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4화 우두머리
[아무래도 놀원에게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주의를 줘야겠군요.]
놀원의 이능에 대해서 알게된 원기의 투덜거림이 섞인 메시지에 조제성은 미소를 지었다. 놀원과 친 사고에 대해서는 이미 알 사람들은 다 알게된 상태였다.
원기는 이능에 대해서 희연에게 설명했지만, 희연의 반응은 정말로 담담했다. ‘그래서 어쩌라고요.’같은 희연의 반응에 원기는 낙심했다.
“굳이 막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의지로 저항해보시는게 어떨까요? 정신 공격에 대한 내성이 길러질지 모릅니다.”
[그럴까요?]
제성의 말에 원기는 내키지 않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성의 쾌락보다는 인간관계가 망가질지 모른다는 부담감이 더 커보였다.
“앞으로 오딘을 비롯한 강력한 신들과 겨뤄야 합니다. 그걸 생각하면 내성을 길러보는게 좋겠지요. 기본적으로 신들의 정신은 보호받는다고 하니까요.”
[그렇겠군요. 제 의지 문제인걸까.]
“형님. 놀원의 이능을 의지로 막을 수 있는 겁니까? 신들의 정신보호라는게 있는 것도 몰랐군요.”
원기의 메시지가 끝나자, 장수한이 궁금한 듯 물었다.
“신들의 정신 보호는, 세뇌라든가 최면 같은 능력으로부터 정신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하더군. 세계수의 능력이라고 하지.”
“그걸로 놀원의 이능도 막을 수 있는겁니까?”
“당연히 못막지. 그건 일종의 상태이상이니까. 희연의 이능과 마찬가지야. 정신은 보호받지만, 상태이상은 걸리게 되어있지.”
“그럼 ‘저항해봤자, 소용없어’상태가 계속 되겠군요.”
“아마도.”
장수한은 쓴 웃음을 지었다. 조제성의 ‘아마도’가 빗나가는 일은 본 기억이 없었다.
원기는 쓸데없는 저항을 계속하게 될 듯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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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풍경을 보게 될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원기는 눈 앞을 달리는 군용 수송트럭 일명 두돈반 트럭을 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 중국제로 보이는 군용 수송트럭이 황토길을 모래먼지를 뿌리면서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운전석에는 합성종의 수인이 타고 있었다. 염소의 머리를 하고 입에는 담배를 물고 있다는 것도 참 기이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트럭 위에는 우리에 갇힌 인간들이 타고 있었다. 표정 자체는 어둡지 않은 듯 싶었다.
물론 원기 역시 어찌된 내막인지는 짐작이 갔다.
러시아의 ‘짜르’가 합성종 국가들과 거래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제공하는 것은, 각종 무기와 기술자들이었다. 거래 대상은 합성종들이 기르는 인간들이었다.
러시아의 사형수 등을 기술자로서 합성종들에게 제공하는 인간 대 인간의 교환도 이뤄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거래를 주선한 것은 라스푸틴이었고, 계획한 것은 물론 조승상이었다.
합성종 국가를 지구측이 점령하는 것도 좋지만, 거래 대상으로 삼아서 장악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일본은 아스가르드의 땅따먹기에 집착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땅덩어리에는 일본만큼의 관심은 없었다. 그리고 이 거래를 통해서, 러시아는 원하던 인간들을 손에 넣을 수 있었고, 일본의 침략을 방해할 수 있었다.
국적이 세탁된 장비들, 특히 러시아의 요술봉들과 각종 지뢰들을 대량으로 손에 넣은 합성종들과의 전투는 일본으로서도 고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합성종들에게 제공하는 거래 리스트에는 하인즈 헬기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고생은 일본이 하고, 그 과실은 러시아를 비롯한 다른 나라들이 챙기는 모습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미국 역시 일본에 장비 지원을 함으로써, 신무기의 실전 테스트를 하고 있었지만 아스가르드의 언어를 알고있는 정령들을 이용해서 거래를 트려고 하고 있었다.
‘무기 장사와 인신 매매, 현대 문물의 급격한 유입이라니. 어처구니 없군.’
들판에는 농사짓는 이들의 모습들이 간혹 보였지만, 그리 필사적인 것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식량들 역시 지구에서 대량으로 굴러들어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마차 말고 캠핑카라도 끌고올 걸 그랬네.”
놀원이 혀를 차면서 말했다. 처음에는 혼돈의 대륙에 와서 그리운 듯한 반응을 보였지만, 잠시 뿐이었다. 놀 자매 가운데에선 가장 어렸던 탓인지, 문명 세계에 완전히 익숙해진 듯 했다. 그런 만큼 혼돈의 대륙에서의 생활을 불편하게 여겼다.
오히려 희연과 연하, 카즈키가 이런 척박한 생활에 익숙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무도 자체가 정신 수양과 절제를 기르는 탓도 있을 듯 했다.
