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5화 다크엘프의 결혼
“아, 나 이거 진짜로 가야 해?”
호철이 인상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회장자리를 이야기할 때 설레인건 사실이지만, 친척들이나 큰할아버지를 보는 건 정말 싫었다. 조승상이 한 말인 만큼, 회장 자리를 자신이 차지하는 건 문제가 없겠지만 대역이라도 쓰고 싶었다.
“현재로선 방법이 없네. 네가 직접 가야지. 발키리가 대역을 해줄 수는 없으니 말이야. 튜링 테스트도 통과 못할테니.”
찬균이 자조적으로 웃으면서 말했다. 튜링 테스트는 엘런 튜링이라는 학자가 제시한 인공지능의 기준이었다.
인간이 보고 인간이라고 여기는게 튜링 테스트의 조건이었다.
블러디라인에 로그인하면, 일시적으로 영혼이 빠진 껍질화 된다고 할 수 있었다. 이 상태의 육체에 발키리가 들어가서 신체를 제어하는 것으로 육체를 유지하거나 일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발키리는 인공지능과 비슷한 존재라서, 사람의 대역을 혼자서 해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율동이나 안무, 연기, 노래 등을 프로그램처럼 기억시켜서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인터뷰를 하면 표가 날 수 밖에 없었다. 연예인 활동은 매니져와 촬영감독 등을 통해서 커버가 가능했지만, 친척들이 눈치 못채게 대역을 할 수는 없었다.
기본이 엘프나 다크엘프인 정령들도 인간보다 감정적인 면에서 빈약하기 때문에 대역을 할 수는 없었다.
물론 회장이 된 후라면 대역을 쓰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사인이나 도장찍는 일이라면 발키리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내가 갈 수 밖에 없는건가.”
“기운네. 세상에 여자는 넘치는거 아니냐.”
찬균이 호철을 위로하듯 말했다. 하지만 호철에게는 위로보다는 놀리는 것처럼 들렸다.
“너 말이야.”
호철은 한숨을 쉬었다. 호철은 자신이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회장이 되서 사람들 앞에 나설 것을 생각하니, 곁에 있을 여성으로 떠오른 것은 마고 외에는 없었다. 회장 비서로 고급 레스토랑 같은 곳에 동반해서 가는 것을 생각하니 회장 자리가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다시 생각해보니 비서보다는 부인이 더 좋을 것도 같았다. 그래서 호철은 용기를 내서 마고에게 고백을 해볼까 생각했다. 하지만 망설이는 호철에게 먼저 입을 연 것은 마고였다.
“저 마을에 돌아가야 합니다. 내일부터는 엘프족에서 호철님의 보좌를 할 겁니다.”
“무슨 소리야?”
“제가 출산 적령기에 들었습니다. 약혼자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예정입니다. 네 명 정도는 낳아야 하기 때문에 최소 삼년에서 사년 정도는 마을에 돌아가야 합니다.”
“약혼자가 있었어? 결혼은 언제야?”
“예. 사흘 후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호철은 순간적으로 머리가 띵하고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어쩌니 저쩌니 해도 마고는 그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었고, 완벽하게 보좌해 줬다. 어느사이엔가 마고에게 많은 것을 의지하고 있었다.
믿을 수 있고, 의지가 되는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마음이 가지 않는 것은 찬균같은 변태말고는 없을 터였다.
“혹시 날 좋아하진 않았어? 상사로서 말고 남자로 말이지.”
“아니요. 좋아한 적 없었습니다.”
“나하고 결혼할 생각 같은 건 해본 적 없어?”
“예. 해본 적 없습니다. 무의미한 일이지요.”
“날 남자로서 좋아하게 될 가능성은 없는거야? 전혀?”
“예. 없습니다. 전혀.”
호철은 그 말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고의 반응은 너무나 담담해서, 호철로서는 정말 철벽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너 좋다는 사람들 많을 걸. 재벌 3세에 VIP니까 말이야.”
