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1화 미의 기준
‘여신님께서 원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
리디아는 한숨을 삼켰다. 엘프들은 서로 사랑해서 짝을 이루는 습성이 없었다. 집단 양육이 기본이었기 때문이다.
리디아는 엘프 이외의 종족에 대해서는 호감보다는 적대감만 있는 쪽이었지만, 프레이야의 의사를 자신의 의사보다 중요하게 여기도록 교육 받았다.
리디아는 프레이야의 의사를 통해서, 아직 정해지지 않은 누군가의 짝이 되어야 한다고 해석했기 때문에 우울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아주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우와, 여신님께서 사고를 크게 치셨군요.”
수한이 혀를 내두르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조제성의 눈썹이 찡그려졌다.
“무슨 소리지? 내가 보기엔 별 의미가 없는 내용이었는데?”
조제성은 프레이야가, 즉 원기의 인격이 리디아의 외모를 보고 마음에 들어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적극적인 구애라고는 볼 수 없지만, 마음에 들어하고 아낀다는 느낌을 받았다.
좋아하는 것이 많다는 것은 삶에 대한 미련이 많다는 것이었다.
수십년 삶에는 미련이 그리 필요치 않지만 수백년 수천년을 살려면 미련은 많을 수록 좋았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트로피야. 감히 탐낼 사람도 없겠거니와 누군가에게 수여한다고 해도 골치가 아파질 뿐이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엘프, 그걸 감히 자신의 것으로 하고자 할만큼 자신감이 넘치는 인간은 제정신일 수가 없었다.
바니걸 통신을 듣는 자들은 어느정도 정신적 안정을 얻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다.
세계 제일의 미녀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그걸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중동의 부자들이라고 해도 무리였다.
“바로 그겁니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트로피. 그게 정상이 아닌거지요.”
장수한의 말에 조제성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분야이건 희소성있는 물품은 존재했다. 유일무이한 물품도 존재했다. 그런 가치를 효과적으로 활용해온 조제성이었기에 장수한의 말을 일순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정말 이해 못하시는 겁니까? 세상에 천하제일미가 어디있습니까. 무협이나 판타지라면 모를까, 현실에는 있을 수 없지요. 천하제일미는 미스 유니버스하고는 다른 겁니다.”
미스유니버스를 떠올린 조제성이었지만,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에 반박당했다.
“이런, 정말로 다른 여자들에 대해선 관심도 없으셨군요.”
장수한이 대단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조제성은 장수한의 그 제스쳐를 보면서 한대 쥐어박고 싶다는 기분과 얄밉다는 기분이 들었다.
좀처럼 감정적이 되지 않는 그로서는 의외라고 할 수 있었다. 혜서 외의 인물이 그의 사적인 영역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몰랐다.
“무슨 말인지 알겠군.”
조제성은 비로소 눈치챘다. 절대적인 미 같은 것은 그냥 개소리였다. 미는 결코 절대적이지 않았다.
사람이 미를 추구하는 마음은 절대적일지 몰라도, 무엇이 아름다움인지는 개개인의 판단에 맡겨져 있었다.
그리고 대중은 남이 정해주는 판단을 따르는 어리석은 삶의 방식을 선호했다.
변기를 하나 갖다놓고, 이것은 아름답다.라고 말하면 그것을 아름답다고 여긴다.
음식도 마찬가지였다. 정체불명의 음식을 많은 이들이 극찬하면, 그걸 먹어보고는 ‘이게 맛있는 거로구나’라고 학습하는 것이 스스로 자립못하는 인간들의 사고방식이었다.
그런데,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자애로운 미의 여신이 진심으로 리디아를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 진심이 흘러나와서 전해졌다.
프레이야가 말하면 죽으라고 해도 기꺼이 웃으면서 죽어갈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프레이야가 사슴을 두고 말이라고 해도, 기꺼이 말이라고 부를 사람들이었다. 하물며 미의 여신이 진심으로 아름답다고 한 대상을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할 존재들은 없었다.
