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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418화 (418/497)

418화 살아있다는 것

“이름이 뭐지?”

“내 이름은...아니, 코드 네임이라고 해두지. 드래곤이다.”

애슬리는 상대가 타이거라는 별칭을 사용하는 만큼, 멋대로 더 강력해 보이는 드래곤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그리고 그 의도는 원기에게도 전해졌다.

‘코드 네임이라, 이름 외우기도 귀찮은데 잘된건가.’

“좋아. 드래곤. 그런데 승부가 된다고 생각하는건가?”

“붙어보지 않으면 모르지. 한번 실력을 보자고. 에인페리아씨. 나도 초인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그는 손목과 발목에 장착한 쇳덩어리를 풀었다. 극약을 사용한 도핑의 효과를 올리기 위한 물건이었다.

‘에인페리아의 성능을 보고 싶다는 건가? 페인 마스터리를 쓰는 건 좀 애매하군.’

페인 마스터리는 지나치게 사기적인 이능이 되어 있었다. 상대의 주먹에 얻어 맞아도 역으로 주먹뼈가 부서지는 고통을 부여할 수 있었다. 원기의 경우 신체강화의 이능이 무의식적으로 발휘되는 지경이라, 데미지는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우선 상대의 자신감이 어디서 오는지 알아봐야겠지. 초인이라고 들었으니 어느정도일지도 궁금하고.’

원기는 에인페리아와 만렙 캐릭터의 능력치가 가진 비밀을 알고 있었다. 인간과 같은 크기, 중량, 재질로 갖을 수 있는 능력의 한계치가 바로 에인페리아와 만렙 캐릭의 능력치라고 할 수 있었다.

안드로이드나 사이보그처럼 기계로 만들어져 있다면 몰라도, 생물적 한계까지 잠재력을 끌어내어 만들어진 것이 에인페리아였다.

만렙 캐릭이 물리적으로 거의 차이가 없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느정도까지 힘을 발휘할지 알아봐야겠군.’

원기 역시 초인이라고 자처하는 미국제 강화인간의 능력을 알아보고 싶었기에 도발에 응했다.

“왜 공격을 안오는거지?”

“도전자로서 선공을 양보하지. 실력 발휘도 못하고 지면 대장 체면이 말이 아닐테니까.”

드래곤을 자처한 애슬리는 여유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내심은 달랐다. 예측이라지만, 상대의 뇌파와 근육의 움직임으로 예측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먼저 공격에 들어가면 상대는 그것에 맞춰서 움직일 것이기 때문에 능력을 살리기 힘들었다.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그에 맞춰서 카운터 공격을 하는 것이 그의 전법이었다.

‘내가 먼저 움직여야 발휘되는 능력인건가?’

원기는 견제를 할까 잠시 망설였지만, 상대의 이능을 보려면 강한 공격을 하는게 좋을 듯 보였다.

‘전력으로 스트레이트를 날려보자.’

원기는 그렇게 마음먹고 오른쪽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그 순간 애슬리 역시 원기의 의도를 읽었다. 그리고 빠른 스피드로 몸을 움직여서 원기의 턱을 향해 카운터를 날렸다.

‘멍청하긴, 대뜸 그렇게 크게 주먹을 휘두르다니.’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숙이고 원기의 몸 안쪽으로 파고 들었지만, 다음 순간에 뽀각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눈앞이 캄캄하게 변했다.

“으악, 얘 왜이래.”

원기는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원기가 뻗은 주먹을 맞은 애슬리가 거의 치명상을 입고 넋을 놓았기 때문이었다.

원기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당황했고, 근위대로 있던 신관 중 하나가 치료 마법을 사용해서 그를 고쳤다.

애슬리는 자신이 깨끗하게 피했다고 생각했지만, 원기는 상대가 피하는 것에 맞춰서 공격의 궤도를 수정한 것이었다. 수라장을 경험한 실전 경험과 범인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신체 능력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하지만 다크엘프들을 비롯해서 에인페리아들과 전투를 벌여온 원기에게는 그냥 평범한 일격에 지나지 않았다.

