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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426화 (426/497)

426화 신이 된 사나이

프레이는 한참을 마법진을 살폈다.

[이건 씨앗을 위한 마법진의 변형이다. 그렇군, 오딘은 이쪽 세상에 씨앗을 뿌려둔건가?]

“씨앗입니까?”

[그래. 영혼에 뿌려진 씨앗들이다. 라그나로크때 사라진 신들의 씨앗 중 하나야. 라스푸틴이라는 자는 그 씨앗 중 하나를 가지고 있다.]

프레이의 말에 제성은 당황했다.

“아스 신족이 이쪽 세상에 탄생한겁니까? 오딘이 뿌려둔 함정에 우리가 걸려든건 아니겠지요?”

제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스신족의 씨앗이 깨어났다면 문제는 작지 않았다.

‘언젠가는 올 상황이었지. 여유가 좀 줄어든건가.’

[조금은 다르다고 해야겠는데. 이건 많은 변형이 이뤄졌다. 가장 강한 특징은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씨앗의 자아는 깨어나지 못했다고 해야겠지. 라스푸틴은 자아를 유지하고 있다.]

라스푸틴은 자신이 씨앗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의 씨앗은 인간을 모판으로 자라는 기생체나 다름 없었다. 오딘이 이 세상을 떠나면서, 씨앗에 보존처리를 했을 뿐이었다.

씨앗이 발아되지 않는 이상은 인간으로서 살 수 있었다. 아니, 평범한 인간은 아니었다. 씨앗의 힘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라스푸틴의 가계는 이 씨앗에 대해 연구를 거듭했고, 그 결과 씨앗의 힘을 어느정도 끌어쓰는 것이 가능해졌다.

불로불사까지는 아니지만 그에 가까운 존재가 된 것이었다.

“라스푸틴이라고 했나. 욕심이 과하군요.”

조제성은 씁쓸한 표정으로 웃었다. 신이 되겠다는 욕망 덕분에 오딘이 숨겨놓은 결정적 함정 카드를 하나 찾아내게 되었다.

[오딘이 뿌려놓은 씨앗은 인간의 영혼에 숨겨져 있다. 그리고 그것이 강제로 발아되면, 인격은 사라지고 오딘의 종속신이 되도록 되어있군. 그리고 씨앗은 인간에게 강력한 힘을 주게 되어있다. 씨앗을 품은 이는 영웅이나 천재가 되기 쉽겠어.]

프레이의 설명에 제성은 한숨을 쉬었다. 오딘은 인간들이 뭉쳐서 자신들에게 저항할 가능성을 미리 점친 것이었다.

그래서 종속신들의 씨앗을 인간들에게 뿌려둔 것이었다. 뛰어난 인간들은 두각을 드러내고, 그 후손은 권력을 이어받기 쉽다.

권력을 가진 이들은 그것을 후세에게 물려준다. 어떤 조건인지는 모르지만, 씨앗은 힘있는 자들에게 존재할 것이었다.

[그리고 보아하니 자네에게도 씨앗이 숨겨져 있는 듯 하군.]

조제성은 쓴 웃음을 지었다. 오딘 역시 준비하는 자임에 틀림없었다. 잘못하면 한방 먹을 뻔했다.

“해결 방법은 있습니까?”

[에인페리아의 육체로 갈아타면 될거야. 인간과는 좀 달라지니까 말이지. 희연양은 이미 헬 여신이 되었으니 별 문제가 없겠지만, 연하양은 위험할 수 있네. 물론 게임 캐릭터인 상태에선 각성할 수 없지만, 본신으로 돌아간 상태에선 씨앗이 깨어날 수 있겠지.]

“인간을 포기해야 하는 거로군요. 좀 아까운 생각은 듭니다.”

조제성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에인페리아의 육체가 성능면에서는 훨씬 좋지만, 그래도 본신에 대한 애착이 있었다. 정체성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었다.

