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화 공방전의 끝
‘피해선 안돼!’
원기는 자신이 막아내지 못하면, 뒤를 따르는 희연과 카즈키까지 관통되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위기의 순간이 다가오는 순간, 원기의 머리는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마치 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이 본다는 주마등처럼 두서없이 생각들이 지나갔다.
원기는 이를 악물었다.
희연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그녀가 리베로에 사용한 일점집중의 기술을 떠올렸다. 프레이야의 본신, 즉 아바타가 아니면 여신의 절대적 방어벽은 쓸 수 없었다.
원기가 가진 능력은 신체 일부의 방어력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집중해야 해.’
원기는 반쯤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총구가 겨눠진 순간, 그 총구에서 날아오는 탄환이 어디에 꽂힐지 원기는 정확하게 읽을 수 있었다.
주먹이 휘둘러지면서, 주먹 끝에 원기의 이능이 집중되었다.
무기 사랑과 비슷하지만, 무기의 예리함이 아니라 방어력을 높여주는 작은 방호벽이었다.
“오, 핀포인트 바리어!”
전투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장수한이 순간적으로 감탄하며 외쳤다.
주먹의 일부가 작게 빛났고, 그 주먹의 끝에 정확히 레일건의 탄환이 맞았다. 펑하는 소리와 함께, 오른 주먹이 어깨에서부터 떨어져 나갔다. 주먹의 장갑은 관통당하지 않았지만, 레일건의 파워를 당해내지 못한 것이었다.
그와 함께 튕긴 탄환이 왼 무릎을 박살냈다.
그 결과 원기의 기체는 균형을 잃고 쓰러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희연이 원기의 기체 옆을 빠져나와 땅에 깔리듯 적의 리베로를 향해 나갔다.
그리고 희연의 뒤를 이어 카즈키가 넘어지려는 원기의 기체 어깨를 밟고는 허공으로 뛰어올라 체인 블레이드를 휘두르며 외쳤다.
“날 발판으로 삼은건가!!”
‘네가 할 대사가 아닌데.’
카즈키에 밟혀서 땅 바닥에 쓰러지며 원기는 쓴 웃음을 지었다. 희연과 카즈키는 원기의 도움으로 적 가까이에 접근했다.
“과연 전술 교도대로군. 상대는 블레이드와 체인이다. 물러나.”
전술 교도대는 리베로 리거들에게는 이미 상당한 유명인이었다. 그런 면에서 노출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중장 리베로의 리더는 거침없이 교전을 회피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도망칠 셈인가? 늦었어!”
카즈키는 체인 블레이드로 적의 리베로를 휘감았다. 그리고 희연이 재빨리 다가갔다. 하지만 희연의 검은 상대의 방패를 베지 못했다.
희연의 검이 예리하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이능의 일점집중을 통한 것이었다. 상대의 방패가 너무 두꺼워서 이능이 전면에 미치지를 못했다.
“이런.”
희연이 혀를 차는 순간, 갑자기 폭발이 일어났다. 희연은 실드와 함께 바닥으로 나가 떨어졌고, 카즈키의 체인 블레이드도 산산조각이 났다.
“자폭한 건가? 아니야.”
카즈키는 폭연 속에서 상대의 기체가 모습을 드러낸 것을 발견했다. 날렵한 몸매의 리베로였다. 전술기동대의 기종보다 훨씬 뛰어난 기술로 만들어진 기체라는 것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검고 날렵한 몸체의 기체는 예술품과도 같아 보였다.
“흥, 기체의 성능 차 따위는 실력으로 넘어 보여주지.”
카즈키는 그렇게 말했지만, 폭발하면서 비산한 파편으로 인해서 기체 이곳저곳이 파손된 상태였다. 그리고 주무기인 체인 블레이드도 부서진 상태였다.
희연 역시 방패와 함께 바닥에 쓰러지면서 기체 곳곳에 데미지를 입은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무릎과 발목에 손상이 들어왔어요. 전투는 무리입니다.]
“안되겠다. 물러나는게 좋겠어.”
“어떻게 물러나라는 소리야.”
카즈키는 장수한의 지시에 짜증나듯이 외쳤다. 원기와 희연의 기체가 움직일 수 없게 된 상태였다. 검은 기체들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미군 기체가 떨어뜨린 총기를 발견하고 그리로 향했다.
“상대도 무기를 쓸 수 없어. 전원을 연결하는 케이블들도 박살났고, 아마도 레일건은 반동 때문에 쓸 수 없을거야.”
