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잊혀진 신의 세계-465화 (465/497)

465화 빛과 그림자

“개싸움이군.”

놀원의 감상은 그랬다. 원기와 족장의 싸움은 치열했지만, 시시해 보였다. 체격 차이가 있어서 원기의 공격은 상대에게 먹히지 않았다. 그리고 원기의 방어 기술이 워낙 뛰어난 탓에 상대의 공격도 그리 크게 먹히지 않았다.

“저런 건 캣 파이트라고 하는거야. 냥냥거리면서 싸우면 더 좋을텐데.”

카즈키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내심 원기의 방어기술에는 감탄을 하고 있었다.

‘저건 충분히 천재적이야.’

카즈키는 자신의 천재성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의 평가는 인색한 면도 있었다.

카즈키는 자신과 희연의 차이에 대해서도 나름 진지하게 고찰했다. 카즈키 그녀는 모짜르트 타입의 천재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재능의 소유주인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왜 강한지도 모른다. 그냥 처음부터 강했다.

반면 희연은 베토벤 타입의 천재였다. 처음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성장을 통해서 강해졌고, 성장의 한계가 존재하지 않듯이 성장을 계속하는 존재였다.

그리고 원기의 재능 역시 탁월했다.

저 수준의 방어기술은 재능없이 이뤄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여러가지 조건이 갖춰져서 나올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완성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저년한테는 내가 안보이는 뭔가가 보이는걸까?’

카즈키는 놀원을 흘겨보았다. 카즈키가 보기에 놀원은 자신과 같은 타입의 재능을 가졌다. 강자로 태어난 약자를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천재였다.

그래서 그녀의 재능은 카즈키에게는 관심이 안갔다. 그래서 놀원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놀원이 원기의 싸움을 보면서 보이는 반응은 그래서 의외였다.

“뭐가 맘에 안들지?”

카즈키의 질문에 놀원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눈살을 더 찌푸렸다.

“고양이 새끼들이 놀고 있는 것 같아 보여. 저런 싸움질은 맘에 안들거든.”

“뭐, 청춘물같은 싸움이긴 하지. 나중에 웃으면서 사나이의 우정 같은 것을 떠들 것 같은데.”

놀원의 눈살이 더 찌푸려들었다. 전세는 기울기 시작했다. 족장이 지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공격력이 강하긴 하지만, 덩치가 크다보니 에너지 소모가 큰 것이었다.

반면 원기는 체력 소모가 거의 없었다. 비록 겉모습은 흙과 피가 범벅이 되어서, 지저분해 보였지만 숨도 고른 편이었고 몇시간이고 버틸 수 있을 듯 보였다.

“싸움은 그런 게 아니지. 적어도 이 대륙에선.”

놀원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족장이 물러났다. 그리고 곁에 있던 부족원에게 눈짓을 하자, 부족원이 목줄을 달고 있는 소녀를 두명 족장을 향해 던졌다. 그리고 족장이 한 소녀의 목을 물어뜯고 피와 고기를 마셨다.

그 모습을 본 원기의 안색이 변했다. 눈 앞에서 살인이 벌어졌는데 자신이 아무것도 못했다는 사실이 충격이 된 것이었다.

“이게 싸움이지.”

놀원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말했다. 원기의 온 몸을 덮은 털들이 곤두섰다. 날개의 깃들도 곤두섰다. 족장은 그 모습을 보고 씨익 웃었다. 그는 자신의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너도 목을 축여야 공평하겠지.”

그는 남은 소녀를 원기에게 던졌다. 원기는 그녀를 받아들었다. 소녀는 죽음을 각오하고 눈을 꼭 감으면서 턱을 치켜들어서 목덜미를 보였다. 부실한 가죽옷 덕분에 소녀의 봉긋한 가슴이 보여서 원기는 황급히 고개를 돌리고, 소녀를 내려 놓았다. 그리고는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주고 뒤로 보냈다.

“아직 배가 고프지 않다는 뜻이냐. 상관없지.”

부족장은 그렇게 말하면서, 몸을 낮추고 전투 태세로 돌아갔다. 원기는 제법 단단하지만, 그리 어려운 상대는 아니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의 야생의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원기는 분노했지만, 그 분노를 온전히 족장에게 쏟을 수는 없었다.

“이봐, 원기. 그냥 죽여버려.”

