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잊혀진 신의 세계-428화 (428/497)

428화 주연등장

“자네는 제갈공명보다는 장각이 어울려.”

“무슨 말씀을, 제가 지혜로 보필한 것을 생각해 주십시오. 그리고 제갈공명도 바람을 부리고 안개를 부리지 않았습니까.”

“저도 장각에 한표입니다. 지모는 제갈공명에게 비길 수 없을 듯하고, 혹세무민하는 잡술은 장각을 능가하지요.”

세스룸니르를 지키는 역할을 맡은 아더와 멀린, 란슬롯은 다양한 현대의 문물을 접하며 현대를 배워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가장 강력한 컨텐츠는 바로 삼국지연의였다.

휴식 시간이 되면 함께 삼국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제갈공명을 자처하는 멀린이었지만, 그리 동의를 얻지는 못했다.

“우리와 비슷한 시기라고는 믿어지지 않는군.”

아더, 아니 블레이드는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더왕 일대기를 다룬 영화들을 보면서도 쓴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이능자들이나 이종족들과의 싸움이 있어서 화려한 맛은 있었을지 몰라도 스케일이 달랐다.

야만인들의 부족싸움이나 다름없었다.

반면 수만명이 기본으로 움직여서 전쟁을 벌인 삼국지의 스케일은 고대 섬나라의 부족장이던 아더에게는 놀라울 수 밖에 없었다.

“손자병법이라는 것도 놀랍습니다. 이런 것들을 기본으로 숙지하고 싸우던 무장들의 세상이 있었다니 참 기가 막히군요.”

마린 역시 자조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노인풍의 말투에 허무함이 베어나왔지만 트윈테일 미소녀의 모습이다보니 묘한 느낌을 주었다.

“지금 이곳만 해도, 우리가 살던 캐멜롯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지.”

블레이드는 몸을 일으켜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면서 말했다. 프레이야의 보금자리인 세스룸니르의 전경이 내려다 보였다.

동화속에 나오는 여신의 성처럼 아름답지는 않았다.

나무로 뒤덮힌 바위산과 같은 형상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사는 모습은 아름답게 보였다. 현대 지구의 기준으로 본다면 난민촌만도 못하겠지만, 자신이 과거 아더왕이던 때의 백성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풍족한 모습이었다.

“정을 들이지 않는게 좋습니다.”

마린이 블레이드의 옆으로 다가오면서 말했다.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블레이드가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담담함 속에 숨은 마음을 늙은 마법사는 헤아릴 수 있었다.

그의 나라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가 죽기 전에 이미 나라는 붕괴되어가고 있었다. 역사는 그를 전설의 영웅이라고 신화 속의 현왕이라고 말하지만 후회는 깊게 남아 있었다.

세스룸니르에 있는 이들은 사석이나 다름이 없었다. 버려진 아니 버려질 패였다. 그렇다고 조제성의 판단을 탓할 생각은 없었다. 모두를 살릴 수 없으니, 최소한의 희생으로 막아야 했다.

“주군께서는 살아남으셔야 합니다. 그게 여신님의 뜻이십니다.”

란슬롯이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간절함을 담아서 말했다.

“나도 죽을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저들을 잃고 싶지 않은 것도 사실이야.”

블레이드는 세스룸니르에 남은 굴베이그의 백성들과 엘프 신관들을 이용해서 최대한 방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엘프 신관들은 하나같이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인물들로서, 죽어서 정령화가 될 것을 기대하는 이들이었다.

죽음을 각오한 이들이었지만, 동시에 패배를 받아들인 존재들이기도 했다.

블레이드는 승리해서 살아남고 싶었다. 아니, 승리해서 살려주고 싶었다. 자신에게 맡겨진 백성들을.

“난 승리하고 싶네. 저들에게 살 길을 열어주고 싶어. 하지만 엘프들은 물론이고 자네들도 패배를 받아들이고 내게 받아들이길 권하고 있네. 그게 안타깝군.”

