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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448화 (448/497)

448화 전쟁의 시작

‘이대로는 안되겠어.’

라스푸틴은 자신의 무지를 실감했다. 그는 권력의 중추에서 머물던 사람이었고, 자신이 헬 여신의 측근으로서 권력의 중추에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헬 여신의 위상이 그가 생각하던 것과 너무 달랐던 것이었다.

‘단순 협조 관계가 아니라, 완전 종속 관계로군. 아니 그보다는 종속 자체도 아니야. 그냥 한 덩어리라고 봐야 해.’

그는 자신을 안내하러 온 엘프를 보면서 잠시 기다리라고 말했다.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한 탓이었다.

자신에게 호의적이었던 장수한을 떠올린 것이었다. 입이 가볍다기 보다는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탈권위적인 그라면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생각보다 많아 보였다.

그는 재빨리 장수한에게 다가갔다.

“으, 음...”

막상 입을 열려고 하니,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헬 여신과 펜릴 여신이 곁에 있기도 했고, 태도를 바꾸기도 쉽지 않았다. 태도를 너무 쉽게 바꾸면 오히려 신뢰를 잃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라스푸틴님. 무슨 일이십니까?”

“나중이라도 좋으니, 잠시 시간 좀 내줄 수 있겠나?”

라스푸틴은 장수한의 여전히 호의적인 태도에 안도감을 느꼈다.

“지금도 괜찮습니다. 야, 너희들 잠깐만 기다려.”

라스푸틴은 장수한의 호의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헬과 펜릴 두 강대한 여신들의 존재는 의식에서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눈치없는 새끼.’

속으로 욕이 나오는 것을 억누르면서, 라스푸틴은 근엄한 표정을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그럼, 잠시 실례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그래. 어차피 남는게 시간인데. 그보다 게임이나 한판 붙어볼까.”

카즈키가 스마트폰을 꺼내면서 말했다. 검술만이 아니라, 희연과 승부할 수 있는거라면 뭐든 상관없다는 듯이 걸고 들어가는게 카즈키였다. 희연은 귀찮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스마트폰을 꺼내서 카즈키의 상대를 했다.

장수한은 그 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사실 희연 역시 친구가 없었다. 초등학교부터 검술에 심취한 검술광이었다. 그런데다가 결벽적이고 근면한 성격에 책임감이 강하다보니, 공부도 빠지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주위와 어울리지 못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그런 면에서 친구다운 친구가 생긴 것은 카즈키가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원기가 더 먼저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같이 노는 친구라는 느낌은 받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카즈키에게 휘둘리는데 대해서 위화감과 약간의 거부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심으로는 그것을 좋아하고 있었다.

‘이런 망할 놈을 봤나.’

장수한이 헬 여신을 보면서 피식 웃는 모습을 본 순간, 라스푸틴은 분노가 끓어올랐다. 헬 여신이 무시당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애써 평정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그렇군. 난 헬 여신님을 마음속의 주인으로 모신건가.’

두려움을 넘어서 경외 그 자체인 헬 여신에게 그는 마음속으로 굴복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실례했습니다. 쟤들은 저렇게 알아서 잘 놀테니, 신경 안쓰셔도 됩니다. 말씀하고 싶으신게 있으시다고요?”

“지휘 계통에 대해서 알고 싶네. 내가 헬 여신님의 종으로써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알고 싶군.”

라스푸틴은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처음에는 권력의 중추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자 했다. 헬 여신이 별볼일 없는 존재라면, 자신의 입지 또한 부실해질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헬 여신에게 종속된 몸으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이자,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음. 간단히 말씀드리면, 아까 만난 조제성 승상님이 모든 실권을 쥐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조제성 승상님의 위에는 프레이야 여신님이 계시지만, 뭐랄까요. 모두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똑똑한 사람의 의견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에, 조제성 승상님의 의견을 대부분 그대로 채용하고 계십니다. 물론 조승상님도 프레이야 여신님의 뜻을 최대한 존중하고 있습니다.”

