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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454화 (454/497)

454화 프라나

“죽어라. 이 미개한 것들.”

현대인 기준으로 보면, 야만인이나 다름없는 가치관의 지크프리드가 오만하게 말하며, 검을 휘둘렀다.

사이코 닌자 한 기가 그의 검에 두동강이 나며 폭발했다.

파일럿들은 이능자들이지만, 모두가 같은 이능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명중률을 높이는 이능을 가진 이도 있고, 상대방이 자신을 의식하지 못하게 하는 이도 있었다.

이번에 격추당한 이는 살기를 감지하는 능력자였다.

먼 거리에서 자신을 격추하려고 노리는 것을 감지하고 피할 수 있는 상당히 유용한 능력자였지만, 지크프리드가 그를 공격하려고 노린 순간,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디로 피해야 할지도 모르는 사이에 뒤에 나타난 지크프리드의 검에 두쪽이 나버렸다.

상식을 벗어난 전투력에 정상적으로 대응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었다.

“모두 후퇴하라!”

기관포와 로켓을 연사하면서 그들은 필사적으로 움직였지만, 지크프리드는 그들을 비웃었다.

그를 보호하는 전신의 게이트는 물체가 통과하는 것에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공격하건 안하건 게이트를 유지하는데 드는 신성력의 양은 거의 차이가 없었다.

공격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었다.

‘아니지. 의미는 있겠군. 필드를 유지해야 하니까.’

필드를 유지하고 있는 동안은 공격을 못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지크프리드는 검신만을 노출시킨 상태였다. 하지만 그 사실을 눈치챈 이들은 별로 없었다.

“저거, 점프필드라고 하는게 좋을까?”

“아니. 난 스킵필드가 더 좋을 것 같은데?”

“그게 그거지. 하지만 스킵필드가 더 어울릴 것 같네.”

호철의 말에 찬균은 동의했다. 적의 공격을 스킵시키는 필드. 스킵필드로 불리우는 오딘의 기술이었다.

네오 무스펠가가 사용한 방패보다 더 세련된 기술이었다.

“차원인지 공간인지 확실치 않지만, 저걸 다루는 적이라니 참 말도 안되는군. 사기야.”

찬균은 그렇게 말했지만, 프레이야측에서도 이미 사용하는 기술들이었다. 오딘만큼의 완성도가 없을 뿐이었다.

사이코 닌자들이 도망치자, 지크프리드는 차량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순간이동으로 곁에 나타나자, 전차들은 포탑을 돌려서 조준하려고 해봤지만 너무 느렸다.

지크프리드는 다리를 노출시키고, 곁에 있던 장갑차를 밟아버렸다. 차륜이 부서져나가고, 장갑차 상판이 움푹패이면서 땅에 박혀버렸다.

전차대의 조종자들이 패닉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전차안에서 울부짖고 울먹이며 그 자리를 빠져나가려고 들었다.

하지만 지크프리드는 그들이 물러가게 두려고 하지 않았다.

장갑차를 한대 더 짓밟은 지크프리드는 곁에 있던 90식 전차를 발로 힘껏 걷어찼다.

쾅하는 굉음과 함께 금속 파편들이 하늘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와 함께 지크프리드의 발목이 하늘로 날아 올랐다.

“응?”

지크프리드는 물론, 보고있던 모든 이들, 그리고 발로 채인 전차의 승무원들까지 모두 당황했다.

무게가 가볍고 그로 인해서 방어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유명한 90식 전차지만 50톤이나 나가는 금속 덩어리였다.

반면 지크프리드는 반중력 물질로 하늘을 떠다니며 움직이는 기체로 크기는 크지만 무게는 그리 많이 나가지 않았다.

전체 무게를 잴 수는 없지만, 다리 하나는 20톤 정도의 금속으로 이뤄져 있었다. 전차를 걷어차서 호쾌하게 날려버릴 정도의 파워는 없었다.

축구공 모양의 쇳덩어리를 있는 힘껏 걷어찬 인간하고 비슷할 터였다. 결과 발목이 부러져 나간 거였다.

다만, 지크프리드는 부유석이라고 부르는 상체의 반중력 물질에 의지하기 때문에 쓰러지지는 않았다.

가슴에 튜브를 한 아이가 발이 닿는 풀장 바닥을 걸어다니는 것과 같은 보행 시스템이라서 발이 하나 없어진다고 큰 지장은 오지 않았다.

