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9화 노른
“무시무시하군.”
“저건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습니다.”
“희연이라면 모를까, 나로선 당해낼 수가 없겠는걸.”
지크프리드와의 전투는 다양한 센서로 녹화된 상태였다. 프레이를 통해서 지크프리드가 가진 장비가 노른의 수레바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레바퀴가 아니고, 물레인 것 아냐?”
“프레이가 번역을 잘못한 것같은데요?”
신화에 밝은 장수한이 이의를 제기하고 찬균이 그에 동의했다. 하지만 프레이는 그냥 수레바퀴라고 우겼고, 조제성이 프레이의 편을 들었다.
“물레바퀴라는 표현도 있지만, 수레바퀴가 더 알기 쉽군요. 희연양은 저 공격을 당해낼 수 있습니까?”
조제성이 카즈키의 말을 듣고 물었다. 카즈키의 전투능력은 최고급이었다. 그런만큼 그녀의 판단은 신뢰성이 높았다.
“무리예요. 제게도 보이지 않았어요.”
“그건 그렇지만, 희연이라면 막을 것 같아. 아니 같은게 아니라 틀림없이 막을거야.”
카즈키가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카즈키는 희연의 팬이지만, 그것 때문은 아니었다.
카즈키는 희연에게서 검의 새로운 경지를 발견했다.
카즈키의 경우, 검을 자신의 일부처럼 자유롭게 사용했다. 아니, 검만이 아니라 모든 무기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었다. 그래서 최근은 사복검이나 채찍같은 무기가 더 효과적이었다.
촉수 엑스칼리버까지 함께하면 공방 모두에 뛰어날 뿐 아니라, 리치도 길어져서 말 그대로 학살을 할 수 있었다.
검이 신체의 일부가 되는 것처럼 되는 카즈키의 경지와 달리, 희연은 신체가 검의 일부가 되었다.
그녀가 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검이 그녀의 몸을 쓰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주종의 역전처럼 보이지만, 역전이 아니었다.
인간이 검을 쓰는 것은 상대를 찌르고 베기 위한 것이었다.
그 목적을 위해, 모든 것을 하나로 하는 것이 희연의 검술이었다.
상대가 빠르다고 해도, 그 빠름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희연에게는 존재했다.
“희연은 절대로 이길 수 있어.”
“자신 없어요.”
카즈키와 희연의 반응은 대조적이었다. 조제성은 둘의 의견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프레이의 정보에 따르면, 저런 신기는 무기를 비롯해 도구 등 다양하게 있다고 합니다. 노른의 물레바퀴는 모두 셋, 각각 울드, 베르단디, 스쿨드의 이름이 붙어있다고 하는군요. 지크프리드가 가진 것이 스쿨드라고 합니다. 울드는 상대방을 느리게 만들고, 베르단디는 시간을 멈추고, 스쿨드는 사용자를 빠르게 만든다고 하는군요. 각각 용도가 다르다고 합니다.”
“시간을 멈추는 상대와 어떻게 싸울 수 있지요?”
원기는 할 말을 잃었다. 조제성이 물레바퀴라는 용어를 쓴 사실에 대해선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지적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 문제인데, 가장 대처하기 쉬운 물건이 베르단디라고 합니다. 신기의 능력은 신기를 가진 이들로 대처가 가능합니다. 물론 완벽하게 봉쇄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효과를 반감 시키는 방식이지요. 그런데 베르단디의 능력은 시간을 멈추는 것이기에 효과가 감소되면 아예 작동이 안되는 겁니다.”
“모아니면 도라는 거로군요.”
이능들 가운데에는 발동되거나 안되거나 하는 능력들이 많이 존재했다. 희연의 이능 가운데 상대를 공포로 경직시키는 능력은 약자에게만 발휘되고 강자에게는 아예 효과가 없었다.
“예. 그래서 노른의 물레바퀴 중 베르단디는 디바인 아티팩트를 갖지 못한 적들을 학살하는데 사용합니다. 지크프리드가 베르단디가 아닌 스쿨드를 사용한 것은, 혹시 이쪽에도 디바인 아티팩트나 그에 준하는 무언가가 있을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성능은 별 차이가 없었다고 해야겠지요.”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스쿨드나 아예 시간을 정지시키는 베르단디나 큰 차이는 없어보였다.
“울드는 아마 희연같은 상대에게 쓰이겠지.”
카즈키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스쿨드는 홀로 빨라져서 적들 다수를 약화시키는 효과라고 한다면, 울드는 강적을 약화시켜서 아군들 다수를 강화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쪽이 디바인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다면, 그렇게 되겠지요. 없다면 베르단디로 그냥 끝장을 내버릴 겁니다.”
