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0화 페르소나
‘아쉬발쿰 작전이라고 했나. 여파가 은근히 크네.’
원기는 그렇게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아직도 마음 속에는 서유리의 능력으로 만들어낸 환상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원기의 내심과 연결되었다고 할지, 상성이 좋다고 할지 모르지만, 원기에게는 그쪽이 더 현실같았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도 잘 믿기지 않았고, 정신없이 휘말린 감도 적지 않아서 지금까지 벌어져 온 모든 일들이 꿈과도 같았다.
‘주도권을 놓치지 않겠다고, 연하와 희연을 뽑은건 행운이었는지도 모르겠어.’
판타지 소설에서 보던 것처럼 주인공이라면 모든 일을 주도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내린 치기어린 선택이었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정말 큰 행운일지도 몰랐다.
초창기부터 희연과 연하와 함께 한 것은 정말 멋진 일이었다.
‘결국 나는 여신이 아니었어.’
원기는 자신의 본모습을 볼 수 있었다. 본체라고 해도, 아름답고 건강한 육체는 도저히 자신이라고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자신이 자신이라고 마음속으로부터 인정한 것이 자신인 것이었다.
원기의 속에 있는 자신은 화상의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외로운 소년이었다.
육체가 회복되었기에,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기에 그 소년은 사라졌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외모, 건강한 육체에서 원기는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트라우마라는게 그런 겁니다. 쉽게 극복되는 것도 아니고, 마음대로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지요.”
원기는 정신과의사의 말에 동감했다. ACBC작전은 사실 상당한 충격요법이어서, 원기가 화를 내도 할말은 없었다. 하지만 원기는 충격이 너무 커서 화를 낼 생각조차 못했다.
그리고 충격에서 깨어날 때 쯤에는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느꼈다.
사람들의 동정어린 시선도 괴로웠지만, 혐오와 경멸의 시선은 더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자신이 있었다.
어처구니없게도 그 시선들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원기는 자신이 짬타이거의 육체로 날뛰는 것에 집착했던 이유도 깨달을 수 있었다.
다른 이를 위해서 고통을 감수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고통이 없다는 사실에 적응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통이 없다는 사실에 불안해 하고 있는 자신이 있었다. 페인 마스터리가 있으니, 사실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지만 원기는 자신을 위해서 페인마스터리를 쓰지 않았다.
오직 상대에게 고통을 주는 쪽으로만 사용했다.
적의 어린 시선도 호의와 존경의 시선보다는 원기의 비정상적인 갈증을 채워주는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원기는 짬타이거로 고통과 적의속에 뛰어드는 것을 원했던 것이다.
‘나 정말 변태로군. 아니 망가진건가.’
“소위 말하는 천재들은 경증의 자폐증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그들은 정상이 아니기 때문에, 두드러진 분야가 나오는 겁니다. 바니걸 통신은 평범하게는 얻을 수 없는 기적이라고 봅니다. 프레이님을 비롯해서 전대 헬님이나 전대 펜릴님도 인정하시는 부분입니다.”
전 아스가르드의 신들조차 종속된 이후에 바니걸 통신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저항할 수 있지만, 저항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강제적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구속력은 절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원기는 자신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화상입은 소년은 그의 본질에 가까웠다.
여신은 그에게 주어진 사명이자 역할이었다. 짬타이거는 그가 하고싶은 역할이었다.
본체는, 그저 본체였다. 건강해진 육체, 자신이 아끼는 DNA,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오히려 원기 자신의 본질에서 가장 멀어져있는 존재였다.
오히려 동창회에 가져간, 화상에서 회복되었을 뿐인 평범 버전의 원기가 더 본질에 가까웠다.
잠깐의 그 환상 덕분에, 원기를 괴롭히던 정체모를 짜증과 답답함이 산뜻하게 날아갔다.
정신과의사의 조언에도 가끔은 이 환자 아바타를 이용하는 것이 향수병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거라는 이야기였다.
원기 역시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희연을 비롯해서 다른 이들이 극진히 자신을 대하는 것, 소중히 여겨주는 것이 고마우면서도 때로는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는 기분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면에서 환자 아바타를 사용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치료의 일환일지도 몰랐다.
“여신도 짬타이거도 페르소나였더는 것일까요. 왠지 삼위일체라는 교리를 떠올리게 만드는군요.”
조제성의 말에 원기는 쓴 웃음을 지었다. 삼위일체같은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페르소나라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여신은 원기가 아니지만, 동시에 원기의 일부이기도 했다.
“짬타이거의 역할도 최대한 만들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조제성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신에 대한 과보호가 오히려 여신을 위험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원기가 짬타이거를 고집한 것이, 단순한 로망이 아니었다는 사실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젠 굳이 필요없지 않을까요?”
“아니요. 환자 아바타를 이용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봅니다.”
화상으로 고통받은 세월은 트라우마라고 하기에는 너무 길었고 원기의 내면에 깊이 자리잡고 있었다. 간단히 극복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갖고 갈 수는 없었다.
환자 아바타는 금단증상을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
그보다는 올바르게 극복하는 것이 필요했다.
“균형도 어느정도는 필요할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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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가 꿈이었다고 생각해서 토한 말 가운데 일부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연하나 리디아가 특히 그랬다. 원기에게 다가가고 싶지만, 적극적으로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원기가 그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수동적으로 받아주기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이 있었다.
그런 면에서, 원기가 실수로(?) 내보인 내심은 그 둘에게는 그린 라이트나 마찬가지였다.
싫지만 거절을 못해서 받아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리디아는 적극성을 발휘하기는 어려운 성격이었고, 연하는 깊게 생각하는걸 귀찮아 하는 편이었다.