“이런, 말도 안되는!”

지크프리드는 자신의 실태에 분노했다. 그리고 들고있던 검으로 전차를 내리쳤다. 이번엔 포탑 상부가 찢겨 나갔지만, 검도 찢겨졌다. 구부러지며 깨져나간 것이다.

오딘의 백성들이 가진 제련 기술은 수십년 전에 제작된 전차의 제조 기술과도 비교될 수 없었던 것이다.

지크프리드는 분노해서,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바로 모젤이라고도 불리는 마우저 권총이었다. 물론 지크프리드의 거체에 맞는 거대한 대포였고 실제로 마우저사에서 만든 것도 아니었다.

나치 병사들이 갖고 있던 무기를 본떠서 거대화해 만든 것이었다.

위력은 티이거 전차의 주포에 준하는 강력한 것이었다. 화약이 아닌 마력을 사용해서 연사할 수 있는 강력한 총이었다.

그리고 그 탄환이 지크프리드를 향해 포를 겨누려는 아카기의 90식 전차를 향해 날아갔다.

아카기는 모니터를 통해 그 모습을 보고 눈을 질끈 감았다.

‘늦었어. 이젠 죽는다.’

강렬한 폭음과 금속음이 들렸다.

“도탄되었습니다!”

포수의 보고에 아카기는 황급히 포탄을 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그 포탄은 지크프리드의 남은 한쪽 다리에 명중했다. 공격을 위해서 스킵 필드가 중단된 것을 깨달은 덕분이었다.

지크프리드는 분노해서, 마우저 캐논에 마력을 더 불어넣었다. 명백한 오버 차지. 그리고 다시한번 90식을 향해서 포탄을 발사했다. 그리고 그 순간 마우저 캐논이 폭발해 버렸다.

허무하게도 그 와중에 발사된 탄환마저 도탄되어 버렸다.

90식의 방호력은 전면에만 특화되어 있어서, 측면이나 윗면을 공격했다면 충분히 격파가 가능했겠지만, 지크프리드가 당황한 것이 컸다. 전자가 예상외로 강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지크프리드는 분노해서 눈을 감았다. 일본군 역시 예상외의 사태에 당황했지만, 좋은 의미로 예상 외의 사태였기에 기세를 올려서 지크프리드에게 공격을 개시했다.

하지만 스킵필드가 발동되어서 모든 공격은 어무하게 통과되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지크프리드가 눈을 떴다. 그리고 스킵 필드가 풀리면서 동시에 대량의 에너지가 방사되었다.

마치 거대한 빔병기와도 같았다.

숲을 태우며, 전차를 녹이고, 거리를 두고 관망하던 공격 헬기, 사이코 닌자들까지 날려버렸다.

그리고 연기로 감싸인 폐허화된 대지 위에서 지크프리드는 공간 이동으로 모습을 감추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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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측정 결과는 어찌되었나?”

“예측 대로의 결과입니다. 지크프리드에 사용된 에너지를 실측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장수한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프라나 센서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었다.

혼백의 개념은 인도로부터 전해진 것이었다. 혼비백산, 인간이 죽으면 혼은 날아가고 백은 흩어진다.

여기서 혼은 아트만-진아(眞我)를 말한다. 인도에서 혼은 신의 일부라고 여겼다.

범아일여(梵我一如)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신인 브라흐만과 인간의 혼 아트만이 하나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아트만을 감싸고 이 세상과 연결해 주는 존재가 프라나였다. 프라나는 보통 중국에서는 ‘기’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기억, 감정, 욕망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백’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다.

물리적 에너지가 아닌, 영적 존재이면서 혼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다. 인도의 전생 사상은 아트만이 영원불멸이며 생을 다시 얻는다고 되어있는데, 아트만에는 기억이나 욕망, 감정 등이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전생을 기억 못하는게 당연한 것이었다.

장수한은 프레이와 프레이야, 헬과 펜릴을 통해서 신성력의 규명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신족들 역시 ‘아트만’에 간섭하는 것은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신족들이 사용하는 에너지는 프라나였다.

그리고 그런 결론을 내린 후에 프라나를 계측할 수 있는 장비를 개발했다. 그리고 이 계측 장비로 지크프리드의 프라나를 계측해 내는데 성공한 것이었다.