“하, 하, 하.”
호철이 어이없다는 듯 웃어보였다. 호철은 그다지 인기있어 본 적도 없고, 그런 인기는 원한 적도 없었다.
“아니면, 나처럼 사랑하는 대상을 직접 만들던가. 우리 이쁜 뮤뮤.”
찬균은 컴퓨터 키보드에 올라온 고양이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찬균은 자신의 손으로 이상형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발키리나 인공지능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발키리도 인공지능도 감정과 욕망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감정은 고사하고 욕망도 없는 그들에게 욕망을 부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욕망을 흉내내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그건 실제 욕망과는 달랐다.
그리고 찬균이 얻어낸 답은 옛날 애니메이션 ‘만능문화묘랑’에 숨어 있었다. 사고로 죽은 고양이의 뇌를 로봇에게 이식해서 만든다는 내용을 보고는 손뼉을 쳤다.
그리고 몬스터의 뇌를 개조하는 연구에 돌입했다. 욕망과 감정은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었다. 하지만 몬스터의 뇌를 컴퓨터로 보조 확장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성적인 부분을 컴퓨터로 보완해주는 것이었다.
사람 말 귀를 알아듣게 만들고, 뭐가 손해고 뭐가 이득인지 따질 수 있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통제가 가능해졌다.
시사라들을 비롯해 다양한 몬스터들이 말귀를 알아듣게 되었고, 욕망을 조절할 수 있는 이성을 갖게 되었다. 찬균의 쓸데없어 보이는 연구가 큰 보탬이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찬균의 최종 목표는 자신을 따르는 고양이 뮤뮤의 뇌를 개조해서 인간처럼, 아니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인간으로 만든다고 널 좋아해준다는 보장이 있냐?”
“당연히 있지. 개한테만 충성심이 있는 건 아냐. 고양이도 주인을 따르고 아낀다고. 발정기 때는 주인에게 교미를 청하지. 그게 원시적인 사랑, 에로스 아니겠냐.”
“그럼 빨리 해보던가.”
“어허, 내 뮤뮤에 대한 사랑을 모르는구나. 어떻게 내가 뮤뮤를 죽일 수 있겠어. 뮤뮤의 수명이 다 할 때까지 기다려야지. 뮤뮤가 죽게 되면 그 때 내 사랑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줄거야.”
찬균이 꿈을 꾸듯이 말하자, 호철은 심통이 났다.
“됐네. 난 간다. 젠장.”
호철은 자신이 마고를 생각보다 많이 좋아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긋지긋한 친척들을 만나는게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그는 찬균의 방을 나서다가 찬균의 일을 도와주는 엘프 신관 중 하나를 만났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화장실을 치우는 역할들도 엘프들이 돕고 있었다.
[원기야. 지금 괜찮냐?]
[무슨 일이야? 나야 괜찮지.]
[너 찬균이 녀석이 기르는 고양이 뮤뮤 알지?]
[알지. 무슨 일이라도 있어?]
[아니, 별 일은 아니고, 너도 그녀석을 귀여워하는지 알고 싶어서.]
[아, 정말 귀엽지. 사람을 잘 따르는게 난 마음에 들어. 개냥이같아서.]
[오케이. 나중에 보자.]
원기는 호철이 메시지를 마치자, 무슨 일 때문에 물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당혹스러워했다. 자신에게 고양이라도 선물할 생각인가 하고 의문을 가졌을 뿐이었다.
호철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엘프 신관에게 다가갔다.
“세계수의 과실주 말인데, 동물에게 먹여도 되는건가요?”
“물론입니다.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에게 도움이 되면 되지, 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아, 그래요. 그럼 과실주 한 병, 고양이 뮤뮤에게 먹여도 될까요?”
“고양이에게요? 물론 가능합니다만...”
