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1화 새로운 질서
“이봐, 카지마. 오늘 네가 사기로 하지 않았나. 여기 영수증에 사인해야지.”
술에 만취한 카지마라는 청년은 친구가 내준 서류를 쳐다 보았다.
“응? 신용카드 영수증인가? 좀 큰데?”
“헛소리 하지 말고 사인이나 빨리 해.”
카지마 진은 술과 잠에 취한 상태로 흐느적거리며 팬을 들었다.
“왠지 옛날에 본 만화영화가 생각나네. 흐헤헤.”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사인을 하고는 곧 카운터에 머리를 쳐박고 잠들었다. 그리고 그가 눈을 떴을 때, 그는 중동의 외인부대에 가 있게 될 터였다.
“일본인들은 계약에 약한 모습을 보이고, 상황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여서 정말 좋군요. 여기 보수가 있습니다.”
브로커로 보이는 사내가 친구에게 돈을 건냈다. 인신매매나 다름없는 일들이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이능자들이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능자들 특히 예지 능력자와 염동 능력자들은 엄청난 고가에 거래되는 전략 물품이었다. 특히 소심하고 계약에 얽매이기 쉬운 일본인 능력자들은 가장 편하고 비싼 거래 상품이었다.
자기 혼자 판단내리지 못하는 소심한 성격이면서, 시키는 명령에는 곧잘 따르기 때문이었다. 혼자서는 벌레 한마리 제대로 못죽이면서 명령만 내리면 대량학살도 아무 의식없이 저지르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었다.
군대문화에 익숙한데다가, 맘에 안드는 명령이나 계약에 악착같이 반발하는 한국인보다 일본인이 더 높게 거래되었다.
하지만 호전성과 판단력, 군대 경험을 가진 한국인 역시 거래 대상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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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전투기 편대가 발견되었습니다.]
“적들은 우리에 대해서 눈치 못챘을 것이다. 가능한 가까이 접근한다.”
최강의 스텔스 전투기 랩터에 탑승한 미공군 전투기 편대가 사냥감으로 여겨지는 소속불명 전투기 부대를 향해 조용히 접근했다.
[적 기종은 FA-50F 골든이글입니다. 5대로 추정됩니다.]
“한국에서 만든 훈련기였지? 잘도 저런 물건으로 테러를 벌이고 있군.”
훈련기를 개량한 공격기로 복좌라는 특성을 이용한 기체라고 할 수 있었다. 공중전 성능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중동 국가들에 수출된 수량이 제법 되는 편이었다.
[미사일로 보이는 물체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미사일? 알람도 없는데? 무슨 일이지?”
편대장은 잠시 망설였다. 상대가 이쪽을 탐지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미사일이라고 보기에는 좀 이상했다. 레이다에 표시된 정보로는 꽤 크고 무거운 물체로 보였다.
‘순항 미사일인가?’
“이대로 접근한다. 적이 탐지했다고 볼 이유가 없다.”
편대장의 지시에 랩터들이 조용히 비행을 계속했다. F-35 라이트닝이 다수 배치되긴 했지만, 여전히 최강은 랩터였다. 레이더를 비롯해서 많은 곳이 개수되어서 최강 전투기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성능을 자랑하고 있었다.
[적 전투기 편대 남서쪽으로 방향을 선회했습니다. 눈치채지 못한 듯 합니다.]
“보고있다. 우리에게 꼬리를 스스로 내주고 있군. 곧 교전 상태에 들어간다. 지시가 있을 때까지 무장창은 열지 않도록.”
[라져.]
자신들을 빗겨 지나가는 미사일같은 발사체에 대해서는 신경을 끄고, 적기들을 유린할 준비를 했다.
다음 순간이었다.
[미사일로 보이는 비행체가 분리되었습니다. 우리쪽으로 접근합니다. 회피할까요?]
“할수 없지. 암람 미사일 발사 후 회피행동에 들어간다.”
편대장은 신중하게 답했다. 랩터의 무장창이 열리고 암람 미사일들이 일제히 발사되었다.
‘좋아. 이제 회피한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섬광이 번쩍였다. 가까운 거리의 공중에서 무언가가 폭발한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순간 편대장의 콕핏을 파편으로 보이는 물체들이 다수 꿰뚫었다.
6기나 되는 미국의 최신예 기체가 일순간에 폭죽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남은 전투기들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공중전 성능으로 알려진 골든 이글 공격기에 전멸당했다.
