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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443화 (443/497)

443화 네오 무스펠가

아프리카 북부에서는 대규모 교전이 계속 벌어지고 있었다. 헬 여신은 여전히 인류의 적 취급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성역을 이용한 방어는 쉽게 뚫을 수 없었다. 핵마저 막아낸 헬 여신의 성역은 난공불락의 요새로 여겨지고 있었다.

강력한 시사라 코어를 이용한 다수의 고성능 리베로들과 뱀파이어들의 존재 덕분에 헬 여신의 성역을 넘보기 힘들어진 상태에서 세계의 수호자를 자처하던 미국의 제공권 축소도 영향을 주고 있었다.

랩터와 라이트닝이라는 스텔스 단좌 전투기들을 주력으로 하던 미 공군이 이능 전투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적용하기는 쉽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나라보다도 빠르게 전력을 재구축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상대의 공격을 읽을 수 있는 이능 파일럿을 가장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병기는 전투기도 리베로도 아닌 전투헬기였다.

직사병기는 회피하고 유도병기는 개틀링포를 이용해서 격추해 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를 위해 미군에서는 사장되었던 코만치 헬기 프로젝트를 다시 부활시켜서 사이킥 코만치라는 강력한 전투 헬기 부대를 편성하고 있었다.

싸이코 이글, 사이킥 코만치 부대의 구축은 미군이 오랜 영광을 되찾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해군이나 육군 전력은 여전히 유효했고, 세계 각지에 퍼져있는 미군기지들로 인한 미군의 우위성은 불변이지만, 공군의 약화는 미군의 영향력을 감소시킨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사이킥 코만치만큼의 성능은 못낸다고 하지만, 유럽의 타이거 헬기와 러시아의 호컴B 통칭 엘리게이터를 이용하는 용병부대들이 다수 존재하기 때문에 앞날은 불투명했다.

미군의 우위가 무기의 우위였다면, 이능자의 우위는 인구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상대의 잠재력을 알수 있는 이능자들이 반신급 이능자들을 찾아내고 발굴하면서, 다수의 이능자들이 세상에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부 군사강국을 제외한 나라의 이능자들이 용병시장에 상품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미국을 비롯해 강대국들도 이런 용병 이능자들을 사들이고 있지만, 전부 다 흡수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능자들을 태운 전투 헬기들간의 전투는 대부분 무의미한 원거리 사격 이후에 각자 후퇴하는 것으로 결말지어졌다. 그들의 능력은 비능력자들이나 무인기들에겐 절대적 공격력으로도 작용하지만, 방어가 공격보다 쉽기 때문에, 그들간에는 결정타가 나오기 힘들었다. 근거리에서 개틀링을 서로 퍼붓는다면 승부가 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동귀어진의 수법은 궁지에 몰리지 않는 한은 하려들지 않았다.

하늘을 나는 해적들도 등장했다. 자신들의 영역을 통과하는 항공사를 협박해서 통행료를 받는 방식이었다.

세계 질서는 급격하게 혼란스러워지고 있었지만, 그 혼란이 선진국들에게까지 미치는데는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은 사실이었다.

선진국들은 안전하다고 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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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로봇이 나타났습니다! 거대 로봇이 후쿠시마 신도시 외곽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많은 소환진들이 열리고 있습니다. 흡혈귀들이 습격을 시작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피해지역에 존재하는 성역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성역을 중심으로 후쿠시마시가 성립되었다. 방사능 오염 지역으로 기피되던 지역이었지만, 성역이라는 것은 더 매력적인 것이었다. 일본 측도 성역의 존재를 밝히고, 이능자들을 양성하는 시설을 세웠다. 그래서 일부 오덕들에게는 ‘학원도시’라는 이명을 얻었다. 그리고 일반인들에게는 ‘성역도시’라는 별칭으로 알려진 상태였다.

자위대와 연구진, 학생들, 의료산업과 부유층들이 몰려들어서 급격하게 만들어진 신도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도시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이 헬의 거대 로봇이었다.

