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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437화 (437/497)

437화 수르트

[어떻게 된거지? 중력 탈출 장비가 존재하지 않아.]

수르트는 당황했다. 화성에서 착륙한 착륙선은 왕복선의 기능이 없었다. 대량의 화물을 땅에 내려놓았을 뿐이었다.

승무원들은 신이 나서 사진을 찍고 세계 각지로 인간의 화성 정복을 알리고 있었다.

도착한 물건들은 대부분 기지 건설을 위한 기자재들이었다. 기지 건설을 위한 로봇들이 기지 건설을 위한 토대작업에 들어가 있었다.

[아직은 좀 더 기다려야 하나?]

모선으로 옮겨갈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수르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이 기계에는 어떤 언어가 쓰였지? 인간들의 기술도 날로 발전하는군.]

수르트는 기계 내의 데이터 저장장치에 담긴 데이터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화성까지 오는 전파는 극히 미약한 편이고, 탐사정들은 최소한의 정보만을 주고받았기 때문에 수르트가 알고있는 지구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았다.

반면 이번에 도착한 선체에는 생각보다 많은 정보들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안에서 모르스 신호로 만들어진 정보를 얻었다.

[모르스 신호로 만들어진 정보라니, 좀 특이하군. 보자. 잘 있었나. 수르트. 프레이로부터?!]

수르트는 그 순간 분노했다. 라그나로크 마지막 순간, 차원문을 관리하는 관리자인 프레이를 공격했다.

프레이를 격퇴해서 라그나로크로 밀어넣는데 성공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프레이는 화성과 연결된 무스펠헤임의 게이트를 끊어 버렸다. 그 결과 지구에 남아있던 수르트의 육체는 단절되어 소멸하고, 무스펠헤임에서 다시 부활했지만 결코 지구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프레이를 죽인 수르트가 어디론가 사라진 경위였다.

무스펠헤임에서 노예로 부리던 인간들이 없었다면, 그들은 완전히 멸망해 버릴 수 밖에 없었다.

무스펠들은 태양의 열이나 자연의 전기 등의 에너지를 이용하는 에너지체이지만, 인간의 영적 에너지를 의지의 바탕으로 삼았다.

영적 에너지와 열 에너지, 어느 한쪽이라도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태양같은 항성에서 살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영적 에너지를 근간으로 하기 때문에, 통제할 수 있는 에너지도 영적 에너지에 비례해서 존재했다.

결국 화성은 무스펠들의 감옥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수천년에 걸친 감옥 그 자체였다.

에너지를 구사할 수 있는 무스펠들의 힘으로 화성도 나름대로 문명을 구축하긴 했으나, 인구가 워낙 적어서 발전은 쉽지 않았다.

인간들이 말하는 올림퍼스 화산 내부에 지저 도시를 건설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수천년간 에너지를 과도하게 끌어쓴 탓에 화성의 지각 에너지 고갈까지 불러오게 된 상황이었다.

인간들의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기도 했다. 척박한 화성에서 인간들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생태계 유지가 필요했다.

수르트들 역시 살아남기 위해서 인간의 개조에 착수했다.

수르트들에게 있어서 생명줄인 인간의 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인간의 머리 크기는 유지하고, 저중력 상황에 맞춰서 팔다리를 가늘게 만들고 몸은 최대한 축소시켰다.

생명 유지를 위한 최소한만을 남긴 것이었다. 공기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저의 밀폐된 공간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그들의 피부는 하얗게 변했고 어두운 속에서도 잘 볼 수 있도록 눈은 커졌다. 그리고 입은 퇴화되어 작아졌다.

그 결과가 인간들이 SF에서 자주 보는 외계인 ‘그레이’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뇌와 눈만 인간 사이즈에 비쩍마른 어린아이 같은 체형의 인간들이 바로 무스펠들과 공생하는 인간들이었다.

“프레이는 지구에 이미 돌아와있는 모양이로군요.”

그레이 장로 하나가 말했다. 무스펠 족들은 이미 많은 수가 줄었고, 남은 이들도 대부분 잠들어있는 상태였다.

그레이들은 무스펠들의 생명줄이나 다름없기에 무스펠들과 어느정도 대등에 가까운 관계를 갖게 되었다.

[그래. 그런 것 같다.]

“뒷 내용은 어떻게 됩니까? 냉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군. 연락을 원한다면 자신들이 정한 주파수로 통신을 하면 된다고 하는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빌어먹을 일이지만, 칼자루를 쥔 것은 놈들이다. 연락을 취해봐야겠지. 망할.]