‘뭐지? 자살희망자인가?’

원기로서는 시험삼아 휘두른 주먹에 멋대로 뛰어들어와서 장렬하게 산화해서 자폭한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어, 어떻게 된거지?”

턱뼈와 함께 목이 부러져서 사망을 면치 못할 상황이던 애슬리가 정신을 차리면서 물었다. 굴베이그의 성역 내에서 발휘된 신관의 치료 마법은 거의 기적과도 같아 보였다.

그 모습을 주의깊게 살펴보는 리베로 조종자들을 보면서 원기는 쓴 웃음을 지었다. 최정예 부대이지만, 동시에 각국에 고용된 스파이들이나 다름 없었다.

“난 타이거 중령이다. 이 부대의 지휘관이 되었다. 중령이라고 하지만, 감투에 지나지 않지. 너희들의 계급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대위 계급을 달고 있지만, 대위 대우를 받을 뿐이다. 위계질서의 확립은 필요하겠지.”

원기는 그렇게 말하고,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냈다. 매그넘 리볼버였지만, 체격이 좋아서 그리 커보이지는 않았다.

위계질서를 세운다는 말 다음에 권총을 꺼내들자 모두의 안색이 변했다. 애슬리 역시 ‘처형하기 위해서 자신을 살린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원기는 매그넘을 들어서 자신의 관자놀이에 대고 당겼다. 폭음에 가까운 총성이 났고, 모두가 당황했다. 하지만 엘프들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총성이 다섯발 더 이어졌다. 총연이 가득한 가운데 원기는 그냥 아무렇지 않은 듯 서 있었다.

“이런, 머리카락이 상했군. 이건 어쩔 수 없는건가.”

원기의 관자놀이 부근에 납작하게 붙어있는 총알들이 후두둑 떨어지면서 머리카락도 날렸다.

신체 강화의 이능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에인페리아의 능력을 몸으로 알아보고 싶은 녀석이 있다면, 참고하도록. 더 도전할 사람이 있나?”

원기의 말에 장내는 조용해졌다.

‘저거 몸으로 막아낸거 맞지? 그 이상한 보호마법 같은거 아니지?’

‘총알 흔적도 남았고 머리카락도 잘렸으니 맞지 않을까?’

“재미있군요. 저도 도전해봐도 되겠지요?”

구석에 있던 한 여성이 나섰다. 진한 갈색 피부의 인도 여성이었다. 원기는 무력 시범에도 불구하고 나선 탓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원기의 대대에 소속된 파일럿들은 최첨단 기술이 적용된 전투 머신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지만, 에인페리아를 넘볼 정도는 아니었다.

“인도? 인도쪽 기술력이 그렇게 높았던건가?”

“믿기지 않는군.”

원기는 가볍게 어깨를 흔든 다음,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매그넘에 맞고도 멀쩡한 연출을 보고도 나섰다면 긴장해 둘 필요가 있었다.

‘사이보그인가? 그거 외에는 가능성이 없겠지.’

원기는 상대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청력을 집중하자 과연 기계음이 미세하게 들려왔다.

“파일럿으로 사이보그라니, 좀 의외로군.”

“역시 알아보는군요. 제 소개를 하지요. 전 암호랑이라고 해두지요. 메카타이거가 좋을까요? 쉽지 않을 겁니다.”

다음 순간, 그녀의 손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속도로 찔러들어왔다. 원기는 스치듯 피했지만, 뺨에서 피가 새어나왔다. 신체 강화가 사용되었지만, 가볍게 나마 상처를 낸 것이었다.

“왠만한 철판은 그대로 뚫을 것 같군. 아프진 않은건가?”

“아플 리가 없지요.”

그녀는 서글픈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다시 공격이 이어졌다. 무시무시한 연타였고, 원기는 그 모두를 피하는 것은 무리였다. 막고 피하면서 이곳저곳 상처를 입었다.

