 이동능력 등을 살리면, 정보 수집 활동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런 면에서 차라리 방치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었다.
나이트 엔젤의 활동 자체가 국내 치안을 좋게 해주는 효과도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활동을 묵인하는 대신에 많은 것을 제공 받았다.
권력자들의 비밀 경호와 비리에 대한 묵인 등이 그것이었다.
나이트엔젤이 얻은 정보들 가운데 권력자들의 비리는 깨끗하게 묵인되었다. 일부 국가에서는 권력자들의 비리를 감추는 일까지 요구했지만, 적극적 비호는 프레이야의 성향을 이유로 거부되었다.
미국 역시 나이트 엔젤의 활동이 전면적으로 허용되는 국가 가운데 하나였다.
해리엇은 당연히 나이트 엔젤에게 우호적이었다. 그럴리는 없지만 스티븐이 나이트 엔젤을 공격하려고 든다면, 거부할 만큼은 되었다.
정령 계약의 해소가 가능한 사안이 되어 있었다.
[어떻게 할거야?]
“글쎄요. 상대방의 말을 들어봐야겠지요.”
나이트 엔젤은 과감하게 원기의 팔을 꺾고 땅바닥에 짓눌렀다.
“이자는 우리가 확보하겠습니다. 다른 이들의 구조를 서두르세요. 나이트 엔젤은 이번 사태에 참전이 허가되었습니다.”
[그렇다는군.]
“좋네요. 어서 가지요.”
스티븐과 해리엇은 원기를 두고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판단하기에 원기는 상대하기 까다롭기는 했지만, 나이트 엔젤의 상대는 아니었다. 만렙에 엘프들에 비하면 원기의 전투 능력은 확실히 떨어져 보이는게 사실이었다.
“조승상님의 지시예요. 로그아웃하라고 하는군요. 포인트는 저 건물 지하에 있어요.”
엘프는 그렇게 말하며 원기의 팔을 풀어주었다. 워싱턴 시내는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제압한 적 한둘이 사라지는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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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미쳤군. 이런 사태가 벌어지리라고는 생각 못했어.”
조제성은 쓴 웃음을 지었다. 조제성은 모든 일들이 자신의 생각대로 진행될거라고는 믿지 않는다.
머리가 좋고 부지런한 사람은 맑은 날씨를 위한 계획도 잘 세우지만, 비가 내릴 때를 대비한 계획도 세운다. 그리고 예측 못한 사태가 발생할 경우의 대비까지 해두는 것이다.
모사재인 성사재천이기 때문에, 플랜B는 반드시 필요했다.
조제성이 나이트 엔젤과 리베로 부대를 준비한 것은 그때문이기도 했다. 테러의 다발과 생화학무기로 보이는 연막까지 사용되는 사태가 벌어지자, 조제성은 투입되려던 희연과 카즈키 일행을 멈추게 했다.
그리고 나이트 엔젤대의 투입과 함께 전술 교도대의 투입을 지시했다.
조제성은 자신의 말주변을 이용했다.
헬 여신의 측근이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니, 대비를 철저히 해두는 것이 좋을 거라는 정보의 제공이었다.
미국측은 고민 끝에 프레이야 측의 협조를 요청했고, 조제성은 ‘대가를 받고’ 그들의 요청에 따라서 나이트 엔젤과 전술 교도대를 보험삼아 배치한 것이었다.
문제는 조제성의 예측을 훨씬 뛰어넘는 재난이 벌어졌다는 사실이었다. 백악관까지 정체 불명의 연막이 침입했다.
이는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행동이었다. 현자회라고 해도 감당할 수 없는 일에 가까웠다.
“아마도 러시아와 중국이 개입된 것 같습니다.”
장수한의 말에 조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 원기가 게이트를 통해서 지휘소에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제 실수인 것 같습니다.”
조제성은 원기에게 고개를 숙였다.
“예측하신대로 아닌가요? 어떤 실수가 있는거지요?”
원기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조제성의 대처는 매끈해서, 모든 이들이 지시대로 스무스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전에 들은대로 나이트 엔젤과 전술 교도대로 출동해서, 미정부와 긴밀한 협조하에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번 사태가 꽤 커질 것 같습니다. 미국측의 대처에도 문제가 있긴 합니다만, 우리 측 과오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프레이야 진영이 지나치게 미국과 친화적인 태도를 취한 것이 좋지 않게 작용한 것이었다.
화성 탐사선 계획에 미국을 대표로 내세운 것도 그랬다.
