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7화 불사의 저주
“오늘도 징하게 몰려오는군.”
“회복력도 그렇고, 증식력도 대단한 것 같습니다.”
“이번엔 오크들의 무리로군요. 대단한 놈들입니다.”
블레이드는 적들의 진격을 바라보며 기지개를 켜듯 몸을 풀었다. 바이오 리베로를 탑승하기 때문에 몸을 풀 필요는 없지만, 뇌에게 충분히 움직일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를 줄 필요는 있었다.
굴베이그 진영이 가진 무기는 대인용 소총과 바이오 리베로 뿐이었다. 바이오 리베로는 프레이야 진영의 최고위층들이 ‘생체 리베로’라고 불러댄 탓에 펜드래곤의 냅킨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미국 용어에서 냅킨은 식탁에서 쓰이는 손수건을 의미하지만, 영국 영어에서는 기저귀로, 그리고 일본에서는 생리대를 의미했다.
블레이드는 전설적인 왕이었지만, 당시의 북유럽은 꽤 야만적인 사회였고, 그리 품위를 따지는 세상은 아니었기 때문에 불만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편하게 여기고 있었다.
“생리대는 몇대나 남았지?”
“현재 다섯대가 출격 가능합니다. 컨디션이 좋은 놈은 한대 뿐이군요.”
마린이 펜대로 눈썹을 긁으며 말했다.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배치된 바이오 리베로는 전부 열두대지만, 풀 가동 시키는 것은 무리였다. 메카닉 리베로처럼 부품을 갈면 되는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치료 마법으로 상처를 회복시키고, 상황에 따라서는 외과적 수술도 필요했다.
“메카닉은?”
“8대 사용 가능합니다.”
메카닉이라고 해도 부품의 수급과 수리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수리 및 정비용 리베로가 따로 있어서 전문 인력의 부족은 막을 수 있었다.
“골치 아프겠는걸.”
성역 자체가 방어용 결계의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적들 역시 성역 내부에 성직자들을 투입해서 성역을 중화시키려 들었다. 성벽 가까운 곳에 적대 성역의 거점이 만들어지면, 성벽을 파괴당하는 것도 쉬운 일이었다.
그때문에 중화용 마법진을 설치하는 것만큼은 저지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좋아. 출격한다.”
메카닉 리베로들은 대형 리베로라고 하지만, 성능은 지구에서 사용되는 고성능 기체가 아니고, 초기형 기체였다.
다양한 작업에 동원될 수 있는 유용한 기체지만, 전투에선 움직임이 둔해서 용도가 한정되어 있었다.
고성능 현대식 화기를 사용하는 것도 금지되어서, 투석과 새총 형태의 발리스타를 사용했지만 대형 몬스터에게는 제법 효과적인 공격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오지편곤을 이용해서 병사들을 학살하는 것도 가능했다.
“좋아. 전투에 돌입한다.”
로키의 병력은 주로 변이 오우거와 오크 군단이었다. 변이 오우거라는 것은 오크와 인간, 그밖의 강력한 몬스터를 잡아먹고 변이를 일으키는 오크였다.
일반 오우거와 달리 크게 성장하지만, 몸은 급격한 성장으로 흉측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수명 자체도 극히 짧은 편으로 전투가 끝나면 이기건 지건 사망하는 특성이 있었다.
원자폭탄으로 인한 세계 종말을 그리는 영화에 흔히 나오는 그런 흉측한 몰골을 하고 있으며, 급격한 변이로 머리가 둘 이상 달리기도 하고, 온 몸에 얼굴과 닮은 형상이 암세포처럼 튀어나왔다. 이런 인면창들은 실제로 잡아먹은 인간이나 오크, 몬스터들이 반쯤 살아있는 형태이기도 했다.
필요할 때, 백의 에너지를 쓰기 위해서 반쯤 살려두고 혼을 묶어놓은 것이었다. 인면창의 형태인 머리가 뭉개질 때, 죽어서 혼이 떠나가며 백의 에너지를 빨아먹기 때문에, 괴력과 무시무시한 회복력을 얻을 수 있었다.
덩치는 약 오미터.
10미터급 대형 리베로에 비하면 작지만, 관절을 으스러뜨릴 수 있는 파괴력과 야생 유인원을 연상케하는 빠른 움직임때문에 근접전이 되면 메카닉 리베로를 가지고는 상대할 수가 없었다.
오지편곤으로 잡기에는 쉽지 않은 덩치라서, 메카닉 리베로의 천적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잘도 저만한 수를 또 모아 왔군.”
블레이드가 기가 질린 듯이 말했다. 이미 셀 수 없을 정도로 반복된 전투였다. 적들은 성역 내부에 중화 마법진을 건설하러 다가온다. 성벽에서 쏘는 대포는 대부분 사제들의 마법에 의해서 무력화되기 때문에, 리베로들이 뛰어들어서 부숴버린다.