미 전투기들이 발사한 요격 미사일들은 공격기의 기관포에 모두 격추 당했다. 예지 이능자의 힘이라고 할 수 있었다.
복좌형 이능 전투기가 단좌형 스텔스 전투기들을 무덤에 몰아넣은 전투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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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이 없는건가?”
“없습니다. 예지 능력자들에게 기습을 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예지 능력자에게 대응할 수단은 예지 능력자 뿐이라는게 우리측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예지 능력자를 스텔스기에 탑승시키는 것은 어떤가? 그 재밍이라는게 걸리지 않겠나?”
“재밍 자체가 전투가 온다는 신호가 되기 때문입니다. 기습은 불가능합니다. 재밍은 예지를 시각으로 비유한다면 안개 같은 겁니다. 멀리 내다보지 못하게 할 뿐이지, 코앞에 닥쳐온 것은 보이게 됩니다. 근접전에서는 염동능력자가 있는 쪽이 압도적으로 강합니다. 일부 국가는 시트가 셋이상 있는 전투기를 시험적으로 개발하고 있다고 합니다만, 실질적으로는 복좌기체가 한계라고 봐야 합니다.”
“복좌기의 시대가 온건가.”
“예. 무유도 다단 로켓의 시대가 온 것이기도 하지요.”
랩터를 다수 격추한 무장은 비밀조직에서 만들어진 대형 로켓이었다. 무장창에 폭탄처럼 장착되었다가, 예지 능력자가 미리 설정해 둔 장소에서 분리되면서 방향 전환을 하고 최종적으로 지시된 곳에서 폭발해서 파편을 비산시키는 무기였다.
대공 무기로서 최고의 효율을 가진 저렴한 병기였다.
예지 능력자가 탑승하지 않은 기체들로서는 절대 피할 수 없는 극악무도한 병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갑자기 세계 각지에서 등장한 이능을 구사하는 전투기 부대들은 세상의 혼란을 극도로 심하게 만들었다.
세일 오일의 양산으로 전략적 중요도가 떨어진 중동의 하늘은 무법천지가 되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세계의 제공권을 쥐고 있던 미공군이 타격을 입음으로써 발생된 혼란이었다.
다수의 이능자들을 빠르게 고용해서 제공권을 회복해 나가고 있지만, 전투기의 성능차가 줄어든 때문에 세계의 제공권을 장악했던 황금기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북미, 유럽, 동아시아를 제외한 하늘은 이능 용병들로 이뤄진 전투기 부대들로 인해서 혼란을 겪게 되었다.
여객기들의 안전 운항도 담보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늘을 누비는 새로운 해적들은 항공회사들을 상대로 영업을 시작했다. 자신들의 지배역을 안전 비행하는 대가를 챙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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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들이 남아있습니다! 저들을 두고 움직일 수 없습니다!]
[또, 저놈이군. 어떻게 할까요? 대장나으리.]
“우리 군은 지금 패퇴하고 있다. 전력을 온존하는게 우선이다. 이해할 수 없나? 스스무 일병?”
[그런건 관계 없습니다! 혼자서라도 싸우겠습니다!]
“알겠다. 할 수 없지. 모두 멈춰라. 그리고 기체에서 내리도록. 작전을 재검토하겠다.”
리베로 부대가 멈추고 파일럿들이 기체에서 내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지휘관의 리베로가 스스무 일병을 밟아버렸다.
리베로의 거체에 밟힌 병사의 시신은 알아보기 힘들게 변해버렸다.
“다행이군. 멍청이가 하나 줄어서.”
동료 파일럿이 침을 찍 뱉으며 말했다.
“어디서 저런 놈이 들어왔나 몰라. 사람이 모자라긴 모자란가 보군.”
“전쟁을 만화영화로 배운 새끼라 저모양이지.”
[모두 기체로 돌아간다. 스무 일병의 기체는 로스 일병이 몰도록.]
지휘관의 지시에 얼굴이 창백해진 로스 일병이 빠르게 움직였다. 명령불복종에 의한 처형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시가 급하다. 빨리 수도에 있는 방위군에 합류해야 한다. 적의 공습에 주의하라.]
지휘관 아렌드 대위는 그렇게 지시를 내리고 선두에 서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건지.’
그는 자신이 밟아죽인 병사를 동정했다. 세상이 이렇지 않았다면 자기 좋을대로 살아도 좋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급변하고 있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낙오될 수밖에 없었다.
유럽과 동아시아, 북아메리카를 제외한 세상은 크게 어지러워진 상태였다. 미군이 주도하던 세계 질서가 흔들렸기 때문이었다.
