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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452화 (452/497)

452화 진전

“반갑다. 네가 인간들의 왕인가?”

“신이라고 해줬으면 좋겠군. 새로운 신이다.”

미카도는 그렇게 말했지만, 내심 상대의 외모에 압도 당했다. 우락부락한 백호가 앞에 있었다. 뇌전을 튀기는, 근처에만 가도 감전되어 즉사할 것 같은 외뿔은 덤이었다.

무시무시한 살기, 진짜 맹수라는 느낌이 들었다.

오른쪽 눈의 위와 아래를 가로지르는 깊은 흉터 자국은 그 위압감을 더욱 가중시켰다.

“흔해빠진 녀석중 하나라는게 자랑인가.”

놀 제로는 비웃듯 말했다. 놀 제로 역시 신수급 존재였다. 아스가르드에서 하급신 혹은 그에 준하는 존재는 수십, 아니 수백 정도는 되었다.

아스가르드에서 신이라는 것은 그 세력으로 평가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신도 몇백명 모으려고 아둥바둥대는 신따위는 별 가치가 없었다.

반면 놀 제로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알고 있었다. 지구에 존재하는 강대국 중 하나, 군사력을 제외한 경제력과 문화력에서도 손가락 안에 꼽히는 국가였다.

“하긴, 나라에서 별볼일 없는 장식품이라고 했던가.”

놀 제로의 말에 미카도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일본인의 특성상 면전에서 무례한 말을 듣기는 쉽지 않았다. 적절한 대응도 하기 쉽지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이게 카리스마라는 건가. 할 말이 없게 만드는군.’

놀 제로에게는 인간을 가소롭게 보는, 그럼에도 오만하게 느껴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느끼게 만드는 기운이 있었다.

‘신수라고 했던가.’

하급신 따위는 우습게 보는 그 태도가 도리어 믿음이 갔다.

“이봐. 너무 무례한거 아냐? 미카도.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일본인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미카도는 사내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마츠모토 츠루기?”

“아, 알고 계셨군요. 영광입니다. 이 무례한 녀석은 제 집사람입니다.”

“집사람?”

미카도는 믿기지 않는 얼굴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놀 제로의 머리는 호랑이지만, 몸은 근육질의 남자와도 같았다.

타이거 마스크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봐. 그 모습은 전투 때나 하라고 했지.”

“명령하지 마라. 난 네 소유물이 아냐. 네가 내 소유물이다.”

놀 제로는 투덜대면서, 합체를 풀었다. 거대한 흰 호랑이는 사라지고 건강해보이는 조금 눈매가 날카로운 미녀가 자리잡고 있었다. 눈가의 상처도 사라졌지만, 뿔만큼은 머리 위에 자리잡고 있었다.

게다가 여전히 푸르스름하게 빛나고 있어서 무시무시했다.

“아, 이 뿔에 닿아도 감전되진 않습니다. 겉보기만 그렇다...고는 못하겠군요. 공격하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전기가 통하진 않습니다. 물론 키스라든가 할 때는 좀 거슬리기는 합니다.”

마츠모토 츠루기가 그 뿔을 만지는 순간, 전기가 빠직하고 흘렀다. 그래서 츠루기는 깜짝 놀라서 손을 떼야만 했다. 그리고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하이에나 일족은 내 것이다. 그외의 수인족들은 네게 팔도록 하지. 물론 동의하지 않는 자들은 팔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역량을 갖추는게 좋을거야. 수인족들은 약한 자의 밑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긍지높은 야수기 때문이다.”

“요는 일본에 이민? 이적? 시키는 대신에 돈이나 자원등을 받겠다는 소리입니다. 수인들은 짐승이니까, 강한 우두머리 밑에 들어가는걸 좋아하지요. 자진해서 이적할 수 있도록 짐승 길들이는 요령을 배우시거나, 그런 능력이 있는 이들을 동원하시면 될 겁니다.”

츠루기는 호의적으로 말했다. 그의 모국이 일본이기도 하지만, 마츠모토 집안은 덴노와 막부에 충성하던 사무라이 가문이기도 했다. 물론 카즈키는 집안이고 선조고 모국이고 눈꼽만치의 가치도 두지 않고 있었다. 사실 츠루기도 그런 성향은 꽤 강한 편이지만, 무시하기엔 조금 꺼림칙한 수준이었다.

놀 제로는 츠루기의 말에 코웃음을 치고는 외면해 버렸다. 그리고는 성큼성큼 걸어서 가버렸다. 흰 호랑이가 나타나서 그녀와 합체하자 다시 근육질 호랑이로 변해버렸다.

“저보고 알아서 하라는 뜻입니다. 아주 전형적인 츤데레라니까요.”