탐탁치 않은 듯한 기분으로 지켜보던 놀원이 고압적으로 말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말은 강한 강제력을 가지고, 원기에게 도달했다. 원기의 눈빛이 변했다.

동시에 주위를 압도하는 살기가 발해졌다. 카즈키는 물론이고 희연도 그 분위기에 깜짝 놀랐다. 연하는 여전히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상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상대가 위험한 존재로 둔갑한 것이었다.

마치 토끼를 상대하다가, 독사를 상대하는 느낌이었다.

‘위험해.’

족장의 야성의 감이 위험신호를 보냈다. 좀 더 조심스러워졌다. 아직은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온 몸에 힘이 넘치고 있었다. 비장의 일격을 가할 기회를 노렸다.

그런데 놀원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원기! 아예 상대를 부숴버려!”

그 순간, 원기의 표정이 변했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뛰어들었다. 족장은 그 순간, 공포에 질렸다. 상대는 정체를 모를 무언가로 변해 있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앞발을 휘둘렀고, 달려들던 원기는 그 앞발의 일격에 얻어맞고 튕겨나갔다.

“으아아악, 크아악! 크악!”

비명을 지르며 구르는 것은 얻어맞고 튕겨나간 원기가 아니라, 족장이었다. 그의 앞발가락 하나가 부러져서 뼈가 튀어나온 상태였다. 카즈키도 희연도 그 순간, 한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운동선수들의 경우, 부상을 입는 것은 수비보다는 공격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격렬한 움직임은 육체를 한계에 가깝게 몰아붙이기 때문이었다.

그 때, 조금만 자세가 어긋나도 치명적인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원기는 어떻게 하면 적의 공격에서 몸을 보호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 큰 데미지를 입는지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부서지지 않는지를 알고 있기에, 어떻게 하면 부서지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원기는 완전히 자아를 잃고 광전사에 가까운 상태가 되어서 폭주하고 있었다. 족장은 항복하는 것을 잊었다. 살아남는 것조차 생각하지 못했다. 자신을 파괴하는 광기의 손길에서 자신을 지키는데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원기는 가차없이 그를 파괴해나갔다. 육체만이 아니라, 정신까지도.

“역시 내가 선택한 수컷이야.”

놀원은 그 광기를 보면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놀원 역시 바니걸 통신의 수혜자였지만, 그 효과는 꽤 적은 편이었다.

현대의 외로운 영혼들에게는 크나큰 위로지만, 야만적이고 원시적인 짐승들에게는 그저 작은 보금자리 정도의 위안이었다.

그녀가 원기를 좋아한 것은, 그녀가 꿰뚫어본 원기의 어둠 탓이었다. 위험한 수컷을 좋아하는 원시적인 암컷의 본능이 그녀에게는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깊다고 했던가.”

카즈키는 눈살을 찌푸렸다. 희연은 그녀의 말에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자가 깊기에 빛이 더 강하게 빛나는 것인지도 몰랐다. 원기는 순식간에 족장을 부숴버렸다.

죽이지는 않았다. 치료 마법이 있기에 육체의 상처는 회복될 듯 했다. 하지만 정신은 쉽게 나을 것 같지 않았다.

족장은 폐인이 되어 있었고, 부족의 모두는 완전히 공포로 굴복되어 있었다.

희연의 공포나 카즈키의 공포와는 다른 타입의 공포였다.

원기는 자신이 무슨 짓을 벌였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놀원을 나무랄 마음은 들지 않았다.

“역시 페인 마스터리는 상대를 배려한 능력이었네요.”

원기의 공격은 무의식적으로 상대에게 후유증을 남기지 않는 방식을 취했다. 상대가 고통을 적게 느끼도록 만드는 방식을 사용했다. 페인 마스터리 없이도 상대가 고통에 날뛰게 만드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랬던 걸까.”

원기는 한숨을 쉬었다. 자신에게 숨겨진 일면들은 생각보다 많이 있었던 것 같았다. 스스로 생각해 봐도 정상적으로 자랐다고는 할 수 없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고 했는데, 네 경우엔 방어가 최선의 공격이로군. 공격자에게 부상을 입히는 방어라니.]

장수한의 메시지에 원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광전사 상태나 다름없었지만, 기억은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그 감각도 마찬가지였다.

원기가 당혹스러운 것은 그 기억이 가져다주는 감각이었다.

