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화 조제성의 본심
“전적으로 아폴로를 밀어주자는 거로군요.”
원기는 조제성의 의견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를 신뢰할 수 있을까요?”
“그의 능력은 신뢰할 수 있습니다. 저처럼 머리가 꽤 나쁜 편이라서요.”
“조사장님께서 머리가 나쁘다니, 농담치고는 꽤 설득력이 없군요.”
“나쁜 생각만 쏟아져 나오니, 머리가 나쁜게 틀림 없지요. 녀석도 용의주도하고 교활하지요. 녀석이라면 충분히 잘 싸워줄 겁니다. 그리고 녀석 역시 오딘과 공존은 불가능합니다.”
조제성은 자신있게 말했다. 아폴로는 잘났지만, 독선적이었다. 남의 밑에 들어가서 만족할 사람이 아니었다.
남의 밑에 들어갈 수 없는 놈을 컨트롤하는 것은 의외로 쉬웠다. 밑에 두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전쟁 좋아하는 놈들끼리 열심히 싸우라고 냅두고, 우리는 우주로 떠나면 됩니다. 우주라는 넓은 영역이 있는데 왜 박터지게 싸워야 합니까.”
전장이 지구가 된다면, 지구는 의외로 쉽게 몰락할 수 있었다. 원자력 발전소들만 전부 폭파시킨다면, 인류는 신족들에게 의지하지 않고는 못살게 될 터였다.
인류가 아스가르드의 신족들과 충분히 싸워준다면 더 이상은 바라지 않았다.
조제성은 현 인류나 세계 정복에 대해서는 조금의 관심도 없었다. 설사 세계 정복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생각과 가치관이 다르고 감정이 다른 인간들을 끌어안는 것이 얼마나 골치아픈 일일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마음이 맞을 사람들만 추려서 우주라는 공간으로 진출하는 것만큼 매력적인 일은 없었다. 조제성의 목적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평화롭게 유혜서와 영겁을 사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자기 싫다는 사람들 강제로 지배하는 악취미는 조제성에겐 없었다.
세계 정복도 아스가르드 점령도 원치않는 조제성은 대신 전쟁을 주재해 줄 존재를 찾았고, 그가 바로 아폴로였다.
“일단 오딘의 압제하에 고통받는 이들을 해방시킨다는 명분이 있으니, 병력을 동원하기는 쉬울 겁니다. 미국은 이번 기회에 일본군을 대거 투입할 모양이더군요. 집단자위권을 최초행사하는 만큼 아스가르드가 거부감이 없을 거라면서 말이지요. 잭슨 대통령도 만만치 않은 모사꾼으로 보입니다.”
“사무라이 정신으로 특공해라. 너희들의 희생으로 미국인의 목숨을 지키겠다. 이건가요?”
“그런 흐름으로 가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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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는 자신의 적인 북아프리카 연합을 군사적으로 지원했다. 이는 어디까지나 헬 여신과 북아프리카 연합을 효과적으로 상잔시키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런 의도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북연합의 고위층을 잘 구어삶고 있었다.
“아직은 헬의 군세를 물리쳐서는 안됩니다. 완벽하게 준비가 갖춰진 뒤에 일거에 밀어붙여야 합니다.”
아폴로는 여러 국가의 정상들과 영상회의를 향해 말했다. 그의 의도는 전쟁이 빨리 끝나서 북연합과 광신자들의 피해가 줄어드는 것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언가 생각이 있소?”
“예. 저는 용병부대를 만들고자 합니다. 리베로들을 사용한 용병부대입니다. 헬 여신의 부대를 상대로 실전을 경험해서 리베로들을 개량한다면, 차후의 아스가르드 공략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정령을 이용한 높은 운동성과 시사라 엔진이라는 이상적인 에너지원이 확보되면서 리베로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것이 분명한 무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거대한 몸체로 인간을 능가하는 민첩한 움직임에 활동시간까지 연장된만큼 리베로는 새로운 차기 주력병기화 되어가고 있었다.
