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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424화 (424/497)

424화 신이 되려는 자

프레이야 여신과 헬 여신의 방문은 화성 개척선의 밀항자들 뿐만 아니라, 개척선의 일부 승무원에게도 엄청난 기쁜 소식이었다.

‘프레이야 여신님을 지척에서 뵙게 되다니, 정말 기대가 되는군.’

이종족과 인간들이 모두 한데 어우러져서, 환영식의 준비를 했다. 물론 인원이 적고 공간이 협소해서 소박한 느낌을 피할 수는 없었다. 우주공간인만큼 한계는 분명했다.

그리고 환영식장으로 이어진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그곳에서 나타난 것은 검고 긴 모자와 털코트를 입은 아름다운 여신의 모습이었다.

‘어떤 복장을 해도 잘 어울리시는군.’

그녀의 양쪽에는 작은 소녀 둘이 손을 잡고 있었다. 놀원과 굴베이그였다. 놀원은 극장판 소년의 복장을, 굴베이그는 전신을 망토로 두른 티비판 복장을 하고 있었다.

은하철도를 떠올리게 만드는 복장이었지만, 딱히 불만을 가지는 이들은 없었다.

한명이 여신을 향해 사인을 청하려고 나아가는 순간, 여해적의 복장을 한 헬 여신의 거대한 낫이 그의 목에 닿아 있었다.

“여신님께 함부로 다가가지 마라. 여신님께서 용서하셔도 본첩이 용서치 않겠다.”

그녀의 선언에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부복했다. 헬의 공포와 권위는 프레이야의 신성한 카리스마와는 다르지만, 사람들을 감싸는 다른 힘이 존재하고 있었다.

한없이 두렵지만, 그렇기에 마음 든든한 권위였다.

“소첩의 무례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부복한 뒤, 헬은 프레이야에게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사죄를 청했다. 그 모습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워 보였지만, 의미깊은 모습이기에 사람들은 머리에 새겨두고 있었다.

“이봐. 그런데 본첩이라는게 무슨 뜻이지? 첩이라면 그 세컨드를 말하는 건가?”

여신 일행이 환영의 자리에 앉은 다음, 시간이 지나서야 사람들은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첩이라는건 세컨드를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한자 문화권에서는 결혼한 여성이 자신을 낮출 때 쓰는 말이야. 진짜 첩을 말하는건 아닐껄?”

“마담이나 미세스를 의미하는건가?”

“그래. ‘본’은 타인에게 자신을 높이거나 강조할 때 쓰는 말이야.”

사람들이 자리에서 나누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는 헬 여신이 자신을 지칭할 때 쓴 ‘본첩’이라는 이야기였다. 네 여신이 한자리에 모인 것도 드문 일이지만, 네 여신간의 관계도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다.

아스가르드에서 온 이종족들은 특히 그러했다. 아스가르드에서 프레이야 여신이 낮은 여신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헬 여신이나 펜릴과 비길 바가 아니었다. 게임에서 굴복당한 경위를 알지 못하는 만큼 더욱 그런 면이 있었다.

헬 여신은 실질적으로 로키의 보좌라고 할까, 거인신족의 이인자였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수한이형 짓이군.’

원기는 쓴 웃음을 지었다. 희연은 검술 외에는 취미가 적은 편인데, 사극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중국의 무협드라마나 영화, 그리고 일본의 사무라이 활극 등은 물론이고 한국의 사극도 좋아하는 편이었다.

본첩이나 소첩이라는 표현도 거기에서 빌려온 듯했다.

‘역할 분담이라는 것도 부담스럽구나.’

프레이야는 백성들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의 모든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절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안되었다.

결국 프레이야를 대신해서 거절하는 역할을 짊어질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것을 희연이 기꺼이 맞아들였다. 아니 기쁘게 맞아들였다고 봐야했다.

원기는 자신만 좋은 사람 역할을 하고, 나쁜 역할은 희연에게 뒤집어 씌우는 듯해서 부담스러웠지만 희연은 지금의 역할이 더 마음에 들었다.

경애의 대상과 대등한 입장에 놓이는 것보다는 자신을 낮추는 것이 더 기쁘기 때문이었다.

“여러분들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여러분을 찾아 온 것은 화성행 여정이 본래 계획보다 대거 단축되었기 때문입니다.”

프레이야 여신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모여왔다. 대외적으로 화성 개척선의 연료 및 식료 저장고로 되어있는 이 시설에서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었다. 그리고 엘프 공장에서 부화된 갓난 아기 엘프들이 우주 공간에서 성장하고 있었다.

숲이 아닌 우주 공간에서 자라난 아기 엘프들은 호철 일파는 볼칸족이 되어야 했고, 수한 일파는 아브족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통칭 스페이스 엘프, 우주엘프로 부르고 있는 아이들의 성장은 중요한 미래를 위한 투자이기도 했다.