츠루기는 미소를 지었다. 검성이라고 불리며, 무적을 자랑하던 그였지만, 이쪽 세계에서 수인족들과 싸우면서 어려움도 많이 겪었다. 인간을 위한, 그리고 인간을 상대하기 위한 무술은 초인의 몸에는, 그리고 인간을 초월한 상대를 상대하기에는 맞지 않았다.

젊은 천재보다 완성된 달인에게는 더 가혹한 길이었다.

하지만, 그는 현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어려움이 있고, 극복해나가는 재미가 있었다. 발전 속도는 느리지만, 착실이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놀 제로와의 관계도 마음에 들었다. 긍지가 높고 약한 모습을 안보이려고 드는 우두머리 기질이 있지만, 반면 자신을 아끼고 챙겨주는 모습도 있었기 때무니었다.

“수인족들을 굴복시키는데는 카리스마가 필요하다는 건가.”

“좀 그렇습니다. 덕으로 굴복하는 인간과는 좀 다릅니다. 겉으로 보기에도 강해보이는 그런 리더를 좋아합니다.”

“난 수인들만의 신이 될 수는 없네. 오히려 인간의 신이 되어야 하지. 뭔가 방법이 없겠나?”

“그럼, 간단합니다. 중간 보스를 만드십시오. 미카도께 충성하는 카리스마 있는 이능력자에게 신관이나 성기사의 직분을 부여하시면 됩니다. 세기말 패왕같은 인물이면 좋겠지요. 그가 수인족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미카도께 충성을 바치면 됩니다.”

미카도는 머리속에서 적당한 인물을 찾아보았다. 몇몇 후보가 머리속을 돌아다니기는 했지만, 탐탁한 인물이 없었다.

중요한 인물인데,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이 없었다. 카리스마가 있는 놈들은 대부분 야심가였다. 힘을 실어 주는게 더 위험하게 느껴졌다. 그때 자신의 눈앞에 서있는 이가 눈에 들어왔다.

마츠모토 츠루기. 검을 좋아하는 구도자. 야심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기도 했다. 그 부인인 놀 제로는 다루기 힘들 듯 싶었지만 겉과 속이 다르지 않아 보였다. 츠루기를 통해서 통제만 할 수 있다면, 더 이상의 적임이 없었다.

“그렇겠군. 카리스마 있는 우두머리라. 혹시 자네 부인은 어떤가? 그 역할을 맡아줄 수 있겠나?”

“무리입니다. 그녀는 프레이야님의 신도입니다. 본래 하이에나 족인데, 호랑이 모습을 하는 것도 프레이야님이 호랑이 모습을 한 적이 있어서입니다. 미카도에게 충성을 하진 않을 겁니다. 그리고 30년 안에 프레이야님은 지구에서 완전히 떠나시기로 하셨습니다.”

미카도는 내심 반겼다. 영생을 산다는 것에 대한 대비가 필요했다. 영생을 함께 할 파트너는 시간을 들여 고르는게 좋았다.

30년 후면 무조건 떠난다는 상대라면, 더할 나위가 없었다.

“그럼, 30년까지는 가능하겠군. 그녀만한 카리스마가 없으면 수인족들에게 충성을 끌어내기 힘들거야. 자네가 그녀를 잘 다독여주게. 자네에게 꽤 약한 듯 하니까. 자네 말대로 츤데레로군.”

“하지만, 그녀는 미카도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을 겁니다. 성격이 그렇습니다. 좀 더럽지요.”

함부로 굽히지 않는, 그 성격에 더 신뢰가 갔다. 하지만 덴노의 권위를 위해서는 쑈가 필요했다. 미카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 카리스마는 그 긍지에서 오는 건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볼 수 없겠나?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군. 눈속임 같은 건 어떤가.”

“눈속임이라고 하니, 대역을 쓸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녀의 딸들 중 하나에게 부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둘째나 셋째라면 그녀와 구별이 잘 안갈겁니다. 하지만 그래도 되겠습니까?”

“카게무샤인건가. 좋을 것 같소. 꼭 좀 부탁하오.”

츠루기는 미카도에게 연신 부탁을 받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는 쓴 웃음을 지었다. 이 만남 자체가 조제성이 주선한 것이었다. 딸들을 대역으로 쓰면 될거라는 아이디어도 조제성이 준 것이었다. 미카도는 그대로 미끼를 물었다.

일본의 작전에 조제성의 입김이 크게 먹히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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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의 대부분은 전투가 아닌 기지 건설과 경비를 위해서 불려왔다. 미카도 신사라는 이름이 예정된 신전 건물을 제외하고 현대식 해군 기지를 건설하는 임무를 맡았다.