“과연 그렇군.”
조제성은 각 부족들의 연회장을 돌면서, 관찰했다. 종족들간의 싸움이 컸고, 증오가 극도로 강한 편이었다. 그래서 타 종족을 보는 시선은 혐오에 가까웠다.
하지만 오늘은 확실히 분위기가 달랐다.
‘오, 저게 여신님이 극찬한 미모의 리디아님인가.’
‘저게 미인이라는 거로구나.’
조제성은 미모에 대한 감탄보다는 아름다움을 학습하는 면모를 보게 되었다. 오, 미인이다라는 느낌보다는 저게 예쁜거로군이라고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이용 가치가 정말 많겠군.’
조제성은 다양한 구상을 떠올리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장수한의 등을 한대 퍽 때렸다.
“잘했어.”
조제성은 시야를 최대한 넓게 갖고자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시야가 좁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시야가 좁은 사람들만이, 자신들은 모든 것을 알고있다든가, 자신만이 옳다든가, 자신의 시야가 넓다는 등의 착각 속에서 살게 되는 것이었다.
말이 통하면서, 자신과 다른 시각의 접근을 즐기는 장수한은 조제성에게 있어서는 함께 길을 가는 동료라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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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니걸 통신을 이용한 홈 쇼핑을 시작했으면 합니다.”
“홈 쇼핑이라고요?”
원기는 조제성의 말에 당황했다. 바니걸 통신은 원기로서는 그리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은근히 심적 부담감이 컸다.
하지만 아기들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해서 마지못해 하는 일이기도 했다.
“꼭 필요한 건가요?”
원기는 물으면서도, 자신이 쓸데없는 질문을 한다는 생각을 했다. 조제성은 원기를 최대한 배려해 주고 있었다. 원기의 호불호 정도는 모두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광고를 귀찮아합니다만, 광고는 꽤 중요한 겁니다. 사람들의 생활을 바꿔왔지요. 예를 들면, 신발을 신고다니지 않는 나라에서 신발광고를 한다고 하면 어떨까요.”
“소용 없지 않나요?”
“아닙니다.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신발이 좋은거구나 학습하게 됩니다. 멋지다고 생각하면, 신발을 신어보고 싶어지지요. 예쁜 신발이 맘에 들면 신발을 계속 신게 됩니다. 이를 통해서 사람들은 소위 ‘개화’가 되게 됩니다. 문명개화가 아스가르드 출신들에게는 필요합니다. 저들은 더러운 물도 달게 마십니다. 위생 상태도 최소한의 건강상태만 유지할 수 있도록 합니다. 썩은 걸 먹어도 멀쩡했다고 썩은 음식들을 먹습니다. 이걸 방치해서는 안됩니다.”
조제성의 말에 원기는 공감했다. 수인족들의 경우에는 인간화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인간화를 좋아하지 않는 종족들이 많았다.
모두 같은 것을 좋아할 필요는 없지만, 좋은 것을 좋아하는 것이 좋다고 할 수 있었다.
더러운 것보다는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것이 필요했다.
깨끗한 거주지역을 제공했는데, 이미 짐승들의 보금자리화가 진척되고 있었다. 인간들조차도 지저분한 천들을 모아들여서 집안을 쓰레기통화 하고 있었다.
“하지만 홈쇼핑이 의미가 있나요? 저 사람들한테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 생필품들은 모두 공짜로 보급됩니다. 판매를 위해서가 아니라, 올바로 사용하기 위한 광고입니다. 정수기를 제공했지만, 정수기로 물을 안마십니다. 더러운 물을 마셔도 되는데 뭐하러 귀찮게 정수를 해먹느냐는게 저들의 사고방식입니다. 오히려 깔끔떤다고 싫어합니다. 여신님의 하사품이라고 부숴버리지는 않지만, 구석에 쳐박혀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할 수 없겠네요.”