그 외에 드워프들이 다양한 금속과 몬스터에서 나오는 재료들을 이용해 신소재를 개발하는 일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주선의 여정을 줄이는 연구 같은 것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 이뤄지는지 궁금하게 여기시는 분들도 많을 듯 합니다. 방법은 이 후방 탱크를 폭파시키는 것입니다.”

프레이야 여신의 간단한 말에 모두가 납득했다. 이온 엔진도 전자기 엔진도 효율이 높은 엔진이지, 출력이 높은 엔진은 아니었다. 따라서 기존의 계획에선 6개월의 가속과 6개월의 감속이 필요했다. 하지만 비슷한 중량의 후방 탱크를 화성쪽을 향해서 발사하면 반작용을 통해서 빠르게 감속할 수 있었다.

“따라서, 애초 계획과는 달리, 여러분들은 지구로 귀환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후방탱크는 10단계로 나뉘어서 발사될 겁니다. 이를 위한 개조 작업이 필요합니다. 여러분들의 연구를 마무리 하시고, 지구로 귀환할 준비를 해 주십시오. 데이모스에 소환 게이트가 설치되면, 여러분들은 데이모스에서 연구를 계속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프레이야 여신의 말에 사람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가 밝아졌다. 연구 기간이 단축된 것은 아쉽지만, 데이모스에 빨리 도착한다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건 그렇고, 지구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엄청난 질병이 돈다고 하던데 말이지요.”

한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헬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엘프 신관들이 직접적으로 나서서 병의 확산을 최대한 차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역을 통해서 환자들을 고치고 있군요. 여러분들의 지인들 전부를 도울 수는 없습니다만, 가족들은 우선적으로 보호하고 있습니다. 발병 후 사흘 내에 사망하지만, 사망하기 전에만 성역에 도달하면 사망하는 일은 없습니다. 모든 감염자들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대부분의 감염자들을 성역 내에 수용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거기에 있기도 합니다.”

프레이야의 말에 좌중은 모두 조용해졌다. 감염자들을 죽도록 내버려 두자고 말할 수는 없었다. 자신들의 지인들도 감염의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성역들이 노출되는 것은 그리 달가운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프레이야의 백성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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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환자가 이송되어 왔습니다.”

“그래? 끝도 없군. 안되겠다. 창고에 가서 미네랄 보충제 좀 대량으로 가져와라.”

‘미친 놈들. 대체 무슨 생각인거야?’

CDC의 젊은 의료원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망률 100%로 일컬어지는 전염병이 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죽음을 눈앞에 둔 환자들이 이곳에 모여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의료진들은 무감각했다.

‘소문과 달리 백신이라도 있는건가?’

그는 자신의 방어장구를 다시한번 점검했다. 조금만 잘못되어도 감염은 막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반면 격리지구의 의료진들의 장비는 너무 부실해 보였다. 형식적으로 모양세만 갖춘 듯 했다.

백신이라도 없고선 있을 수 없었다.

세계적으로 대도시를 중심으로 이미 환자가 수십만이 발생한 상태였다. 사망자는 이미 수천명에 달하고 있었다.

‘이 질병의 특성을 생각하면 신기할 정도로 퍼지는 속도가 느리긴 하지. 세상을 멸망시키고도 남을 병기일텐데. 역시 미국에서 개발되었다는 소문이 틀림없는건가? CDC에는 백신이 존재하고?’

“야, 그만 꼴값하지 말고 벗어. 불편하지도 않냐.”

CDC의 상급직원이 그의 방호복을 벗겼다. 돌발적인 사태에 그는 놀라서 당황했다.

“무슨 짓입니까? 저는 백신도 맞지 않았습니다.”

“응? 백신? 그런건 없어. ‘이곳’에는 감염될 일도 없다. 그렇게 인상쓰지 말고 환자들에게 아무 약이나 먹여.”

“이곳이라고요?”

그는 주위를 둘러봤다. 의료진의 대부분이 긴장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일정 지역에서는 병에 걸리지 않는다. 외계인의 기술일지도 모른다고 하더군.”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이.”

“그렇지? 이건 마치 마법같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범주의 일은 과학이고, 그를 넘어선 것은 마법 혹은 신앙이라고 하더니. 윗선에서는 이곳을 예전부터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더군. 이미 의원들을 비롯해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가들이 이곳 지하에 있는 벙커에서 지휘를 하고 있다고 하네.”

“뭔가 배신감이 느껴지는 군요.”

“글세. 이런 말도 안되는 기술을 발표할 수는 없는게 아닐까. 의외로 이런 곳이 세계 각지에 많더군. 워싱턴, 뉴욕, 런던, 파리, 모스크바도 있다고 보여지네.”

