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잊혀진 신의 세계-401화 (401/497)

401화 시사라보완계획

“프레이야 여신님 개객끼.”

소녀는 이를 악물고 그렇게 말했다.

소녀가 그 말을 하는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결단력이 필요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후회와 상실감이 소녀를 덮쳐왔다.

하지만 소녀는 이를 악물었다.

소녀에게는 하지 않으면 안될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조련사’는 아직인건가?”

“그녀는 욕심이 지나치게 많아서 말이지요.”

뇌룡과 조련사는 꽤 궁합이 잘 맞았지만, 그 결과는 그다지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집착도 좋지만, 영 성가시군.”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고 보입니다.”

코드명 ‘조련사’를 받은 소녀는 불행한 아이였다. 중동의 한 부락에서 태어난 소녀는 어린시절부터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받아왔다.

근본주의 이슬람 부족들 가운데에는 여성을 재산으로 취급하는 곳들이 있었고, 대부분의 근친상간은 율법에 의해 금지되어 있지만 딸은 아버지에게 속한 재산이라고 해석하는 분파도 있었다.

소녀는 부족장인 아버지의 성적 학대를 받다가, 어린 나이에 다른 부족에 팔려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소녀는 중년의 남자에게 팔리듯 결혼하게 되었고, 어린 나이의 소녀에게 부부관계는 성폭행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 심한 하혈을 하게 된 소녀는 치료소에 가게 되었다.

치료소에는 NGO 출신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있었고, 소녀는 비로소 사람다운 대접을 받게 되었다.

열살도 못된 소녀에게 가해진 합법적인 폭력에 분노한 의사와 간호사들은 소녀를 구하려고 하다가 부족민들의 습격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치료소의 사람들이 학살당하고, 소녀는 모진 학대를 받고 암시장으로 팔려나갔다.

그리고 실험재료를 원하는 현자회에 팔려나갔다.

종교적 광신도들과 이기적인 매드 사이언티스트들 중 어느쪽이 더 나은가, 애매한 일이었지만 소녀는 단연 매드 사이언티스트들을 택할 것이었다.

현자회의 연금술사와 과학자들은 동정심이라는게 조금은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회에 대한 반감 가득한 현자회의 조직원들 가운데,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소녀에게 동정심을 갖는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다른 대다수의 매드 사이언티스트들에게는 소녀는 흔해빠진 피험체중 하나였고, 그녀를 아끼는 동료들이 있다면 굳이 그녀를 데려다 쓸 필요는 없었다.

소녀는 현자회에서 비로소 사람 대접을 받았고, 교육을 받았다.

소녀는 연금술과 과학을 현자회에서 배우게 되었다. 성적으로 학대하는 이들도 없었다. 소녀는 현자회의 일원이 되었고, 실험동물을 돌보는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어느날 소녀는 자신의 이능을 각성했다.

인간에 대한 혐오 때문에, 소녀는 동물들에게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실험동물을 돌보는 이라고 동물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농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도축할 동물이라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소녀는 현자회의 이상 중 하나인, ‘평등한 죽음’에 매료되었다. 증오하는 인간들을 죽이는 것이 소녀의 간절한 소망 중 하나였다.

그리고 소녀가 각성한 것은 동물과 마음을 나누는 능력이었다.

소녀는 프레이야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고, 프레이야가 가져다 주는 위안에 마음속 깊은 상처가 치유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소녀는 가슴속 증오가 옅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자신에게 상처입힌 자들을 용서하고 싶지 않았다.

소녀는 스스로 프레이야와의 인연을 단절했다.

그리고 소녀는 시사라 중 한마리와 마음이 통하게 되었다. 그 시사라가 바로 ‘뇌룡’이었다.

뇌룡은 단순했다. 먹을 것을 먹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뇌룡은 소녀의 말을 들으면,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게 생긴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뇌룡은 인간들이 가장 맛있는 먹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녀와 마음을 나누면서 인간들을 죽이는 쾌감까지 배웠다.

죽여서는 안될 인간들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지만, 죽여도 될 인간들에 비하면 정말 미미한 수준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현자회에서 주는 혈정이라는 음식은, 몸을 키워주기는 했지만 식도락적인 면에서 재미가 없었다.

소녀의 증오는 뇌룡에게 먹을 것을 먹는 즐거움을 주었다.

뇌룡은 뇌전을 뿌리며, 소녀와 함께 워싱턴 상공에서 학살을 즐겼다.

[재밌기는 하지만, 예전보다는 시시한 느낌이야.]

“그래? 난 괜찮은 것 같은데?”

소녀는 자조적을 말했다. 뇌룡과 함께 학살에 나선 것은 이번이 두번째였다. 그리고 학살 대상은 그녀가 자란 부족이었다.

부족장이자 아버지인 짐승을 비롯해서 그를 방조한 부족민들, 그녀는 그들을 죽이면서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복잡한 감정의 회오리가 되려 그녀를 무감각하게 만든 것이었을지도 몰랐다. 뇌룡은 그녀와는 달랐다. 미운 놈들을 그저 통쾌하게 죽인 것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슬슬 돌아가자.”