벙커와 포대 등을 건설하고, 두꺼운 벽을 지닌 요새 도시를 건설하는데는 다수의 공병과 건설 장비들이 필요했다.

미카도 신사는 지하 벙커처럼 깊은 지하에 건설되었고, 포로 수용소라는 이름으로 아스가르드인들을 수용했다.

포로 수용소라는 이름이 어울릴 정도로 척박한 환경이 제공되었지만, 아스가르드인들에게는 특히 수인족 식용 가축이었던 이들에게는 대단히 호사스러운 환경이기도 했다.

아스가르드의 ‘신민’들이 현대 사상에 물들지 않도록 관리하면서도 일본 신화를 영상등을 통해서 보여줬다.

문화다운 문화를 누리기 힘들었던 이들은 그 교육용, 아니 세뇌용 영상을 보면서도 재미있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새로운 신 미카도를 위해서 새전함 앞에서 방울을 울리고 손뼉을 치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다.

일본의 성공이 거시화되자, 다른 많은 나라들도 꿈틀대기 시작했다. 가장 발빠르게 움직인 나라는 러시아였다.

강대국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독재구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했다. 드미트리 이바노프 대통령은 전대의 독재를 이어 러시아의 전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었다.

누가 신이 될 것인가의 문제 때문에 다른 나라들이 쉽게 움직이지 못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드미트리 이바노프 대통령이 신이 되겠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자는 존재치 않았다.

러시아가 움직이자 따라서 움직인 나라는 영국이었다.

영국 왕실은 영국의 상징으로서 나름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미국 같은 나라가 오히려 선정에 애를 먹고 있었다. 신성의 획득은 국력으로 연결이 되지만, 신성 획득자는 불로불사의 영생을 얻기 때문이었다. 물론 인간 육체 그대로 신성을 얻기 때문에 육체가 파괴되는 경우에는 죽을 수 밖에 없고, 신성 역시 신자가 부족하면 상실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경우를 제외하면 자연스럽게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었다. 신관을 만들 수 있는 권능은 권력과도 이어질 수 있었다.

영생과 권력이 일개인에게 부여되는데, 국익을 위해서는 키워야 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선거로 뽑기에도 문제가 많아서, 경매를 한다는 안도 나왔지만 여러가지로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

특히 서구권에서는 그리스도교 문화가 강해서, 이것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러시아와 영국을 중심으로 몇몇 국가들이 발빠르게 나서기 시작했다. 토르와 요르문간드, 로키의 항구도시가 그 공략 대상이었다.

“공사 진척 정도는 어떻게 되었나?”

“공사 규모에 비해서 인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그리고 건설업 숙련 노동자들만 못해서...”

“어쩔 수 없군. 인원 확충 방법을 찾아봐야지.”

이계의 전쟁터에서 기지 건설 공사를 위해서 민간업자를 동원하기는 쉽지 않았다. 한국군 공병들만 죽어나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대책이 필요합니다. 물적 자원은 확보가 쉽습니다만 인적 자원의 문제가 큽니다.”

오딘의 항구 점령은 효과적으로 이뤄졌다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운석 공격에 제법 많은 인명을 잃었다.

열다섯 명의 사망, 전과에 비해서는 작다고 할 수 있지만 비밀 작전에서 사망한 수로는 적지 않았다. 앞으로의 전투는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희생자는 더 늘어날 수도 있었다.

수백명, 혹은 패전으로 수천이 날 수도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황군만으로는 무리요. 그렇다고 한국군을 더 동원하기는 쉽지 않겠지.”

“용병들을 동원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각지의 용병들을 고용하는 겁니다. 이 새로운 땅의 개척을 위해서 말이지요.”

“용병이라,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요. 엘프들의 용병회사를 차리도록 하지요. 조건에 따라서 엘프들을 파병해드리겠습니다. 물론 전투 요원으로 말이지요. 각 나라별로 이능자들을 파견하는 용병회사를 만드는 것은 어떻습니까? 용병들의 경우 그 피해가 반드시 공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지요.”

조제성의 말에, 미군 협력고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럼 미국측에서도 용병 회사를 통해서 진출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도록 연락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비용은 우리 일본 정부에서 대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미카도가 재빠르게 말했다.

“그럴 수 만은 없지요. 동맹국으로서 일본의 신세만 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미국측에서 부담하겠습니다. 앞으로 ‘협력’해 나가도록 하지요.”

미카도의 눈살이 찌푸려들었다. 미국의 본격적인 진출이 시작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아스가르드에서 얻은 성과를 통째로 날려먹을 수도 있었다.

미카도는 조제성을 바라보았다.

“엘프 용병들을 고용하고 싶소이다. 조건을 좀 알려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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