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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404화 (404/497)

404화 영적피조물

“우리 교회는 정신적인 길잡이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뿐입니다.”

바티칸은 미국의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템플 기사단을 이단으로 규정한 과거의 결정을 지켜나가기로 한 것이었다.

“신앙의 자유를 존중하는 만큼, 이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잘못이 될 것입니다. 대신 오드와 프레이야에 대해서 족쇄를 풀어드리도록 하지요.”

바티칸에서는 곧 영적 피조물에 대한 의견을 교황청 교서에 살짝 포함시켰다. 영적 피조물 또한 인간처럼 선과 악의 사이를 오갈 수 있으며, 선한 영적 피조물을 배척할 필요는 없지만, 무조건 신뢰해서도 안된다는 것이었다.

하느님만이 절대적 선이며,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천사와 달리 선한 영적 피조물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신뢰하거나 배척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의견이었다.

“간단한 것을 꽤 복잡하게 써 놓았군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그래도 많은 양보라고 보셔야 합니다.”

이 ‘영적 피조물’이라는 개념과 배척하지 않아도 된다는 양보는 템플 기사단에게는 엄청난 혜택이었다.

그들은 신앙을 위해서 싸워왔지만, 오드의 힘을 빌린다는 이유 때문에 교회에서 이단으로 간주되어 왔기 때문이었다.

이 세상을 지옥에서 구하기 위해서, 죄인이 되는 길을 걸어왔다.

템플 기사단은 이 교회의 교서를 통해서, 급격히 세를 불릴 수 있는 길을 얻었다.

“영적 피조물이라. 준천사 정도로는 인정해 줬으면 좋았을텐데.”

일부 골수 템플 기사단들은 섭섭함을 감추지 못했다. 오드 역시 지상에 얽매인 존재라는 사실은 그들도 알고 있었다.

그는 죽음 저편의 세상을 알지 못하고, 절대자의 존재도 볼 수 없었다. 살아있는 자들과의 연결로 살아있기 때문이었다.

“영적 피조물로 족합니다.”

오드는 그렇게 말하며, 어깨의 짐을 내려놓은 표정을 지었다.

“프레이야 측은 어찌되었습니까?”

“그쪽도 반기는 듯 합니다. ‘서양 잡귀’를 자처했던 분이니 말이지요.”

오드는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 프레이야는 미의 여신이었다. 그리고 오드는 ‘미학’의 신이었다.

그는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아름다움을 찾아 헤매는 신이었다.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규정하고, 그것을 갈구하는 것 ‘미학’의 신이 미의 신과 연결지어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프레이야는 강제로 아스 신족에 포함되면서, 사랑과 미의 여신이 아닌 애욕과 음란의 여신으로 전락되었다.

아스 신족은 인간의 욕망에 바탕을 두고 있기에, 희생을 바탕으로 한 사랑이나, 그저 감탄할 수 밖에 없는 아름다움은 그들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프레이야는 그로 인해서, 애욕과 물욕, 성욕의 음란한 여신으로 북구 신화에 기록되게 되었다. 브리싱가멘이라는 목걸이를 위해 추한 외모의 난장이들에게 다리를 벌리는 창녀나 다름없는 존재로 전락한 것이다.

로키를 비롯해서 많은 신들이 프레이야와 성적 관계를 맺은 것으로 북구신화에 기록되어 있었다.

아름다움을 상실한 미의 여신을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오드가 떠난 것은 한편으로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오드가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은 바로 ‘신앙’이었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그를 매료시켰다. 인간을 사랑한 신이, 인간이 되어 그들을 위해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이 그에게는 아름답게 보였다.

인간들의 집합인 교회는 때로는 어리석기도, 때로는 추하기도 했지만 근본 가르침에는 사랑이 있었고 희생이 있었다.

그런 오드의 기억의 일부가 대대로 오드를 이어온 후계자들에게 남겨져 있었다.

‘프레이야가 아스의 악마들에게서 풀려난 것은 정말 다행이로군.’

오드의 기억과 현실의 프레이야에 대한 정보를 대조해보니, 미의 여신은 아스 신족의 마수에서 벗어나서 본래의 모습을 찾았다.

엘프라는 종족에게 성욕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도 한편으로는 그 과거의 반동일지 몰랐다.

욕망은 최소한으로 억누르고, 성욕은 존재치 않는 종족이라는 엘프가 과거의 상처를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었다.

오드는 프레이야를 조금 더 신뢰해 볼 생각이 들었다.

영적피조물이라는 명칭을 얻게 됨으로써, 교회의 배척대상에서 주의대상으로 변한 것도 영향이 있었다. 선한 영적피조물이라면 좋은 관계를 맺어봐도 문제가 될 이유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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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피조물’이라. 왠지 마음에 드는군요.”

원기 역시 조제성을 통해서 바티칸의 방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프레이야 추종자들 가운데에는 ‘영적 피조물’이라는 명칭이 여신의 신격을 떨어뜨리는 명칭이라고 불쾌하게 여기는 이들도 제법 있었다.

하지만 원기가 생각하기엔 맞는 표현이었다.