“물론, 부가적인 수익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지구에서는 판매가 되고 있으니까 말이지요.”
조제성의 말에 원기는 당해낼 수 없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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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바니걸 통신입니다. 오늘 여러분들께 말씀을 드리는 것은 좋은 물건을 소개해 드리기 위한 겁니다. 귀찮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사장님? 무슨 일이시지요?”
“잠시만 기다려. 지금 중요한 것을 떠올리는 중이야. 난 잠시 빠질테니, 자네들끼리 회의를 진행하게.”
한참 중역회의를 진행하던 사장은 평소하던 서두 연설을 황급히 중단하고 자리를 비웠다. 사장의 장황하고 반복되온 연설을 들어야 했던 중역들은 행운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무슨 일이 생긴건 아닌지 걱정하기도 했다.
사장은 사장실을 돌아보다가 아예 화장실로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바지도 내리지 않고 변기 뚜껑위에 앉았다.
그리고 눈을 지그시 감고, 여신님의 목소리를 듣는 호사를 즐겼다.
‘죄송해 하실 필요 없습니다. 적어도 전 정말 기쁘군요.’
[미리 말씀드리면, 제가 소개하는 물품들은 절대 싸고 좋은 물건이 아닙니다. 좋은 물건은 맞지만, 싸지는 않습니다. 이미 우리 유능한 승상님이 이 물건들을 파는 회사들을 사들였습니다. 그래서 비싸게 팔고 있습니다.
승상님이 망해가지만 좋은 물건을 만드는 회사의 상품들을 모아와서 제게 보여주시고, 제가 좋아하는 물건이 있으면 그 회사를 사들이셨습니다. 우주에 계신 여러분들께는 무상으로 나눠드립니다만, 지구에 계신 분들은 좀 비싸게 사셔야 합니다. 아니, 비싼 편이니까 되도록 사지 마세요. 부당이익금은 저를 의지하는 분들을 위해 쓰이게 됩니다. 돈이 남는다거나, 절 도와주실 마음이 있으실 경우에는 사서 쓰셔도 좋습니다.]
바니걸 청취자들은 광고 하나 하나를 귀여겨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환호성을 올렸다.
정기적으로 홈쇼핑 광고를 하겠다며 양해를 청했기 때문이었다.
바니걸 통신에 목마른 이들에게는 정말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여러 기업들의 주가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현대 사회에서 물건은 꼭 싸다고 잘 팔리는게 아니었다. 오히려 비쌀수록 잘 팔리는 경우도 있었다.
여신이 소개해 준 물건들은 여신의 보증대로 좋은 상품들이었다. 그리고 청취자들 기준으로는 저렴한 편이었다.
바니걸 청취자들은 기본적으로 이능을 각성하기 쉬운 사람들이며, 신성력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이들이었다. 게다가 정신적으로도 안정된 편이었다.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고, 신성력의 영향으로 길러졌으며, 정신적으로 여유가 있고 멘탈이 강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성역에 산다는 것 자체가 부유함의 증거이기도 했다.
“좋아, 주식을 사야겠어.”
사장은 화장실에서 일어났다. 아쉽게도 그의 회사 제품은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라이벌 회사 제품이 선정된 것도 아니었다.
승상이 비싸게 판다고 말했지만, 승상이라는 자는 유능한 것으로 유명한데다가 여신의 신뢰도 두터웠다. 바니걸 통신으로 그 정도 쯤은 알 수 있었다.
최대 매출을 위한 적절한 가격 산출 정도는 충분했다.
‘시장이 요동을 칠게 분명하군.’
여신은 분명 좋은 제품을 비싼 값에 판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정된 상품들은 솔직히 말해서 고가품이 아니었다.
서민들에게 조금 비싼 물건일 뿐이고, 상류층들은 거들떠도 안보는 물건들이었다.
