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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445화 (445/497)

445화 질투의 불꽃

이글이글 타오르는 검은 불꽃은 마치 촉수처럼 네오 무스펠가 주위에서 피어 올랐다. 그리고 그 불꽃의 기둥들은 뱀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히드라인가?”

“아니, 오로치겠지. 머리가 여덟 개다.”

크리스틴의 의문에 스스무가 말했다. 여덟 개의 머리를 가진 뱀, 야마타노 오로치의 형상에 가까웠다.

“그렇군. 상대가 카즈키라면 가능한 일이지.”

크리스틴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덟 개의 검은 불기둥 안쪽에는 푸르게 빛나는 뱀의 형상이 구체화되어 있었다.

“흥. 내 힘을 가지고 가서 고작 뱀새끼라니. 최강의 짐승은 하이에나야.”

“하이에나?”

놀원의 말에 스스무가 반문했다. 펜릴이니 늑대라면 이해가 갔을테지만, 하이에나는 뜬금이 없게 느껴졌다. 크리스틴도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멍청하긴. 현명하고 강한 암컷이 무리를 이끄는게 당연한 섭리다! 그 섭리를 따르는 단결력 높은 숭고한 짐승이 하이에나인거다!”

“아아, 그러세요. 그렇겠네요.”

스스무가 가볍게 무시하면서 화면에 집중했다. 무스펠가를 움직이는 무스펠은 반신급 이능자의 의지와 융합해서 조종했다.

그래서 이능자의 성향이 무스펠가의 성능 자체에도 반영이 되었다. 스스무의 성향은 높은 방어력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는 조종을 넘겨받는게 좋을 수도 있었다.

‘가만히 있는게 낫겠군.’

좋은 의미로 집중하고 있는 크리스틴을 보면서 쓴 웃음을 지었다. 이미 무스펠가는 만신창이여서 장갑 대부분이 부서져 나갔기 때문에 스스무가 나선다고 해도 과연 얼마나 해낼 수 있을지 몰랐다.

‘장갑이 부서져서 가벼워진 만큼, 더 빨라졌다고도 할 수 있겠지.’

내부에 기계장치가 거의 없기 때문에, 데미지가 전투력 감소로 이어진다고 할 수 없었다. 시사라 코어와 파일럿들만 무사하면 괜찮은 편이었다.

검고 푸른 불꽃의 뱀들이 달려들자, 무스펠가의 검이 섬전처럼 뻗어나갔다. 그와 함께 목이 잘리는 듯 보였다. 하지만 실체가 없는 뱀은 검의 영향을 받지 않고 무스펠가를 감싸고 파고 들었다.

“으앗!”

검은 불길에 감싸인 스스무는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금새 불꽃이 뜨겁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검푸른 불꽃은 뜨겁지 않았다. 하지만 순식간에 불꽃이 몸을 감싸는 순간, 그는 그대로 얼어버렸다. 스스무만이 아니고, 무스펠가 전체가 얼어버렸다.

오직 하나 놀원을 제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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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의 불꽃으로 얼려버린다는 건가. 아이러니하군.”

“이대로는 무스펠가가 지고 마는데요.”

불꽃의 형상 그대로 얼어버렸다. 차갑지 않으니 녹지도 않았다. 상대를 동결시키는 능력으로 봐야 했다.

“이미 졌지. 하지만 만회할 방법은 있어. 데우스 엑스 마키나보다 더 좋은 카드는 없지.”

조제성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네오 무스펠가에 탄 원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마침 기계 안에 계시긴 하셨군요. 여신이긴 하지만.”

장수한도 쓴 웃음을 지었다. 원기가 당혹스러워할 것이 분명해 보였지만, 이런 상황에서 거부권을 행사하지는 않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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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제 봤냐? 그거?”

“아, 무스펠가 말이지. 여신 강림이라니. 굉장했어.”

“미의 여신이라는 말이 정말 명불허전이더라. 프레이야 여신이라지?”

“신들의 전쟁이라는 말이 실감나더라.”

“외계인이라고 하지 않았어? 난 외계인이라고 들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도 외계인 타령하냐? 그건 너밖에 없을거다.”

“아, 난 못봤어. 그렇게 대단했나?”

“실시간으로 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 굉장했어. 난 여신을 믿고 싶어지더라. 녹화된 걸로 다시 봤는데 왠지 다르더라.”

사람들은 프레이야 여신에 대한 이야기로 불타올랐다. 무스펠가의 전투는 그 자체로 시청률이 높기 때문에 많은 뉴스 방송국에서 해설자를 붙여서 실황 중계를 하고 있었다.

생중계 가운데 여신이 나타나서 상황을 반전시킨 것이었다.

물론 그 여신이 조금전까지 적의 로봇 안에서 조종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용자 로봇의 위기에 여신이 나타나서 구했다는 연출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악신 헬과 라스푸틴을 추종하던 흡혈귀들이 대량으로 토벌되었다.

핀치에 이은 역전극과 그로인한 대성과는 사람들을 들뜨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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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혈일족들의 구분은 어떻게 되어 가나요? 너무 엄격한 것 아닌가요?”