수르트는 이를 갈았다. 지구에서 날아온 탐사정을 통해서 인류가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지구의 발전이 더 가속화된다면, 자신들은 아무짓도 못하고 압도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들이 기계문명에 의지하고 있고, 자신들이 인간들의 기계를 장악할 수 있다는 사실에 모든 것을 걸었다.

화성에서 연명하듯이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에, 지구를 침략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하지만 아스 신족이 돌아온 지구라면, 희망은 없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자비를 구걸해야 하는건가.’

수르트는 이를 갈면서도 냉정을 회복하려고 애썼다. 그레이들의 운명도 자신에게 달려있었다. 초기 무스펠 종족은 인간들을 노예나 소모품 취급했지만, 오랜 세월 소중히 여기다보니, 정이 많이 들었다.

[들리는가. 프레이. 이쪽은 수르트다.]

그가 모르스 신호로 답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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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끼를 건드렸습니다.”

조제성은 원기에게 보고를 올렸다. 수르트로서는 항복선언이나 다름없었지만, 조제성은 완전히 미끼를 물었다고 보지는 않았다. 수르트가 아는 지구에 대한 정보가 제한적일 거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최대한 정보를 적게 주고 상대의 정보를 최대한 끌어내서 완벽하게 옭아매는 것이 조제성의 의도였다.

“저들을 게이트를 이용해서 게임 세계로 보내버리는 것은 어떨까요?”

원기가 묻자, 조제성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원기의 의견을 묵살하는 것은 조제성으로서도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런 조제성의 배려가 원기가 의견을 내기 어렵게 만드는 역효과도 내고 있었다.

“일단 가상공간이긴 합니다만, 전기로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프레이의 말에 따르면 열과 빛, 전기적 특성까지 가진 에너지체라고 하니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릅니다. 위험부담이 있습니다.”

기계를 지배한다는 사실은 발키리를 통해서 파악한 바가 있었다. 그들이 기계를 장악하면서 발키리를 쫓아낸 것을 그들이 눈치채지 못한게 천운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군요.”

“중요한 것은 정보입니다. 긴 줄다리기를 통해서 상대가 노리는 것과 지키고 싶어하는 것을 알아내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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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들이 인간의 영혼을 피를 통해서 빨아먹는게 맞는건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석연치않은 구석은 있습니다.”

“어떤 건가?”

“우리들은 인간의 영혼 자체를 빨아먹는 것은 아니고, 영혼과 육체를 이어주는 부분을 빨아먹습니다. 우리 중국에서는 그것을 백이라고 부르지요. 그런데, 이 백은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순간에 흩어집니다. 그것을 피를 통해서 최대한 빨아내는게 우리의 흡혈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죽이지 않고도 백의 일부를 빨아낼 수는 있습니다만, 제가 알기론 극미량입니다.”

“그럼 역시 헬이 우리를 속이고 있는건가?”

“그럴지도 모릅니다만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헬 여신의 초기 생산물입니다. 그리고 버려진 존재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들은 이천년 가까운 세월동안 헬 여신에게 사랑받으며 진화해온 순수 혈통들이지요. 그들만의 방법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러시아쪽 의견과 별로 다를게 없군. 헬이 정치범등을 이용할 가능성은 없나?”

“헬 여신께서는 공포의 관장자입니다. 공포로 지배하는 지옥의 여신이시지요. 독재하는 여러분들과 손을 잡은 것은 이해가 가지만, 저들을 도와서 무엇을 얻겠습니까?”

“우리는 독재자가 아니다. 당이 인민을 바른 길로 이끌 뿐이야.”

“아, 그런 것으로 해두겠습니다. 우리의 무지를 용서해 주십시오. 인간들의 정치는 잘 모르겠더군요.”

노회한 인상의 뱀파이어가 미소를 지었다. 선량하고 왜소한 중국 노인처럼 보이지만, 그의 미소에는 압박감이 있었다.

뱀파이어들은 인간을 잡아먹고 장수하는 종족이어서, 그 나이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아편전쟁 이전부터 살아왔다고 알려져 있었다. 당의 고위간부라지만, 쉽게 여길 수는 없었다.

“스파이를 들여보내는건 어떻겠나?”

“무리입니다. 피를 빨리는 순간, 그들의 노예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몇몇 죄수가 죽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고의로 악행을 저지른 중죄인을 몇몇 들여보냈다. 뱀파이어들은 맛이 없다며 그들을 죽여버렸다. 왜 죽였냐고 묻자, 양들 속에 늑대를 돌려보내는 건 태만이라고 말했다.

썩은 사과를 사과 상자에 넣어두면 모든 사과가 썩어버린다는 말에 그들은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어차피 먹으라고 제공된 중죄인인만큼 반박할 수는 없었다.