죄악감이나 양심의 가책이 아니라, 쾌감과 해방감이었다. 상대에 대한 죄책감은 크지 않았지만,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찾아왔다.

[너무 마음 쓸 필요는 없습니다. 덕분에 일이 쉽게 진행될 것 같습니다.]

----------------------------------------

“놀원이 사고를 쳤군.”

조제성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안좋습니까?”

“아니, 그렇지는 않아. 오히려 좋아졌다고 해야겠지. 칼을 댄 것이라고 봐야할지도 모르겠어.”

“그럼, 왜 표정이 안좋으신 겁니까.”

“글쎄. 빠르게 성장하는게 좋은 것만은 아니지. 성장하는 재미가 살아가는 재미이기도 하거든.”

오딘에게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되도록 오래오래 가능하면 수천년을 사는 것이 목표인 조제성의 답이었다.

빠른 렙업은 장수의 적이었다.

--------------------------------

“어떤 미친 새끼들이야! 짐승들에게 발칸포를 팔아먹은 놈들이!”

자위대의 특수 이능 부대들이 당황했다. 전투기에 장착하는 개틀링포를 발칸포라고 부르는데, 20미리 탄환을 쏘는 무식한 병기로 무게가 백킬로그램을 넘어간다.

탄환까지 생각하면, 인간이 들고 쏠 수 있는 무기가 아니었는데 수인들 가운데 합성종들은 들고 쏘는 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이 발칸포는 전차급의 중장갑 차량에게는 통하지 않지만, 소형 리베로와 같은 경장갑 장비에게는 충분히 먹혀 들어갔다.

“그리폰이다! 망할 그리폰이 떴다!”

자위대는 비명을 질렀다. 장갑판을 온 몸에 두르고, 방패를 쓰는 그리폰형 수인이었다.

두꺼운 금속제 방패를 교묘하게 움직여서, 온갖 공격을 튕겨내는 괴물이었다. 자위대는 그 앞에 손 쓸 방법이 없었다.

“젠장. 전차라도 있으면!”

“퇴각해야 합니다!”

자위대는 결국 작전 속행이 불가하다는 보고를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정령없는 파워드 슈트로는 성능이 부족하다는 결과를 확인했을 뿐이었다.

────────────────────────────────────

────────────────────────────────────

외전 잊혀진 별의 신화

“오늘도 달이 아름답군.”

“어느 달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설마, 내가 ‘헬’을 두고 하는 말이겠어? ‘데이모스’야.”

“저는 헬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던데 말이지요. 귀여움과 강함은 연결되지 않지만, 강함은 아름다움과 연결되지 않습니까?”

“네가 그냥 철부지 사춘기라서 그래.”

허공에 뜬 두개의 달을 보면서, 두 병사는 잡담을 나눴다. 보통의 보초병들과 다른 것이 있다면, 두 병사는 10미터급의 거대한 인형병기에 탑승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제국 정규 리베로. 아이언 나이트가 그 이름이었다.

“마신 헬이라, 정말 존재하는 걸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뭐, 나도 어릴 적에는 그런 바보같은 생각들을 해보곤 했지. 사춘기의 특권일지도 모르지만, 병이기도 하다. 여신님을 부정하면, 신관님들이 가만 안있을걸.”

“프레이야 여신님은 당연히 믿고 있습니다. 그저, 절대신인 프레이야 여신님이 계시는데, 세상을 멸망시킬 마계라든가, 마계를 이끄는 마신 헬 같은게 있다는건 말이 안되는 것 같아서요.”

“죽음의 여신님을 마신이라고 부르는 건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걸.”

“지금 벌어지는 전쟁도 죽음의 여신, 헬의 저주 탓이라고 하던데요.”

“인간들이 어리석어서 벌이는 짓이야. 그리고 프레이야님은 절대신은 아니라고 하셨어. 어디서 이상한 소리들을 주워듣고 온거냐. 아무리 수면기라고 해도 불경스러운 소리는 하는게 아냐.”

“수면기라, 언제까지 계속되는 걸까요?”

“여신님은 잠꾸러기시니까. 인간 수명 몇십년은 잠깐에 지나지 않겠지. 사실 나도 여신님 각성기에 대해선 좀 반신반의하고 있다.”

“그건 그래요. 여신님의 사랑에 감싸여서, 이 세상이 천국으로 변한다지요.”