순간이동으로 지구 어디든 등장하는데다가, 등장한 후에는 소환진을 이용해서 흡혈귀와 늑대인간들을 소환했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성역의 중심인 세계수, 그리고 인간들이었다.

“이능 방위대! 각자 위치로!”

악의 마도사이자 악신이 된 라스푸틴이 성역을 노리고 공격해 온다는 사실은 이미 몇 차례의 전투로 알려진 상태였다.

그리고 그때마다 거신이 등장했다. 지구에 나타난 두 거신 무스펠은 하나는 프레이야의 편, 하나는 헬의 주구가 되었다.

라스푸틴은 거신이 깃든 철 구조물, 거대 로봇과 악신의 종족을 이끌고 성역 도시를 습격했다.

“빌어먹을 놈같으니. 저격수들! 라스푸틴을 노려라!”

“소용없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내버려 둘거야? 당장 노려!”

로봇의 위에서 떠서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라스푸틴의 모습에 이를 갈면서 자위대 지휘관이 외쳤다.

라스푸틴은 세계를 휩쓴 전염병 테러의 흑막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고, 성역이 후쿠시마에 있던 일본은 피해가 큰 편이었다.

전염병 테러를 이용해 성역을 강탈, 수많은 희생 위에 신이 되었고 죽음의 여신 산하에 들어가서 악행을 거듭하는 악의 화신으로 알려져 있었다.

죽음의 여신 헬은 라스푸틴에 비하면, 그림자가 옅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라스푸틴에게 더이상 세계수를 넘길 수는 없다는 생각은 거의 모든 이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라스푸틴이 성역을 노리고 거신과 함께 나타나자, 사람들은 마음을 하나로 모아 대항해 나갔다.

각국의 성역들에는 정예 리베로와 이능자들이 배치되었다. 그리고 나이트 엔젤 부대와 화성용자 무스펠가가 그것을 돕고 있었다.

“피난은 완료 되었나?”

“모두 완료되었습니다. 예보 덕분입니다.”

예지 능력자들이 정확히 미래를 보는 것은 서로간의 간섭으로 쉽지 않다. 예지의 정확도나 선명도가 떨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를 역이용하는 것도 가능했다. 예지에 노이즈가 짙으면, 다수의 예지 능력자들의 이해가 겹치는 것이고, 미래가 격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노이즈의 정도로 사건 발생확률을 역산하는 것이었다.

후쿠시마의 당일 노이즈는 짙었다. 이 때문에 피난 예보가 뜬 상태였다. 꼭 필요한 일이 있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피난소에 미리 대피한 상태였다. 그리고 나와있던 이들도 대피할 준비는 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서 피난은 순조롭고 빠르게 완료되었다.

라스푸틴은 쏟아지는 탄환들을 비웃듯 요동도 하지 않고 전장을 내려다 보았다. 그의 몸에 쏟아지는 탄환들은 그를 피해서 구부러져 날아갔다.

로봇은 리베로들과 교전을 벌이고 있었다. 리베로들은 이리저리 피하면서, 사격을 가하고 있었지만 열세인 것은 틀림없었다.

움직임이 뛰어난 정령리베로들이 근접전을 벌였고, 유령리베로들은 뒤에서 거리를 두고 사격을 해나갔다.

하지만 정령리베로들도 로봇의 양팔에 걸려서 사방으로 부서져 나갔다.

“이봐! 퍼플 쓰리! 무사한가! 무사하면 응답해라!”

“으...괘, 괜찮습니다. 머리가 심하게 울립니다만.”

리베로 내부에는 에어백이 장착되어 있었다. 단순히 센서로 작동하는게 아니라, 정령의 판단으로 작동되는 것이어서 적절하게 작동했다. 각도에 맞춰야만 터지는 일은 없었다.

엘프 특유의 균형감각을 가진 정령들은 공격을 받을 때, 파일럿의 피해가 없도록 급소를 피했고, 낙법을 사용해서 피해를 최소화했다. 덕분에 파일럿의 피해는 적은 편이었다.