“서둘러라. 조금만 더 가면 아군측 영역에 들어간다.”
이능 전투기들이 활약하면서, 공중전을 위한 전력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많은 전투기들이 추락한 탓이었다.
하지만 예지 능력자들의 전투 소모는 적은 편이었다. 예지 능력의 특성상 공격보다는 방어가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보다 근미래가 선명하고 정확하게 보이기 때문에 예지 능력자가 쏜 미사일이라고 할지라도 예지 능력자가 방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근거리에서 기총 승부를 봐야하는데, 아무리 뛰어난 예지능력자라도 상대가 부담스럽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러다보니 예지능력자간의 전투는 서로 눈치를 보다가 미사일 한발 안쏘고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복좌형 전투기를 이용한 사이킥 전투기 편대들이 각지에서 급조되었고, 가장 강력한 전투기로 등장한 것은 역시 미군의 F-15P 사이코 이글이 되었다.
강력한 엔진을 바탕으로 한 확장성을 이용해서 무장량을 늘이고, 대공 기총을 강화한 것이었다.
그리고 호넷, 플랭커, Pakfa(FGFA)등도 각 전선에 투입되어 활약하고 있었다.
대지상전에 대한 공격력은 높은 편이지만, 마찬가지로 예지 이능자가 탑승한 대공 리베로에는 약한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전투 경험이 많은 예지 능력자의 경우, 노이즈의 정도로 상대 예지능력자의 수준이나 거리를 예측할 수도 있을 정도가 되었다.
[적 전투기 부대 출연. 지원바란다!]
“제길. 늦은 건가?”
아군의 구조 요청을 받은 아렌드 대위는 눈살을 찌푸렸다. 마을 후미에 있는 소대의 통신이었다.
[어떻게 할까? 대장.]
“이렇게 죽게 될 줄 알았으면, 그 녀석을 살려둘 걸 그랬군.”
통신기를 켜지않고 아렌드는 혼잣말을 했다. 적 전투기 부대는 소련제 전투기 플랭커로 이뤄진 이능자 부대였다.
학살을 즐기는 학살자들로 천공의 학살자들이라고 자처하는 최악의 부대였다.
“대공 전투 태세를 갖춰라. 최대한 저항해 보자.”
정령들이 탔다는 최상급 리베로라면 이능자 없이도 미사일이나 폭탄을 리베로용 기관포로 격추하는게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실제 전장에서 싸우는 것은 대부분 컴퓨터로 움직이는 리베로 들이었다.
아렌드는 유령이 탑재되었다는 상급 리베로를 멀리서 구경만 해본 정도였다.
‘움직임이 너무나 부드럽고 아름다웠지. 언젠가 한번 쯤 타보고 싶었는데.’
그리고 그의 머리 윗쪽에서 로켓탄이 쏟아지는 모습이 보였다. 예지 능력자가 미리 궤도를 설정해놓은 로켓탄은 병사들에게는 말 그대로 운명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아렌드는 자신이 운명앞에서 꼼짝도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총알 한발이라도 쏘다가 죽을거라고 생각했지만, 어차피 소용없을 거라는 생각에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앞에 거대한 인간형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뭐지?”
거대한 리베로를 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거대함을 느끼게 만드는 거대한 인간형 로봇은 자신들에게 쏟아진 로켓탄들을 모두 막아냈다.
‘동체에 직격하지 않았군.’
아렌드는 로봇을 감싸고 있는 투명한 막과 같은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내가 미친건가? 저건 애들 만화영화에나 나올만한 것이 아닌가.’
그는 자신이 죽여버린 스스무 일병이 태블릿으로 틈틈이 보던 로봇 애니메이션을 떠올렸다. 답답하고 멍청한 녀석이었지만, 나쁜 녀석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를 밟아버린 것이 후회되거나 죄책감으로 다가오지도 않았다.
‘그 잽녀석이 저주라도 건건가.’
그의 상념에 아랑곳하지 않고, 로봇은 하늘로 날아올랐다.
로봇의 몸에 칠해진 독특한 컬러링이 눈에 들어왔다. 울긋불긋한 색깔들과 장식들은 경찰차, 소방차, 앰뷸런스 등을 연상시키는 것들이 있었다. 그리고 양 어깨에는 드릴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하늘을 날기에 어울리지 않은 거대한 몸체로, 물론 등에는 날개가 달려있기는 했지만, 사뿐하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거대로봇의 전장 등장. 이것이 갖는 의미를 이해하는 이는 아직 드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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