라스푸틴은 상황을 이해했다. 지침을 정하는 것은 프레이야지만, 실제 계획을 세우고 주관하는 것은 조제성이 중심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헬 여신님의 뜻은 어떻게 되는 건가.”

“현재로선 일개 전투원이로군요. 꼭두각시 같은 것이기도 하고.”

라스푸틴은 그 말에 분노하기보다 당황했다. 헬 여신이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야, 너 꼭두각시란다. 너무하지 않냐?”

“난 화살받이 역할만 잘 할 수 있으면 돼. 너무 많은게 맡겨져서 곤란하니까.”

“생각하기 싫어하는건 연하랑 별 차이가 없구나.”

“음. 그말은 좀 상처받는데.”

둘의 말에 장수한은 쓴웃음을 지었다.

“저게 문제지요. 사실 머리도 좋으니, 머리쓰는 역할을 맡기고 싶은데, 몸쓰는 역할을 맡고 싶어하는 겁니다. 전투원 취급은 나름 이녀석의 뜻을 존중하는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라스푸틴은 입맛이 쓴 것을 느꼈다. 헬 여신은 고귀하다는 표현 따위로 묘사할 수 없는 존재였다. 마치 끝없는 우주의 심연을 연상시키는 존재감이 있었다.

그가 출세하고 싶다는 욕망을 가진 것은 그런 헬 여신에게 다가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라스푸틴님이라면 지식과 경험을 살려서, 조승상님의 지휘부에 합류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렇군. 이 자가 조제성 승상의 심복이라는 뜻이로군.’

라스푸틴은 그렇게 이해했다. 조제성이라는 자에 대해서는 한눈에 보고 그 성향을 알 수 있었다. 냉정하고 합리적인 관리자였다.

“아니, 되었네. 난 헬 여신님의 종복으로서의 임무로 만족하겠네.”

지금까지처럼 헬 여신을 통해서 조제성의 명령이 주어지리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이미 헬 여신의 그늘 아래 살기로 마음먹은 헬 여신의 신자라고 할 수 있었다.

종속을 결심한 것도 그녀의 카리스마를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헬 여신이 별것 아닌 잡졸 취급을 받는 것을 본 순간, 충격을 받았지만, 얻은 것도 있었다.

그녀에게 실권이 있건 없건, 그는 헬 여신을 따르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었다.

‘우와. 희연 녀석의 신성력도 무시 못하겠는걸.’

장수한은 내심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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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말로 현인신, 신성을 얻는데 나보다 어울리는 존재는 없을 것이오.”

“유감이지만, 그리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신성력의 유지와 보급이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폐하를 신으로 믿고 따를 이들이 필요합니다. 신이 존재하기 위해선 신자가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조제성은 젊은 덴노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덴노는 아마테라스의 후손으로 지금까지도 신이었고, 앞으로도 신이다. 그것을 부정할 야마토의 백성이 있을까.”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덴노를 현인신이라고 말하는 이들 가운데에 진짜 신적인 존재라고 믿는 이들이 얼마나 될거라고 보십니까?”

“내가 신성을 얻으면 해결될 문제요. 현인신인 내가 불로불사의 힘과 신성마법을 사용하는 신관들을 거느리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백성들은 신으로서 날 섬기게 될 거요.”

“글쎄요.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그저 초능력을 가진 인간으로 보게 될 겁니다. 라스푸틴의 실패도 바로 그것이었지요. 추종자들은 그를 신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대가 섬기는 프레이야 여신은 어떻게 된 거요.”

“그분에게는 엘프라는 종족이 있습니다. 그분만의 종족이지요. 그리고 그분의 메시지 내용을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나는 서양잡귀다. 신이 아니니, 신으로 섬기지 마라. 나는 외계인이다. 신이 아니니, 신으로 섬기지 마라’라는 것이지요. 그 메시지의 의미를 아시겠습니까?”

