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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425화 (425/497)

425화 악덕상술

“황녀?”

“예. 지구에 있는 모든 엘프들을 지휘하는 대표자라고 보시면 됩니다. 제 어머니가 모든 엘프들의 대표자이시고 말이지요. 지구에 나와있는 대신관들을 대표하는 역할도 맡고 있습니다.”

리디아가 차분하게 말했다. 지구에 나와있는 엘프들을 대표한다는 말에 라스푸틴은 당혹감을 느꼈다.

‘젠장, 거물 중의 거물이 납셨군. 내 계략을 꿰뚫어 본건가?’

그는 조용히 스마트폰으로 타이핑해 둔 지시를 이반에게 보냈다. 미리 상황을 예상해서 보낼 통신문들을 정해둔 상태였다.

[상황이 좋지 않은 듯 합니다. 승산은 있습니까?]

[충분하다. 저 정도는 즉시 제압가능하다.]

[숨겨진 적 전력은 없습니까?]

[있긴 하지만, 미미하다. 엘프가 탑승한 정령기가 두기 있을 뿐이다. 부하들만으로도 충분히 시간을 벌 수 있다.]

라스푸틴은 미소를 지었다. 적을 탐지하고 위험을 탐지하는 능력자들을 휘하에 두고 있었다. 그들을 통해서 안전하게 비밀결사를 유지해 온 것이다. 상황은 완벽하게 자신들의 것이었다.

‘블러핑이로군. 시간 벌기인가? 빨리 세계수를 빼앗아야겠군.’

라스푸틴은 앞으로 성큼성큼 나아갔다. 그러자 리디아가 미소를 지으며 앞 길을 비켜주었다.

“어서 드시지요. 하지만 한 가지는 좀 알아두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제 호의가 거짓이라고 생각되시면 섭섭하거든요.”

리디아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 순간, 이반의 기체가 굉음과 함께 비틀거렸다. 그리고 오른 팔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기체들은 조종석을 차례로 관통당했다. 세 발의 총알이 한기를 무력화시키고 두기를 파괴해버렸다.

그리고 엘프 황녀가 손을 들어 제지하자, 사격이 멎었다.

“대체 어찌된거지?”

이반은 당황했다. 피할 틈도 없었다. 아니 맞고 나서야 알아챌 수 있었다. 이반의 유령은 자신에게 닥쳐오는 위험을 탐지할 수 있는 이능을 가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매복이나 은신 시에 상대의 시선을 파악하는 능력도 있었다.

이렇게 무방비하게 당할 수는 없었다.

근미래를 예지하는 능력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강력한 능력자들이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다.

상대가 총알이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말도 안돼. 이런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어.’

예지 능력자들간의 모의전을 벌일 경우에는 예지가 극단적으로 어려워진다. 가위바위보를 한다고 할때, 상대가 가위를 내려고 하면 이쪽은 주먹을 내기로 마음먹는다. 그 순간 상대는 자신이 주먹을 내려는 미래를 읽고 보를 내기로 마음먹는다.

이런 교착 상태에 빠지면, 가위, 바위, 보를 동시에 내는 환상을 보거나 안개가 낀 것처럼 희미하게 보이거나 안보이거나 한다.

이것을 흔히 ‘노이즈가 꼈다’는 표현을 썼다.

미래간섭 노이즈, 이것을 통해서도 위험을 예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위험이 없는 미래가 선명하게 보였다.

이능을 강하게 신뢰해 온만큼, 이반과 그 부대원들의 당혹감은 클 수 밖에 없었다.

자신들의 이능이 완전히 부정당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연하의 능력, 무념무상의 이능이 갖는 위력이었다.

“당신들은 독안에 든 쥐랍니다. 항복 권고 자체가 의미가 없을 정도로 말이지요.”

리디아가 정중하게 말했지만, 라스푸틴은 비웃는 말처럼 들렸다. 리디아를 인질로 잡아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녀가 쉽게 잡힐 리가 없었다.

“엘프가 약해 보여도 엘프를 능가하는 격투 기술을 가진 인간은 극소수에 불과하답니다. 그리고 저처럼 고위층을 인질로 삼는건 무의미하지요. 영생이 약속되어 있으니까요. 친절한 마음으로 알려드리는 겁니다.”

라스푸틴은 그녀의 말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세계수는 지하의 대형 신전과도 같은 공간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총알이 날아온 곳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작은 환풍용 창문이 하나 보였다.

“설마 저 창문으로?”

“틀림없는 것 같다. 말도 안되는 괴물이로군.”

“먼치킨이로군요.”

다음 순간, 먼치킨이라고 부른 리베로의 머리통에 착색 페인트탄이 와서 맞았다. 그리고 각부의 카메라에도 페인트탄이 명중했다. 그가 콕핏을 열고 밖을 내다본 순간, 그의 머리통에 페인트 탄이 명중했다.

“그녀는 치킨이라고 불리는 걸 그다지 달갑게 여기지 않는답니다. 물론 그 뜻으로 부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말이지요. 고양이라도 좋아하면 좋았을텐데.”

리디아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이반은 이 일련의 소동이 일어나는 동안 총알이 날아오는 궤도와 타이밍을 확인했다.

[정확도가 놀랍군. 아마 2키로 밖에서 쏘는 듯 한데, 바늘구멍도 통과할 기세야. 우리의 패배다.]

[몸을 숨기면 되지 않을까요?]

[열려있는 환기창이 저거 하나일 뿐, 다른 창문들이나 벽을 뚫고 들어 올 수도 있어. 우리는 그냥 노출되어 있다고 봐야 할거야.]