그리고 적들 역시 리베로에 대응하기 위한 전력인 대형 마물 등의 전력을 투입하는 것이다.
리베로를 능가하는 절대적인 괴물, 요르문간드 등은 성역 때문에 접근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
성역을 무력화당하면, 거대 바다뱀 요르문간드가 지나가는 것만으로 굴베이그령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게 될 터였다.
“삼백 마리는 되는 것 같군요.”
“쉽지 않겠어.”
“그렇겠군요. 양들을 지키려면 말이지요.”
메카닉 리베로를 이곳에서는 메리, 양이라고 불렀다. 양들을 흔히 메리라고 부르는 것은 메리노 종이 특히 유명하기 때문이었다.
“좋아. 목양견 부대 출격이다. 마린, 안개를!”
블레이드의 명령에 마린이 하늘을 향해 주문을 외웠다. 호철과 찬균이 귀엽게 생긴 마법지팡이-일명 마법소녀봉이라는 것을 주면서 반드시 율동을 하도록 요청했지만, 노인을 공경할 줄 모른다고 말하면서 그것만큼은 단호히 거절했다.
울긋불긋하게 도색된 마법소녀봉은 프레이야의 세계수를 이용해서 만든 고렙 아티팩트였다. 프레이야 측에서 만든 몇 안되는 고랭크 아티팩트라고 할 수 있었다.
마린이 마법소녀봉을 주문과 함께 하늘을 향해 뻗자, 전장에 짙은 안개가 서렸다.
오크 신관들이 풍계 마법을 썼지만, 안개는 걷히지 않았다.
겉보기엔 안개지만, 실질적으로는 환각마법이었다.
문제는 안개가 걷히고 난 다음에는 이것이 환각 마법이었다고 깨닫지만, 안개 속에서는 환각 마법이라고는 떠올리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이 꿈 속에서 자신이 꿈 속에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자각하기 힘든 것과 비슷했다. 환각 마법 자체에, 환각 마법임을 떠올리기 힘들게 만드는 작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블레이드는 자신의 생체 리베로를 움직였다. 블레이드를 꼭 닮은 눈동자가 빛을 발했다.
모든 생체 리베로들은 발시X네를 본떠서 미소녀형으로 만들어졌다. 찬균과 호철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을 제지할 수 있는 것은 조제성과 장수한, 원기 뿐이었다. 조제성은 디자인에 관심이 없어서 방치했고, 장수한과 원기는 내심 그들에게 동조하고 있었기 때문에 찬균과 호철의 덕질은 순탄했다.
“예쁜 아가씨. 오늘도 잘 부탁해.”
누가 봐도 블레이드를 크게 키워놓은 것이지만, 블레이드는 현재 자신의 외모를 자신과 동일시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블레이드의 생체 리베로, 거대미소녀 펜드래곤이 검을 뽑아들고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우리도 가자.”
랜슬롯 역시 자신을 닮은 외모의 생체 리베로를 움직였다. 그녀의 장비는 청룡언월도였다.
편곤처럼 작은 목표를 공격하기는 힘들지만, 비슷한 체격의 다수를 상대할 때 가장 위력적인 병기이기도 했다.
현재 제작된 생체 리베로들의 체격은 약 7미터, 메카닉 리베로들보다는 작고, 변이 오우거들보다는 큰 편이어서 다수를 상대하기에는 좋았다.
방패와 검으로 전면에서 탱킹을 하는 블레이드와 다수를 공격하는 딜러인 랜슬롯의 조합은 꽤 효과적이었다.
“적 온다! 우리 빠르다!”
변이 오우거들의 육체는 일회용이지만, 정신은 그렇지 않았다. 강력한 오크 영웅들의 영혼이 변이 오우거들의 육체를 조종했다.
변이 오우거들은 흉악한 형상의 아스가르드제 리베로라고 할 수 있었다.
오크 에인페리아의 외침에, 다른 이들도 응답했다.
“우리 빠르다!”
그와 함께, 변이 오우거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 오크의 가장 강력한 이능은 ‘신념’이었다.
실제로는 ‘자기 암시’‘자기 최면’에 가까운 능력이었다.
지능이 떨어지는 대신에, 암시에 잘 걸리는 것이었다. 암시를 통해 얻어진 강한 믿음은 강력한 이능으로 연결되었다.
“성가시군.”
안개속에서 변이 오우거들은 흔들림없이 메카닉 리베로들을 향해서 돌진해 나갔다. 생체 리베로들은 비키니 갑옷이 아닌 전신을 감싸는 갑옷을 입기는 했지만, 방어력은 일부 부위를 제외하고는 약한 편이었다.
