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4화 네오 무스펠가 각성
“많이 달라졌는데? 원래 저런 모양이었나?”
눈앞에 나타난 거대로봇 네오 무스펠가는 그녀가 알고있던 모습과 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전에 보던 것보다 더 육중한 모습이 되어 있었다.
하얀 장갑에 내부에서 빛이 새어나오는 방식의 무스펠가와는 장갑이 검은 색이라는 차이가 있었다. 은은한 백색으로 빛을 발하며 네오 무스펠가는 무스펠가의 앞에 섰다.
“전에 쓰러뜨린 로봇의 기믹이 포함되어 있어. 발전하는 건 우리쪽만은 아니었던 것 같아.”
스스무의 말에 크리스틴은 석연찮은 표정을 지었다. 위압감은 한층 느껴지지만, 저런 몸매로는 검을 제대로 휘두를 수 있을리가 없었다.
“실망했어.”
그녀는 그렇게 내뱉듯이 말하고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녀의 예상대로 네오 무스펠가는 검을 피하지 못했다.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네오 무스펠가는 한 손을 뻗어서 무스펠가가 휘두른 검을 가볍게 튕겨낸 것이었다.
“말도 안돼!”
크리스틴은 믿지 못하고 다시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네오 무스펠가는 오직 한손만 살짝살짝 움직여서 거의 미동도 하지 않고 그녀의 공격을 다 튕겨냈다.
“저 장갑의 재질이 대체 뭐야? 전설의 초합금이라도 되는거야?”
[내 몸과 상대의 재질은 같다. 네 소드가 훨씬 단단하고 날카롭다. 조금 전에 네가 베어버린 녀석의 재질도 네오 무스펠가와 큰 차이가 없다.]
크리스틴은 무스펠가의 메시지에 이를 악물었다. 이런 형태의 무력감을 맛보게 될 지는 상상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때, 네오 무스펠가 내에서도 동요가 존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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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어떻게 상대해줘야 좋을까. 이기지도 져주지도 않는다는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군.’
원기는 생각보다 전투가 쉽지 않음을 깨달았다. 상대에게 판정승을 안겨주면서, 동시에 자신의 강함을 보여준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동급의 기체가 주어진 상태라고 들었지만, 듣던 것과는 달리 상대가 너무 약했다.
제법 칼질을 날카롭게 하는 듯 하지만, 원기에게는 느리고 무디게 보였다.
‘이건 뭐, 카즈키보다도 무디군. 전혀 위협이 되질 않아.’
전신이 방어구나 다름없는 리베로나 로봇에 탑승한 상태에선 카즈키도 원기에겐 위협이 될 수 없었다. 카즈키의 검 정도는 이능으로 보강하면 맨살로도 막아낼 수 있었다. 이능의 우위라기보다는 방어 기술의 우위였다.
원기의 기준은 희연을 중심으로 맞춰져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착오라고도 할 수 있었다. 날카로운 공격은 그 날카로움만 피하면 되기 때문에, 원기로서는 막기 쉬운 편이었다.
살짝 먼저 맞아주거나, 늦춰 맞는 것만으로도 예리한 공격은 그 공격력의 대부분을 상실했다.
그런 원기의 상대로 크리스틴의 공격은 무의미했다. 갑옷입은 기사를 회초리로 때리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원기가 난감하게 생각할 때, 희연이 개입했다.
“잠깐 멈춰봐요. 원기 오빠가 너무 심했어요. 상대의 전의를 완전히 꺾어버릴 생각으로 밖에 안보여요. 그건 그렇고 상대가 혹시 검성 아닌가요?”
희연이 상대의 몸놀림에서 크리스틴의 정체를 눈치챘다. 원기는 검성이라는 이름 자체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관심도 없었다.
“검성? 들어본 적도 없는데?”
연하 역시 알지 못하는 듯 말했다.
“네가 누구는 들어봤겠냐. 맞아. 검성이라고 일본쪽 뉴스나 잡지에서 떠들더라. 아는 사람이야?”
연하에게 가볍게 핀잔을 날린 카즈키가 애써 평정을 유지하며 말했다. 카즈키는 크리스틴에 대해서 기억하지 못했다. 기억할 가치를 못느꼈기 때문이었다.
검도 대회 수준을 유치하다고 여겼기에 거기에서 노는 송사리들을 무가치하게 여겼다.