“믿기지 않는군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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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성은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이 세균 병기는 병기로서 완성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수십만의 감염으로 억누른 것만 해도 굉장한 일이었다.

전문가들의 예측으로는 수억에서 수십억이 사망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었다.

신관들을 공항에 파견해서 성역을 만들어 감염이 확산되는 것을 막지 않았다면,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컸을 터였다.

아프리카나 중동, 혹은 북극이나 남극 등의 오지를 제외하고는 인간이 살아남지 못하는 비극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벌인건지 모르겠군요.”

“과연 어떨까. 지금의 상황을 예상한 것은 아닐까?”

조제성의 시선은 세계지도를 비추는 대형 모니터에서 모스크바 지역을 보고 있었다. 모스크바의 감염자 수는 딱히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적다고 볼 수도 없었다.

“승상님. 인터넷에서 특별한 ‘존’에 대한 음모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음모론은 특히 러시아어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역시, 본색을 드러냈군.”

조제성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화면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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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진영의 성역은 비밀리에 만들어진 곳과 국가들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곳으로 나뉘었다.

그 중 서울 외곽에 만들어진 성역은 세계적으로 노출된 상태이고, 남미와 호주에 만들어진 곳은 노출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달기지와 화성 개척선의 네 곳에 있는 세계수가 프레이야 진영의 본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각 국가들의 요청으로 무리하게 늘린 세계수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각 국가의 수도에 자리잡고 있었다.

미국이 예외적으로 두 곳이 있었다. 이는 조제성과 리디아가 미국 정부와 외교적인 거래를 통해서 제공한 특별한 사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예외가 일본이었다.

일본은 도쿄가 아닌 후쿠시마에 자리잡고 있었다. 방사능으로 격리된 공간에서 방사능을 비롯한 다양한 연구를 위한 시설로 존재했다.

그리고 이 입지적 특성이, 일본에는 재앙을 불러왔다.

밀레니엄 페스트라고 이름붙은 이 최악의 질병에 걸린 이들을 격리하는 장소가 후쿠시마라는 것은 그리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한 것이었다.

도쿄에서 질병이 확산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격리를 위해 후쿠시마까지 이송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환자는 물론 가족들조차 감염되었다는 이유로 환자를 후쿠시마에 있는 시설에 격리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 결과 환자를 감추고 감염이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된 것이었다.

다른 국가들에서는 외계 기술로 보이기까지 하는 정체불명의 기술로 만들어진 존(zone)의 소문이 퍼졌지만, 일본에서는 이 소문 대신에 후쿠시마의 살처분 시설에 대한 음모론이 퍼지고 있었다.

일본만이 이상한 음모론에 우왕좌왕하는 사이, 세계적으론 존에 재벌가의 저택이나 별장, 정치가 및 관료의 숙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이는 병으로 가족을 잃은 이들의 분노가 폭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존의 효과라고 할지 정체가 인터넷과 언론들을 통해서 속속들이 밝혀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존 안에 있는 격리시설에서 단 한명의 환자도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 보도되었고, 그들이 받은 약들이 통일되지 않았으며 효과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것들이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어린이용 감기약이나 비타민제 외에는 처방받지 않았다.

의료진들 가운데 고위층일수록 방역에 소홀히한 사실도 시민들의 제보로 알려졌다.

존에 대한 실체가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분노했다.

그리고 갑자기 러시아에서 이차 감염자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러시아로 밀항한 감염자들이 그 원인이었다.

공항이 폐쇄된 상태에서 러시아에 치료 기술이 있다는 소문이 퍼진 탓이었다. 후쿠시마에 존이 있다는 소문보다는, 일본에 존이 없어서 후쿠시마에서 살처분하고 있다는 소문이 더 강하게 퍼진 탓이었다.

그리고 한국에 존재하는 존의 소문 역시 왜곡되었다.

‘우리 일본에 없는데 한국에 있을 리가 없지.’

‘수도 한복판도 아니고 서울 외곽에 있는게 말이 안돼.’

이런 추측성 소문들이 돌면서, 일본에서 러시아로 밀항한 감염자들이 러시아의 시민들을 감염시킨 것이었다.

“생각보다 순조롭군.”

러시아에서는 폭동이 일어났고, 사람들이 존으로 몰려들었다. 그 혼란을 틈타서 라스푸틴의 친위대가 성역의 중심에 있는 세계수를 노리고 쳐들어갔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신비로운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엘프였다. 그녀의 뒤에는 반투명한 모습으로 오로라처럼 빛나는 나무가 있었다. 크진 않지만, 신비로움을 한껏 보여주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엘프족의 대신관이자 황녀인 리디아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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