신관들의 마법 공격이나 오크 성기사들의 투창 공격에 부상을 입을 수가 있었다.
반면 메카닉 리베로들은 불이나 냉기, 전격 등의 마법에 별 타격을 입지 않았다. 변이 오우거의 몽둥이에는 관절이 우그러들 수 있었지만, 오크 성기사들의 투창 정도에는 손상을 입지 않았다.
메카닉 리베로가 폭격기라면, 변이 오크들은 요격기, 그리고 생체 리베로들은 호위 전투기의 역할을 하는 식으로 전투가 이뤄졌다.
블레이드의 펜드래곤이 나타나는 순간, 에인페리아가 외쳤다.
“적 왔다! 우리 단단하다!”
“우리 단단하다!”
펜드래곤의 검이 변이 오우거의 목을 쳤지만, 목을 자르지 못했다. 마치 몽둥이로 후려친 것처럼 변이 오우거는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곧 일어났다.
“나 질기다! 나 금방 낫는다!”
단단하다고 외친 순간, 증가했던 속력은 줄어들었지만 몸의 강도가 상승했다. 그리고 금방 낫는다고 외치자 회복력이 상승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랜슬롯이 목을 날려버렸다.
회복력을 높이기 위해서, 강도를 포기한 탓이었다.
“귀찮은 놈들이야.”
블레이드는 눈살을 찌푸렸다. 한번에 한가지 능력만 상승시키지만, 효과적으로 사용하면 정말 상대하기 힘든 능력이기도 했다.
메카닉 리베로들에게 접근하는 순간, ‘우리 강하다’를 합창하고 후려 갈기면, 두꺼운 장갑의 메카닉 리베로가 일격에 우그러졌다.
오크들이 전장에서 왈도체를 쓰는 이유는 머리가 나빠서라기 보다는 빠르게 자기 암시를 걸기 위해서였다. 자주 쓰다보니 일반적인 대화에도 왈도체가 섞이기는 하지만, 오크는 기본 인간의 상위종으로서 로키에 의해 개조된 존재였다.
이능의 댓가로 속기 쉽다는 약점을 갖고 있고 지능이 부족해서 현대 사회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아스가르드에서는 최강의 전투민족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신념’이라는 종족이능은 모이면 모일수록 강해지는 면도 있었다.
메카닉 리베로들을 보호하기 위한 블레이드 일행의 분투와 메카닉 리베로들을 부수기 위한 변이 오우거들의 필사적인 공격이 이어졌다.
전투가 격해지면서, 오우거들의 대형이 흐트러졌고 블레이드와 랜슬롯, 그리고 엘프 전사들은 생체 리베로를 이용해서 변이 오우거들을 학살했다. 하지만 메카닉 리베로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격퇴하는데 성공했지만, 메카닉 리베로 5기를 잃어야 했다.
“수리는 가능한건가?”
“3기는 수리가 가능합니다만, 부품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수리에 최소 이주일 이상은 필요합니다. 무사히 돌아온 3기도 재정비에 최소 사흘은 필요합니다.”
“그렇군. 적이 쳐들어오지 않기만 기다려야 하는건가. 너무 벅차군.”
프레이야 여신은 더 이상의 보급은 불가능하다고 못을 박았다. 오딘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블레이드의 악전고투는 계속되고 있었다.
“적의 피해는 최소 백기 이상. 시간은 벌었다고 봐야겠지. 재정비를 서두르라고 해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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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병기들을 가지고 노는군. 일단 저 놈들은 확보해야겠지.”
“죽으면 사라졌다가 멀쩡하게 어디선가 되살아나는 놈들입니다. 잡을 방법이 없지 않을까요?”
“이미 놈들의 부활 패턴은 파악했다. 놈들은 죽은 장소에서 일정 범위를 벗어나지 못해. 그리고 죽이지 않으면 된다.”
오딘은 단창을 던졌다. 단창에 꿰뚫린 병사가 기둥에 박혔다. 심장을 관통했으니 즉사여야 했지만, 병사는 버둥거렸다.
오딘의 아티팩트 ‘불사의 창’이었다. 불사의 창이 박힌 자는 자력으로 뽑을 수 없으며 창이 박혀있는 한 결코 죽지 않았다.
“이걸로 놈들을 잡아와라.”
오딘은 블레이드, 마린, 랜슬롯의 삼인을 가리키고 불사의 창 세자루를 알현실 바닥에 꽂았다.
“굴베이그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렇군. 세계수가 파괴되고도 살아서 꿈틀거리는 꼴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전리품으로는 괜찮겠어.”
오딘은 창 한자루를 더 꺼내서 바닥에 꽂았다.
“한마리도 놓치지 말고 가져오도록.”
“알겠습니다.”
에인페리아 지크프리드가 고개를 숙여 명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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