하지만 리베로는 신성력을 사용하는 거대 로봇 앞에 무력했다.

오딘의 거신병 지크프리드의 경우 무스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만들어진 무스펠가보다 더 크고 강력하기에 리베로로는 대응할 수 없다고 봐야 했다.

“무스펠가다! 무스펠가가 나타났다!”

고릴라와 긴팔원숭이를 섞은 듯한 거대로봇과 리베로들, 이능자들과 뱀파이어들이 전투를 벌이는 가운데, 순간이동으로 등장한 무스펠가가 그들의 앞에 등장했다.

“이번에도 악취미적인 로봇이군.”

무스펠가가 몸을 펼친 순간, 전신의 장갑 아래쪽에서 관절부를 통해 붉은 빛이 흘러나왔다. 순백의 장갑이 은은한 붉은 빛에 감싸였다.

상대 로봇은 고릴라보다는 날렵한 긴팔원숭이 비슷한 짐승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길게 늘어진 두팔을 땅에 대고 있는데 기괴하고 불길하게 보였다.

“소환! 플레임 블레이드!”

스스무가 외치면서 버튼을 누르자, 허공에서 검이 내려왔다. 검을 잡고 상대를 향해 휘두른 순간, 상대는 보이지 않았다.

“멍청아! 뒤야!”

스스무는 황급히 뒤를 돌아보려고 했지만, 뒤통수를 강하게 채이고 앞으로 쓰러졌다. 빌딩에 부딪쳐서 바닥에 미끄러지듯 쓰러졌다. 거대로봇이나 괴수영화에서 흔히 나오는 것처럼 빌딩이 가볍게 쓰러지거나 무너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사실 로봇보다는 건물이 더 단단한 편이었다.

예지 능력자의 10분 전 예보가 있었던 덕분에 대부분의 주민들은 쉘터에서 TV를 통해서 전투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빌딩 인근의 주민들에게서는 탄식과 욕설이 튀어 나왔다. 로봇과 충돌한 건물들은 무너지진 않았지만 상당한 피해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번 상대는 스피드 타입인 것 같네. 조종권을 넘겨!”

스스무는 그 말에 따랐다. 그리고 조종권을 넘기자 기체의 붉은색 광채가 사라지고, 황금색 광채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금발의 장신 여성, 크리스틴이 조종권을 장악했다.

“검성이다! 검성이야!”

금발의 여검사, 미녀라기보다는 미남에 가까운 외모를 한 장신의 여성은 세계적으로 유명했지만, 특히 일본에서 유명했다.

공식전에서 단 한번도 패한 적이 없는 불패의 검사였다. 일본 문화에 심취한 금발 여검사는 자주 방송에도 나온 편이었다.

“소환! 사무라이 소드!”

그녀의 외침에 허공에서 거대한 일본도가 나타났다. 그녀가 일본도를 쥐고 허공을 향해 가르는 순간, 칼날 앞에 뛰어들 듯 적의 로봇이 달려들어서 목이 잘렸다.

그녀의 이능은 상대가 자신의 공격에 알아서 맞아죽는 이능이었다. 상대의 기량이 자신보다 현격히 낮을 때 발동되는 능력이기도 했다.

“하찮은 것을 베고 말았군.”

그녀는 경멸을 담아서 말했다. 무패의 검성이라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최강자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녀는 츠루기 부녀에게 패배를 맛보았기 때문이었다.

츠루기에게 패배한 것은 그렇게까지 쓰라리지는 않았다. 체격 조건은 그녀가 좀 더 좋았지만, 남성과 여성의 차이도 있기 때문이었다. 나이도 많고 경험도 많고 육체적인 스펙도 조금 앞선 츠루기에게 연습 시합에서 패한 것은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카즈키에게 패한 것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어린 소녀에게 유린당한 것이었다. 자신보다 유리한 조건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패배에 좌절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자신보다 강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노력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목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쁘게 여겼다.