그리고 바니걸 청취자들은 재능과 부를 충분히 가진 자들이었다. 이능에 눈을 뜨지 못한 이들도 많았지만, 그런 이들은 대체로 아쉬울게 없어서 이능을 각성 못한 이들이었다.
연예인들 가운데에도 바니걸 청취자들이 있었다.
[추가로 말씀드리는 걸 깜박했군요. 주식에는 큰 기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승상님이 꽤 올려놨다고 하시더군요. 당분간 주가가 하락하진 않겠지만, 주식에 대한 보증은 바니걸은 못합니다. 그리고 이 물품들을 특정 카드로 구입하시면, 포인트를 적립해 드립니다. 포인트가 많이 쌓이면, 특전으로 우주 난민이 될 여정에 원하는 사람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특전인지는 잘 모르겠군요. 우주난민이라는 고생길에 괜히 동참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강제로 함께 가자는 말씀은 안드릴겁니다. 희망하는 분이 혹여 있다면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와 동시에 이곳 저곳에서 함성이 터졌다. 단순한 기쁨이 아니라, 각오가 포함된 함성이었다.
프레이야가 말한 우주 난민 티켓은 바니걸 청취자들에게는 천국행 티켓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프레이야는 최소한의 인원만을 데리고 우주의 저편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하지만 바니걸 청취자들은 남겨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가족이나 사랑하는 이들을 두고서라도 떠날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물론 가능하면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하고 싶어했다.
문제는 인원 제한이었다.
‘내 전재산을 기증한다면 몇명이나 데리고 갈 수 있을까?’
[물론, 적립 포인트는 1건당 1회만 제공됩니다. 사재기는 통용되지 않습니다.]
그 순간, 많은 이들의 희비가 교차되었다. 조제성 역시 돈을 받고 티켓을 파는 것은 고려해 본 바가 있지만, 머릿수 제한이 있었다. 지속적으로 생존 가능한 인구는 약 백만 명, 가능하면 엘프족을 비롯한 통제가 쉽고 유능한 종족을 늘리는 것이 낫다는게 제성을 비롯한 수뇌부의 판단이었다.
“이봐, 자네. 이 리스트에 있는 물건들 하나씩 사오도록 하게. 지불은 이 카드를 쓰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그런데, 사장님. 리스트에 동물용 샴푸가 있는데, 어떤 동물을 기르시는 거지요?”
“없어. 동물 따위 성가시기만...아니지. 동물 한마리 기르는게 좋을 것 같군. 샴푸에 어울리는 동물도 한마리 구해오게.”
“알겠습니다.”
비서는 조심스럽게 사장실을 벗어났다. 그리고 그녀는 뜬금없는 사장의 구매 목록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회사에서 쓸 목적이라는 명분으로 왠만한 물품은 회사 카드를 사용할 수 있었는데, 사장이 사적으로 늘 가지고 다니던 카드를 내 놓은 것도 이상했다.
어디를 가더라도, 카드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그런 카드였다.
‘이걸 사기 위해서 존재하는 카드가 아닐까? 그렇다고는 해도 상품들이 죄다 뒤죽박죽이네. 발품좀 팔아야겠는걸. 게다가 이 브랜드들은 뭐지? 하나도 못들어본 것들인데?’
권위적이긴 해도, 책임감 있는 모실만한 가치가 있는 상사였다. 친절하지는 않아도 생각없이 행동하는 이는 아니었다.
‘왠지 세면용품을 비롯해서 일상용품들이 많은데. 마침 샴푸도 떨어져가는데 나도 하나 사볼까?’
그녀는 리스트에 실려있는 물건들을 찾기 위해서 유명 대형 마트 여러 곳을 찾아다녀야 했다. 그리고 같은 리스트를 가진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여럿 발견했다. 그 가운데에는 유명인들도 존재했다.
‘이 리스트는 보통 리스트가 아니었던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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