헬 신관 양성 계획의 무대를 워싱턴으로 잡은 것도, 대 오딘 연합의 주축을 미국으로 삼기 위한 것이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미국측의 편의를 많이 봐준 것이었고, 미국은 그걸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형태로 가져가려고 한 것이었다.
워싱턴이 장소로 잡히면서, 미국측에 유리한 게임이 만들어졌고 미국은 이를 대부분 장악했다.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 등을 배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프레이야 진영이 중립보다는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면모를 보이는 상황에서 헬 여신의 신관들을 미국과 동맹들이 독점하는 형태가 되는 것이 중국과 러시아로서는 달갑지 않았다.
문제는 미국의 동맹들도 그리 달갑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은 여섯명, 그리고 여섯개 국가에 한명씩이라는 조건은 미국을 이기적으로 느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미국이 네명이나 세명 정도로만 조절했다면, 한명만 얻는 국가라고 해도 불만을 갖지 않을 터였다.
이는 정보가 누설되게 만들었고,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의 계획을 알게된 다음, 현자회를 움직였다.
드러나게 지원하지는 않겠지만, 확실한 안전보장을 약속한 것이었다.
중국과 러시아의 입김이 머무는 곳에 피신할 곳이 생긴 현자회의 매파들은 이 기회에 과감하게 전투를 벌이고, 헬 여신의 신관을 독점하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것이 독가스 살포로 이어진 것이었다.
“어쩔 수 없지요. 조사장님이라고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니.”
원기는 한숨을 쉬었다. 대피를 시켰다고는 하지만, 워싱턴 시내가 전쟁터가 되어 있었다.
현자회가운데 헬 여신을 따르는 매파, 니블헤임은 총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자그마치 백삼십기의 리베로가 워싱턴 시내에 등장했다.
인간의 영혼, 곧 망령을 사용하는 리베로들이라 정령들의 기체만은 못하지만 그렇게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었다.
인간과 엘프 사이에는 소프트웨어만이 아니고 하드웨어의 차이도 컸다.
순발력과 강인함이 엘프들에게는 있었고, 그들의 운동신경이 이것을 완벽하게 발휘하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리베로의 차이는 시사라 엔진의 출력과 기체의 컨셉이 결정했다.
정령을 사용하는 리베로들이 날렵한 움직임을 위한 경량화 컨셉이라면, 망령 리베로들은 중장보병의 컨셉이었다.
게다가 시사라 엔진의 출력은 망령 리베로들이 더 강력했다.
시사라들이 신선한 인간을 포식하는 것으로 성장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성장에는 한계가 있었다. 먹이의 효율 문제였다.
인간 크기의 거미가 개미를 잡아먹고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보다 효율적인 먹이가 없이는 20미터까지 성장하는게 한계였다.
그리고 효율적인 먹이가 두 종류가 있었다. 세계수의 수액과 혈정이었다.
대량학살로 모아둔 혈정으로 시사라 중 몇마리를 30미터급으로 키워서 리베로의 엔진으로 삼은 것이다. 20미터급 시사라의 네배 가까운 출력이 있었고, 중장갑 위에 레일건을 사용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자그마치 세기의 초중장갑 리베로의 등장은 조제성으로서도 기가 질릴 지경이었다. 전쟁을 각오하고 전력을 투입한 꼴이었다.
초중장 리베로들은 케이블을 통해 다른 기체들의 레일건에도 전기를 공급하고 있었다.
‘설마 저 엄청난 전력을 던져버릴 셈인가?’
조제성으로선 이해하기 힘든 멍청한 짓이었다. 리베로 자체를 분해해서 컨테이너에 숨겨서 시내로 반입하기는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았다. 리베로라는 무기 자체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였다.
전차와는 달리 분해해서 반입하기가 쉬웠다.
레일건의 경우에는 화약조차 사용하지 않으니 더욱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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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이번에야말로 승부를 겨룰 수 있었는데.”
카즈키는 투덜거렸다. 다른 어떤 적들도 희연처럼 마음속 깊은 곳에서 흥분시켜주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희연을 적으로 돌리고자 적진영으로 돌아설 마음은 없었다. 희연에게 미움받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희연을 좋아하고, 희연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을 뿐이었다.
이번 이벤트는 그런 면에서 카즈키에겐 최고의 찬스였다. 희연이 진심으로 승부에 나섰다는 것은 그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건 그렇고, 고작 그정도의 포상에 왜 그렇게 진심이 된걸까? 알다가도 모르겠어.’
카즈키는 자신의 리베로, 퀸을 몰고 워싱턴 거리를 향해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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