엘프 신관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세계수의 과실주는 그만큼 귀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조금 전에 여신님하고 이야기를 나눴는데, 여신님이 그 고양이가 마음에 들고 정말 귀엽다고 하셨군요. 그래서 그러는데 제 몫으로 나온 과실주가 있으면 한 병 주고 싶군요. 추가로 혹시 고양이의 장수를 빌어주는 축복이 있으면 축복을 베풀어 주시면 좋겠네요.”
엘프 신관은 그의 말에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프레이야 여신이 아끼는 고양이라면, 기꺼이 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과실주는 호철님의 권한으로 한 병 사용하겠습니다. 그리고 최대한 많은 신관을 모아서 장수를 위한 축복을 내리겠습니다. 수명이 최소한 두배는 늘어날 겁니다.”
“아, 찬균이에게는 비밀로 해주세요. 괜히 미안해하면 그것도 난처하니까 말이지요.”
호철은 그렇게 조금 특이한 심술을 부렸다. 엘프들의 세심한 보호 속에서 그 고양이가 늙어 죽으려면, 꽤 오래 걸릴게 틀림없었다. 호철은 자신의 부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예측하지 못했다.
----------------------------------------
‘젠장, 고양이한테 주는게 훨씬 낫겠다.’
박천권 회장과 면담한 호철은 내심 속이 상했다. 특히 마고 앞에서 자신이 고양이 앞의 쥐처럼 굴었다는게 속이 상했다.
그리고 그것이 조제성이 원한 것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당연히 드려야지요. 마고, 과실주 한 병 가져다 주겠어?”
마고는 그런 그를 잠시 보고는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잠시 후 과실주를 들고 나타났다.
“과연 엘프들이로군. 대단히 빠른걸.”
박천권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마고라는 다크엘프의 표정에서 짙은 불쾌감이 느껴졌다. 엘프들의 반감을 산 것은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이득은 있었다.
박호철은 역시 자신의 앞에서 비굴할 수 밖에 없었다. 엘프들에게 반감을 사는 것은 그리 좋은 일은 아니지만, 여신이 총애하는 박호철이 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성과였다. 추가로 과실주를 얻어낸 것도 소득이었다.
리디아 수상조차 먹어본 적이 없는 호사스러울 뿐 아니라, 활기를 주는 효과까지 가지고 있었다.
박천권은 호철에게 고압적인 자세로 지시를 내렸다.
“리디아 수상과 자리를 마련해라. 그리고 네가 그녀와 교섭해서 달 기지의 건설권과 채굴권, 그리고 우리 회사의 인원을 최대로 배정해라. 계약 조건은 이 계약서에 준해서 말이지.”
“당신, 너무 건방진 것 같은데.”
마고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하지만 박천권 회장은 눈깜짝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마고는 이빨이 날카롭다고는 해봐야 짖어대는 개에 지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호철이 굴복하자, 마고는 입을 다물었다. 리디아의 미인계는 은연중에 알려져 있었다. 거래 자체는 후하게 해주지만, 그녀와 거래한 이들은 그녀의 추종자가 되어 버린다는 소문이었다.
박천권은 사람들의 상하관계에 민감한 인간이었다.
그래서 갑을관계를 꿰뚫어보는 눈이 있었다. 그가 본 느낌으로는 호철은 엘프들을 얕보는 것은 아니지만, 위로 보는 것도 아니었다. 리디아의 위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밑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었다.
반면 리디아는 자신이 호철보다 격이 낮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신의 총애 때문일 것이었다.
여신은 호철을 동격으로 대해주려고 했고, 호철은 자신을 여신의 아래로 여기는 것은 분명했다.
‘그건 어쩔 수 없지. 여신의 카리스마는 확실히.’
예쁜, 아니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이지만 감히 불경한 상상같은 것은 할 수 없을 그런 카리스마가 존재했다. 비너스의 탄생처럼 설사 알몸으로 모습을 드러낸다고 하더라도 그걸 보면서 다른 생각 하기는 힘들 것이 분명했다.
박천권은 호철의 능력을 높이 사지는 않았다. 취미에 빠져서 야심도 없이 숨어사는 쥐새끼같은 놈이라고 여겼다.
