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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430화 (430/497)

430화 인류의 수호자

문이 열리고 걸음을 옮긴 것은 우아한 몸가짐의 여성의 모습이었다. 신비로운 분위기를 발하는 드레스를 입었는데 몸매는 날씬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머리에 쓴 것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스, 스톰트루퍼다.”

“스톰트루퍼의 헬맷이야. 대체 무슨.”

지구인 가운데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 유명한 영화의 졸병 캐릭터가 쓴 헬멧을 보면서 사람들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조제성 역시 쓴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분위기가 무거운게 싫다지만...’

장수한의 장난이라기보다는 호철의 짓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이 갔다. 여신의 뒤에서 쉬-하,거리는 숨을 쉬면서 다스베이더의 복장으로 손을 흔들면서 장난스럽게 내려오는 다스베이더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쁘지는 않군.’

조제성은 그렇게 판단했다. 대량의 신자가 발생하는 사태는 조제성으로서도 달갑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멋진 유머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웃음은 사람들의 긴장감과 적대감을 해소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호철은 여유있게 손을 흔들면서 내려오고 있었지만, 장내의 분위기를 보면서 기절할 지경이었다.

‘내가 왜 이런 미친 짓을 꾸민거지?’

다스베이더의 투구와 복장이 전신을 감춰주는게 다행이었다. 내심은 다리가 후들거려서 발걸음을 옮기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냥 보기에는 다스베이더가 리더이고 드레스를 입은 스톰트루퍼의 헬멧을 쓴 사람이 부하처럼 보여야 하겠지만, 누가 봐도 스톰트루퍼의 하얀 투구를 쓴 존재는 특별했다.

존재감 그 자체가 다른 이들과는 명확히 달랐다.

‘후광이라는게 이런 것일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다. 스톰트루퍼의 투구를 쓴 여성은 자연스럽게 연단 중앙에 섰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그녀의 얼굴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얼굴을 저 투박한 투구로 감췄음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감이 너무나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왠지 분위기상, 그녀가 얼굴을 보이고 입을 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헬멧에 손을 대지도 입을 열지도 않고 손짓으로 다스베이더가 나서게끔했다.

다스베이더는 그냥 인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스-하, 스-하. 레이디즈 앤 젠틀맨, 아임 유어 파더.”

방해하던 마고가 곁에 없었기에 그가 좋아하던 대사가 장내에 울려퍼지고 전세계의 전파를 타기까지 했다. 하지만 장내에 웃음이 터지지는 않았고, 황당한 눈빛만 돌아왔다. 호철은 농담할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프레이야의 소개를 시작했다. 양덕들을 주로 상대해 온 터라 영어는 유창했다.

“저는 지구인입니다. 신분을 밝히기 어려운 관계로 이런 복장을 한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호철은 최대한 평범하게 말했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저는 외계인과 초기에 컨택트를 한 사람입니다. 지구의 문화를 알리고 이해를 높이는데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그건 보면 누구라도 알겠다.’

“우리는 이 분을 코드명 ‘바니걸’로 부르고 있습니다. 다른 이름도 있습니다만, 우선은 바니걸로 지칭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보시면 아시겠습니다만, 바니걸의 존재감은 특별합니다. 그녀의 목소리와 외모는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초능력에 가까운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모습을 보여드리지 않고, 말씀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 모인 분들은 물론이고 시청하시는 분들께도 주의를 드리고, 대비하시기를 청합니다. 만약 불안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이 장소를 피하고 생방송을 시청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녹화방송 혹은 기사를 통해서 접하시기 바랍니다.”

호철은 그렇게 말하고 각 나라 말로 ‘나는 바니걸을 신적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그녀의 영향을 거부한다’‘그녀를 추종하지 않겠다’는 맹세의 말을 하도록 안내했다.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그 말을 따라했다. 경고를 무시했다가는 그녀의 추종자가 되어 전재산은 물론이고 목숨까지 바치려고 들 것이라는 위협때문이기도 했다.