프레이야가 제공하는 정령의 문제는 있었지만, 현자회의 기술로 만들어지는 인간의 영혼, 팬텀으로 대체해 나갈 생각도 있었다.
죽기 전에 계약을 통해서, 사후에 조국을 위해 충성할 것을 조건으로 팬텀화하는 것이 시작되었다.
1년 계약으로 리베로에 적응하는 능력을 보고, 계약 연장을 해주는 방식이었다. 죽어서 사라지거나 알수없는 저승으로 떠나는 것을 늦추고 현세에 머무를 수 있다는 것은 매력이었다.
컴퓨터의 조작이나 인터넷 검색, 게임등도 즐길 수 있었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영상통화 등을 즐길 수 있었다.
장기적으로는 팬텀이 일상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인간 사이즈의 휴머노이드도 제작될 예정이었다.
유족들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줄 수도 있고, 그들과의 연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팬텀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팬텀 프로그램은 사후에도 할 수 있지만, 생전에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안락사를 원하는 이들의 신청도 많았다.
팬텀화되는 것을 죽음으로 보느냐, 아니면 인공뇌를 이식해서 살아가는 것으로 보느냐가 애매했다. 각 정부는 이 점을 이용해서 팬텀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대신에 다수의 말기 환자들을 팬텀화 시켰다.
살아있는 인간의 팬텀화는 인간을 죽이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혈정을 부가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했다.
정령의 운동신경이 기본 100이라고 할 때, 리베로의 성능은 80에서 60정도에 머물렀다. 그리고 팬텀들은 평균 50이지만 일부 인간들은 70가까이까지 발휘 가능했다.
팬텀의 훈련과 리베로의 성능 개선, 리베로용의 병기와 전술, 전법 등의 개발은 모든 나라가 군사력을 기울여 행하고 있었다.
“그렇군요. 리베로의 문제라면 저희도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 부대에서 사용할 정령과 시사라 엔진을 지원하도록 하지요.”
“정령과 고성능 시사라 엔진을 마음껏 지원받을 수 있는 리베로 실전 테스트 부대가 되겠군요. 일단 용병 부대로 꾸밀 생각입니다. 대원들의 선출에는 각국 정부의 요청을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다국적 용병들의 리베로 부대라, 생각보다 괜찮을 듯 싶군요.”
북연합은 테러리스트들에 가까운 광신자들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많은 이들의 골치거리이기도 했다. 호감을 가진 강대국 정부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리도 동의하오.”
“만약, 자네가 우수한 지휘력을 보여준다면 아스가르드 해방전쟁에도 중요한 역할을 맡길 수 있겠지.”
“그런데 리베로 사용에 중요한 문제가 있지 않았나? 성역이라는 것.”
잭슨 대통령의 발언에 모두의 시선이 조제성에게 쏠렸다. 조제성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일단 보안장치는 만들었습니다만,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저레벨 성역에서 약 삼십분, 중간레벨 성역에서 약 삼분 가량 버틸 수 있습니다. 생산에는 신성력이 소모되므로 대량 생산까지는 어렵습니다. 기술 제공은 해드릴 테니, 그 문제는 어느정도는 ‘알아서’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조제성은 신성력에 해당되는 자원을 각 국가들이 자체 조달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일부 국가들은 이 자원의 확보를 위해서, 안락사를 도입하는 법을 제정하고 있었다. 물론 사형확대나 암거래를 통해서 확보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오만.”
“성역 내에서 싸울 수 있다는 정도가 아니라, 도망칠 시간을 버는 정도도 될지 의문이요.”