물론 박천권은 쥐새끼를 싫어하지 않았다. 자신의 강함을 느껴주는 약자를 그는 사랑했다. 강자로서의 그의 사랑은 약자에게는 지독한 괴롭힘과 큰 차이가 없었을 뿐이었다.
“변변찮은 녀석 같으니. 네가 기르는 암캐가 너보다 훨씬 낫군. 네가 얼마나 시원찮으면 저런 암캐를 붙여줬을까. 정신 좀 차려라. 내가 부끄럽다.”
박천권은 자신이 얻을 것을 다 얻고도 호철에게 잘난 척 일갈했다. 철저히 밟아둬야 두고두고 써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있기 때문이었다.
------------------------------------
“호오. 잘해주었군.”
조제성은 호철에게 칭찬의 말을 던졌다. 하지만 호철의 얼굴은 전혀 밝아지지 않았다. 박천권에게 굴욕을 당한 것도 있지만, 마고의 소식 때문이기도 했다.
조제성은 거래의 내용 따위는 상관없었다. 대박그룹을 먹어치울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거래의 주체가 호철이 되었다는 것은 큰 소득이었다. 좀 더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해 호철이라는 무기를 휘두를수록 대박 그룹을 장악하기 쉬워졌다.
박천권은 호철을 도깨비방망이라고 생각하지만, 호철은 양날의 검이었다. 아니 칼자루는 조제성이 쥐고있었다.
호철이 물러나자, 조제성은 장수한을 불렀다.
“자네가 한번 이야기를 좀 나눠보게. 뭔가 꽤 큰 고민이 있는 것 같아.”
장수한은 조제성의 말을 듣고, 찬균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는 믿을 수 없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호랑이보다 더 큰 거대 고양이 몬스터였다.
“아, 시박, 호철이 이새퀴. 가만 안둔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고양이 장난감이 되어버린 찬균이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고양이는 영생을 얻는 대신에, 무적의 강함을 손에 넣은 것이었다. 묘왕이라 일컬어도 손색없는 거대 몬스터는 찬균을 입에 물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이거 멋지군.”
장수한은 호철에 대한 일은 잊어버리고, 갑자기 나타난 거대 고양이에 환호했다.
“이건 거인족 탄생의 열쇠일지도 몰라. 어떻게 해서 고양이가 이렇게 변한 건지 알고 있어?”
-----------------------------------
‘참 나도 병신같다.’
호철은 그렇게 생각하며, 남미에 있는 다크엘프 마을에 들어섰다.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한다면서 쫓아온 것이었다. 자신이 이렇게 미련이 많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뭐냐. 인간. 어딜 함부로 들어오는거냐.”
그리고 멱살을 잡히는 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다크엘프들의 결혼식은 엄숙한 종교적 예식이기 때문에 외부인의 참석이 원칙적으로 허가되지 않았다.
‘이 녀석이 마고와 결혼할 상대인건가?’
호철은 마치 조각과도 같은 미끈한 미남 엘프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다크 엘프 남성들은 엘프들과 달리 완벽한 성인 남성의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적령기의 다크 엘프 남성의 모습은 호철로서는 할 말이 없도록 만들었다.
“그만둬. 그분은 여신님의 계약자야.”
마고의 말에 상대는 황급히 손을 놓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경솔하게 굴었습니다.”
정중한 사과를 받았지만, 호철은 더 씁쓸했다. 상대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깨끗이 물러섰지만 그게 더 속을 상하게 만들었다.
“마고의 지인으로서 결혼식을 보러 왔습니다. 인간들의 결혼식처럼 생각한게 잘못이지요.”
숲속에 살던 다크엘프들의 삶은 야만부족들의 삶과 조금은 닮은 점이 있었다. 물론 비교도 할 수 없는 정갈함과 세련됨도 함께 있었다.
외모들이 받쳐주니, 신화속의 장면과도 비슷해 보였다.