조물주와 맞먹는 존재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프레이야 추종자들은 프레이야의 휘광에 눈이 멀었지만, 원기가 느끼기에 아스 신족들은 인간들의 정신력을 빨아먹는 기생충 같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기회에 헬의 신관 말고 프레이야 여신님의 신관도 팔아먹기로 했습니다.”

조제성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헬의 신관에 목을 매는 국가들의 열기가 생각 이상이었다. 프레이야의 신관도 높은 값을 받을 수 있을게 틀림없어 보였다.

“판매라. 돈을 받고 판다는 것은 좀 곤란하지 않을까요?”

“물론입니다. 돈으로 파는 것보다는 좀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초인대전의 상품으로 거는 겁니다. 그러면 각 국가들은 이능자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출전시키게 되겠지요.”

“우리측 능력자들하고 비교가 안될텐데, 너무 불공정한 것 아닌가요?”

“괜찮습니다. 일반 리그와 국가 리그를 나눠놓을 생각입니다. 일반 리그는 자유 참가자로, 국가 리그는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소속 초능력자로 할 생각입니다. 물론 에인페리아급 강자들은 일반 리그를 통해서 올라가게 되겠지요. 국가 16강과 일반 16강이 합쳐져서 32강전을 벌이면 됩니다.”

“그러면, 신관들은…”

“예. 16강에 든 모든 이들로 정하고, 신관이 될 자격을 양보할 수 있게 하면 됩니다. 그러면 대회가 불타오를 수 있을 겁니다.”

프레이야의 신관들은 세계수를 관리하기 위해 파견되어 있었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국가 소속 이전에 프레이야측에 소속된 이들이었다.

헬 신관을 노린 것도, 국가에 충성하는 국가가 마음대로 써먹을 수 있는 신관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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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사인하도록 하게.”

화염을 다루는 능력자인 노리스 예거는 자신의 앞에 쓰여진 계약서, 아니 각서를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거기에는 자신이 16강에 들 경우, 프레이야 여신의 신관을 양보한다는 서약서였다. 대가는 제법 충실했다. 거액의 보수가 약속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탐탁치 않았다.

“프레이야 여신님의 신관이라.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그럼 출전 자격을 박탈할 뿐일세. 서약 없이는 출전할 수 없다는게 규정이야. 일반으로 출전하고 싶다면 막지 않겠네. 에인페리아들을 꺾고 16강에 오를 수 있다면 말이지.”

노리스의 표정이 더 일그러졌다. 나이트 엔젤들이 일반 부문으로 출전한다는 사실은 국가 소속 능력자들에게는 이미 알려져 있었다.

워싱턴 사태에서 나이트 엔젤들의 활약 장면은 상당수가 찍혀 있었다. 기본적으로 인간과 비교가 안되는 괴물스러운 신체 능력에 야생동물과도 비교를 불허하는 운동신경을 가졌다.

거기에다가 아주 예리한 감각에 ‘이능’까지 가지고 있었다.

평범한 인간의 몸에 ‘고작 이능’ 하나만을 가진 이들로서 그들에게 승리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특히 일반 리그에는 프레이야의 친위대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도 알려져 있었다. 정확한 인원은 모르지만, 네명에서 다섯명 정도 되는 최강의 에인페리아들이었다.

정령들을 통해서 얻은 정보로는 나이트 엔젤 소속의 전사들 따위로는 떼로 덤벼도 못당한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왔다.

“그런 표정 짓지 말게. 신관 자격은 양보받지만, 희망자에 한해서 프레이야의 신자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주기로 했네.”

“그렇습니까? 그건 좀 다행이군요.”

국가 소속의 능력자들은 대부분 자유 초능력자들이었다. 이들은 초능력을 각성한 후, 곧바로 국가의 안내로 ‘프레이야 개객기’라는 주문을 외운 이들이었다.

프레이야의 정신지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주문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그들도 눈치가 있는지라, 자신들이 무언가를 잃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프레이야의 정신지배는 사악해서, 마약처럼 중독성이 있는데다가 정신 지배를 당하면, 부모 형제도 죽이려고 들지 모른다고 했었던가요.”

노리스의 말에 노리스의 핸들러는 쓴 웃음을 지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 않나? 결코 벗어나려고 들지 않으니, 마약보다 더한 의존성이 있는 건 맞지.”

“부모 형제를 죽이려고 든다는 소리는 뭡니까.”

“프레이야 여신이나 엘프들을 공격하려고 들면, 죽이려고 들지도 모르지.”

“그럴 일이 없다는 점만 빼면 말이지요.”

노리스는 한숨을 쉬었다.

“조건을 추가합시다. 만약 16강에 못들어가더라도 프레이야 여신의 신탁을 받을 수 있도록 자격을 회복시켜 주는 것으로 말이지요.”

“좀 생각해 보도록 하겠네. 자리가 많은 것은 아니라서 말이야.”

프레이야 여신은 바니걸 통신이라고 장난스럽게 부르지만, 듣는 청취자들은 달랐다. 어떤 언어로도 표현하기 힘든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나마 가장 무난하다고 여기는 표현이 신탁이었다.

유기 능력자들 가운데는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끝까지 믿는 이들도 있었지만, 상당수가 자신들이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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