“우리에게도 디바인 아티팩트가 필요하다는 말이로군요.”
“예. 당장 투입할 것은 아니지만, 필요해 질 때가 반드시 올겁니다. 성가신 것은 노른의 물레바퀴 뿐만이 아니니까요. 놈에게는 사차원주머니가 있다고 생각하는게 좋습니다. 뭐가 더 튀어나올지, 얼마나 더 튀어나올지 모릅니다.”
조제성은 오딘과 인류가 싸우면, 인류에게 승산이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인류는 스스로의 머리통에 총구를 겨누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조제성이 오딘이라면, 탐욕스러운 몇몇 인간들에게 힘을 빌려줄 것이었다. 독재자들도 많고 쿠데타를 일으킬 야심가들도 많았다. 당장 조제성도 몇몇 사람들을 부추겨서 핵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가능했다.
적당한 원자력 발전소를 노려서 폭파시키고, 그 책임을 적당한 누군가에게 뒤집어 씌우는 것이다. 폭탄 파편에 의심받을 만한 상대 국가의 부품을 쓰거나 문자를 적어 놓는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보복으로 핵탄두, 혹은 그와 비슷한 것을 날리도록 유도하면 그것만으로도 상황은 종료되는 것이었다.
오딘이라면, 더 쉽고 간단하게 핵전쟁을 유도할 수 있었다.
인류가 하나되어 오딘과 싸운다면, 쉽지 않겠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이미 아스가르드에 진입한 야심가들을 현혹하는 것도 가능했다.
핵전쟁이 일어나면, 우선 대다수의 인류가 죽게될 것이다. 그리고 죽음의 별이 되어버린 지구에서 살아남기를 원하는 이들은 아스가르드의 신족들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게 될 것이었다.
오딘에게 이게 불가능할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오딘이 지구에 개입하기 전에 칠 필요가 있었다.
“우선은 데이모스 입주식을 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디바인 아티팩트를 만드는게 좋겠지요. 우선적으로 디바인 아티팩트는 검이 좋을 것 같습니다. 무스펠가용의 검입니다.”
지크프리드의 덩치는 꽤 컸다. 움직임은 부드럽지 못하고, 섬세하지도 못했지만 스쿨드를 써서 가속하면 그런 결점 따위는 사라졌다. 거대하고 묵직한 공격은 엄청난 파괴력으로 주위를 쓸어버릴 것이었다.
리베로로 대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고, 설사 가능해도 효율적이지 못했다.
“입주식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 듯 싶습니다만.”
원기가 반대의견을 내는 듯 보였지만, 실제로는 반대라기 보다는 이유를 듣고 싶다는 것에 가까웠다.
“굴베이그령의 인간들은 사투를 벌여왔습니다. 그런 그들이 평화로운 땅에 도달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그들은 만족하게 될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왜 누군가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곳에서 지내고, 자신들은 죽음의 땅에서 필사적으로 싸워야 했는지 불만을 갖게 될 겁니다. 가까운 이들을 잃은 이들은 더욱 그렇겠지요. 구출에 성공한 것만으로 만족해선 안됩니다. 사후 처리가 더 중요하지요.”
조제성의 말에 원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죽어간 굴베이그령의 사람들을 떠올린 탓이었다. 성대한 환영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원기는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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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이게 뭔 별천지야?”
“세상에, 이런 곳이 있었나?”
굴베이그령에서 온 아스가르드인들은 데이모스 내부를 보면서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데이모스의 직경은 최대 16킬로미터의 타원형이었다. 현재 개발된 곳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직경 약 1킬로미터의 거주구가 하나 건설된 상태였다.
하지만 현대 지구의 도시를 넘어서 미래의 도시, 아니 거대한 상업빌딩 같은 내부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거대한 천정에는 하늘이 비춰지고 있었고, 수십개의 층으로 이뤄진 내부 공간에는 다양한 건물들과 상점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운데 공간은 크게 열려있어서, 전망대와 엘리베이터들이 오르내릴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타임스퀘어같은 복합 쇼핑몰을 몇 배로 키운 듯한 그런 내부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데이모스에 도착한 것을 환영합니다.]
내부의 거대한 공동에 프레이야 여신의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특수한 안개를 깔고 다수의 프로젝터를 이용해서 입체적으로 비춰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여신님이다.”
“프레이야 여신님께서 강림하셨다.”
사람들은 모두 당황해서 고개를 숙이고 엎드렸다.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있자, 프레이야 여신은 내심 당혹스러워했다.