“하지만 여신님께선...”

“여신님께선 모두가 살아남기를 바라시네. 내가 틀렸나?”

‘당신 만큼은 꼭 살아남아주시기를 원하시지요.’

란슬롯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을 다물었다. 승리해서 세스룸니르가 살아남는다면, 그것을 여신이 달갑게 여기지 않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분명 기뻐할 것이었다.

하지만 패배가 예정된 상황에서 피해가 커지는 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블레이드는 왕이었다.

자신이 짊어진 목숨들의 무거움을 알고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혜서님을 통해서 제성 승상에게 이야기를 해봐야겠군.”

마린은 한숨을 쉬었다. 주군의 바람을 이룰 수 없는 무력한 자신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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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제성은 마린의 요청에 흔쾌히 응했다.

“괜찮겠습니까?”

“이정도는 해주실 거라고 믿었습니다. 안그러면 오히려 곤란하지요. 물론 아더왕의 영광스러운 승리를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조제성은 숨기지 않고 말했다. 오딘을 속이기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싸워줄 지도자가 필요했다. 발버둥이 필사적이면 필사적일수록 오딘은 자신의 승리가 거짓없는 것이라고 확신할 터였다.

그렇기에 조제성은 블레이드가 스스로 결정을 내리기를 기다렸다.

“이겨서 살아남으면 곤란한 것은 아니겠지요.”

“이겨서 살아날 경우도 물론 대비해 놨습니다. 그 경우엔 좀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제 견해로는 패배 확률이 압도적입니다. 그리고 그 경우에 대한 대비가 좀 더 철저할 뿐입니다.”

조제성은 자신의 예상이 적중하기만 기대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예상이 적중하지 않을 경우에 대한 대비도 해두는 신중파였다.

“지원 내용은 변하지 않겠습니다만, 지원의 양은 좀 더 늘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생체 리베로의 확충도 최대한 서두르도록 하지요.”

제성은 사이보그 몬스터의 투입을 결정했다. 호철이 장수한의 감독하에 만든 병기들이었다.

몬스터의 뇌를 개조해서 발키리 칩으로 조종하는 것이었다.

600만불의 오우거라고 프로젝트를 명명하고, 스티브과 제이미라는 이름의 두 마리 오우거를 만들었다.

뼈대를 티타늄 골조로 보강하고, 피부를 강화섬유로 보강한 것만으로도 강력한 물건이 탄생했다.

다만 다수를 투입하는데에는 무리가 있었다. 프레이야가 사라진 뒤에 남은 잔당이라는 설정을 관철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헬과 펜릴을 추종하던 몬스터에 가까운 이종족들에게 사용된 기술 중 일부가 스티브와 제이미 두 오우거에 사용된 것이었다.

“미드가르드쪽에도 큰 변이 일어났다고 들었습니다만...”

마린의 말에 조제성은 표정을 자제하기 위해서 인내심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수백만의 인구가 목숨을 잃은 끔찍한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수습을 위해서는 프레이야 여신님이 당신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으면 안될 것 같습니다.”

외견과 달리 노회하고 현명한 마린은 조제성이 기대감을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사태가 사태인만큼 자중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하는 듯 했다.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는 모양이군. 대체 무슨 짓을 준비하고 있는거지?’

마린 역시 수백만의 사람들이 죽었다는 이야기에 별로 동요하지 않았다. 사람이 죽어가는 일은 수도 없이 겪었다. 아군이 아닌 사람들이 몇이 죽어가든 알 바가 아니었다.

“여신님이 세상에 당신을 드러내신다니, 기대가 되는군요.”

원기는 자신의 존재를 되도록 감추고 추종자들과 우주로 떠나는 엔딩을 기대했지만, 조제성은 달랐다. 언젠가 감춰진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었다. 어떻게 드러내느냐에 따라서 큰 이득을 얻을 수도 있고, 절망적인 손해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준비가 결실을 맺을 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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