카즈키는 자신들이 상대했던 송사리들에게 기억할 가치를 찾지 못했다. 살인 기술에 특화된 특수요원들과 용병들의 전장이 그나마 시시하지 않게 느껴졌을 뿐이었다.
“진짜야? 오빠. 나한테 컨트롤을 넘겨줘요. 제가 싸워볼께요. 검성과 검을 겨뤄보는게 제 꿈이었어요.”
“그래? 상관은 없는데. 져줘야 하는거 아니었어? 상대가 안될 것 같은데?”
“맞아. 상대할 가치도 없어. 내가 한번 놀아주지.”
카즈키가 재빨리 난입했다. 희연이 자신이 아닌 검사를 눈여겨 본다는 것 자체가 카즈키에게는 불쾌감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카즈키는 제어권을 가로채듯 넘겨 받았다. 그와 함께 네오 무스펠가의 곳곳이 푸른 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기체의 장갑이 분리되어 나가고, 날렵한 여성형의 기체로 돌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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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아니 분리인가?”
분리된 파츠들은 합체되어 거대한 고치처럼 변화되어 있었다.
[분리된 파츠들에서는 무스펠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무스펠가의 선언에 스스무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크리스틴은 상대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로봇의 움직임 하나 만으로도 그녀는 환희에 떨고 있었다. 자신의 무력함을 느끼게 해준 적도 끔찍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풍차를 향해 돌격하는 돈키호테가 아니었다. 탱크 앞에 일본도로 돌격하면서 승리를 기대하는 미친놈도 아니었다.
벨 수 없는 건 벨 수 없는 것일 뿐이다.
그녀는 자신이 목표로 한 카즈키에게 얼마나 다가설 수 있었는지를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앗!”
경고를 날릴 틈도 없었다. 스스무는 눈 앞의 상대가 일순간에 사라진 것을 보고 비명에 가까운 신음성을 냈다. 하지만 무스펠가는 검을 치켜들어서 등을 향해 날아온 일격을 막아냈다.
카즈키는 아니 네오 무스펠가는 날렵해 보이지만 여전히 거대한 기체를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움직이면서 공격을 가했다.
그리고 무스펠가는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치명상은 피해가고 있었다.
크리스틴은 카즈키의 눈에 들 정도의 탁월한 천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역시 충분한 재능을 가진 검사였다. 그녀는 카즈키에게 참패한 후로, 과연 어떻게 하면 그녀를 상대할 수 있을지를 고심해왔다. 오랜 세월의 고심이 결실을 보이고 있었다.
‘이 순간이야. 이 순간을 위해서 난 살아온거야.’
누가봐도 무스펠가의 열세였다. 무스펠가는 만신창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검성의 춤은 계속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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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연은 검성의 팬이었다. 그녀가 자신보다 강한가 약한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츠루기가 아빠의 동경이었다면, 크리스틴은 그녀의 동경이었다.
여성이자 외국인으로서 본고장에서 활약한 크리스틴은 그녀의 동경이었다. 전투 상성에서 카즈키는 희연보다 유리한 면이 있었다. 여신으로서의 이능을 제외한다면 희연은 카즈키에게 이기기 힘들었다. 하지만 카즈키에게 배울 것은 별로 없었다.
그녀의 반신급 이능인 촉수칼리버가 희연에게 상극이라고 봐야 할 뿐이었다. 이능을 뺀 전투에선 희연의 승률이 더 높았다.
무스펠가의 필사적인 사투에서 그녀는 검성의 기술들을 보며 감탄했다. 카즈키의 천재성을 인정하고 두려워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맞서나가고자 하는 의지와 기술을 보여주고 있었다.
사실 그런 모습이 없다 할지라도, 희연은 그녀의 팬이었다.
희연의 표정에 카즈키의 조바심은 더 커져갔다. 쓰러지지 않는 아슬아슬하게 자신의 공격을 모면하는 상대가 더 얄밉게 느껴졌다. 상대에게 승리를 안겨줘야 한다는 생각 따위는 깨끗하게 잊었다.
그녀의 마음 속에 검은 짐승이 깨어나려 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상대는 존경할만한 라이벌이 아니라, 짜증나는 눈엣가시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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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완전히 폭주로군요. 저게 뭐지요? 말려야 하는거 아닙니까?”
“카즈키가 각성하는 모양이야. 일단 두고 보는게 좋을 것 같군.”