그 모습을 본 엘프 근위대들이 동요했지만, 리디아의 만류에 부동의 자세로 지켜 보았다. 원기는 곧 능수능란하게 상대의 공격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사이보그의 골격을 이용해서, 인간에게 불가능한 패턴의 공격을 구사해서 원기를 애먹였지만, 실전 경험이 많은 원기가 적응하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재밌군. 대단한 기술이야. 많이 배웠어.”

“과연 대단하시군요. 하지만 절 어떻게 공격하실 셈이지요? 온 몸은 티타늄의 뼈로 강화되어 있고, 피부는 어떤 가죽보다 질기고 통증 따위는 느끼지 않습니다. 전 이미 인간이 아니라 전쟁무기입니다.”

암호랑이라고 자신을 지칭한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쓴 웃음을 지었다. 그 목소리의 울림 가운데에는 슬픔이 포함되어 있었다.

“통증을 느끼지 않는다는 건가. 그것도 재밌군.”

원기는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을 보니 그녀는 원해서 사이보그가 된 것은 아닌 듯 싶었다. 물론 자발적으로 시술을 받았겠지만, 자원했다고 해서 꼭 원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럼, 이쪽에서 가지.”

“조심하세요. 제 골격은 날카로우니까요.”

원기가 앞으로 뛰어들자 그녀는 황급히 팔을 뻗었다. 그리고 원기는 그 팔을 잡았다. 다음순간,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부들부들 떨다가 쓰러졌다.

“이런, 너무 심했군.”

원기는 상대에게 페인마스터리가 통하는지 볼 생각으로 가볍게 손을 쥐었다. 통증의 정도는 바늘에 찔린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상대의 반응은 범상치 않았다.

“응급실로 옮겨.”

“아, 아니. 괜찮아요. 그리고 고마워요. 너무 좋았어요.”

정신을 차린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원기의 팔을 잡았다. 원기로서는 당황스러웠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더 상대해 주세요.”

그리고 그녀는 휘청거리면서 자신의 자리에 돌아갔다. 원기는 순간적으로 변태인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단순한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일단 더 도전할 상대는 없는건가?”

원기의 말에 다른 이들이 서로 눈치를 살폈다. 정보의 수집도 중요하지만 정보를 필요이상으로 노출시키지 않는 것도 중요했다.

‘눈빛을 보니 개조 안된 인간은 하나도 없는 듯 싶군.’

리베로는 인간형의 기계라서, 움직임에 따라서 조종석이 크게 흔들리게 되어 있었다.

5미터 급의 소형 리베로도 조종사에게 큰 부담이 되는 편이었다. 특히 10미터 이상 급의 유령 리베로나 정령 리베로는 격한 움직임이 가능한 만큼, 조종사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도 문제가 되었다. 에인페리아나 만렙 캐릭을 쓰는 프레이야 진영에선 문제가 없지만, 각국에서는 사이보그나 강화인간을 개발하고 있었다.

“그럼 우선 체계를 짜야 할 것 같군. 서로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팀을 짠다. 삼인 일조로, 그리고 그 중에 소대장을 뽑아라. 그러면 그에 맞추서 중대를 편성하겠다.”

각지에서 모인 리베로 조종자들인만큼, 즉석에서 적당히 편성할 수 밖에 없었다. 외톨이 늑대라든가, 두명만 친한 경우도 있었지만, 눈치를 봐서 세명 혹은 네명으로 뭉친 곳도 있었다.

“한가지만 확실히 해두지. 이 부대에서 내 권한만은 절대적이다. 그리고 이 녀석은 중요한 전략물자다.”

원기는 굴베이그를 안아들면서 말했다. 장내에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굴베이그는 조용해 보이는 점을 제외하면 완전무결한 미소녀였다. 게다가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오오라는 누구라도 느낄 수 있었다. 현자회는 물론이고 템플 기사단의 인물도 그녀의 신성한 오오라의 영향에 몸둘 바를 모를 정도였다.

그런 그녀를 최측근으로 보이던 원기가 물건취급을 했다는 것은 혼란스럽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어느정도는 알려졌을거라고 생각하지만, 프레이야 여신님께는 계약자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계약자들은 프레이야 여신님의 대리자로서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여기있는 소녀는 종속신인 굴베이그. 계약자는 종속신에 우선한다. 여기있는 엘프들 역시, 굴베이그의 안전보다는 내 안전을 우선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나?”