“벌써 오백년 전에 벌어졌던 일이야. 마계 침공은 팔십년 전인데 그건 못믿겠고, 오백년 전에 있었다는 여신 강림은 믿을 수 있다는 것도 좀 우습지.”

“그것도 그렇네요. 아무래도 프레이야 여신님에 대해선 쉽게 말하기 어려우니까요.”

“데이모스가 정말 하늘을 나는 배였을까요?”

“배처럼 생기지 않은 것은 틀림없지. 신화는 곧이 곧대로 믿는게 바보같은 거야. 프레이야 여신님이 지구라는 인류 태생의 별에서 추종자들과 도망쳐서 이 세상을 세우셨다는 이야기는 도무지 말이 되지 않지. 그걸 똥씹은 표정으로 가르치는 신관들도 이해가 되지 않고 말이야.”

“맞아요. 그거. 저도 그랬어요.”

프레이야 여신을 의심하는 이들은 없었다. 프레이야 여신과 굴베이그 여신의 힘으로 사람들을 치유하기 때문이었다.

프레이야 여신에 대한 교육은 프레이야 여신의 가르침과 많은 신관들의 가르침으로 이뤄졌다.

그런데, 프레이야 여신님이 직접 가르쳤다는 가르침들은 지나치게 겸허한 표현들이 많았다. 겸손이라기보다는 자기비하에 가까운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다행이라면, 프레이야 여신님의 메시지는 그 분량이 극히 작다는 것이었다. 프레이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규정도 없었다.

문제는 독실한 신관들에게는 진퇴양난의 난제라는 점이었다.

“제게도 좀 강력한 심장이 주어졌으면 좋았을텐데 말이지요.”

“전장에 나가고 싶은걸 보니, 어리긴 어리구나. 그런덴 갈 곳이 못돼.”

소년병이 말한 심장은 자신의 심장이 아닌 리베로의 심장이었다. 리베로의 심장은 시사라라는 악룡의 심장을 사용했다. 도마뱀 형상의 동물로 작을 때는 2미터 남짓의 맹수지만, 인간을 잡아먹거나 특수한 마기에 노출이 되면, 수십미터까지 성장한다.

2미터 급의 시사라의 심장은 애니멀 코어라고 부르며 3미터 이하의 리베로에 사용되었다.

그리고 5미터급의 시사라의 심장은 비스트 코어라고 불렸다. 비스트 코어의 경우에는 멀티 코어라고 해서, 다수의 코어를 사용해서 대형 리베로의 동력이 되었다.

아이언 나이트의 경우 쿼드 코어와 옥타 코어의 두 가지로 나뉘었다. 옥타 코어의 경우에는 최전선에서, 쿼드 코어는 후방의 경비와 작업 등에 사용되었다.

비스트 코어 윗급은 몬스터 코어라고 불리우며 수십미터 급의 시사라에게서 얻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윗급이 드래곤 코어라고 불리운다.

드래곤 코어는 거대 시사라 가운데에서도 정말 특별한 개체에게서 얻어지는 것으로, 보통 십년에 하나가 나올까 말까 할 정도의 희소성이 있었다.

물론 드래곤 코어도 급은 나뉘어져 있지만, 몬스터 급의 코어만해도 강력한 기사단의 정예 기사가 아니면 넘볼 수 없었다.

“이곳은 여전히 평화롭군.”

“시사라들이 날뛰지만 않으면 말이지요.”

시사라는 대형 몬스터에다가 식인까지 하기 때문에 인간들이 기를 수 있는 가축은 아니었다. 하지만 리베로의 동력이 되기 때문에, 시사라를 수급하는 것 또한 중요했다.

결국 각 국가들은 시사라들을 방목하는 동시에, 인간을 보호하기 위한 장소들을 마련했다. 시사라 방목구, 일명 목장이라고 부르는 지역이었다.

그리고 유사시를 대비해서, 대형 리베로들이 늘 감시할 필요성이 있었다.

“몬스터 코어를 가진 놈이 제 앞에 뚝 떨어져 줬으면 좋겠군요.”

“멍청한 소리. 비스트 코어를 가진 리베로 한두 기로는 몬스터급은 상대할 수 없어.”

“꿈이라도 꾸게 내버려 두세요.”

“확실히 꿈은 꿈이지.”