조제성은 그렇게 말하며, 전투 장면을 보았다. 펜릴 여신의 신성을 가진 만큼, 카즈키가 새로운 신급 이능을 각성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그녀의 원동력은 질투인가.’
조제성은 피식 웃었다. 네오 무스펠가의 전투력은 조제성의 상상을 뛰어넘고 있었다. 무스펠 일족과 시사라 엔진의 조합은 상상을 초월하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수의 이능자까지 탑승하면서 그 상승 효과는 대단했다.
정말로 슈퍼 로봇이 세상에 현신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전략을 다시 세워야겠어.”
“예?”
“오딘에게 도망가려던 시기의 전력과 지금 전력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지. 현 시점에서 도망갈 필요가 있을까?”
“그건 그렇군요.”
“오딘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지. 그 자는 나와 생각하는 방식이 비슷해.”
“그건 장점이 아닙니까?”
조제성이 적으로 있다는 상상은 하고 싶지도 않았다. 장수한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장점이 아니야. 나같은 사람이 위에 선다면 결코 ‘오래가지’ 못하지.”
조제성은 적이건 아군이건 모두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사람들을 판단하는 기준은 ‘이용가치’라고 할 수 있었다. 좋게 말하면 ‘능력주의’라고도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용가치가 사라질 때였다.
“만약 수한이, 네가 무능력해 지고 이용가치가 사라진다면 내가 어떻게 할 것 같으냐.”
“뭐, 얄짤없이 짤리지 않겠습니까?”
“넌 그게 두렵냐?”
장수한은 조제성의 말에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었다. 언젠가 자신보다 유능한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고, 자신이 무능해 질 수도 있고 쉬고 싶어질 수도 있었다. 언젠가는 자신이 주요 인물이 아니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래. 넌 아예 생각도 안해봤겠지. 그게 프레이야 여신님의 힘이다. 내 힘이 아니야. 네가 오딘 밑에서 있었다면 어떨 거라고 생각하나?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렇군요. 언제 버려질지 모르니, 두려울 겁니다. 버려질 때를 대비해서 준비해 둬야겠지요.”
수한은 오딘의 약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스 신족들 사이에는 분명한 긴장감이 존재하고 있었다.
“프레이야님의 휘하에선 버려질 두려움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이라면 프레이야 여신님이 쓰러지는 것이지. 능력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화되지만, 국가라는 개념에선 바람직한 것은 아니야. 능력없는 자들도 보호받을 수 있다는 신뢰가 없으면, 사람들은 누구나 제 살길을 찾게 마련이지. 오딘의 세력도 마찬가지야.”
승리할 때는 단단한 강철의 성이 되겠지만, 불리해진다면 순식간에 모래성이 될 수도 있다는 판단이었다.
혁명적이고 창조적이고 똑똑한 야심가들이 세상을 호령하는 영웅으로 나섰지만, 마지막 순간에 배신당해서 죽은 경우는 적지 않았다.
유방은 한신을 토사구팽하는데 성공했지만, 시저는 신뢰하던 부하브루투스에게 목숨을 잃었다. 일본 통일을 목전에 뒀던 오다 노부나가도 마찬가지였다.
프레이야 여신은 무능하건 유능하건 자신을 져버릴 리가 없다. 장수한만이 아닌 모두가 그렇게 여기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프레이야와 운명을 함께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아니 각오가 필요치 않았다. 그저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조제성이 본 프레이야 세력의 강점이었다. 그가 사장이었던 때와는 달랐다.
폭탄 테러 때도 내부에 협력자가 있었다.
“이미 대부분의 국가들에게 존속을 공인받은 세력이 되었지. 더 나아가 협조 관계도 구축되어 있어. 그리고 리베로라는 병기들이 실용화되었다. 수만의 반신급 능력자들이 존재하지. 오딘이 얼마나 많은 것을 감춰뒀을지는 모르지만, 충분히 해볼만 하다고 생각되는군.”
“동감입니다.”
장수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살길을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충분히 교섭해 볼 여지가 있었다. 오딘에게 크게 한방 먹이는데 성공한다면, 오딘은 사면초가에 빠질 수도 있었다.
“각성이 시작된 모양이군.”
조제성의 말에 장수한은 화면을 지켜봤다. 네오 무스펠가의 몸 주위를 검은 불꽃이 감싸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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