“저 말을 따라하지 말라고요?”

“그래. 난 이미 프레이야님의 신자란다. 그리고 너희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구나.”

“세뇌 당한다고 하는데요?”

“음,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일부 프레이야 신자들은 자신의 배우자나 자녀들에게 맹세의 말을 따라하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일부는 그것이 먹혀들어갔고, 일부는 가족이 세뇌당했다고 생각했다.

준비가 어느정도 이루어지자, 프레이야는 투구를 벗었다. 그리고 인사말을 날렸다.

“저는 코드네임 바니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한 때 북유럽에서는 저를 두고, 아니 제 선조를 두고 프레이야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프레이야 여신의 이름이 등장하자, 사람들은 납득하는 느낌이 들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듯한 미모에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존재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라그나로크와 함께 이세상을 떠나간 저를 비롯한 외계 생명체로 여겨지는 존재들이 이 세상으로 돌아오고자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여러분께 알려드리고자 왔습니다.”

“혹시 그 리더는 오딘입니까?”

어떤 기자가 외치듯 물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눈이 코드명 바니걸, 프레이야 여신이라 불리는 존재에게 향했다.

“그렇습니다. 제가 지구로 돌아올 방법을 감췄기에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곧 지구로 돌아올 방법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협조자들을 통해 숨어서 오딘을 대비할 준비를 해온 것입니다.”

“외계인이라고 하셨는데 지구인과 외관이 다르지 않군요. DNA같은 것은 어떻게 됩니까?”

또다른 기자의 질문에 프레이야는 미소를 지었다.

“이 모습은 인간의 모습을 빌린 것입니다. 아바타라고 해야 할까요. 저를 비롯한 반족과 아스족, 거인족은 모두 정신 생명체입니다.”

프레이야가 손을 뻗자, 토끼 한 마리가 손 위에서 나타났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마술을 떠올렸다. 문제는 토끼가 시체나 다름 없이 축 늘어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저는 이렇게 동물의 육체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시체처럼 보이는 것은 영혼이 들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프레이야는 연단의 테이블 위에 토끼 시체를 놓았다. 그리고 그녀의 몸이 무너지듯 쓰러지려고 하자, 곁에 있던 갑옷을 입은 여성들이 그녀의 몸을 받쳤다.

그리고 단상에 놓인 토끼의 시체가 사람처럼 일어났다.

“이와 같이, 저는 육체를 빌려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오딘을 비롯한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우리의 육체를 빼앗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까?”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희 정신체를 집어 넣기에는 인간의 육신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물론 강제로 영혼을 빼내고 다른 영혼을 집어넣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에 대한 대비도 필요할 것입니다. 다른 영혼에게 육체를 빼앗긴 경우 그것을 확인할 방법은 제가 여러분께 제공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하는 토끼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말하는 토끼가 그냥 토끼가 아니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바니걸에서 느껴지던 존재감이 그대로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로도 문답이 이어졌다. 그 가운데에는 우주선에 대한 것도 있었다.

“광속 비행이 가능한 문명이라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데, 우리 인류가 과연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들의 문명을 우리가 손에 넣는게 가능합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내용이 많습니다. 일단 우리의 문명은 대부분 소실되었습니다. 전쟁을 좋아하는 호전적인 지도자들의 탓입니다. 저는 스마트폰을 들고 무인도에 떨어진 지구인과 비슷합니다. 태양에너지로 충전하고, 안에 있는 동영상을 보거나 GPS로 위치 확인이 되지만, 스마트폰을 만들 줄도 모르고 안에 있는 영화를 찍을 수도 없습니다. 위성을 띄울 수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저를 비롯한 반족, 아스족 등이 이 세상에 떨어진 것은 수천년 전입니다. 아마도 전쟁이나 재해로 인해서 지구에 표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제공할 수 있는 기술, 문명, 문화는 극히 보잘 것 없습니다. 어떤 원리로 우주선이 광속으로 이동할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보고 계신 탈 것도 현재는 달과 지구를 오갈 수 있을 뿐이고, 하늘에 뜨는 것 외에는 쓸모가 없는 장식품입니다. 오딘 역시 저보다는 강력하지만, 그리 큰 차이는 없습니다. 그게 우리의 희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헬 여신이 나타나서, 핵으로 공격했지만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건 어떻게 된겁니까?”

