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7화 에어리어 제로
“호오, 그분이 여신님인겁니까? 좀 예상 밖이군요.”
아폴로는 원기의 팔에 안겨서 목에 꼭 달라붙어 있는 어린 소녀의 모습을 보면서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의심하는 겁니까?”
“아니, 그럴리가요. 여신님의 기운은 제게도 느껴지고 있습니다. 절 아군으로 봐 주신 것 같군요. 다만 소녀의 모습은 좀 의외일 뿐입니다.”
“좀 많이 어리긴 하지요.”
원기는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 주었다. 굴베이그는 기분좋은 표정으로 목을 꼭 끌어안았다.
“좀 불경스럽게 보일지 모르지만, 마치 사이좋은 부녀같습니다.”
“제가 보호해야 하는 역할이니, 어쩔 수 없지요.”
아폴로의 인상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위험한 남자라는 느낌이 없지는 않았다. 조제성의 경우에는 지나치게 냉정해서 오히려 안심감을 주는 느낌이었다면, 아폴로의 경우에는 강렬한 불꽃과 차가운 냉기가 공존하는 듯 했다.
아니 뜨겁게 불타오르는 날카로운 검을 보는 듯도 했다.
‘조승상과는 또 다른 형태의 리더쉽인가.’
원기는 아폴로를 보면서 쓴 웃음을 지었다.
“아시다시피, 아프리카는 북연합과 남연방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정치체제 보다는 종교에 의한 분리라고 볼 수 있지요. 북쪽의 사막 지역을 중심으로 이슬람 세력이 뻗어왔다면, 해안지방과 남쪽은 기독교 세력이 여전히 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헬 여신은 현재 나이지리아 북부 지역을 장악하고 있지요. 운이 좋다고 해야할지 나쁘다고 해야할지, 북연합과 남연방의 경계에 나타난 셈입니다.”
원기는 묵묵히 듣고 있었다. 실제로 헬이 등장한 위치는 그 점을 고려해서 선택된 곳이었다. 인구밀도가 적고 집중 공격을 받지 않을 위치를 선택했다. 북연합의 특성상 외교적으로 고립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남연방과의 사이가 극단적으로 안좋았다.
현재 헬 여신은 남연방과 물밑 거래를 통해서, 군수물자를 지원받고 있을 정도였다.
“우선 굴베이그 여신님은 함부로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희 쪽의 히든 카드라고 해야겠지요. 비장의 수단인만큼 함부로 쓸 생각이 없습니다.”
“물론입니다. 우리 측에서도 굴베이그 여신님이 위험에 노출되는 것은 피하고 싶군요.”
아폴로는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굴베이그 여신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교섭의 전권은 눈앞의 거한이 쥐고 있다고 보면 되었다.
“굴베이그님은 어쩔 수 없지만, 우리 쪽에는 전력이 부족합니다. 따라서 용병 기동 부대를 하나 맡아서 움직여 주셨으면 합니다.”
원기는 아폴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사전에 이야기된 범주의 내용이었다.
에인페리아의 전투능력은 지구측 전력으로서도 간과할 수 없는 능력이었다.
“명목상 우리는 북연합을 지원하는 독립여단입니다만, 용병부대라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용병 취급이라고 해서 험한 대접을 받지는 않습니다. 외부의 조력이 북연합으로서도 중요하니까 말이지요. 짬타이거님은 그 가운데 독립대대를 맡아주시면 됩니다.”
원기에게 맡겨진 것은 제로 스쿼드론이라는 명칭의 대대였다. 리베로는 전차와 마찬가지로 1개 소대가 세 대에서 네 대, 1개 중대가 열대로 이뤄져 있었다.
독립 대대는 리베로 2개 중대, 근위병 1개 중대, 정비병 2개 중대로 이뤄져 있었다.
“굴베이그의 보호와 리베로 중대를 이용한 지원이 주된 임무가 되겠군요.”
‘굴베이그라, 확실히 프레이야의 에인페리아로군.’
아폴로는 원기를 눈여겨 살폈다. 굴베이그를 여신으로 공경한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냥 보호 대상으로 여기는 느낌이었다.
‘미스터 조는 프레이야 여신 외에는 가장 강력한 발언력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으니. 저자도 미스터 조보다는 발언력이 세지 않겠지. 그럼 굴베이그 여신의 위치도 이해할 수 있겠군.’
아폴로는 원기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원기와 굴베이그의 위치를 파악했다. 조제성에게 언질을 받은 것이 분명해보였고, 조제성과의 합의 사항을 건드릴 생각은 없어보였다.
그리고 굴베이그에 대한 배려를 살펴볼 때, 그녀의 안전은 중요시하지만 그녀의 의견은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굴베이그 여신의 존재가치와는 별도로 영향력은 적은 것으로 보이는군. 그냥 어린이 취급을 받는 것이 분명해 보이니.’
“제가 알아둬야 할 사항은 더 없는 겁니까?”
“그렇군요. 대부분의 세부 사항은 보내드린 서류를 검토해 보시면 될 겁니다. 비밀을 엄수해야 할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헬 여신에게 협조하는 용병 조직은 제 입김이 닿아 있습니다. 그런만큼 그들과 전투가 벌어지게 된다면, 피해를 최소한으로 해주셨으면 좋겠군요.”
