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잊혀진 신의 세계-407화 (407/497)

407화 마신의 각성

“오늘은 뭔가 큰 이변이 벌어질 것 같은 기분이군.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어.”

조제성은 독립된 VIP석에서 홀로 경기장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특별석에서 보시니 더 재밌겠네요. 젠장, 왜 이리 바쁜 거야.]

장수한은 파티 채팅을 통해서 투덜댔다. 벌여놓은 일들이 많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화성 탐사선 메이 플라워호의 출발 일정이 다가왔다.

탐사선에는 일뇽이가 첫번째 동력원으로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다. 탐사선에는 세계수와 게이트가 장착되어 있어서, 지구로 오갈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이를 이용해 교대로 우주선의 동력을 담당하게 되어 있었다.

탐사선은 지구와 교신이 가능하지만, 워낙 먼 거리를 항해하게 되어 있어서 인터넷의 사용은 극히 한정되어 있었다.

메이 플라워호에는 연료와 산소, 물과 식량 등이 실린 거대한 블록이 달려 있었다. 장시간의 항행을 위해 전체 크기의 80%에 달하는 블록이었다.

물론 실제 내용물은 달랐다. 차원 게이트를 통해서 물자를 보충할 수 있기 때문에 내부에는 프레이야 진영을 위한 공간으로 가득차 있었다.

“여신님께서 직접 격려차 오신다지?”

“나도 정말 기대가 되는걸.”

함선의 정비를 하던 직원들이 수근거렸다. 직원들 가운데는 수인족들을 비롯해서 바퀴벌레 같은 충인족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의 외모는 일반인들에게 혐오감이나 두려움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지만, 스텝들은 일반인들이 아니었다.

SF매니아인 그들에게 인간사이즈의 벌레 형상의 종족은 그들이 꿈꾸던 우주인들의 모습에 가까웠기 때문에 오히려 좋아하며 적극적으로 친해지려고 드는 이들이 많았다.

현대 지식을 가진 인간들과 인간을 능가하는 신체 능력을 가진 종족들이 힘을 합한 결과는 확실히 크다고 할 수 있었다.

“이젠 헛소리는 더 이상 안하겠지? 우리 보스?”

“헛소리라니, 내가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데. 라스보스만 아니더라도 멋진 우주전함이 될 수 있었을거다.”

호철은 오덕 기질을 발휘해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접목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비서인 마고가 잘라버렸다.

주로 전투용 무기들이나 탑재 전투기의 개발등이 그것이었다.

다크엘프인 마고는 공식적으로는 호철의 보좌였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라스보스, 혹은 조련사라고 불렀다.

“마고님의 이번 복장은 뭘까?”

SF 매니아들이 다수 포함된 개발팀들은 마고의 코스프레를 보는 것도 즐거움으로 삼고 있었다. 호철을 다루기 쉬워진다는 이유로 마고가 호철의 코스플레 취미에는 마지못해 응해주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여신님이 오시는데 설마 코스플레를 하겠어?”

“모르지. 우리 보스가 여신님께도 코스플레를 하시도록 만들지도. 친구라는 소문도 있고 말이지.”

“미친 놈.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그리고 주위좀 신경 써라.”

여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이종족들은 물론이고 많은 이들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지구 출신들이라고 해도 대다수는 여신에 대한 공경심이 강했다.

아니, 모든 이들이 공경심이 강한 편이었다. 다만 공경심의 방향이 달랐다. 친호철파라고 할 수 있는 오덕기질이 강한 이들의 방향성이 조금 다를 뿐이었다.

“야, 여신님이 오셨나보다.”

몇몇 바퀴벌레들이 재빨리 몸을 굽혀서 바닥에 엎드렸다. 그에 맞춰서 이종족들이 황급히 몸을 숙였다. 지구 출신의 인간들도 자연스럽게 몸을 숙였다. 여신의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존재감은 느껴졌다.

‘사인을 청할 분위기는 아니네.’

뒤늦게 합류한 한국인 출신 기술자 유대석은 자신의 기대가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를 깨달았다. 악수라도 해보고 사인받고 사진 같은 것을 찍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당돌하고 용감한 것이었다.

“정말 멋진걸. 예상했던 것보다 더 멋진 것 같다.”

‘여신님의 목소리다. 틀림없어.’

유대석은 자신의 귀에 들려오는 목소리가 프레이야 여신의 목소리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고개를 들면 프레이야 여신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왠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프레이야 여신의 존재감은 신관들의 신성력과 비슷하지만 훨씬 강하고 포근한 느낌으로 몸 속에 스미는 듯 느껴졌다.