오히려 그린 라이트를 받은 두 사람보다, 더 충격을 받은 것은 다른 두 사람이었다.
카즈키와 서유리였다.
프레이야 여신의 입으로, 두 사람은 거리가 멀다는 선언을 받은 것이었다. 카즈키가 원기를 딱히 남성으로 가까이 할 생각은 없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여신에게서 카즈키와 서유리는 안중에 없었다는 투로 이야기를 듣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서유리는 기본적으로 대인 공포증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프레이야 여신에게도 거부감을 가질 리는 없었다.
아니, 대인공포증이기에 프레이야 여신은 더 특별할 수 밖에 없었다. 두려움과 소외감, 경계심으로 점철된 삶에서 프레이야 여신의 가호, 바니걸 통신은 한줄기 빛이었다.
어둠이 깊었기에 빛은 더욱 더 찬란했다.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아름답고 고귀한 빛이었다.
이번 작전을 통해서, 프레이야 여신의 과거를 알게 된 서유리로서는 왠지 모를 동질감까지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함부로 가까이 하기 어려운 존재에게서, 자신을 멀리 느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꽤 가슴아픈 이야기였다.
서유리에게는 이번 헬 여신의 신성을 받은 것은 꽤 큰 기회였다.
프레이야 여신에게 자신의 존재를 좀 더 어필하기로 마음 먹었다. 희연에 대한 경쟁의식이 가장 크게 자리잡은 카즈키역시, 왠지 모를 강한 패배감을 맛보게 되었고, 그녀 역시 더 불타오르게 만들었다.
그 두 사람에게 켜진 것은 그린 라이트가 아닌 오렌지 라이트였다. 그리고 오렌지 라이트에 두 사람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멈출 생각이 없다면, 힘껏 악셀을 밟아야 하는 법이었다. 그린 라이트와 같은 여유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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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연은 당혹감과 행복감을 함께 느끼며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원기가 자신에게 꽤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태도도 대단히 조심스러웠다.
물론 이 뿐이라면 행복감을 느낄 이유는 없었다.
거리감을 느끼는 것은 좋은 것이라기보다는 나쁜 쪽에 가까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같은 상황은 또 달랐다.
원기는 조심스럽지만, 더 적극적으로 희연에게 다가왔다.
프레이야 여신 상태에서는 지금까지는 접촉하는 것을 피해왔는데,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다가왔다.
희연의 손을 잡거나 어깨에 손을 걸치거나 하는 것이었다. 단순한 스킨쉽보다는 좀 더 의도가 느껴지는 그런 것이었다.
“중년의 응큼한 상사 같아보여.”
카즈키의 말에 황급히 프레이야 여신이 떨어졌다. 희연으로서는 찬물을 끼얹은 카즈키에게 살짝 눈을 흘길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카즈키가 말한 그런 부분이 없다고는 부정하지 못했다.
“부부 사이에 친밀감을 표시하는 건데 무슨 문제가 있는거지?”
프레이야 여신의 입으로 나온 말치고는 대단히 파격적인 것이었다. 카즈키는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희연은 미소를 지었다.
원기의 태도는 초기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초기에는 여신의 아바타를 사용하는 상태에서도 희연이나 연하 앞에서는 자신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공적인 자리에서가 아니라면 좀 더 편하게 있었다. 특히 거북열차 안에서는 여신 흉내를 내려고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인가, 여신 다움이 몸에 배기 시작했다. 여신이 여신다워지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겼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원기는 여전히 꿈이 아닐까 확인하는 듯이 희연과의 관계를 재확인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것은 희연에게도 기쁜 일이었고, 원기에게도 즐거운 것이기도 했다.
지금까지는 당연한 것이었던 행복을 재확인을 통해서 다시 맛보게 된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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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번개에서 만난 유녀라. 흐음, 어떤 아이일려나.”
하루 베스트라는 유머 사이트를 뒤지던 사내의 눈빛이 번뜩였다. 유녀라는 표현은 일본에서 들어온 저속한 표현으로, 미소녀라고 부르기에는 어린 소녀들을 일컫는 성적인 단어로 사용되고 있었다. 유녀 말고도 로린이 같은 표현들도 종종 사용되고 있었다.
욕설등을 통해서 스트레스를 풀고자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그처럼 숨겨진 욕망을 가진 반사회적인 이들도 모여드는 장소였다.
섹슈얼 프레데터, 그것도 저연령 아이를 노리는 악질 범죄자였다. 체구가 작은 아이는 시체 처리하기도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라서 그는 여러차례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잡힌 적이 없었다.
“닉네임 굴비라. 어울리는 듯도 싶고, 어울리지 않는 듯도 싶군. 조금 나이를 먹은게 아쉽네. 이래서야 유녀라고 말하기는 좀 어렵지.”
그가 보는 화면에는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절세 미소녀가 비춰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을 욕정어린 눈으로 보면서 그는 그 소녀를 두고 나이를 먹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는 소녀를 다음 사냥감으로 낙점지었다. 그리고 소녀의 신상 명세를 찾아 검색하기 시작했다. 어린 소녀인만큼 딱히 대단한 것은 나오지 않았다.
“흠, 역시 오프 모임을 노릴 수 밖에 없으려나.”
그는 블러디 라인에 가입하고, 길드에 가입신청을 했다. 게임 네임 굴비인 소녀에게 접근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길드에 가입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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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밥이 너무 쎘나. 고기가 너무 많이 몰리는걸.”
장수한은 투덜대며, 가입 신청자들의 리스트를 살펴보았다. 단순 호기심으로 오는 이들도 좀 있었지만, 위험한 인물들이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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