“라스푸틴은 신으로서 잘 해나갈 수 있겠습니까?”

[무리야. 저 놈은 신이 된다는걸 우습게 보고 있어. 추종자가 모두 신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는군.]

라스푸틴의 추종자들은 많지만, 그들은 라스푸틴을 통해서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신자가 될 수는 있지만, 온전히 그들의 정신력이 라스푸틴의 힘이 될 수는 없었다.

아스가르드의 신들이 자신들의 종족을 만들어 온 것은 그 때문이기도 했다.

“바니걸 통신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큰 힘이로군요.”

[이곳의 인간들은 외로움을 너무 많이 타는 것 같아. 배가 불러서 그런가. 아스가르드의 인간들이라면, 그녀의 능력은 그리 먹히지는 않을거야.]

프레이의 말에서 조제성은 아쉬움을 느꼈다. 자신의 종족을 지키지 못한 아쉬움과 부러움이 없을 수는 없었다.

“장닭은 잡으셨습니까?”

[두손두발 다 들었네. 그놈은 난공불락이야.]

프레이는 그렇게 말했다. 프레이가 신성을 찾았다고 하지만, 장닭 역시 신성을 획득했다. 프레이가 창조한 것이나 다름없는 블러디 라인 2와 달리 블러디 라인 1은 프레이야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프레이가 간섭할 여지가 적었다.

그리고 프레이는 시스템을 고쳐서 장닭을 굴복시킬 생각은 없었다.

물론 포기하지도 않았다. 말은 늘 쿨하게 하지만,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먼저 장닭을 공략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실제로 장닭 공략을 시험삼아 하는 이들은 여전히 많았다.

[젠장. 오딘 놈, 씨앗을 뿌려놓다니.]

프레이는 불만스럽게 말했다. 씨앗의 재능을 지닌 자가 장닭을 공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이능에 대한 제약을 좀 만들어 놔야겠군.]

“제약이라, 그보다는 가이드를 설정해서 불확정요소를 줄이는게 어떻겠습니까?”

제성은 프레이의 의도를 읽고, 그것을 이용하려고 들었다. 이능 각성은 지나치게 우연적이었다. 대부분은 쓸모없는 능력을 각성했고, 가끔은 지나치게 파격적인 능력을 각성했다.

그 바탕에 씨앗이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확인한 셈이었다.

조제성은 씨앗을 가진 이들을 찾아낼 수 있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성장 가능성이 큰 잠재력을 가진 이들이 바로 씨앗을 품은 이들이로군.’

희연과 연하를 찾아낸 원기의 키워드이기도 했다. 하지만 씨앗의 숫자가 어느정도인지는 짐작할 수 없었다.

일본에는 팔백만의 신들이 있다고한다. 온갖 요괴나 잡귀, 동물들까지 신이 된다고 믿는 원시신앙의 땅이니 나올 수 있는 말이었다.

‘표본 검사를 이용해서 대략적인 숫자는 구해낼 수 있겠지.’

씨앗을 가진 이들이 있다는 것은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강력한 이능을 각성시킬 수 있고 강력한 전사로 키울 수도 있었다.

잘 모아들여서 충성심을 키우는 것도 가능했다.

‘리디아양이 할 일이 많아졌군.’

오딘이 뿌려둔 씨앗이지만, 제성이 거두지 못하라는 법은 없었다. 아니 착실하게 거둘 생각이었다.

‘신급 이능을 가진 이들이 나타난 것은 그 때문이었던 건가.’

아스가르드에서도 선택받아서 강화된 에인페리아들, 반신급으로 여겨지는 에인페리아들이나 가질 수 있는 강력한 이능을 각성한 이들이 지구에서 갑작스레 나타난 이유를 조제성은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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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무섭군요.”

원기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조제성이 오딘의 수하로 돌아선다는 상상만 해도 끔찍할 정도였다.