장수한이 빠르게 상황을 살피고 조언했다. 하지만 검은 기체들의 움직임도 범상치는 않았다. 소년병들 가운데 재능있는 살인병기들을 죽여서 만든 기체인만큼, 정령들보다 많이 떨어지지는 않는 성능을 가졌다.
엘프의 정령이 체조선수의 능력을 가졌다면, 망령은 직업군인의 스킬을 가졌다고 할 수 있었다.
“좋아. 지금이다. 나이트 엔젤들 돌격하라.”
검은 기체들이 장갑을 분리하면서 일으킨 폭발로 쑥대밭이 된 사이를 나이트 엔젤들이 뛰어들었다. 주로 다크 엘프들로 이뤄진 암살 부대였다. 조제성이 내린 그들의 임무는 헬 코인을 가진 신관 후보들의 제거였다.
검은 기체들은 황급히 그들을 쫓기 시작했다.
“과연 신관 확보에 목숨을 걸긴 걸었군.”
조제성의 말에, 장수한은 한숨을 돌렸다. 빠른 몸놀림의 엘프들을 쫓는 것은 리베로로서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군 리베로들이 사용하는 산탄총을 주워서 쓰려고 했지만, 자기편이 휘말릴 수 있으니 함부로 쓸 수도 없었다.
순식간에 헬 코인을 가진 자들이 일곱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헬 코인을 가진 자들의 위치는 쉽게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전멸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었지만, 조제성의 지시로 다섯명을 남겨두고 나이트 엔젤들은 빠져 나왔다.
현자회는 이용 대상이지, 포섭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곱명의 신관 후보는 깨끗하게 제거되었다.
“희연양. 사전 지시대로 신탁을 내려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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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되었나?”
“신관 후보자들 다수가 순식간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병사들 사이에 섞여있던 다섯 명은 어떻게 목숨을 건졌습니다.”
“고작 다섯명이라고?”
검은 기체를 지휘하던 1번기 대장은 이를 갈았다. 장수한의 예측대로 레일건의 반동을 생각하면, 지금 기체로는 쓸 수 없었다. 미공군이 공격해 오기 시작하면, 답이 없었다.
‘제길 이대로 실패하는 건가? 그럴 수는 없어.’
헬 여신이 약속한 시간은 아직 네시간 가까이 남아있었다. 열두명의 신관후보로 좁혀지는 것을 기다리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 없었다. 그때였다.
[신관 후보가 모두 결정되었다. 아니, 지금 막 한명이 추가로 줄어들었군. 지금까지 살아남은 그대들은 내 신관으로서 내 힘을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신탁이 떨어졌습니다! 총 열한명이 신관으로서의 자격을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군. 우리측 신관 후보들을 사냥한 그자들의 탓인가?”
실제로는 워싱턴 시내에 신관후보자들은 서른세명이 살아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했다.
헬 여신이 열한명 살아남았다고 하니, 그렇게 알 뿐이었다.
실제로 헬 코인을 가진 이들을 나이트 엔젤들이 검거해서, 헬 코인들을 빼앗은 것도 사실이었다.
“좋아. 후퇴한다.”
미국 측에도 두명이 살아남아서 헬 여신의 신관이 되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신탁에 대해서 들었다.
“놈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해. 레일 건은 이미 못쓰게 되었다.”
라이트닝 전투기들과 여전히 다수 운용되는 이글, 팔콘이 워싱턴 상공에서 공격을 위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워싱턴 상공에 번개를 타고 상승하는 용의 모습이 보였다. 많은 사람들은 빛을 내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용의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용은 뇌전의 브레스를 하늘에 뿜었다. 그와 함께 미군의 전투기들이 오작동을 일으켜 추락을 하거나 폭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미치겠군. EMP브레스까지 등장한건가.”
장수한은 하늘을 비펠드 브라운 효과로 날으는 거대한 시사라의 모습을 보면서 쓴 웃음을 지었다.
현자회에서 길러낸 시사라였다. 조제성이 예측한 바로 그 최후의 수단이었다.
미공군이 혼란에 빠진 틈을 타서, 현자회 일당들은 모습을 감췄다.
남은 것은 곳곳이 연기로 뒤덮인 참담한 현장 뿐이었다.
“또 바빠지겠군.”
조제성은 혀를 차면서 말했다. 장수한은 그를 보면서 ‘난세의 간웅’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도, 그 안에서 이익을 최대한 챙길 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이 격변할수록, 조제성에게 할 일은 늘어날 터였다. 그리고 일한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챙길 수 있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건 그렇고, 우리쪽 오카는 대체 뭘 하고 있는거야. 저런 것 하나 못만들고.”
장수한이 불만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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