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잊혀진 신의 세계-438화 (438/497)

438화 화성의 카우보이

“당신의 조건이 무엇인지 듣고싶소.”

[미드가르드, 지구를 우리에게 넘겨라.]

수르트의 말에 조제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말도 안되는 요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제성은 통신을 끊지않고 상대를 주시했다. 말도 안되는 주장이지만, 이것이 거래의 테크닉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장단은 맞춰줘야겠군.’

“무리요. 우리에겐 지구를 넘길 권한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소이다. 우리를 적으로 삼고 싶은거요?”

[그건 아니다. 우리는 그대들이 떠난 후의 지구를 우리가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기를 원한다.]

“우리가 떠난 후?”

조제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데이모스를 이용한 탈출 계획은 아직 수르트에게 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대들이 데이모스를 이용해서 우주로 떠나려는 것쯤은 알고 있다. NASA쪽 정보라면 오랫동안 분석해왔지. 달의 영역을 30년 후에는 인간들에게 넘기기로 한 사실도 알고 있다. 우주로 떠나는 것은 우리도 검토해 본 적이 있다. 프레이야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되는군.]

수르트의 말에 조제성은 미소를 지었다. 가능하면 정보를 감추면 유리한 법이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알면 거래가 편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노 코멘트라고 해두지. 그럼 그대의 목적은 30년간 불가침이라고 해둬도 되겠나?”

[30년간, 프레이야 여신에게 적대하지 않고 협조하겠다. 물론 그대들도 우리의 안위를 위협하지는 말아야겠지. 협조자로 그레이 종족 일부와 무스펠 몇을 보내겠다. 그들은 지상의 정보를 수집할 것이다. 그대들이 지구를 떠날 때까지 말이지.]

“여신님은 떠난 후라도 너희들이 지구를 침략해서 인간들을 노예로 부리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우리는 이미 그레이들과 공동 운명체로서 공생의 길을 걸어왔다. 그것이 비록 원해서 이루어진 것은 아닐지라도. 에너지체인 우리는 인간과 공생공영할 수 있는 존재이다. 오딘과는 다르지. 만약 오딘이 온다면, 지구는 끝이다. 적어도 인류는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무슨 소리지?”

[역시, 아직 모르고 있었군.]

수르트는 거래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한 것을 만족스럽게 느꼈다. 하지만 그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상대의 호의를 사는 것 뿐이었다.

[라그나로크 계획은 인류 멸절계획이 포함된 것이다. 오딘이 설마 지구로부터 도망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아스가르드는 일시적 피난처일 뿐이었다. 적어도 당초 계획상으로는 말이지. 모든 인간과 신족들을 깡그리 전멸시키고 자신의 백성들을 데리고 텅빈 지구를 재점령하는 것이 라그나로크 계획이다. 무스펠헤임, 그대들이 불의 별이라고 부르는 이 별 또한 피신지의 하나였을 뿐이다.]

조제성은 수르트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스도교 사상에 사람들이 감화되기 시작했다고 꽁무니를 빼는 것은 그가 생각해온 오딘과도 많이 달랐다.

오히려 오염된 인간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피신했다는 수르트의 말이 더 설득력이 있었다.

“그 말대로라면 네가 세상을 구한 것이 되겠군.”

[그렇다고 말하면 믿겠나? 그저 마지막 단계에서 무스펠만이 지구의 신으로 군림하기를 바랐을 뿐이었다. 어차피 지구는 좁고 인간은 많았다. 가능하면 우리를 따르는 귀여운 녀석들로 채우고 싶었을 뿐이다. 물론 지금은 다르다고 말하고 싶군. 너희처럼 드넓은 공간을 떠도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일족에게 지구의 삶을 만끽할 수 있게끔 해주고 싶다.]

“프레이야님께 말씀드려 보도록 하겠다.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나? 물자 지원은 해줄 수 있다.”

그레이라는 종족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조제성은 리디아를 써먹기로 마음먹었다. 그레이들의 환심을 사둔다면 나쁠 것은 없었다.

[그렇군. 우선 소들이 먹을 사료들과 소를 보내줬으면 좋겠군.]

“소? 화성에 소들이 있나?”

[물론이다. 처음에는 제법 많은 종류의 가축과 식물들이 있었지만, 척박한 환경을 못이겨서 결국 살아남은 것은 이끼 종류와 소들 뿐이었다.]

“소? 양이나 토끼같은...그렇군. 신성력의 영향인가.”

조제성은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신성력의 버프를 받는 것은 체격하고 어느정도 관계가 있었다. 작은 동물이 신성력으로 얻을 수 있는 적응력보다는 덩치큰 생물에게 더 많았다.

그레이들은 화성의 환경에 적응한 이끼와 그 이끼를 먹는 소들을 중심으로 근근히 살아온 것이었다.

“혹시 캐틀 뮤틸레이션(소학살)이 너희들의 짓이었나?”