원기 일행은 곧 날개 일족으로 불리는 합성종의 부족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날개를 가지고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는 없지만, 높은 곳에서 약간의 거리를 활강할 수 있어서인지, 절벽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절벽에는 다수의 구멍이 있었고, 그곳에서 활강으로 도주할 수도 있는 그런 구조였다.
놀원은 날개 일족에게 도발을 걸었고, 그녀의 도발은 쉽게 먹혀들어갔다. 으르렁거리는 소리 만으로 일족들을 바로 끌어올리는 것은 예상 밖이었다.
“내가 너희 주인이다. 덤벼라.”
“웃기지마라. 암컷. 넌 나와 승부를 가릴 자격이 없다.”
“강한 자가 위에 설 뿐이다.”
“제법 앙탈진 암컷이로군. 하지만, 우리 부족은 수컷이 이끈다. 네 두목 쟁탈전은 성립되지 않아. 강한 암컷은 환영한다. 암컷의 우두머리 자리는 줄 수 있다. 하지만 그걸로 만족하진 못할 것 같군.”
놀원은 눈살을 찌푸렸다. 동물들의 경우, 암수의 싸움은 새끼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 전부였다. 우두머리 다툼에서 암수가 싸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군. 네가 나서줘야겠어.”
놀원은 원기에게 말했다. 무리의 일원이라고 여기면서부터 놀원에게 존대할 대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원기를 좋아하고 있고, 프레이야 여신의 정체라고 해도 상관 없었다. 무리의 리더는 리더답게 처신한다가 그녀의 절대 원칙이었다.
사실 원기의 경우엔 그런 취급을 받는게 더 속이 편했다. 책임감이 강해서 옴짝달싹 못하는 성격인 원기로서는 반가운 편이었다.
여신의 한마디에 많은 것들이 움직이니, 그 무게를 생각하면 결정장애가 오는 것도 어쩔 수 없을지도 몰랐다.
“내가 나서지. 같은 수컷이다. 불만없겠지.”
“우두머리가 될 자격이 있나?”
“없어. 난 그녀의 지시를 따를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지시를 받게 되겠지.”
“좋다. 한번 붙어보자.”
날개일족의 우두머리는 비호라고 해도 좋았다. 날개달린 호랑이였다. 다만 날개는 박쥐의 날개였다.
비슷해 보여도 용의 날개는 파충류의 날개였고, 박쥐의 날개는 포유류의 날개였다. 대다수의 날개 일족들은 원기 일행이나 우두머리처럼 완전한 날개를 가진 이들보다는 날다람쥐 같은 활강용 피막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었다.
상대는 포효를 한 다음에 땅을 손으로 짚었다. 그리고 기지개를 켜듯이 온 몸을 비틀며 힘을 주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거대한 호랑이로 변했다.
“우와, 집채만한 호랑이네.”
연하의 감탄성대로 정말 집채만한 호랑이였다. 코끼리보다 더 큰 날개달린 호랑이가 원기 앞에 섰다.
‘이걸 페인 마스터리 없이 제압하라고? 맨손으로?’
원기는 당황했다. 판타지 소설이 아닌 실제 드래곤 슬레이어의 전설들이 왜 대부분 창으로 이뤄졌는지 알 것 같았다.
저 덩치를 상대로 칼로 덤비는 것은 무모한 짓으로 보이는게 당연했다.
상대는 말 그대로 비호처럼 달려들어서 앞발로 원기를 후려쳤다. 무지막지한 파괴력에 원기는 순식간에 멀찌감치 떨어진 바위로 돌맹이처럼 날아가서 부딛쳤다.
호랑이나 사자의 앞발 공격에서 발톱 자체도 공격력이 있지만, 실제로는 앞발 자체의 타격력이 더 큰 편이었다. 발톱이 가죽을 찢는다면, 발 자체의 타격력은 목을 부러뜨리는 효과가 있었다.
괴수급의 덩치인 만큼, 그 힘은 대단했다.
“너희는 이제 우리 부족의 암컷이다. 새끼를 낳을 수 있는 암컷들부터 차례로 임신시켜 주지.”
우두머리가 선언하듯 말했다. 어찌보면 괴악하게 들릴 내용이지만, 이쪽 세상에서는 지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이며 평화로운 선언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유감이지만, 아직 승부는 나지 않았어.”
놀원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비호가 그 말에 뒤를 돌아보자, 원기가 먼지를 털고 있었다. 돌 조각이 옷 여기 저기에 파고들어간 탓인에 거동이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원기는 태연히 신발을 벗어서 돌 조각들을 털어냈다.
“굉장하네. 정말로. 무시무시한데.”
원기는 발톱에 긁힌 상처를 살폈다. 가죽이 벌어지고 살점이 드러난 곳들이 있었다. 조금만 잘못했으면 뼈까지 잘렸을 수도 있었다.
“이런 놈을 맨주먹으로 상대해야 한다니, 재미있겠는걸.”
원기는 가볍게 주먹을 부딛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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