“모두들 엎드리지 말고 편하게 하던 일들 하세요. 절 신경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프레이야의 목소리가 들리자, 유대석은 쓴 웃음을 지었다.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파문이 이는데 신경을 안쓴다는 것은 무리였다. 하지만 여신님의 명이니 신경쓰지 않는 척이라도 해야겠기에 그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는 여신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여신의 복장에 대해서는 감탄했다.

‘너무 잘 어울려서 당혹스럽네.’

여신은 성계철도 777이라는 애니에 나오는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계 인간과 비슷한 모습을 한 작은 소녀가 허름하고 챙넓은 모자에 망토를 두르고 여신의 손을 잡고 걷고 있었다.

마고는 퀸 사파이아스라는 여해적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호철은 차장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내 생각에는 탑재 전투기가 필요해. 그래서 타이파이터나 엑스윙, 혹은 볼이라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넌 어떻게 생각해?”

“오, 그거 정말 멋진 생각인데. 우주 전투기라 로망이지.”

‘말도 안돼. 정말 여신님께 반말을 하고 있어. 게다가 전투기 계획을 밀어붙이려고 드네?’

유대석은 보스가 여신의 친구라는 소문은 들었지만, 실감은 하지 못했다. 외국인들이나 이계인들이라 문화의 차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둘은 분명한 한국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주 전투기 탑재는 마고가 잘라버린 허무맹랑한 메이 플라워호 개발 계획 중 하나였다.

“제가 잘라버렸습니다. 예산과 시간, 효용성의 문제가 있습니다.”

마고가 담담하게 말하자, 여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고씨가 그렇게 판단하셨다면, 그게 옳겠지요. 네가 잘못했네.”

여신은 그렇게 말하고는 기계인간 소녀를 보고 잘다녀오라는 인사를 했다. 게이트는 두종류가 있어서, 근거리 게이트와 원거리 게이트가 있었다. 원거리 게이트는 좌표의 문제가 있어서, 상대 좌표가 고정될 필요가 있었다. 단거리 게이트는 거리의 제약은 있지만, 상대적으로 좌표의 고정은 필요 없었다.

도중에 설치되는 원거리 게이트를 통해서 연료와 자원을 보급받기로 되어 있었다.

“너희가 쓸 육체도 좀더 좋은 것으로 만들어 질 수 있을거야. 잘 다녀오렴. 일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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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육체가 어느틈에 여자가 되어 있네?’

원기가 우주 탐사선 메이 플라워호에 있을 무렵, 희연은 가면무투회에서 시합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상대의 능력에 걸려서 스스로가 남자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는 일종의 최면 능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꿈에는 ‘설정’이 존재하는데, 이 설정을 강제적으로 주입하는 방식의 최면 능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면 상대는 최면 상태에서 ‘설정’에 맞춰서 세상을 재구축하는 것이었다.

꿈에서 ‘설정’에 대해서 의문을 갖지 않듯이 최면에 걸린 상태에서는 ‘설정’에 대해서 의문을 갖는 것이 불가능했다.

희연은 자신이 남자이고, 어떤 이유로 여자 몸에 들어와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에 맞춰서 기억이 뒤죽박죽으로 정리되기 시작했다.

‘좋아. 혼란에 빠진 것 같네. 걸릴까 걱정했는데.’

젠트란은 마음을 놓고, 필드를 이동해서 무기를 주워들었다. 상대가 나이트 엔젤들을 마구 썰어버린 가장 강력한 플레이어라는 사실은 잊지 않고 있었다.

젠트란은 저격총을 주워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무시무시한 공포가 그를 덮쳐서 꼼짝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 된거지?’

젠트란은 죽고 싶은 마음이 들정도로 무시무시한 공기를 느끼면서 필사적으로 정신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스스로 죽고 싶어질 만큼, 두려움이 침습해 오는 것을 느꼈다.

젠트란 이외에도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자살하고픈 충동에 빠져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공포가 너무 강해서, 사람들이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에 죽은 이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의 눈은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존재에게 못박히듯 고정되어 있었다.

‘이런 꼼짝도 할 수 없군.’

조제성 역시 공포에 사로잡혀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고 희연의 눈길은 대전 상대인 젠트란이 아닌 조제성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희연의 손끝에서 암흑의 검이 만들어졌다. 상대를 소멸시키는 헬의 권능이었다.

그리고 그 검은 희연의 손짓과 함께 조제성을 향해 날아와서 조제성의 가슴을 꿰뚫었고, 조제성은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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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연의 아버지는 부모의 역할을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충실하게 해냈다. 그리고 희연이 아버지를 존경하고 따르고 싶어한 것은 그런 면에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희연을 여자라고 차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가치관은 심하게 구시대적인 면이 있었다.