모두가 한마디씩 했다. 그들 역시 성역이라는 사기적 공간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성역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성역이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동할 수 있는 성역은 극히 제한적입니다. 성역은 3가지 방식으로 구현이 가능합니다. 하나는 신관들입니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성역은 미약해서 신들을 상대하기엔 좀 어렵지요. 또 하나는 신들의 분신이라고 해야할지, 나뉘어진 본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세계수입니다. 문제는 세계수의 경우에 말 그대로 나무라서 이동에 제한이 있습니다. 세계수를 움직이려면 최소한 수십의 신관이 포함된 최소 수백의 상주자가 거주할 수 있는 탈 것이 필요합니다.”
조제성의 입에서 나온 최소 수백의 상주자라는 말에 사람들이 반응을 보였다. 지상의 탈 것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전함이나 항공모함 같은 것이 필요하겠군.”
“쉬운 것은 아니지요. 원활히 움직이려면 충실한 신자 수가 네자리는 필요합니다. 전투용 무기에 그런 인원을 태우기는 쉽지 않습니다. 마지막 방법은 신들의 현신입니다. 신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성역을 갖고 있습니다. 범위는 좁지만, 성역의 질은 대단히 높습니다만, 현신한다는 것은 인간의 육체와 유사한 것으로 강신하는 것이어서, 위험도가 높아지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수의 묘목과 결합하면 성역의 밀도와 범위가 비약적으로 커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상대하는 헬의 거미괴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지?”
“성역과 성역을 부딛치는 방법이 가장 좋겠군요. 이를 위해선 우리 측에서도 여신을 투입하지 않으면 안됩니다만, 당연히 프레이야 여신님께서 나서지는 않으실 겁니다.”
“남은 것은 굴베이그인가. 그리고 오드가 있겠군.”
사람들의 시선이 템플 기사단의 대표에게 잠깐 쏠렸지만, 곧 조제성을 향했다.
“굴베이그 여신과 세계수의 묘목을 합치면, 그럭저럭 헬 여신과 싸울 틈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서는 지상을 이동할 수 있는 거대 요새가 필요합니다. 지상전함에 가까운 것이 필요해 지겠지요. 작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협조자로 잠시 빌려드릴 수는 있습니다.”
펜릴, 헬, 프레이 등의 존재는 비밀로 엄중 간수되고 있었다. 템플 기사단에 있는 오드는 반씨앗 상태였지만, 최근에는 완전 각성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여론이 템플 기사단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었다.
프레이야 여신은 신뢰할 수 있지만, 그 조직은 역사도 짧고 실체도 불분명했다. 조제성이라는 두뇌는 유능하지만 그렇기에 더 위험하게 느껴졌다.
반면 템플 기사단은 역사의 뒷편에서 암약해 온 집단이지만, 그 실체에 접근하기는 더 쉬운 편이었다.
그런만큼 오드의 존재가 지구측으로서는 비장의 카드로서 중요하게 느껴졌다.
“프로젝트명은 라그나로크, 신들의 운명으로 잡았습니다. 그들은 종말이라는 숙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아스가르드 해방 전쟁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약 3년간의 시간동안 병기와 전술 개발에 힘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아폴로가 힘있게 말했다. 조제성이 아폴로와 손을 잡은 이유 중 하나가 그것이었다. 아폴로는 헬과의 전투가 빨리 끝나기를 원하지 않았다. 최대한 전쟁을 조종해서 북아프리카 연합의 전력을 소진시키길 원했다.
그리고 조제성의 목적은 화성 데이모스 개발을 위한 시간을 버는 것이었다.
해방 전쟁의 이상적인 시기는 데이모스와 함께 우주 저편으로 떠나는 시기가 될 터였다. 데이모스는 관측 가능한 화성의 위성이기 때문에,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는데는 무리가 있었다.
해방 전쟁은 데이모스를 끌고 신세계로 진출하는 것을 방해할 이들을 끌어넣을 진흙탕이 될 터였다.
‘그건 그렇고, 인간들도 참 대단하군.’