조제성이 캐틀 뮤틸레이션에 대해서 설명하자, 수르트는 긍정했다.

[바이킹 우주선 덕분에 지구의 위치를 역으로 추적하는게 가능했다. 그리고 텔레포트 계획을 세웠지만, 실패했다. 너무 멀었기 때문이다.]

조제성은 수르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스신족의 기술로도 지구와 달 정도는 커버되지만 지구와 화성을 잇기 위해서는 여러기의 중간 게이트가 필요했다.

안정적인 텔레포트가 불가능한 것은 틀림없었다.

[그래서 우리가 선택한 것은 거대한 마법진을 이용해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객체 텔레포트라고 해야겠지. 처음엔 인간을 납치했지만 실패했다. 자신의 의지가 있는 존재를 납치할 수는 없었다. 결국 지구로 가는 것도, 지구에서 인간을 끌어오는 것도 실패했다. 할 수 없이 식량난을 해결했다. 소 전체를 끌어온 경우도 있었고, 소의 영양분만을 끌어온 경우도 있었지. 답변이 되었나?]

신성마법도 결국 이능의 변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능의 근본은 강렬한 바람이었다. 인간의 납치가 안되니까, 소를 납치한 꼴이었다.

‘소가 되게 먹고 싶었나보군.’

외계인에게 신체실험을 당했다던 사람들의 반응이 이해가 갔다. 허공에 텔레포트 게이트가 열리고 그레이들이 보이는 가운데 자신이 허공이 딸려가다가 다시 떨어졌을 터였다. 외계인에게 납치당해서 신체실험을 당하고 다시 보내졌다고 해석하는게 오히려 자연스러울 터였다.

외계인들이 한 짓치고는 꽤 좀스러운 일들만 벌였다고 생각했는데, 상황을 보니 그럴만도 했다.

“다양한 품종의 소를 제공해주지. 지구상엔 젖소만 있는게 아니니까.”

[그거 고맙군.]

수르트의 반응에 조제성은 쓴 웃음을 지었다. 미지의 존재이자 위험요소라고 생각했는데, 마치 태평양에서 전쟁이 끝난줄도 모르고 섬에 고립된 일본군 잔당이나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적어도 현생 인류가 살아남은 것은 수르트의 덕분이라고 할 수 있겠군.’

---------------------------

“그렇군요. 선택의 여지가 하나 사라진건가요.”

원기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지구로 끌어들여서 싸우는 것은 가능한 피해야 하는 것이 확실해 진 것이었다.

“어떤 장치가 있는지는 알 수 없겠지요?”

“일단 신의 씨앗들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것뿐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만.”

“신의 씨앗이요?”

“그들을 각성시켜서 꼭두각시로 부리는 것만이 목적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각성에는 영적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이능 발현과 개화에는 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요. 그리고 그것은 세계수를 통해서 공급을 받게 됩니다. 영적 에너지가 없으면 각성하지 못하지요. 세계수가 없던 시절에 이능을 각성하지 못한 것은 그때문입니다.”

세계수와 성역이 이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능을 개화할 힘을 주는 것이라는 말에 원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능이라는 것도 차츰차츰 더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희연의 이능이나 연하의 이능이 단적인 예였다.

연하의 이능은 단순히 바람을 예측하는 이능에서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예지형 이능이 되었고, 마침내는 무념무상이라는 최강의 예지형 이능으로 발전했다.

예지형 이능들은 가장 강력할 것 같지만, 의외로 쓸모가 없는 이능이었다. 왜냐하면 서로 간섭하기 때문이었다.

예지형 이능들은 현재를 통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이능이었다. 인간의 의식적인 사고와 무의식적인 초감각을 통해서 미래를 예측하고 그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강력한 이능이지만, 미래예지를 각성한 이들이 꽤 많았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의 예지에 간섭함으로서 적중률을 떨어뜨려버리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빌딩이 무너진다는 예지를 백명이 보았다면, 그중에는 빌딩이 무너지지 않게끔 할 수 있는 사회적 입지를 가진 인물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빌딩을 무너지지 않게 만들어버리면 나머지 99명의 예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꽝이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조제성이 예지 능력자들을 다수 보유하고 소중하게 키우고 있는 것은 예지 능력을 이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지 능력을 방해하기 위해서였다. 누군가 예지 능력을 가지고 급성장하는 것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서 예지 능력을 활용하는 것이다.

보통 예지능력은 꿈의 형태로 발현되는 경우가 많은데, 조제성이 키운 예지능력자들이 여러가지로 교란을 걸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예지몽들이 ‘개꿈’이 되어버렸다.

연하의 무념무상이 예지능력중 최강이라는 것은, 실제로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은 없지만 모든 예지능력을 무력화시키기 때문이었다. 위기감지 능력의 대부분이 예지능력의 범주에 들어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영력이 받쳐줘야만 이능이 각성하거나 개화한다는 이야기로군요. 그건 이해하겠습니다만.”