가부장적인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갖고 있다는 것이 잘못은 아닐 것이었다. 그는 여성의 조신해야 하며, 여필종부해야 하고 남자는 호방하고 거침이 없어야 한다는 구시대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런 시대착오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을 남에게 강요하는 몰지각한 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더 희연은 거부감없이 무의식 깊숙한 곳에 아버지의 가부장적 가치관의 영향을 받았다.

그녀의 인내심이나 절제, 냉정함은 그런 가치관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었다.

모든 욕망이나 주장에 족쇄를 걸었다고 볼 수 있었다.

튼튼한 브레이크가 그녀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스스로를 남자라고 인식하면서, 그녀의 봉인된 욕망들을 제어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신격을 잃은 헬이 얌전히 공포영화를 즐기는 것도, 펜릴과 프레이가 게임을 즐기는 것도 사실은 이유가 있었다.

그들의 존재 원천인 인간의 욕망들이 차단되었기 때문이었다.

반 신족들이 인간 아닌 평화로운 이종족을 창조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신족에게 있어서 인간의 욕망은 에너지원이자, 강력한 마약과도 같았다.

오딘이 지혜의 신이면서도 지혜로운 모습보다는 탐욕스럽고 교활한 모습만 보여주는 것도, 인간의 욕망에 취해있기 때문이었다.

욕심이 눈을 멀게 하기 때문에, 지혜와는 거리가 멀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헬 코인이 성공적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인간의 탐욕과 결합한 헬 코인은 다수의 추종자를 만들었고, 죽고 죽이고 뺏고 빼앗기는 속에서 꽤 음험한 집착과 욕망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링크가 직접 연결이 되어있지 않고, 게임 캐릭터에 부여되어 있다고 하지만 희연이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절제되지 않은 욕망이 ‘남성화’된 희연에게서 터져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남성화된 희연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강한 집착이 그녀를 지배하고 있었다.

지옥의 여신인 헬로 각성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무슨 짓을 저지른거지? 난? 이게 무슨 일이야.’

조제성을 공격한 사실로 충격을 받은 희연의 의식이 깨어났다. 하지만 여전히 패닉에 빠져 있었다.

‘무슨 짓이긴. 방해물을 하나 치워버린 거지. 조용히 보고나 있어.’

‘넌 누구야. 대체 어떻게…’

‘난 너다. 다만 인간이 아닌 쪽이지. 넌 인간인 쪽이고.’

희연의 안에서 헬이 단언하듯 말했다. 그리고 그때 카즈키와 연하가 뛰쳐 나왔다. 희연의 폭주를 막기 위해서였다.

‘안돼! 그들을 소멸시키지마!’

‘내가 왜 내 귀여운 암컷들을 소멸시킬까. 멍청한 소리군.’

헬은 눈빛만으로도 두 사람을 제압해버렸다. 희연은 두 사람을 걱정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자 냉정을 되찾았다. 젠트란의 최면 능력은 희연 속에 있는 두 인격 모두에게 통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희연의 인격에서 헬의 신격이 각성했고, 거기에서 희연의 인격이 분리되어 나온 것이다. 최면은 희연에게서 헬에게 이어졌다.

덕분에 희연은 맑은 정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자신의 상태를 살펴보고자 했다.

그러자, 헬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헬 역시 그녀 자신에게서 만들어진 존재이고, 사실 희연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욕심이 많고 천박하고 야만스러운 놈이야. 흉보면서 닮는다더니.’

희연은 자신의 안에서 깨어난 헬의 존재에 대해서 인식했다. 통제불능의 마신은 결코 아니었다. 그녀가 읽던 기사문학이나 사무라이 의협담, 무협 소설 등을 읽으면서 만들어진 왜곡된 상식의 덩어리였다.

[조제성 사장님. 들려요? 이거 다 예측한 거 맞지요?]

희연은 메시지를 보냈다. 육체의 주도권은 헬이 쥐고 있었지만, 정신적 활동까지 완전히 봉인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헬의 각성이 일어났는데, 마침 원기가 없는 틈에 벌어졌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원기 곁을 떠나는 것은 정말로 한정된 시간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예측했다기 보다는 대비해 뒀다고 해야겠지.]

조제성의 답변이 들려왔다. 희연은 자신안에 각성한 헬이 완전히 미친놈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희연 자신이 예측한 것을 헬이 예측하지 못할 리는 없었다.

한번 을러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너 말이야. 하렘을 갖고 싶어하는 것은 알겠는데, 넌 남자가 아니야.’

‘헛소리. 난 남자다. 여자의 몸에 일시적으로 갇혀있을 뿐이야. 내 몸으로 되돌아가서 프레이야 여신님과 내 귀여운 첩들을 데리고 살 것이다. 이 더러운 세상을 바꿔주겠어.’

