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화 인류의 희망
헬희연의 명대사 읊기는 생각보다 큰 의미를 가진 것처럼 오해를 불러왔다. 아프리카 대륙을 자신의 땅으로 선언했다고 본 것이었다.
그들이 분석하기로는 신들은 헛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신들의 말은 ‘신언’으로 만약 어긋난다면, 그 신자들의 신앙을 심하게 훼손시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거 큰일이로군. 그대는 어떻게 할 생각이요?”
아폴로의 분석에 조제성은 쓴 웃음을 지었다. 아폴로 역시 헬희연의 무의미한 선언에 놀아나고 있었다.
“북연합과 상잔을 시키고 싶소. 북연합이 중동에 있는 원리주의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 같소이다.”
“그렇군. 그래서 바라는 것이 뭐요?”
“프레이야 진영에서 무리하게 헬과의 싸움을 짊어지지 않았으면 하오. 가능하면 우리에게 맡겨줬으면 좋겠소이다. 가능하면 힘을 빌려줬으면 좋겠소.”
조제성은 아폴로의 제안에 내심 미소를 지었다. 헬 여신이 등장한 이상, 프레이야 진영이 안움직인다는 것도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아폴로가 나서 준다면, 프레이야 진영이 굳이 나설 필요는 없었다.
‘아폴로의 영향력도 만만치는 않지.’
아폴로는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면서, 제법 뛰어난 외교적 능력을 보여주었다. 서방 지도자들과의 교섭을 성공적으로 해낸 것은 물론이고 템플 기사단과도 제법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중동을 좌지우지하는 과격파 원리주의자들은 왕족 및 재벌들, 그리고 서방정부들과의 관계가 꽤 않좋았기 때문에 아폴로는 그 틈을 잘 파고 들었다.
“그렇군. 하지만 서방측도 가만이 있지는 않을 듯 합니다만.”
“그건 어쩔 수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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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한님. 아폴로라는 인물은 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리디아가 수한에게 물었다. 조제성과 핫라인을 가진 인물은 드문 편이었다. 외교를 전담하면서 엘프들을 이끌어나갈 사명을 지닌 리디아로서는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음, 간단히 말하면 제성형님과 같은 과라고 할 수 있지.”
“에? 제성 사장님하고요?”
듣고있던 호철이 깜짝 놀랐다. 찬균을 비롯해서 다른 이들도 모두 놀라운 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놀라운 건가? 생각하는 스타일도 비슷하고 성향도 비슷하지. 전투력도 꽤 뛰어난 편이지? 현자회가 만든 최강의 사이보그라서, 전투력 자체도 최상위 급이야. 희연과 맞먹을 정도지.”
수한의 평가에 사람들은 당혹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희연의 전투력은 말그대로 최강이었다.
희연의 전투력에 제성의 지모라면, 무적의 만능 캐릭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가만 두면 안되는거 아닌가요?”
리디아가 당혹감과 살의를 표시했다. 제성 같은 인물이 적으로 돌아선다면 위험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아, 좀 착오가 있나본데, 희연급으로 강했기는 하지만, 지금의 희연만큼 강하지는 않아. 옛날의 희연급이지.”
희연은 다수의 이능을 각성했을 뿐 아니라, 헬 여신의 신격을 이어받으면서 그 능력 자체가 좀더 강화된 느낌이었다.
“그리고 제성형님하고 같은 과라고 말했지만, 지적 능력상으로 본다면 그래 희연양과 제성형님의 중간쯤 되지 않을까?”
수한의 말처럼 희연의 경우에도 꽤 지모가 있는 편이었다. 머리도 좋고 냉철하며 계획성도 있는만큼 제성도 어느정도 인정하고 있었다.
수한의 경우에는 제성이 생각하기 힘든 기상천외한 생각을 떠올리는 편이라, 단독으로는 그리 신뢰를 받는다고 하기는 힘들었다.
“에이, 뭐야. 양산형이쟎아.”
호철이 김샌다는 듯 말했다.
“무슨 소리야. 양산형이라지만, 기본 베이스가 대단한걸.”
“열화카피라는 건가.”
“짝퉁인거지.”
아폴로의 평가가 분분히 내려지면서, 리디아의 살기도 어느샌가 사라졌다. 뭔가 대단하지만, 놀랍지는 않다는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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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간지럽군. 누가 내 이야기를 하는 듯한 느낌이야.”
“지나치게 신경을 쓰시는 겁니다. 카드점이라도 봐 드릴까요?”
아폴로는 자신의 눈앞에 선 기품있는 미모의 여성을 보면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북마스터께서 친히 봐주는 카드점이라니. 영광이로군.”
“제 점은 단순한 취미입니다. 이능의 범주에는 들어가지 않지요.”
“점은 딱 그정도가 좋아. 의지하고 싶진 않군.”