“문제는 영력이 받쳐주지 않는 상황에서 강제 각성하게 될 경우입니다. 물이 증발하면서 기화열로 주위의 열을 빨아들이듯이 영력을 강제로 빨아들이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게 되면 주위의 인간들은 모조리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백이 파괴되면서 혼은 육신을 떠나게 되는 거지요. 뇌사가 아닌 혼사라고 이야기해야 할 겁니다. 이것이 세계적인 규모로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걸 막을 방법은 있을텐데요? 씨앗을 가진 이들을 각성시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오딘에게 조종당하지 않도록?”

“어디까지나 대략적인 계산입니다만, 이능은 거의 모든 인간들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강제적으로 각성이 가능할 정도로 강력한 이능을 잠재하고 있는 것은 약 천명 중 한명을 넘습니다. 그리고 씨앗을 가진 최강의 잠재능력자는 그 안에서 천명 중 한명을 넘습니다. 이 계산을 통해서 간단히 추산해보면, 이능을 강제로 각성시킬 수 있는 위험군이 최소 천만명에 달합니다. 그리고 씨앗을 가진 이들도 최소 만명을 넘깁니다. 이들을 모두 각성시키는 것은 무리입니다. 일년에 각성시킬 수 있는 이들은 세계수의 모든 영력을 다 동원해도 천분의 일이 안됩니다. 이능 각성에도 막대한 영력이 소모되기 때문이지요.”

원기는 조제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수와의 연결은 무의식적이지만, 이능 각성에 세계수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자신도 알 수 있었다. 희연이나 연하의 각성은 피부로 느껴질만큼 세계수가 크게 영향을 받았다.

“백분의 일만 가지고도 지구상의 모든 세계수와 인간들을 전멸시킬 수 있겠군요. 그리고 우리는 일 년에 끽해야 천분의 일을 각성시킬 수 있고 말이지요.”

“달과 화성, 데이모스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오딘이 강제 각성 수단이 있다면 인류 멸망을 막을 방법은 없을 겁니다. 수르트도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붙고자 하는 것입니다.”

최소 일천만명의 학살이 아니고서는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이 최소 일천만명중 상당수는 세상의 기득권을 지닌 이들이었다.

“오딘의 전략을 보면 조승상님과 비슷해 보이는군요.”

“가능하면 크게 먹고, 안되면 적게라도 먹어야겠지요. 그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됩니다.”

조제성은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소위 사회 지도층이라는 특권층의 인간들을 조종해서 세상을 손에 넣을 수도 있고, 여차하면 본래의 목적대로 전 인류를 쓸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때 그때, 상황은 달랐다.

‘수르트의 힌트로 이정도를 유추해낸 조승상님이 더 대단한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지. 뱀의 길은 뱀이 안다고 하던가.’

신성력이 가져다주는 온갖 육체버프 중 두뇌버프를 가장 잘 활용하는 것은 조제성임에 틀림없다고 원기는 생각했다.

“호철이가 화성에 가고 싶다고 하더군요. 저도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만, 괜찮을까요?”

원기의 말에 조제성은 잠깐 고민에 빠졌다. 리디아가 소들을 몰고 화성에 갈 계획이 잡혀있었다. 그것을 두고 한 이야기였다. 그레이들이 사는 소굴이니 호철이나 원기만이 아니라 장수한이나 최찬균 역시 가보고 싶어할게 분명했다.

“괜찮습니다. 다만 희연양이 따라가야 하겠지요. 그리고 본체로 가시는 것만은 삼가해주시기 바랍니다.”

희연을 끼워넣은 것은 유사시를 대비한 것이었다. 희연이 가진 최강의 이능인 소멸의 검은 원기가 가진 바니걸 통신과 마찬가지로 영혼에 각인된 이능이라서 어떤 아바타에서도 사용이 가능했다.

고립될 상황에서는 아바타를 계삭시켜서 본체로 돌려보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탈출카드가 될 수 있었다.

“본체라면, 밤일용인가요?”

“예. 그쪽입니다.”

조제성은 단호하게 말했다. 원기는 그의 말에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프레이야 여신의 아바타는 소모품 취급을 하면서, 원기의 본체를 지극히 소중히 여기는 조제성과 다른 이들의 마음가짐은 자신이 프레이야 여신으로서만 필요로 되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원기의 불안을 씻어주었다.

동시에 그것이 좀 쑥쓰러워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원기만이 아니라 소위 계약자들은 다수의 아바타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원기는 희연과의 잠자리에는 반드시 자신의 본체만을 고집했다.

반면, 희연의 모든 아바타와 자고 싶어하는 모순적인 심리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희연의 모든 아바타와 자는 데에는 실패했다.

최강의 보스인 헬 여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기는 다른 이들이 왜 프레이야 여신 앞에서 몸둘 바를 몰랐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원기는 헬 여신 앞에서 여러가지 의미로 한없이 쪼그라들 수 밖에 없었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