[모두 고개를 드세요. 여러분들을 지키지 못하고 고생시킨 점 정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특히 이곳에 도착하지 못한 분들께는 무어라고 사죄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프레이야 여신은, 원기는 죽어간 사람들을 생각하자 크나큰 상실감을 느꼈다. 자신을 알고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 대한 갈증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 집착이었다. 그렇기에 비록 말한마디 나눠보지 못한 이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을 잃은 것은 괴로웠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바니걸 통신을 통해서 전해졌기에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다.
‘내가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살아 올 수 있었을텐데.’
‘내가 조금 더 노력했더라면...’
그들의 마음은 슬픔과 죄책감으로 물들어갔다. 이는 필요한 것이었지만, 프레이야가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여러분들이 무사히 도착해서 너무 기쁩니다. 여러분들에게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굴베이그. 내 백성들을 아니 우리의 백성들을 지키고 이끌어 주느라 수고가 많았다. 정말 뭐라고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굴베이그가 리프트를 통해서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리프트는 공동 윗부분에 설치된 단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단상 위에는 프레이야 여신만이 아니고 헬과 펜릴이 함께 서 있었다. 프레이야 진영의 네 여신이 모두 서 있는 것이었다.
헬은 희연이, 그리고 펜릴은 놀원이 맡고 있었다.
굴베이그가 다가가자, 프레이야 여신이 그녀를 들어올려 끌어안고 이마에 입을 맞추어 주었다.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한 굴베이그 여신이 프레이야 여신의 품에 안기는 모습은 굴베이그령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이 받아들여진 듯한 기분을 주었기 때문에 푸근한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마치 어머니가 딸을 끌어안 듯 보이는 그 모습은, 프레이야 여신이 자신들을 보듬어 안아 주는 듯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도시를 건설해 준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짧은 시간, 부족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피신처이자 안식처가 될 이곳을 건설하기 위해 많은 희생을 감수한 여러분들께는 아무리 감사를 드려도 부족할 것입니다.]
프레이야 여신의 말과 함께 조명이 이곳저곳에 비춰지며, 스크린에 다양한 종족의 모습이 비춰졌다.
그리고 그 안에는 바퀴벌레 일족의 모습들도 비춰졌다. 그들이 보이는 순간, 희연의 담담한 표정이 살짝 흐트러졌다. 누구도 그 표정의 변화에 눈치채지는 못했지만, 헬 여신에게서 흘러나오는 살기섞인 위압감이 소용돌이치듯 장내에 퍼졌기 때문에 눈치채지 못하는 이들은 없었다.
“희연 녀석. 정말 자비가 없군.”
장수한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인간외의 모든 종족을 사랑하는 그로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바퀴벌레 일족을 비롯한 헬의 백성들은 희연의 혐오에 실망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바퀴벌레 일족을 싫어한다는 사실은 이미 모르는 이들이 없었다. 그보다는 휘몰아치는 위압감의 폭풍에 그들은 오히려 환호했다.
그들은 이 강렬한 위압감을 통해서, 자신들이 강하고 무자비한 신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실감하는 것이었다.
‘역시 우리 여신님은 최고셔. 등골이 오싹오싹하는걸.’
‘우리 여신님이 최강이지. 누가 우리 여신님보다 두려울 수 있을까.’
프레이야의 바니걸 통신과 헬의 위압감은 마치 채찍과 당근처럼 궁합이 잘 맞는 편이기도 했다.
두렵고 무시무시한 존재기에, 운명과도 같이 감히 거스를 수 없다고 느껴지기에 자기 편이라고 생각하니 힘이 나는 것이었다.
서유리의 순수한 공포보다 희연의 공포가 추종자들에게는 매력적인 것도 사실이었다.
헬의 백성들이 환희에 차 있는 동안, 거대 스크린에서는 데이모스의 소개와 공사 과정이 묘사되었다. 다양한 종족들이 필사적으로 데이모스 내부를 건축하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워낙 대공사인데다가 공사기일을 단축하다보니 사고도 적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상처입은 이들과 치료하는 모습도 보여졌다.
굴베이그령의 백성들만 고통받고 희생을 치른 것이 아님을 인식시켜 주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함께 살아갈 종족들에 대한 소개도 이뤄졌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각 종족들이 프레이야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의식이 이뤄졌다.
엘프들의 충성 맹세를 위해 나온 엘프 장로들의 앞에 선 것은 리디아였다.
‘저게 리디아라고?’
원기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녀가 보아 알던 리디아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엘프 본체로 나타난 리디아의 모습은 원기가 알던 그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다.
‘말도 안돼.’
원기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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