희연은 자신의 잠재의식 속에 이런 중이병 소년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하자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넌 남자가 아니야. 만약 남자라고 생각한다면, 지금 대전 상대부터 쓰러뜨려보시지.’

‘흥. 난 남자다. 일시적으로 여자 몸에 들어왔을 뿐이야.’

‘여자가 아니라면 고자겠지. 네 씨앗을 남길 수 없으니까.’

‘내가 고자라니! 말도 안되는 소리야.’

‘만약 그렇다면, 네 상대를 쓰러뜨려 봐. 저 상대를 쓰러뜨리면 네 본체가 어딨는지 알 수 있게 되겠지.’

‘좋아. 내 본체를 되찾겠어.’

헬은 희연의 도발에 넘어갔다. 최면에 걸린 자는 ‘설정’에 얽매이고 설정에 맞춰서 상황을 재구성한다. 그래서 최면을 부여한 자는 설정을 지키려는 본능 탓에 공격을 꺼리게 된다.

하지만 설정만큼의 절대성은 없었다.

희연, 아니 헬이 젠트란을 보자, 젠트란은 여전히 뱀앞의 개구리처럼 떨고 있었다. 그리고 헬은 가볍게 뒤통수를 쳐서 기절시켰다.

“되돌아 온건가?”

희연은 자신의 손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래. 말도 안되는 꿈이었어. 내가 남자일리가 없지.’

희연은 자신의 머리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헬 희연의 존재는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고 있었다. 다만 느낌이 달랐다. 번뇌 충만한 중이병 소년의 느낌이 아니라, 강한 집착을 가진 암사자나 거미 같은 느낌의 여성이었다.

‘뭐야, 내가 사라진 줄 알았던거야? 유감이군. 난 너야. 사라지지 않아. 그리고 육체의 주도권도 내쪽에 있어.’

희연은 자신의 뺨을 꼬집는 자신의 손에 쓴 웃음을 지었다. 헬 희연의 존재를 인식하자, 그녀에 대해서도 속속들이 알 수 있었다.

감정과 욕구에 치우친 헬 희연과 이성적이고 금욕적인 희연은 둘 다 희연 자신이었다. 그리고 희연 자신은 헬 희연이 사라지길 원하지 않았다. 동시에 이성적인 희연이 주도권을 잡기를 바라고 있었다.

희연 자신이 원하는 것은 헬 희연도 마찬가지로 원하는 것이기에 이성적인 희연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것이었다.

[흠, 다중인격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자리잡은 모양이군.]

[이 상태를 다중인격 시스템이라고 말하는 건가요?]

[그래. 정신적인 일그러짐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식이야. 다신교의 신들은 다중인격적인 형태로 많이 그려지곤 하지. 신자들의 자신들의 신에게 원하는 것들이 반영되는거야. 학문의 신이면서 전쟁의 신이라거나, 풍요의 신이면서 죽음의 신인 경우도 있지. 젠트란과 같은 정신계 이능에 대한 대비책도 되는 것 같다.]

[멀티 태스킹이라는 건가요.]

[그보다는 멀티 OS에 가깝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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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성은 한숨을 쉬었다. 헬 코인에 의한 신성력의 유입으로 인해서 희연에게 변화가 일어날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절제력이 강한 그녀라서 전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이는 위험한 것이기도 했다.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에는 작은 지진도 없다는 설이 있다. 에너지가 제대로 된 배출구 없이 지나치게 축적되면 과도하게 폭발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가면 무투회는 조제성에게 있어서 일종의 시뮬레이션과 같았다. 특히 정신계 이능을 가진 이들과의 전투를 통해서 어떤 변화를 기대한 것도 사실이었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되겠군.’

메이 플라워호가 출발하게 되면, 우주 탈출 계획도 순조롭게 완성되었다. 펜릴의 각성은 아직 멀었을 뿐더러, 성향 자체도 놀원과 맞아서 큰 위험성은 없었다.

‘오딘을 방치하는 것도 곤란하지만, 각 정부들의 움직임도 위험하지.’

조제성이 방임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기득권자들이 신성력을 이용한 기술들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미, 러, 일, 중 등의 강대국들과 세상을 돈의 힘으로 지배하는 드러나지 않은 지배자들에게 신성력을 이용한 기술들이 넘어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었다.

프레이야에게 얻은 기술을 군사적이나 사리사욕을 위해 사용하기 위해서 많은 난민들이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독재자들과 재벌들이 영생을 얻게 되면 세상은 암울해질 수 밖에 없었다.

‘남말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외면하기도 참 곤란하지.’

조제성은 ‘오딘의 지구 침공에 대한 대응 방안’이라는 제목의 최종 보고서를 점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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