현자회와 템플기사단에서 오랜 세월동안 발전시켜온 이능들이 존재했다. 최근의 현자회는 즉시 전력화시킬 수 있는 사이보그 기술에 의존하기는 했지만, 순수 이능을 발전시켜온 것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 순수 이능을 발전시켜온 이들 가운데 하나가 북마스터였다.
현자회에서 발견한 이능 중 하나는 구현술이었다.
인간의 강한 상상력이 대상을 실체화시키는 것이었다.
문제는 인간이 스스로 대상을 창조해낸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대부분의 구현술사들은 괴담을 듣고, 괴담의 대상을 구현화해서 그 대상에게 살해당하는 최후를 맞았다.
스스로 무언가를 창조하고 부리는 것은 되지 않지만, 괴담의 존재를 ‘상상하고 믿는’ 힘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현자회는 그 사실을 알게되고 나서, 스스로 창조해내는 이미지보다는 타인이 만든 이미지를 떠올리도록 구현술사들을 이끌었다.
그 결과 등장한 것이 ‘소환술’이었다. 실제로는 구현사들이 상상의 존재를 구현해내는 것이지만, 그것이 존재한다고 믿음으로서 실체화가 가능해지는 것이었다.
영화속 히어로는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지만, 자신이 무언가를 상상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것과 비슷했다.
구현의 이능이 현자회에 의해서 ‘소환술’로 진보했다.
그리고 현자회는 북마스터라는 특수 이능을 키우기 시작했다. 무언가에 미친 이들이 이능을 각성하기 쉬웠고, 예술 분야의 각성자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 가운데 북마스터라는 책제작자들이 탄생했다.
책에 그려진 그림을 본 사람들은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믿게 되는 것이었다.
평범한 이들은 그냥 상상의 산물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으로 끝나지만, 실체 구현능력을 가진 이들은 이 상상의 산물을 믿음으로써 실체화시키게 되는 것이다.
북마스터가 만든 책과 구현능력자의 결합을 통해서, 책속에서 환상의 존재를 구현해내는 이들이 소환술사였다.
현자회의 이능에 대한 연구는 좋아하지만, 지옥의 여신을 소환한다는 현자회의 목적에 공감하지 못하는 북마스터와 소환술사들을 아폴로는 자신의 품안으로 끌어들였다.
“미국이 움직이지 않을 듯 해. 다행이지.”
헬 여신의 아프리카 대륙 점령 선언은 여러가지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적어도 미국이나 러시아 같은 초 강대국들은 추이를 지켜보자는 쪽으로 방향을 잡게 만들었다.
괜히 잘못 건드려서 불똥이 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였다.
그리고 미국의 지원을 받는 남연방에서는 헬 여신을 경계하며 방치하는 쪽으로 방침을 잡았다.
그리고 북연합에서는 헬 여신과 공존할 생각이 없도록 여론을 조성했다. 헬 여신과의 전쟁이야말로 성전, 지하드라고 매수한 강경파들을 이용해서 선동을 시켰다.
성전이라는 말에 광신도들은 정의감에 고양되기 시작했고, 중동 측에서도 많은 지원을 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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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녀석, 꽤 능력이 있군.”
과격파 원리주의자들이 헬 여신과 성전을 벌이기 위해서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서방 언론들은 꽤 조용하고 조심스러웠다.
죽음의 미신을 믿는다는 사교집단과 북연합이 종교적 이유로 충돌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 서방 언론의 입장이었다.
실제로 헬 여신의 존재가 알려지면, 세상에 어떤 여파가 미칠지 모르는 만큼,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핵탄두에 대한 대비는 안해도 될 것 같아.”
“다행이로군요.”
장수한의 말에 조제성은 딱히 답변을 하지는 않았다. 장수한은 조제성의 묘한 반응에 나름대로 머리를 굴렸다.
핵탄두로 헬희연의 존재를 지워버리려는게 조제성의 계획일지도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강력한 힘이자 보루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선 아폴로를 지원해주도록 하고, 동시에 헬쪽으로 새로운 컨셉의 병기들을 지원하도록 하세.”
“그럼, 헬스파이더 ‘아난시’가 등장하게 되는 겁니까?”
“그래. 자네들의 계획대로 이뤄질걸세.”
‘아난시’는 헬희연의 분신이 될 마수였다. 펜릴과 헬은 거인족의 중심 신이었고, 마수를 제작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현대 과학기술과 결합시켜서 만들어지는 마수였다. 부족한 마력과 시간을 현대 기술로 매꾼 타입이라서, 마수로서의 성능은 그리 높다고 할 수 없지만, 움직이는 육상전함이라고 불러도 좋을 물건이었다.
헬의 세계수와 직결시킨 사뇽이가 전력 공급을 맞고 있었다. 숫자 4가 죽을 死자라면서, 수한이 강제로 배정했기 때문에 사뇽은 안타까움의 눈물을 금치 못했다.
거미여왕의 체조직을 배양해서 마수로 만들어서, 거미여왕이 신체의 움직임을 조종하고 다수의 사람들이 탑승해서 무기와 관리를 맡고 있었다.