“그러셨습니까. 영광입니다. 마고와 결혼할 미가라고 합니다.”
“오래 사귀셨나봅니다.”
“태어날 때부터 결혼 후보로 정해져 있었지요.”
미가의 말에 호철은 태연함을 가장하기가 쉽지 않았다. 한마디 한마디 쥐어짜기가 쉽지 않았다.
“많이 좋아하시나 봅니다.”
“아니요. 전혀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미가의 말에 호철은 자신이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마고와 서로 좋아해서 결혼하는거 아닙니까?”
“자식을 낳아야 하니 결혼하는 거지요. 프레이야 여신님께서 자녀를 많이 낳아서 번성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미뤄뒀던 번식을 마을 차원에서 벌이는 겁니다.”
“그럼 마고를 사랑하시는게 아닙니까?”
“부족원으로서 아끼는 걸 말씀하시는게 아닌 것 같군요. 인간의 사랑은 저희에겐 없습니다. 종족 보전의 사명은 있습니다.”
“마고. 넌 미가를 남자로서 좋아하는게 아냐?”
“좋아하지 않습니다. 좋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호철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직 이틀의 시간이 남아있긴 하지만, 그 시간은 결코 길다고는 할 수 없었다.
“여신이 말이야, 나랑 결혼해야 한다면 할거야?”
마고가 눈살을 찌푸렸다. 호철은 가슴이 철렁내려앉았다.
“여신님을 함부로 부르실 자격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저는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와 호철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날 수 없습니다. 결혼은 의미가 없습니다.”
“난 네가 필요해. 너 말고 다른 사람이 내 곁에 있는건 원치 않아.”
“그런가요? 미가. 족장님께 말씀드려줘. 난 번식임무 대신에 계약자보좌임무에 임하겠다고.”
“그래. 그럼 내 짝은 피니가 되겠군.”
미가는 마치 포크댄스 파트너가 바뀌는 것처럼 담담하게 말했다. 프레이와 프레이야가 함께 탄생시킨 엘프라는 종족에서 전투력의 향상을 위해 남성의 전투력을 회복시킨 것이 다크엘프였다.
남녀가 가족을 이루기는 하지만, 엘프들과 같이 성욕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양육은 엘프와 비슷하게 공동 양육의 관습이 있어서, 개개인의 자녀에 대한 집착은 없었다.
부족 내에 자녀가 충분히 생산되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개인의 유전자보다 부족의 유전자풀이 존속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면은 엘프에게서 이어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래도 되는거야?”
“예.”
마고는 쿨하게 답했다. 호철은 자신의 고민과 갈등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반면 마고는 호철이 자신을 대체할 수 없는 존재로서 필요로 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대단히 기뻐하고 있었다.
다만 다크엘프의 감정 표현은 인간이 알아보기 힘들어서 호철은 눈치채고 있지 못했다.
‘프레이야 여신님께 청하면,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지 않을까? 아이를 갖고 싶어하시는 것 같은데.’
마고는 아이를 갖을 수 없는 번식행위는 무의미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인간들과 많이 접한 엘프들 중에는 인간이 원하는 것이 아기가 아니라, 그 이전의 무의미한 번식행동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들도 제법 있었다.
하지만 이런 지식은 쉽게 퍼져나가지 않았다. 엘프들이 이런 지식을 공유할 가치가 있다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발정기가 따로 없는, 연중무휴 발정기인 생물은 발정기를 가지고 번식을 위해 힘쓰는 생물이 이해하기 힘든 존재이기도 했다.
마고의 경우에는 인간과 오랜 시간 함께 접하기는 했지만, 그녀가 접할 수 있는 정보가 특정 분야에 치우친 탓도 있었다.
------------------------------
“이 새퀴, 돌아오기만 해봐라.”
수명을 예측할 수 없는 거대 고양이를 애완동물로 갖게 된 찬균은 온몸이 쑤시는 것을 느끼면서 이를 갈고 있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