조제성의 말에 젊은 덴노의 표정이 굳어졌다. 실제로 프레이야 여신이 저런 메시지를 보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바니걸 메시지라고 불리우는 텔레파시를 듣는 이들은 예외없이 프레이야의 신자라고 간주해도 무방했다.

“신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게끔 만드는 힘이 있다는 뜻이로군. 원하든 원치않든.”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힘이 없는 폐하께서는 백성들에게 신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우실 겁니다.”

조제성은 단언했다. 프레이야의 바니걸 통신만큼 강력하지는 않지만, 희연의 카리스마도 신자들을 만들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현대인조차도 장악할 수 있는 그런 힘은 아무나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게 무언가.”

“일본인들은, 아니 현대인들은 아스 신족이나 그에 준하는 존재들을 신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정신적으로 불안한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면 말이지요. 하지만 아스가르드에 사는 백성들은 다릅니다. 그들은 아스 신족을 신으로 모시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자들입니다. 그들이라면, 덴노헤이카를 신으로 섬기며 살아갈 수 있는 이들이지요. 그들을 해방시키고 백성으로 거두신다면, 진정한 신으로서 백성들을 이끄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런가. 그렇겠지.”

조제성은 미끼를 물었다는 확신을 가졌다. 아스가르드와의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전장을 지구로 만드느냐, 아스가르드로 만드는가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과거에는 지구를 전장으로 만드는 것도 상정하고 있었지만, 지구 인구를 몰살시킬 준비까지 해둔 오딘에 대해서 알게된 이상은 지구를 전장으로 삼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오딘과 준비없이 붙을 생각도 없었다. 상대는 신이었다. 어떤 수단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숨겨진 카드를 확인하기 위해서, 조제성은 신이 되고자 하는 이들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아스가르드는 지구가 아닙니다. 이세계입니다. 그러니 자위대가 백성들을 해방시킨다고 해서 문제가 되진 않을 겁니다.”

“과연 그걸 다른 나라들이 받아들여줄까?”

“그 부분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될겁니다. 다른 나라들도 지금 눈치를 보고 있으니까 말이지요. 누군가 먼저 나서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루타로군. 우리를 통해서 적의 전력을 재보겠다는 셈인가?”

“그렇기에 기회가 있는 겁니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아마도 일본의 참전 기회는 주어지지 않겠지요. 신으로 자립할 기회도 사라질 겁니다. 신이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인 백성은 그 자체로 자원이 되기 때문이지요. 석유 따위와는 비교될 수 없는 자원입니다. 경매 결과를 아실테지요.”

1년에 다섯명 젊은 육체로 전생시킬 수 있다는 프레이야의 능력을 두고 조제성은 경매를 열었다.

피험자의 세포를 배양해서, 그것을 3D프린터를 이용해서 장기를 만들어 제공해 오는 서비스에서 더 나아가서, 아예 장기가 아닌 육체를 프린트한 것이었다.

그리고 발키리를 이용해서 영혼을 빼서 새로운 육체로 옮겨주는 서비스였다. 1년에 가능한 사람은 다섯명이라는 제한을 두고 이 기회를 경매에 붙인 것이었다.

3D프린터로 세포를 붙여서 만드는 만큼, 외형은 원하는데로 미남, 미녀로 만들 수 있었고, 세포의 연령은 0세. 젊음 그 자체이며 본인의 세포를 배양한 것이니 만큼 유전자도 동일했다.

환생권이라는 이름으로 환생할 기회를 판매했는데, 천문학전인 비용을 지불하고 이를 사들인 부자들이 많았다.

생명이야말로 가장 가치있는 자원임에 틀림없었다.

“먼저 움직이는 편이 유리한 점도 있습니다. 오딘 역시 상황을 볼테니까요. 그가 숨겨진 카드를 꺼내는 시점까지는 해볼만 할 겁니다.”

덴노는 쓴 웃음을 지었다. 조제성의 유혹은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좋아. 우리 황군이 아스가르드 해방에 앞장서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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