물론 각성된 존재는 조제성과는 조금 다르겠지만, 조제성의 기억과 능력을 갖게 될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오딘이 뿌려둔 함정이 그것 뿐만은 아닐거라는 겁니다. 이주 계획이 그만큼 더 중요할 겁니다. 그리고 아스가르드 침공 계획을 추진해야 할 듯 합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가 될겁니다.”

조제성의 말에 원기는 딱딱하게 굳었다. 상대가 공격해 오고, 그에 대응하는 것은 별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전쟁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 자신이 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해온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니, 결단을 내릴 필요성은 있었다.

“그렇군요. 이것도 제가 짊어져야 할 문제겠지요.”

“그렇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직 시작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전쟁의 주체는 아닙니다. 우리는 억압받는 인류를 구하고자 하는 정의의 용사들에게 길을 열어줄 뿐입니다.”

조제성은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본 원기는 쓴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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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뭔가 잘못된거야.”

라스푸틴은 세계수를 지배하는데 성공했지만,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다른 상황에 절망했다.

신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 신은 전지전능과는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세계수는 무엇이든 주는 나무가 아니라, 굶주린 돼지와도 같았다. 아니 밑빠진 독과 비슷했다.

충실한 수하들은 실제로는 용병이나 다름없었다.

라스푸틴이 신이 되었을 때, 자신들도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서 참고 있었을 뿐이었다.

신이 된 라스푸틴을 위해서 희생하고 싶은 마음은 거의 없었다.

마침내 라스푸틴이 신이 되자, 그들은 자신들의 몫을 원했다. 하지만 세계수는 신성력을 토해내는 것이 아니라, 정신력을 빨아들이기만 했다.

소에게서 우유를 짜려면, 소가 충분히 먹이를 먹어야 했다. 먹이도 제대로 못먹이면서 우유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세계수는 시들어가고, 정신력은 고갈되고, 수하들은 실망하고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하자, 라스푸틴은 절망할 수 밖에 없었다.

왜 라그나로크를 일으키고 신들이 도망을 쳤는지 알 수 있을 듯 했다.

“예상은 했습니다만, 고전중이로군요.”

“리디아님, 오셨습니까.”

라스푸틴은 리디아를 환대했다. 리디아를 보기만 해도 근심이 사라지는 듯 했다. 이렇게 고마운 존재는 일찍이 없었다.

‘역시 엘프라서 다른 걸까? 아니 고귀한 핏줄이라서 그럴지도 모르지. 아니야, 종족이나 신분을 떠나서 인품이 남다르시니. 뭔가 보답을 하고 싶은데, 이런 꼴이니 참으로 안타깝다.’

라스푸틴은 낙담했다. 그런 라스푸틴을 보면서 리디아가 손을 내밀었다.

“제가 프레이야님께 청해서, 세계수의 수액을 받아왔습니다. 이걸 세계수에게 주면, 발키리를 만드는 것은 어렵겠지만 몇 명 쯤은 신관으로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앞으로도 고생은 좀 하셔야 할 것 같군요.”

리디아의 말에 라스푸틴은 생각에 잠겼다. 리디아의 호의는 너무나 고맙지만, 언발에 오줌누기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디아님, 아무래도 혼자서 존속하는 것은 어려울 듯 합니다. 종속신이라는 개념이 있다고 하는데, 리디아님께서 프레이야 여신께 좀 부탁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프레이야 여신님의 종속신이 되겠다는 뜻인가요? 그렇게 되면 세계수를 유지할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여신님께서 그걸 받아 주실지는...”

리디아는 말을 끌었다. 말 한마디가 천냥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프레이야님께 아뢰서, 라스푸틴님을 종속신으로 받아들이도록 말씀드리지요.”

“감사합니다. 잘되서 여유가 생기게 되면 이 은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신이 되겠다던 야망을 불태우며, 수단을 가리지 않던 야심가는 자신이 생각지도 않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는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자신이 원하던 것이 무엇인지도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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