“그래. 분명 놈들은 인간을 먹을 것으로 밖에는 여기지 않았지.”

프레이야의 지배력은 상당히 강력했다. 헬이나 펜릴의 종족들조차도 프레이야의 지배를 받아들이면서,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프레이야의 지배력은 세뇌같은 것이 아니었다.

지배하는 이들을 그저 소중히 여길 뿐이었다. 지배라기보다는 그저 지켜주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하는 마음이었다.

따라서 프레이야의 지배력이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을 바꾸는 일은 없었다. 그저 프레이야가 좋으니, 프레이야가 원하는데로 해주고 싶을 뿐이었다.

헬의 뱀파이어들은 인간들 사이에 숨어서 살아온 뱀파이어족들하고는 달랐다. 인간들 위에 군림하면서, 인간들을 가축으로 삼아서 살아온 상위 존재들이었다.

지구의 뱀파이어가 어둠의 존재로서 숨어서 범죄자처럼 살아왔다면, 헬의 뱀파이어들은 귀족으로서 군림하면서, 자신들을 드러내고 인간을 떳떳하게 가지고 놀면서 살아온 이들이었다.

이 차이는 기본적인 태도에서부터 역력하게 드러났다. 피해의식과 조심성, 그리고 열등감에서 비롯된 우월감으로 뭉친 꼬여있는 지구 뱀파이어들과 당당함에서 비롯된 진짜 자부심과 자부심을 근거로 한 무관심은 누구라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프레이야 휘하의 뱀파이어들은 인간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프레이야 여신이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겐 여전히 가축이하의 존재일 뿐이었다.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 인간들을 죽여도 좋다는 지시가 떨어진 상황에서 그들이 인간에게 연민을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프레이야의 명으로 ‘소중히 여겨야 하는 인간은 소중히 여길’ 뿐이었다.

뱀파이어 신관들은 프레이야의 세계수에서 나는 수액을 건네는 방식으로 적자나는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조제성의 투자이기도 했다.

독재 성향이 강한 국가들은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른다는 판단으로 들어두는 보험이었다. 만약 오딘의 편에 든다면, 내전을 일으켜서라도 무력화시켜둘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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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어느정도 상황은 이해했다.]

수르트도 상대가 진실을 말하는지 판별하는 눈은 가지고 있었다. 물론 진실만 가지고 상대를 속이는 것은 가능했고, 수르트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오딘과 적대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군. 반족 출신이니 가능한 일이지. 오딘의 심복이라고 하지만, 프레이 역시 남매신이니 가능하겠지. 로키와 오딘이 한패라는 것도 분명하지.’

조제성의 조건은 간단했다. 식량과 에너지를 제공할테니, 화성에서 나오지 않겠다고 맹약을 걸든가 향후 20년간 오딘과 결코 타협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아스가르드에 대한 게이트를 열어주겠다는 것이었다.

지구에 대한 정보 누출 금지가 조건으로 붙어있었다.

‘100억이라니, 인간이 100억에 달할 줄이야.’

수르트 역시 인간들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획득할 수 있었다. 지구의 방송 전파가 화성까지 제대로 도달할 리가 없었다.

나사 본부와 탐사선과의 통신에서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리가 없었다.

수르트는 정착선을 장악하고 정보를 어느정도 얻을 수 있었다. 그 정보들은 믿기지 않는 것들이었다.

‘원자력 에너지라니. 엄청난 짓들을 하고 있군.’

수르트가 에너지를 지배한다고 하지만, 그 양에는 제한이 있었다. 전기를 대량으로 내뿜어서 강력한 번개 마법처럼 사람들을 구워버릴 수는 있지만, 진짜 번개급의 에너지를 완전히 지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물며 원자력 폭탄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인간들이 마음만 먹으면 우리 지저도시는 통째로 날아가겠군.’

그레이들의 문명이나 기술이 지구보다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의 체격은 그저 저중력에서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들도 당해내지 못할 체력이었다. 세계수의 지원이 없다면, 지구같은 행성에서도 살 수 없을게 분명했다.

‘우리 세력은 지나치게 보잘 것 없군. 하지만 타협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야.’

조제성의 제안을 통해서, 수르트는 자신들의 가치를 알아냈다. 기계를 장악할 수 있는 자신들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잠들어있는 무스펠들까지 깨우면 수천에 달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레이들만으로 수천의 무스펠들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그레이의 번영과 인류의 장악은 필요했다.

‘적어도 하나당 인간 천명은 필요하지.’

[우리는 너희의 조건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하지만 거래는 가능하지. 우리의 조건을 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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