“그렇습니다. 명령만 내리십시오.”

엘프들은 침묵했고, 굴베이그가 답했다. 원기는 귀엽다는 생각에 등을 툭툭 두들겼다.

[귀여워하는 모습도 보여주지 않는게 좋은거 아냐?]

연하의 메시지에 원기는 표정을 다시 엄숙하게 했다. 파일럿들이라고 하지만 온전한 수하라고는 할 수 없었다. 각세력의 지령을 받고 있었다. 그런 만큼, 여신의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었다.

여신 캐릭터는 완전히 인간과 같은 능력밖에는 갖고 있지 못했고, 게임 캐릭터의 능력은 기대할 수 없었다.

굴베이그, 희연, 놀원의 협조로 여신 캐릭터, 아바타의 능력에 대해서 확인한 결과 사망하면 부활하는 기능이 없었다.

부활하지 못하는 대신에 로그아웃하고 재로그인하면 원상복귀 되는 형태였다.

문제는 로그아웃을 위해서는 시신이 게임 세계에 옮겨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제성은 이부분에 대해서도 검증했는데, 잔여 시신의 절반 이상이 게임세계에 운반되지 않으면 로그아웃이 되지 않았다.

만약 시신도 남기지 못하고 소멸할 경우에는 자동 로그아웃이 되게 되어 있었고, 일부가 훼손되었을 경우에도 잔여 시신의 절반이었다. 온몸이 날아가고 손가락 두 개만 남았다면, 손가락 하나만으로도 잔여시신의 절반이 성립되는 셈이었다.

여신의 납치와 인질극 같은 일이 벌어질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여신의 중요도를 떨어뜨릴 필요가 있었다.

‘정말이로군. 엘프들은 여신보다 저 덩치큰 사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하긴 여신이 거짓말을 하지도 않을테니.’

‘인질극을 꺼린다는 건가? 오히려 약점을 노출하는 것 아닐까?’

파일럿들은 상황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소대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소대를 같은 세력으로 꾸미는 것은 함께 움직이기 유리하다는 장점은 있지만, 다른 이들에게 자신들의 정체를 들킨다는 부담도 있었다. 하지만 적일지 모르는 자와 한 소대로 움직이는 것도 달갑지는 않았다.

‘아아, 기분 좋아. 이건 마치 살아있다는 쾌감이야.’

암호랑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인도 여성 아신은 전신을 사이보그화했다. 그녀는 나병이라고도 일컬어지는 한센병에 어려서부터 감염되어 있었다. 말초신경이 모두 망가져서 신체 감각이 모두 사라지고 제대로 생활도 할 수 없었다.

인도를 비롯해 세계 여러곳에 의외로 한센병은 많이 남아있었던 탓이었다. 아신처럼 태어나면서부터 한센병을 가지고 태어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아픔도 뜨거움도 차가움도 느끼지 못하는 그녀는 전신이 흉터로 추하게 변했고, 오래 사는 것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런 그녀였기에 사이보그 프로젝트에 발탁되었다. 그리고 전신을 사이보그로 개조해서 지금에 이르렀다.

현자회에서 사용된 사이보그 기술로 아폴로가 인도측에 제공한 것이었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그녀는 새로운 육체에 다른 이들보다 쉽게 적응했다. 신경의 감각을 남겨놓으면, 타고난 신체보다 월등히 강한 육체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신경을 제거하면 그거 역시 적응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신경 자체가 마비되었던 아신은 그런 면에서 의체에 가장 빠르게 적응했으며, 과감하고 공격적인 운용을 해내서 엘리트로 성장한 것이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맛본 통각은 그녀가 살아있음을 깨닫게 만들어 주었다. 신경도 없건만, 육체와 영혼이 있으면 페인 마스터리의 이능은 작동했다.

‘어떻게 하면 다시 그 아픔을 맛볼 수 있을까?’

아신은 포기할 수 없는 억누르기 힘든 욕망에 눈을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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