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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신의 세계-473화 (473/497)

473화 신구의 만남

[현재 바니걸 통신을 들어주시는 분들은 지구인들만으로 약 십오만에 달합니다. 일단 우주 난민 계획에 참여하실 분들은 십사만사천명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지구에서의 삶을 버리고 함께 떠날 분들이 많지 않을거라고 생각되니,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싶기도 하군요.]

바니걸 통신을 듣던 이들의 신경이 곤두섰다. 십사만사천명이라면 현재 청취자들 가운데 난민 계획에 참여할 수 없는 이들이 대량 발생할 수 밖에 없었다.

포인트로 가족을 비롯한 사랑하는 사람을 챙기려던 이들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까지 받았다.

[총 인원 백만 가량의 대규모 여정인만큼, 인간의 숫자가 더 많아도 좋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승상님과 의견을 나눠서 총 인원은 30만명까지 늘렸습니다. 그러니 가족을 데리고 함께 가시기를 원하는 분들도 충분히 가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 절대 그럴 리가 없지.’

바니걸 청취자들은 자신들이 충성을 바치기로 마음먹은 여신의 의견을 부정했다. 바니걸 청취자들 역시 알고 있었다.

여신은 바니걸 통신이 갖는 위력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바니걸 통신의 영향력을 여신이 알게 된다면, 여신은 바니걸 통신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게 될 것이 틀림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지금도 함부로 쓰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절대 사용하려고 들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바니걸 청취자들은 여신에게 필요한 사실만을 전하며, 어느정도 조종하고 있는 어둠의 조율자, 승상에게 감사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현재 십오만명이니, 포인트를 쌓아도 한 명 데려가는게 고작이겠군. 아니 한 명 데리고 가는 것도 잘못하면 위험하겠는걸.’

사람들은 포인트로 데려갈 수 있는 사람이 제한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살짝 낙담했다. 하지만 자신도 못갈 수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안도의 마음이 더 컸다.

조제성이 노린 것이기도 했다.

[승상님의 의견으로는 데이모스의 우주 이민선으로의 개조는 최소 십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거주구를 확장하면 확장할 수록 더 많은 이들을 태우고 갈 수 있을 거라고 합니다. 저는 오딘이 지구와 전쟁을 벌이는 것이 두렵습니다. 최악의 경우 월면 도시에서 약 십년간을 버티고, 데이모스의 완성을 기다려서 출발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 경우에는 총인원 약 십만명 정도로 출발해야 할 겁니다. 지구인들 가운데에는 약 일만명 정도가 우리와 함께 할 수 있겠지요.]

프레이야 여신이 두려워하는 마음, 걱정하는 마음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전해졌다. 특히 바니걸 청취자들 가운데서 죽는 이들이 나오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직접 마음에 와 닿으니, 두려움이라는 감정보다는 다른 감정이 더 크게 들었다.

[여러분을 귀찮게 해드리면서, 바니 홈쇼핑을 하는 이유는 바로 그때문이기도 합니다. 돈이 많으면 많을 수록, 데이모스의 개조도 빨라지고, 거주구의 확장도 빨라집니다. 거주구가 충분히 확장되면 더 많은 수의 인원들을 태우고 가는 것이 가능해 질겁니다. 오딘과의 전쟁 때문에 피난민이 다수 발생한다면, 그 피난민들도 최대한 수용할 수 있게 될 겁니다. 물론 함께 떠나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충분히 태울 수 있게 되겠지요. 그런 만큼 여러분들께 드리는 이 바니걸 통신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돈을 벌면 거주구를 늘리고, 함께 떠날 사람들의 숫자도 늘어난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포인트 경쟁이 단순한 의자뺏기 싸움이 아니라, 함께 떠날 수 있는 사람 수를 늘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은 의미가 있었다.

[사람들은 동물 귀를 좋아하지요. 저도 사람들앞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바니걸 모습을 한 적이 있습니다. 토끼 귀와 꼬리를 단 모습이었지요.]

바니걸 청취자들에게는 모를래야 모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약 이만명의 바니걸 청취자들이 만들어진 사건이기도 했다.

단순히 마술 쇼라고 생각한 이들이 과반수였지만, 그 장면을 촬영한 동영상 같은 경우, 인터넷에서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기도 했다.

그 장소에 없었던 수만명의 바니걸 청취자들이 부러워하는 내용이기도 했다.

[이건 파티 용품인데, 동물 귀와 꼬리 셋트입니다. 고양이, 개, 토끼 등이 있군요. 사자의 경우에는 갈기도 있습니다. 쓰실 일은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됩니다만, 파티 같은 때 하고 나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 셋트를 구입하시는 분께는 조만간 있을 할로윈 파티에 초대할 예정입니다. 저도 토끼 귀를 하고 그 파티장에 참석할 예정이니, 그 때 볼 수 있으면 좋겠군요. 여러분들이 가지고 계신 포인트 카드로 이 셋트를 구입하시면, 여러분들 주소로 장소와 시간을 지정해서 알려드릴 겁니다. 물론 이 파티에는 ‘진짜’이신 분들도 참여하실 겁니다. 부분 수인화가 가능하신 분들은 그대로 참석하셔도 됩니다. 이 셋트도 귀엽기는 합니다만, 역시 진짜가 좋긴 좋지요. 아, 더듬이와 날개를 가진 모습도 나름 멋진 것 같아요.]