그리고 그녀를 진정 황폐하게 만든 것은 승리였다.

불패의 검성.

그녀는 모든 대회에서 상대를 압승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열광했다. 남자건 여자건 어떤 인종이건 그녀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결코 최강이 아니라는, 최강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는 그녀에게 승리는 공허함을 안겨주었다. 영광은 조롱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대회에 나가는 것 외에는, 공허한 승리 외에는 길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이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가 터득하고자 한 능력은 상대의 움직임을 미리 읽는 능력이었지만, 그녀 역시 강자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다.

정말 이기고 싶은 상대는 실력으로 이기고 싶다는 욕망이 강했다. 그래서 그녀의 이능은 약자 한정의 능력이 되었고, 상대의 움직임을 미리 알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약한 놈은 알아서 처리하기 쉬운 곳에 대령해 주면 좋겠다는 심리가 작용한 것이었다.

상대가 움직일 곳을 예측해서 검을 휘두르는게 아니라, 그녀가 검을 휘두르면 상대가 알아서 뛰어들어 죽는 그런 이능으로 완성된 것이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약자란 운전중에 뛰어들어서 유리창에 흔적을 남기고 죽어버리는 벌레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성격이 나쁘거나 교만한 것과는 달랐다. 그저 약자에게 의미를 두지 않을 뿐이었다. 약자를 괴롭히거나 짓밟으면서 자아를 찾는 그런 일은 없었다. 그저 강자를 찾아 헤맬 뿐이었다.

“이봐! 너무 빨리 해치웠어!”

“아차차. 실수. 미안해. 보스로리양.”

놀원이 짜증스러운 듯이 말하자 크리스틴은 책일 읽듯이 말했다. 상대 로봇이 파괴되자, 라스푸틴은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로봇은 무너지듯 쓰러졌다. 50미터급 시사라의 시체를 제외하면 금속 골조 뿐이라서 폭발할 염려 따위는 없었다.

놀원은 보스로리라는 호칭에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을 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그 호칭을 듣고는 불쾌감을 드러내며 무슨 뜻인지 장수한에게 물었다. 조제성은 눈코뜰새없이 바쁜데다가 그녀로서도 부담스러웠다. 반면 장수한 역시 바쁘긴 했지만, 마음이 편한 대화상대였다. 그리고 보스로리라는 표현에 호철과 찬균은 물론이고 장수한도 괜찮다고 답했다. 그리고 원기 역시 좋은 호칭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놀원은 납득할 수 밖에 없었다.

“온다!”

놀원이 말하자, 모두가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크리스틴은 흥분감을 감추지 않았다. 네오 무스펠가가 등장할 차례였다.

거신들은 로봇 형태의 몸체를 조종하는 원동력 그 자체였다. 에너지는 시사라에게서 나온다지만 에너지 변환의 매개체인 무스펠의 정신력은 무한한 것은 아니었다.

거신의 활동 한계는 약 30분 가량이었다.

그리고 현재 소모된 시간은 약 17분 남짓이었다. 여유 시간이 10분 이상 남으면, 네오 무스펠가가 등장하곤 했다.

“12, 아니 13분인가. 쉽지 않겠는걸.”

스스무의 말에 크리스틴은 피식 웃었지만, 내심은 긴장하고 있었다. 자신의 욕심이 부른 일이라는 사실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네오 무스펠가에게서 그녀는 카즈키를 느꼈다.

‘내가 미친 년이지.’

자신은 최강이 아니며, 최강이 되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은 그녀를 최강이라고 추켜세운다. 강자에게 사정없이 깨어져서 그 허울좋은 껍질이 사정없이 깨지길 바라는 그녀는 정상이 아닐지도 몰랐다.

그녀는 자신이 일곱 여의주라는 만화에 나오는 미스터 루시퍼같다고 여기고 있었다.

“왔다.”

그녀가 넘볼 수 없는 진정한 강자의 세계를 보여줄, 공포의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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