이반은 센서가 작동안한 이유도 알 수 있었다. 건물 밖에서 날아오는 총알을 센서가 감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창문을 통해 들어와서 명중하는 사이에 센서가 반응한다고 해도 큰 의미가 없었다.

‘쏘는 녀석이 예지능력자인것도 같고.’

상대의 예지능력을 무시하고 예지능력과 정확한 명중률까지 갖고 있다면 존재 자체가 반칙이나 다름없었다.

‘역시 프레이야 여신인건가.’

“그렇군요. 이제 우리를 어떻게 하실 겁니까?”

라스푸틴이 두 손을 들며 말했다. 그러자 리디아는 친절한 미소를 지었다.

“원하던 데로 하시면 됩니다. 세계수를 양도해 드리지요. 가져 가세요.”

리디아는 손으로 세계수 방향을 부드럽게 가리켰다. 라스푸틴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정인가? 난감하군.’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건 제 호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물론 프레이야님의 허락도 받았습니다.”

“무슨 소리입니까?”

“인간이 세계수의 주인이 되는 수법을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꽤 유명하지요. 그래서 언젠가는 그걸 시도하는 이들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시도자가 당신인 것 뿐이고 말이지요.”

리디아의 말에 그는 망연자실했다.

“당신들은 세계수가 아깝지 않단 말입니까?”

“음, 아깝지 않은 것은 아니지요. 이 세계수는 아티펙트의 재료가 될 수 있으니까 말이에요. 그걸 당신에게 제가 드리는 겁니다. 호의로 받아주셨으면 좋겠군요.”

‘세계수를 넘겨줄 권한이 있는 건가? 하긴 엘프들을 대표하는 중요한 인물이라면 가능한 거겠지.’

“내가 세계수의 주인이 된다면 프레이야의 좌가 위험할텐데?”

“그럴리가요. 세계수의 주인이 바뀌는 일은 아스가르드에선 흔한 일입니다. 그리고 프레이야님의 모든 세계수를 당신이 차지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프레이야님 자체가 세계수이기 때문입니다. 모스크바의 지체와 프레이야님 본체의 차이가 있긴 하지요.”

“내가 모스크바의 세계수를 차지하면 당신들에겐 무슨 득이 있지?”

라스푸틴의 말투가 평대에 가까운 날카로운 말투로 바뀌었다. 그가 평정을 잃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세계수를 늘리는 건 별 문제가 아니지요. 유지하는게 귀찮을 뿐입니다. 신자들도 없는데 세계수만 늘어나서 곤란했지요. 당신이 맡아주면, 프레이야님의 부담이 덜어지는 겁니다.”

“바라는 건 없는건가?”

“글쎄요. 아스가르드의 악신들과 싸울 때, 인류의 편이 되어 함께 싸워주셨으면 하는 것일까요?”

리디아는 가볍게 말했다. 그러자, 라스푸틴에게는 무시무시한 사명감이 들었다. 인류의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 프레이야와 함께 악신들과 싸워야 한다는 강한 기분이었다.

“좋습니다. 프레이야 여신님의 힘이 되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원한다면, 제 가능한 일은 들어드리도록 하지요.”

그러자 리디아는 우아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그 순간 이반과 라스푸틴은 놀라긴 했지만, 위축된 터라 몸만 움찔거렸을 뿐이었다.

그리고 리디아의 뒤에서 반투명한 전쟁의 여신 발키리 둘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손에는 빛을 발하는 존재가 있었는데, 그것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라스푸틴과 이반은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일급 예지 능력을 가진 부하들이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리디아가 눈짓을 하자, 엘프들이 나타나서 파괴된 리베로에서 파일럿들의 시신을 옮겨왔다. 콕핏을 관통한 탓에 시신의 일부만 가져왔다고 하는게 옳을 듯 했다.

엘프 신관들이 기도를 드리자, 시신의 파편이 온전한 인간의 신체로 돌아왔다. 마치 기적과도 같은 광경에 라스푸틴 역시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스스로 신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 실체의 일부를 보는 것만으로도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신관은 시체의 일부에서 인간의 육체를 완벽하게 복원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소생은 시킬 수 없지요. 영혼을 다시 불러들일 능력은 없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이들은 가능하지요. 어서 영혼들을 육신에 되돌려주렴.”

리디아의 말에 발키리 둘이 그들이 가진 영혼을 육신에 되돌렸다. 그러자 그들은 숨을 쉬면서 되살아났다.

“친애의 표시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군요.”

“어떻게 발키리가 당신의 명령을 듣습니까?”

라스푸틴은 엉겁결에 물었다. 그가 생각하는 인간과 발키리의 관계와 좀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건 제가 프레이야님께 선택받은 이들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에인페리아는 발키리에게 사역되는 이들입니다만, 선택받은 이들은 발키리를 소유한 이들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제 소유입니다.”

하나는 연하의 소유였지만, 그녀는 굳이 그 사실까지 밝히지는 않았다. 두 명만 처리한 것도 사실 그 때문이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두 명의 목숨까지 짊어지게 된 라스푸틴은 리디아가 안내하는데로 조심스럽게 따라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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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저런 식으로 할 수 있군. 인간을 씨앗으로 만드는 수법이 있다는 것은 놀라워.]

세계수의 계승의식을 리디아가 지켜본 덕분에 프레이는 그 술식을 모조리 베낄 수 있었다. 아스 신족들에게 불필요한 것이기에 연구가 안된 분야의 기술들이 제법 있었다.

“어느 정도입니까? 저 마법은? 인간이 실제로 신이 될 수 있는건가요?”

[잠시 살펴봐야겠군. 이해가 가지 않아. 이건 인간을 위한 수법이 아니야. 아인종을 위한 것도 아니군. 조금만 기다려주게.]

프레이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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