“전투 중에요?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당신이니까 말씀드리는 겁니다. 굴베이그 여신을 지키는 최정예 부대라면 말이지요. 물론 상대는 전력으로 공격해올 것이겠지만 말이지요. 재량껏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우리 부대를 제외한 아군의 피해도 최소한으로 막아주십시오.”
“그건 의외로군요. 분명 당신의 진짜 목표는 북연합과 헬 여신의 공멸이었을텐데요?”
“그걸 위해서 피해가 적어야 하는 겁니다. 최대한 성대하게 한방으로 모두를 끝내기 위해서 말이지요.”
원기는 아폴로에게서 두려움을 느꼈다. 선의와 악의가 함께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한데 어우러져서 광기로 표출되고 있었다. 분명한 이상, 그리고 내재된 복수심, 수단을 가리지 않는 냉철함, 엘리트로서의 교만함과 독선까지 갖추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가능한 범위 내에서만 협력해 드리지요.”
“그거면 충분합니다.”
원기는 아폴로와 악수를 하면서 복잡한 기분이 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조제성이나 아폴로 같은 인물들과는 사는 세계가 다르다는 것을 절감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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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유, 장난 아닌데.”
“여신의 근위병들이야. 우습게보지 않는게 좋을걸.”
“누가 시험해 본 사람이라도 있는건가?”
“글세. 누가 먼저 총대를 맬려고 들겠어. 저들의 눈빛을 봐.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지.”
제로 스쿼드론, 원기가 맡은 0대대는 20명의 리베로 조종자들과 정비팀, 그리고 엘프들로 이뤄진 근위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기본적으로 정비팀은 다수의 국가에서 보내진 정예 엔지니어들이었다. 실전 테스트와 전술 정보를 얻기 위해서 보내진 이들이었다. 다양한 신무기들이 시험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실전에 참여하는 리베로 조종사들은 절반 가량은 돈에 목숨을 파는 용병들이었지만, 절반은 각국의 엘리트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굴베이그를 호위하는 제로 대대는 각국에서 파견한 인물들이었다. 실제 용병을 했던 이들도 있지만, 그들 역시 각 국가에 고용된 이들이었다.
이들의 관심은 에인페리아의 전투력이었다.
굴베이그 여신이라고 하지만, 프레이야의 종속신이고 프레이야 진영의 전력을 그대로 쓰고 있기 때문이었다.
원기, 연하, 리디아를 제외한 열일곱명의 리베로 리거들은 모두 정보수집의 임무를 받고 훈련받은 이들이었다.
“예쁘다곤 하지만, 눈빛들이 정말 맘에 안들어.”
게임 캐릭터라고 하지만 기본 엘프인 이들의 최우선 임무는 프레이야 여신의 호위였다. 굴베이그와 리디아, 연하의 보호도 임무에 포함되어 있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최우선 순위는 프레이야였다.
이들은 원기가 프레이야라는 사실을 알고있는 이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만큼 살기가 대단했다.
기본적으로 엘프들은 인간에 대해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인간이 만들어낸 부산물에 대해서는 유용하다고 생각하지만, 소에게서 가죽을 얻는 것이나, 돼지에게서 고기를 얻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악어가죽제품을 좋아한다고 악어를 좋아하라는 법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살육에 익숙해져있고, 인간과는 다른 존재이기에 인간을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 엘프들은 위험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고, 본능적으로 분위기에 민감한 이들은 몸을 사릴 수 밖에 없었다.
“이대로는 정보 수집이 안되겠는걸. 내가 먼저 나서 볼까.”
“근위대에게 시비를 걸었다간 목숨이 몇 개 있어도 모자랄거다.”
금발벽안의 사내, 애슬리는 어깨를 들썩여 보았다. 그의 능력은 상대의 의도를 읽는 능력이었다.
상대의 생각을 읽는다기 보다는 상대가 어떻게 움직일지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전투에 있어서 사기에 가까운 능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의 신체 역시, 약물로 강화되어 있었다. 미국이 입수한 현자회의 기술이었다. 독약에 가까운 강화제를 대거 투입하고 현자회에서 만든 해독 포션을 통해서 부작용을 제거하는 방식이었다.
그로 인해서 그의 육체는 인간을 초월하는 강함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에인페리아를 상대로 그것도 엘프를 상대로 우위를 점할 정도는 아니었다.
‘어느정도나 상대가 될지는 확인을 해둘 필요가 있지.’
“방법은 있어. 대장이다.”
“졸개도 상대가 안되는데 대장 에인페리아를 상대로? 너 미쳤구나.”
“흔히 나오는 이야기 아냐? 대장으로 인정받고 싶으면 실력을 보여봐라. 용병들은 실력이 최고다. 이러면서 도전하는거지.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죽진 않겠군. 한번 해보던가.”
애슬리는 내심 승리를 기대하고 있었다. 일대일 전투라면 아무리 현란한 엘프 에인페리아라도 상대해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대장 등장이다. 자칭 ‘타이거’로군.”
동료 로시의 말에 눈을 돌린 애슬리는 입을 벌렸다. 엘프와 타이거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탄탄한 몸을 가진 근육질의 거한이 나타난 탓이었다.
‘타이거보다는 고릴라가 어울릴지도 모르겠군.’
“어이, 대장.”
애슬리는 건들거리는 태도로 슬쩍 몸을 일으켜서 소녀를 품에 안고 걸어오는 거한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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