“일만 프라나의 에너지량을 계측해 냈습니다. 마지막 공격은 약 팔백 프라나를 사용했습니다. 잔량은 4700프라나로군요.”

일프라나는 평균적으로 한 인간이 사망할 때 흩어지는 양이었다. 이는 신자 하나가 하루동안 신에게 바치는 양의 백배에 해당했다. 신자 하나가 일년동안 신에게 제공하는 프라나는 약 3.65프라나가 되는 것이었다.

죽여서 일거에 에너지를 뽑는 것도 좋지만, 장기적으로 살려두는게 더 이익인 셈이었다.

수인족들은 인간을 잡아먹을 경우 약 0.3 프라나를 얻으며 0.3 플라나는 수인족이 섬기는 신족에게 가도록 되어 있었다. 60퍼센트의 효율은 꽤 좋은 편이었다.

흡혈귀들은 흡혈을 통해서 상대를 죽임으로써 1프라나를 거의 낭비없이 뽑을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죽이지 않고 흡혈함으로써 미량 0.02 가량의 프라나를 뽑아먹는게 가능했다.

프라나 채취에 특화된 종족으로서 만들어진 흡혈귀들이지만, 그들은 그리 환영받지는 못했다.

아스가르드의 신들은 전쟁을 선호했기 때문이었다. 흡혈로 적을 죽이는 행위는 해머로 상대의 머리를 부숴버리는 것보다 오래걸리고 복잡했다.

전쟁이든 전투든 성역 아래에서 이뤄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세계수가 만든 성역이든 신관이 만든 성역이든 큰 차이는 없었다. 그리고 성역내에서 죽는 자들의 백은 흩어지지않고 세계수로 모여들게 되어 있었다.

병, 혹은 노화등으로 죽는 이들은 백의 양이 적었다. 그리고 강렬한 감정은 백이 흩어지는 것을 막았다.

평화롭게 죽는, 소위 여한이 없이 죽는 이들의 백은 깨끗하게 흩어지지만, 원한이나 증오, 슬픔, 집착 등의 감정은 백이 흩어지는 것을 막는다. 흩어지지 않은 백은 강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고, 이는 귀(鬼)가 된다. 혼은 신이 되고, 백은 귀가 된다는 것은 이를 말했다.

아스가르드의 신들은 이 강한 감정과 백을 함께 흡수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평화롭게 죽은 이들은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가르쳤고, 이 저주와도 같은 가르침 때문에 북유럽에서는 부상자, 혹은 노인, 가족 중 병에 걸린 이들을 지옥에 떨어지지 않도록 날붙이로 가족이 죽이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흡혈이라는 행위가 상대의 저항이 있으면 안되기 때문에, 흡혈귀들은 매료의 힘으로 상대가 저항하지 못하게 하고 피를 뽑았다.

아스가르드의 신들이 보기엔 지나치게 평화롭게 죽는 것이었다. 그래서 흡혈귀는 그 종족을 창조한 헬을 제외한 모든 신들에게 배척받았으며, 헬 역시 아름답고 쓸모없는 종족으로서 그저 귀여워하기만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신족의 도움을 받을 수 없던 라그나로크 이후의 미드가르드, 곧 지구에서는 흡혈귀일족이 가장 생존에 유리한 종족일 수 있었다. 늑대인간처럼 인간 형태를 가진 이들이 인간으로서 근근히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것에 비하면, 더욱 그러했다.

인간형태를 지니고, 인간으로서 살 수 있던 종족과 흡혈귀를 제외한 모든 종족들은 라그나로크 이후에 모두 죽어갔고, 결국 신화와 전설 속의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오딘의 프라나를 특정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제 오딘의 세계수가 가진 프라나 양을 측정하는 것도 가능해졌습니다.”

장수한의 말에 조제성도 고개를 끄덕였다. 프라나는 신의 권능의 원천이자 생명의 근원이기도 했다. 프라나가 부족하면 신의 존속이 불가능했다.

모든 신들은 자신의 신성력의 원천인 프라나의 양을 감지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인간이 자신에 대해 느끼는 것과 비슷했다.

배가 고픈지는 알 수 있지만, 아주 자세한 수치화는 어려운 것이었다. 프라나 측정장비는 그것을 정확하게 수치화할 수 있었다.

“오딘이 가진 모든 세계수를 탐지한다면, 총량을 측정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오딘을 죽일 수도 있게 되겠지.”

조제성은 담담하게, 그리고 강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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