[그래. 이정도면 충분히 즐긴 것 같으니.]

하늘에서 뇌전을 뿌리던 뇌룡은 조련사의 뜻을 따라서 바다를 향해서 날아갔다. 애너코스티아강 위로 날아가는 뇌룡의 모습에 사람들은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

미국은 이 대규모 테러 사태의 책임 소재를 묻기 위해서 애썼지만, 복수여단이라는 이름 말고는 나오는게 없었다.

남은 것은 시체들 뿐이었다.

버려진 시신들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정보도 극히 적은 편이었다.

죽은 이들의 일부는 중동계였으며, 그들은 실제로 미국에 대한 복수를 위해서 찾아온 이들이었다.

미국에 통쾌한 복수를 할 수 있다는 명분하에 참여한 이들이었기 때문에, 이들이 원흉이 될 수는 없었지만, 복수의 칼날을 돌리기에는 충분했다.

미국 정부로서도 세계 대전을 일으킬 수는 없었기 때문에, 중동의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검거 활동에 들어갔다.

하지만 칼을 갈고 있는 것은 틀림없었다.

-------------------------------------------------

“성공이야. 이거야말로 대박이다.”

오카는 환성을 질렀다.

그녀의 시사라 보완 계획이 성공한 것이었다.

시사라의 출력을 올리는 것은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있었다. 굉장히 효율적이고 강력한 발전기임은 틀림없었다.

친환경적이고 원자력이나 핵융합에 비하면 위험성도 적었다.

원자로를 대체할 출력을 갖게 될 수 있을 것인가는 큰 관심사였다.

원자력 항모나 잠수함을 대체하는 것만이 아니라, 비행 전함에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사라를 키우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파충류도 아닌 양서류를 기본으로 했기 때문에 덩치가 커지는 것은 가능했지만, 먹이의 문제였다.

4미터급을 넘어서서는 먹이는 오직 인간이었다.

하지만 20미터급을 넘기면, 인간을 쓸어 마셔도 버티지 못할 정도로 연비가 나빠졌다. 20미터가 넘어가면, 인간을 먹는 것만으로는 성장은 커녕 유지도 불가능해졌다. 쌀알을 세서 밥을 지어먹는 것과도 비슷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20미터급의 시사라 엔진을 얻는 것이 한계였다.

그리고 혈정이나 세계수의 수액을 사용하면 50미터 급을 키워내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는 현자회와 프레이야 진영만이 가능한 방법이고, 실제로는 어느 이상은 키우는 것이 유리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50미터 급을 유지하기 위한 사료의 질과 양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뇌룡과 조련사라는 조합을 이용하기 위해서 현자회는 막대한 자원을 소모하고 있었다.

보통은 세계수의 수액이나 혈정을 사용해도 25미터급까지만 키우는게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오카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덩치를 키워봐야 유지비만 들어가서 연비만 나빠지는 것이었다.

팔뇽이들은 덩치를 줄일 수 있는데다가, 작은 체격에 비해서는 엄청난 전력량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이를 버릴 수 없다는 판단에, 그녀는 그걸 보완하는 방법을 찾았다.

그것이 바로 ‘동충하초’ 프로젝트였다.

그녀는 시사라에 세계수의 가지를 잘라서 이식하고 싹이 내리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세계수에서 나오는 신성력을 바로 전기로 변환하도록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원조 매드사이언티스트 답다고 해야 하겠네요.”

장수한은 오카가 벌인 일을 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녀는 팔뇽이들을 말도안되는 존재로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우주전함의 동력원이 확보된 셈이야. 메이플라워호에 일뇽이가 투입될 예정이지.”

세계수의 특성상 리베로의 동력원으로 쓸 수는 없었다. 다수의 사람들이 탑승하는 전함이 아니면 사용하기 힘들었다.

“새로운 시대가 열리겠군요.”

“그래. 오카가 벌인 일에 비하면 현자회의 뇌룡 같은건, 그냥 애들 장난인거지.”

조제성 역시 쓴 웃음을 지었다. 동충하초 계획으로 만들어진 전기 유닛은 말 그대로 세상을 바꿀 것이었다.

오카는 생체 조직을 이용한 원격 조종 바이오로이드를 만들었다. 작은 시사라의 모습을 한 이 바이오로이드들은 팔뇽이들이 자신의 몸 대신에 조작할 수 있게 만든 가상 시스템이었다.

팔뇽이들에게 가상현실을 직결시키는 것은 쉽지 않았기 때문에, 대신 조종할 수 있는 몸을 만들어 준 것이었다.

외부 육체에 익숙해지면, 인간형 육체를 만들어주는 것도 고려중이었다.

전함을 제어하는 엔진 유닛이자, 전함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시사라들의 아바타를 소녀로 만들 것인지 미녀로 만들 것인지를 두고 장수한과 호철, 찬균이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었지만, 남성으로 만든다는 선택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