고참은 피식 웃었다. 재능있거나 든든한 가문의 백이 있다면, 이런 곳에서 보초를 서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제국의 전력은 대부분 리베로로 이뤄져 있었다. 신이 허락한 기술이었다. 시사라의 심장을 신전에 두면, 그 주위로 프린팅되어 리베로가 생겨나는 방식이었다.

코어만 있으면, 리베로는 자동으로 얻어졌다. 물론 신전에서 만들어진 리베로는 구동계 뿐으로, 각 나라에서는 자국에서 제작한 갑옷을 입히고 무장을 챙겨서 병기화 했다.

갑옷은 초기에는 방어력만을 높이는 역할을 했지만, 수많은 개량의 결과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는 정도를 벗어나서, 움직임의 분산을 막아 결과적으로 전투력을 향상시키는 경지까지 발전했다.

다리 관절과 팔 관절을 연동시켜서, 다리에서 발생한 힘을 팔에 전해주는 것도 있었다.

물론 아이언 나이트는 비스트 코어를 사용하는 만큼, 그 출력이 약해서 장갑은 최소한임에도 불구하고 동작은 둔한 편이었다.

동작이 둔해서 좋은 점이 있다면, 잔혼의 도움 없이도 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시사라의 심장만 있으면 거저 얻어지는 리베로이기에, 리베로는 넘쳐나는 편이었다. 시골 마을 촌장만 해도 비스트 코어를 장착한 중형 리베로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땅을 개간하거나 수레를 끄는 등의 일을 맡고 있었다.

리베로가 넘쳐나는 이 세상에서 리베로에 탄 보초병은 그리 드문 것은 아니었다.

“뭐, 나도 네 녀석같은 꿈을 꿔보지 않은 건 아니지. 리베로라는게 그런 매력은 있으니까. 자신이 거인이 된 듯한 느낌은 뭔가 짜릿한 구석이 있지.”

“그런 거겠지요. 그럼 전 시사라 방책을 좀 살펴보고 올께요.”

고참의 말에 신참은 조금은 토라진 듯한 말투로 말하고 리베로의 걸음을 옮겼다. 아이언 나이트처럼 저급 리베로는 발 자체에 무거운 추를 달아놓았다. 동작 자체는 둔하고, 움직임도 느려지지만, 넘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만 다리가 무겁다보니 진흙탕에 빠진 어부처럼 어기적 거리며 걸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라.”

고참은 그렇게 말하고, 주위를 살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의 뒤에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리베로가 창을 휘둘렀지만, 상대의 손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그의 기체를 관통해 버렸다.

‘도망치라고 말해야, 했는데.’

고참은 그렇게 생각하며, 절명했다. 상대가 누군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로 그는 최후를 맞이했다.

“뿔? 오각수?”

신참은 당황했다. 뿔이 달린 리베로를 운용하는 국가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뿔의 가지 숫자가 그 지위를 나타냈다.

다섯가지의 뿔을 가진 짐승, 그것은 남제국의 기체 중에서도 상급 기종이었다.

‘드래곤급 기체가 왜 여기에?’

그가 상황파악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사이에, 적기는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상대의 리베로가 들고있는 창이 그를 관통했다.

[안돼!]

누군지 모를 여성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머리속에 들려왔지만, 그의 의식은 곧 어둠 속으로 잠겨 버렸다.

“제압 완료했습니다. 폐하.”

“그래. 수고했네. 이제 세상의 운명이 곧 결정되겠군. 무슨 일이지?”

“별일 아닙니다. 왠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을 뿐입니다. 정비를 다시 받아봐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다섯개로 갈라진 뿔을 지닌 붉은 리베로는 손목을 움직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남제국 최강의 기사단, 적기사단의 단장인 적룡제 손호의 기체였다.

------------------------------

“어떻게 된거지? 사고라도 난건가?”

부서진 리베로의 내부에서 정신을 차린 신참 병사는 조심스럽게 기어 나왔다.

“자동차 사고인건가? 머리가 아프군.”

그는 머리를 감싸쥐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빠져 나온 기체의 잔해를 보고 깜짝 놀랐다.

“뭐지? 로보트? 왠 로봇이 있는거야? 내가 꿈이라도 꾸고 있는건가?”

그는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판타지 풍의 로봇물인가? 꿈을 꾸고 있는걸까? 게임을 너무 많이한 탓인건가? 노멀 로봇대전을 하다가 잠이든건가? 아악.”

그는 순간적으로 섬광처럼 떠오르는 기억들에 비명을 질렀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