“저희의 방어 기술 중 하나입니다. 인간의 정신력을 모아서, 인간의 생명력을 높여주고 외부의 공격 일부를 막아주는 필드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게 핵도 막을 수 있습니까?”

“저는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향력의 일부를 줄일 수는 있습니다. 후쿠시마에 있는 필드도 그런 역할을 합니다. 방사능으로 파괴된 육신을 치유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숨어서 준비를 하는 것이 좋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혼란이 커진 지금에 와서는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제 협조자들이 작성해 준 배포 자료를 참고해 주십시오.”

“당신이 지구를 침략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어디 있습니까?”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와 제 백성들은 오딘과 싸웠고 졌습니다. 그래서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지구 인류가 오딘의 노예가 되는 것을 원치 않기에 여러분들에게 도움을 드린 것입니다. 최소한 저희가 도망칠 시간벌이는 되겠지요. 이기건 지건 저와 제 백성들은 지구를 떠나 우주로 갈 생각입니다. 이것만큼은 제 존재를 걸고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이미 각국 정상께 약속드린 부분이기도 합니다.”

프레이야의 영향을 안받겠다고 선언한 이들이었지만, 프레이야의 목소리와 그에 담긴 메시지는 머릿속에 선명하게 도달했다.

진실을 전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오딘에게도 당신처럼 사람들을 강제로 현혹시키는 능력이 있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다수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런 능력은 제게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대 프레이야에게도 없던 능력인만큼, 확신할 수 있었다. 게임의 아바타가 신성을 얻으면서 발생한 효과들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었다.

물론 헬이나 펜릴, 굴베이그에게도 이와 같은 능력은 없었다.

‘리디아라면 어떨지 모르겠네.’

원기는 불현듯 리디아를 떠올렸다. 프레이야가 자신의 후계자를 차원을 넘어서 찾으려고 생각하기 전에 미리 대비해 둔 것이 리디아였다.

리디아는 씨앗을 담을 그릇으로 특별하게 태어난 존재였다.

특별히 만들어진 그녀가 씨앗을 가진 이들보다 더 강력한 이능을 눈뜨게 된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것도 나름대로 괜찮을지도 모르겠군.’

리디아에게 신성을 부여하고 아바타를 만드는 것은 꽤 강력한 여신을 탄생시키는 것이 될지도 몰랐다.

이어서 질문이 쏟아졌고, 원기는 토끼의 몸을 버리고 프레이야의 몸으로 돌아와서 답변을 이어갔다.

그리고 세상은 격변의 시대를 맞이했다.

먼저 인류 방위군이라는 HDF라는 범지구적 군사기구가 탄생했다. 물론 각국의 이해 문제로 논의할 내용은 많았지만, 급박하다는 사실은 모두가 이해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달 뒤편을 거점으로 하는 프레이야의 나라가 세상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 물론 달 뒤편의 영토를 UN으로부터 30년간 임차한다는 조건으로 인정받았다.

그 외의 달 개발과 우주 개발에 협력할 것을 약속하는 것도 있었다. 어찌되었건 세상에 당당하게 주권을 가진 국가로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얻은 것이 많다고 할 수 있었다.

프레이야 제국은 프레이야를 주인으로 하는 입헌군주국으로서 초대 총리는 리디아가 맞게 되었다. 조제성은 여전히 뒤에서 모든 것을 총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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