회의에 참가한 이들 가운데 다수가 헬 여신에게 은밀히 접촉을 시도해 왔다. 아직까지 세계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미국 조차도 손을 내밀어 온 것이었다.
만약 오딘이 지구를 침공하더라도, 세계가 하나가 되어 오딘과 싸울 일은 없어보였다. 물론 오딘이 아주 멍청해서 ‘내가 지구를 정복한다’같은 대사를 자랑스럽게 떠든다면 이야기는 달라질지 몰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사리사욕을 위해 오딘측에 붙을 이들이나 집단은 넘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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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베이그의 모습을 본 원기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그녀의 눈동자를 마주 볼 수가 없다는 느낌이었다. 눈동자에는 원망의 빛은 없었지만, 제발 저린다는 감각이 무엇인지 절절히 느꼈다.
“오랜만이구나.”
굴베이그는 조용히 달려와서 다리를 꼭 끌어안았다. 원기는 한숨을 쉬며 허리를 굽혀서 굴베이그를 안아주자, 목을 꼭 끌어안으며 품에 파고들어왔다.
프레이야가 죽은 것으로 되어 있는 만큼, 원기는 아스가르드에 갈 수가 없었다. 희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펜릴의 힘을 가진 놀원도 갈 수 없는 것은 똑같았기 때문에, 아스가르드의 프레이야 진영을 수호할 수 있는 존재는 굴베이그 뿐이었다.
“더 이상 떨어져 있으면,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녀를 곁에서 보좌해온 아더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굴베이그를 곁에서 지켜온 그로서는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는 듯 했다.
굴베이그는 종속신이기도 하지만, 전대와 단절되고 씨앗으로부터 탄생된 유아신이었다. 원기의 복제가 아닌 독립된 존재로서 성장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역으로 원기의 도움이 필요했다.
희연의 폭주 이후로, 아스가르드에 투입할 여력이 부족해 진 것은 사실이었다.
“이거 왠지 죄송스럽군요.”
“아닙니다.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여신님을 위해서 싸울 수 있다는건 제 삶의 기쁨입니다.”
아더는 원기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미소녀가 거한의 손등에 무릎을 꿇고 입을 맞추는 것은 꽤 어색해 보이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키가 안맞았기 때문에 원기는 굴베이그를 안은채 허리를 굽혀야 했다.
“굴베이그가 없는 동안 아스가르드를 부탁드려요.”
“제게 맡겨 주십시오.”
아스가르드에 시사라 엔진과 그에 맞춘 신형 리베로의 보급을 할 수는 없었다. 그 대신 채택된 것이 몬스터를 사이보그화한 리베로였다.
거미여왕이 낳은 무인격 벌레인 드론의 신경조직을 적출하고, 껍질과 근육을 해체해서 인간형을 만들고 정령칩과 조종석을 장착한 물건이었다. 바이오닉 리베로라는 명칭으로 개발된 물건이었다.
덩치는 작지만, 민첩함과 유연함은 기계 이상의 물건이었다.
문제라면 대량생산이 어렵다는 것이고, 지구에는 밝히기 어려운 테크놀로지의 일종이었다.
아더와 란슬롯, 그리고 놀제로와 카즈키 츠루기를 위한 네기의 기체가 만들어졌을 뿐이었다.
“라그나로크 프로젝트 담당은 원기님이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조제성의 말에 원기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긴장한 증거였다. 굴베이그의 보호와 아폴로와의 조율도 원기의 몫이 되었다.
아폴로와의 줄다리기는 꽤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있었다.
자칫 호갱으로 전락한다면, 이리저리 불려다니며 전력을 소모할 가능성도 있었다.
“리디아 양을 잘 이용한다면, 상황을 쉽게 끌어갈 수 있을 겁니다.”
“그렇군요. 잘 해보도록 하지요.”
원기는 굴베이그와 함께, 아폴로의 협력자로서 북아프리카 연합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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