찬균은 크툴루 신화에 등장하는 거미의 신 아틀락나챠의 이름을 원했지만, 각하되었다.
“넌 바퀴나 파리가 괜찮다지만, 희연은 어때? 네 안에 의식이 깨어 있지 않아?”
원기의 질문에 헬희연의 눈동자가 왼쪽으로 살짝 기울어졌다.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이었다.
“표면에만 나오지 않으면 괜찮다는데? 표면에 나오면 토하거나 기절하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 같네. 아니면 토한자리에 드러누울지도. 크크.”
헬희연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헬희연과 희연의 관계는 꽤 조화롭게 연결되어 있었다. 상황에 맞춰서 서로를 사용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헬희연과 희연의 뒤쪽에 존재하는 ‘진짜 인격’이 원기에게는 느껴졌다.
‘두가지 인격을 가졌는데 오히려 알기 쉬운걸.’
헬희연은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감추는 것이 없어 원기로서도 대하기가 편했다. 희연을 이해하는 것도 더 쉬워졌다. 원기도 희연도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드러내는데 익숙치 못한 편이기에 더욱 그랬다.
“이제 적으로 싸우게 되는 셈인가? 잘 부탁해.”
원기와 카즈키, 연하는 아폴로의 지휘로 북연합을 지원하는 리베로 부대에 참여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희연은 그들과 맞서서 싸우기로 되어 있었다.
바퀴벌레들과 파리들이 학살자들의 살아있는 머리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실제로는 극히 질이 안좋고 유명한 놈들만 살려두고 있었다. 대부분은 이미 저승으로 떠나간 상태였다.
수한은 그들의 신음소리를 녹음해서 배경음악으로 스마트폰에 심어서 헬 여신의 알현실에 깔아두었지만, 살아있는 머리통들은 그것을 진짜로 생각했다.
머리통을 살려두는 것도 신성력이 소모되기 때문에 모두 다 살려둘 이유는 없었다. 살아있는 머리통들은 자신들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가끔은 핥기도 하는 거대 파리와 바퀴들 때문에 지옥을 맛보고 있었다.
“뭐하러 알현실을 이렇게 꾸미는 겁니까? 디자인이 악취미적인 것은 그렇다쳐도 말이지요.”
리디아가 물었다. 장수한과 오덕들은 헬 여신의 알현실을 어떻게 하면 더 지옥스럽게 꾸밀 수 있을지에만 정신이 팔려있었다. SF를 좋아하는 양덕들이 대거 참여한 덕분에 온갖 기괴한 디자인이 현실화 되고 있었다.
취향이 좋아고는 할 수 없는 헬희연까지 동조한 덕택에 폭주를 막기가 쉽지 않았다.
“헬 여신도 슬슬 외교를 해야 할 테니까. 영상통화를 위해선 필요하겠지.”
아폴로 덕분에 헬의 존재가 국제사회에 통용될 수 있게 되었다. 등장과 동시에 빗발치는 공격을 받을거라고 예상했던 조제성으로서도 생각치 못한 결과였다.
조제성의 특기는 모든 것을 예측하는 것보다는, 예측못한 일에 발빠르게 대응해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는 것이었다.
헬 여신이 국제사회에 등장해서 거래를 할 수 있다면, 그것도 재미있을 거라는게 조제성의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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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거미요괴에 대해서 우리 당은 빠르게 박멸하는게 좋다는 판단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서기장 각하. 이 기회에 우리 인민의 힘을 보여주도록 하겠습니다. 조만간 공해상에 있는 함선을 통해 핵미사일을 쏘도록 하겠습니다.”
종교에 대해 가장 민감한 세력이 조제성과 아폴로가 모르는 곳에서 급격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바로 중국이었다.
중국은 공산주의로 인해서 종교 탄압이 극심한 나라였다. 그리고 종교와 많은 분쟁을 벌이고 있는 나라이기도 했다. 헬 여신이 등장하자, 위기감을 강하게 느꼈다.
기존의 종교를 가진 이들은 헬여신이 나타났다고 해도, 그 영향력은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반감을 갖고 적대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종교가 없는 이들에게는 달랐다. 헬 여신은 죽은자를 살리는 정도가 아니라, 죽어야 정상인 이들을 죽지않게 만들 수 있었다.
잘못 중국에 퍼지기 시작하면 급격하게 세력을 형성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다.
북극은 물론이고 남극에도 핵잠수함들이 다수 자리잡고 있었다. 누가 쐈는지를 확정하기는 쉽지 않았다. 설사 불발이 나서 탄두에 메이드인 차이나라고 써있다고 해도 할 말은 있었다.
“이 기회에 회교놈들에게도 뜨거운 맛을 보여주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말은 쉽게 하면 안되지. 다만 거미요괴 퇴치에 피해를 볼 죄없는 ‘회교도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할 필요는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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