프레이야 여신의 진심은 쉽게 전달되었다. 귀여운 여자 아이가 동물 귀를 달고 꼬리를 달고 움직이는 모습은 앙증맞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프레이야 여신을 통해서 전해져 온 심상 이미지는 바로 굴베이그였다. 굴베이그 여신이 강아지 귀와 꼬리를 한 모습은 너무 어울려서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애처롭기까지 한 모습으로 날 좀 봐달라고 조용히 눈망을을 반짝거리며 지켜보는 모습이었다.

펜리아, 펜릴 여신은 소녀의 모습으로 고양이 귀와 꼬리를 하고 있었는데, 못마땅한 기색과 도도함, 고압적인 모습이 극히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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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효과가 있을까?”

바니걸 통신을 마치면서, 원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효과는 아마 있을 것 같습니다. 바로 나타나고 있군요.”

거주구의 화면에 귀와 꼬리만 남기고 인간형의 모습을 취한 수인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충인족들의 경우에도 인간 형태를 취할 수 있는 이들은 날개와 더듬이만 남긴 인간 형태들을 하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해서 효과가 나타난거지요?”

“저들은 기본적으로 인간보다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여겨온 이들입니다. 우월종인 것이지요. 그런데, 인간의 모습을 한다는 것은 자신들이 천시하던 자들과 같아진다는 의미입니다. 마음에 들 리가 없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차별을 좋아합니다. 시계나 브랜드백 같은 것은 일종의 신분증인 겁니다. 난 너희들과 다르다. 난 고귀한 몸이다라고 드러내고 싶어하는 거지요.”

정확한 시간을 보기 좋게 알려준다는 목적과는 현저히 다른 형태로 변해버린 손목시계를 떠올리며, 원기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병동으로 변한 싸구려 아파트에서 그저 죽어가던 시절을 떠올리면 자신은 그런 입장의 사람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제성이 말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혼돈의 대륙에서 인간은 가축이었다.

거인족들의 땅에서도 인간은 농노이자, 에너지원이었다.

그리고 수인족들이나 충인족들은 중요한 전투원이자 귀족이었다. 그런 면에서 인간의 모습을 하는 것은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었다.

프레이야가 인간을 소중히 여기고 있으니, 그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억눌러 참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반발심으로 보다 동물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수인족의 연비를 생각한다면, 인간형을 하고 있는 것이 유리한 것이 사실입니다.”

썩은 물이나 음식을 먹는 것은, 성역 버프로 신진대사가 올라간 소화기관 덕분에 신성력을 거의 소모하지 않았다.

면역력이 높으니, 왠만한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수인족들의 육체는 신성력의 소모를 막을 수 없었다. 변신하는데 소모되는 신성력도 있고, 유지하는데 사용되는 신성력도 있었다.

필요한 상황에서만 쓰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었다.

찬균의 발상은 그저 덕스러운 것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차별화를 원하던 수인족들의 마음을 충족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었다.

“시간이 모두 해결해 줄 겁니다. 세대가 두 번쯤 교체되어야 하겠지요.”

조제성은 원기를 위로하듯이 말했다. 차별을 원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 특별해지고 싶어하는 것은 본능이었다.

인간은 낙원을 이룰 수 있는 구성성분은 될 수 없을지도 몰랐다.

“엘프들조차 그 특별해지고 싶다는 마음은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여신님의 곁에서 보좌하는 역할을 두고 벌이는 경쟁은 꽤 치열한 편입니다.”

“그런가요.”

“인간들보다 덜해보일 뿐이지, 없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근본도 인간이니까 말이지요.”

“그렇겠지요.”

원기는 그런 사람들의 속성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실망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저 안타깝게 여길 뿐이었다.

착하건 악하건, 원기는 그저 사람들이 곁에 있어주길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니걸 통신의 원동력이었다.

“오버 니 삭스에 미니스커트 광고도 해야겠군요.”

“남자들도 그 차림을 하지 않을까, 심히 걱정됩니다.”

조제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도전적인 정신을 노래하던 락그룹이나 메탈밴드, 힙합 전사라는 사람들까지 갑자기 새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 검은 정장바지와 에나멜 구두 그것도 브로그 없는 옥스퍼드같은 신발들을 신고 나온 것이었다.

한두명이면 깜짝쇼일텐데, 제법 많은 숫자들이 그렇게 하고 나오니, 유행이라기 보다는 혼란에 가까운 사태가 벌어졌다.

헤어스타일까지는 안다룬게 다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선택의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상품들을 빨리 제공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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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발전소란 말이지. 그거 재미있군.”

오딘은 혼돈의 대륙에서 잡아온 병사들의 말에 쓴 웃음을 지었다. 오딘이 데려온 이들은 독일 병사들이었다.

일부는 오딘이 거느리고 있는 나치 병사들에 대해서 반감을 가졌지만, 일부 병사들은 달랐다.

젊은이들 가운데에 네오 나치의 성향을 가진 이들은 제법 있었고, 독일군에도 있었던 것이다.

오딘과 나치의 조합에 그들은 전율하면서 적극적인 협조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오딘은 현대 지구의 전력과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시작했다.

“진정한 신들의 황혼을 시작해야겠지.”

오딘의 말에 몇몇 나치들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리 좋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지구를 떠나온 것을 되돌려서, 지구로 되돌아 가는 침공 작전을 의미하는 것이겠지.’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하일 오딘이라는 구호와 함께 나치식 경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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