원기의 질문에 장수한이 앞에 나섰다. 조제성이 말하기 보다는 이종족 사랑을 지닌 장수한이 말하는게 모양새가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장기적으로 봐야 합니다. 인간을 먹이로 생각하는 이들은 언젠가 문제를 일으키게 되어 있습니다. 엄격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스가르드에 있던 흡혈귀들과 지구의 흡혈귀들은 꽤 달랐다. 헬 여신은 통제가 쉬운 종족으로 개조해 나갔다.

그래서 헬 여신이 개량한 부족들은 대부분 벌과 개미를 따라서 여왕 체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적었다.

뱀파이어 퀸에게 모든 뱀파이어들은 복종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뱀파이어 퀸 역시 헬 여신에게 복종한다.

거미족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왕거미를 중심으로 통솔한다는 점에서 거미의 습성과는 꽤 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지구의 흡혈귀들은 여왕을 중심으로 한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인간처럼 자유로운 사고를 지녔다.

그래서 이들을 통제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라스푸틴을 따라서 많은 흡혈귀들이 헬 휘하에 들어왔지만, 이들은 헬의 신성에 힘입어 인간들을 가축으로 만들기를 원하고 있었다. 노예처럼 부리다가 밥상에 올리는 소처럼, 인간을 노예도 아닌 가축으로 만들기를 바라는 가학적인 이들이 많았다.

자신들이 숨어서 저지른 악행들은 생각지 않고, 자신들을 핍박받는 피해자라고 여기는 이들이 다수였다.

하지만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가축을 잡아먹는 것을 거부하는 인간들이 있듯이, 흡혈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피를 빨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인간이라고 자신을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다. 가능하면 피를 빨지 않고 살고자 하는 이들이었다.

말이 통하는 동물이라면, 잡아먹고자 죽이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이들도 헬 여신을 찾아 왔다.

헬 여신의 세계수의 수액이 있으면 인간을 죽이지 않고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장수한은 흡혈귀들을 구분하기 위해서, 차별을 실시했다.

인간을 사냥하는 사냥부대를 귀족으로, 그리고 인간 사냥을 나가지 않는 이들을 농노로 만들었다. 세계수의 수액을 얻는 대신에 땅을 파고 오물을 치우는 그런 일들을 하도록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그런 일들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처우를 못견뎌서 사냥부대에 지원하는 이들도 존재했다. 그것이 원기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다.

“의지가 강한 사람이 아니면, 우리와 함께 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약속대로 지구는 떠나야 하니까요.”

조제성이 말했다. 지구는 떠나고 달은 반납하기로 되어 있었다. 때문에 조제성은 화성을 노리고 있었다. 무스펠들은 프레이야가 지구를 떠나면 지구로 오기로 약조된 상태였기 때문에, 그들이 화성에서 살던 지하 도시를 중심으로 삶의 터전을 준비중이었다.

위성 데이모스를 이주선으로 개조하는 작업도 여전히 추진중이었다. 하지만 아스가르드와 화성에 터전을 만들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이주선 데이모스로 오랜 우주 여행에 나서는 것은 전쟁의 위협으로부터는 안전하지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건 그렇고, 카즈키양의 능력도 꽤 요긴한 것이군.’

상대를 원리를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얼려버렸다. 냉동인간을 만드는 능력으로서는 꽤 뛰어난 방식이었다.

인간을 냉동시켰다가 다시 깨우는 것은 아직 실용화된 기술이 아니었다.

인간을 냉동시키는 순간에, 죽어버렸다. 영혼이 떠나버리는 관계로 치료마법이 아니라, 부활마법도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카즈키의 냉동은 인간이 어는 것과는 달라서, 수분이 동결되면서 세포를 터뜨리는 일도 없었다.

얼어버린 상태를 해제하는 것은 상위신인 프레이야의 의지로 가능하다는 것도 매력이었다. 신성을 돌려받은 놀원과 상위신인 프레이야에게도 가능하기 때문에 우주 개척의 가능성도 높아졌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카즈키는 자신을 얼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얼릴 수 있다해도 그걸 깨울 누군가는 필요하지.’

“무스펠가는 꽤 훌륭한 카드입니다. 이제 슬슬 아스가르드와 싸워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 더 끄는 것은 위험할지 모릅니다. 오딘이 얌전히 있어줄 것 같지는 않으니까 말이지요.”

“오딘의 움직임이 있었나요?”

“세스룸니르에 대한 공격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아직 직접 나서지는 않았습니다만, 나설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듯 합니다. 세스룸니르를 잃기는 아깝지요.”

유혜서는 현재 데이모스로 옮겨와 있었다. 데이모스가 가장 안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무스펠들과 배신할 수 없는 맹약을 맺은 현재는 가장 안전한 곳임에 틀림없었다.

반면 딸인 조은혜는 지금도 세스룸니르에 남아있었다. 블레이드 일행을 돕는데 관심을 가진 탓이었다.

블레이드는 조제성이나 원기의 예상보다 훨씬 뛰어난 지도자였다. 세스룸니르의 민심을 장악하고, 세스룸니르를 요새화시켰다.

그리고 지구에서 가져간 지뢰를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지뢰밭 덕분에 적들이 쉽게 공격할 수 없게 된 상태였다.

반격을 위한 거점으로서 세스룸니르는 중요한 키가 될 터였다.

“악역으로 묶인 헬은 어떻게 하지요? 희연의 이능도 그렇고 헬 여신의 휘하 세력도 아스가르드와 싸우기 위해선 필요할텐데요?”

원기의 질문에 조제성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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